12화. Money For Nothing (3)
그것은 단 한 줄이었음에도,
상당히 당황스러운 내용이었다.
yjy343 : 만나서 얘기하자고요?
비너스 : 넹
비너스 : 님 어스테이트 살져???
yjy343 : ?
yjy343 : 어떻게 아셨죠?
비너스 : 접속자 IP 보면 알수잇슴
비너스 : 정확히 어디 사세여??
yjy343 : 시에라시티요
비너스 : 헐?????????
비너스 : 저돈뎅;; 소오름;;
비너스 : 쨋든 진짜 만날 수 잇겟네여!
당황스러울 뿐더러 의심스럽기 짝이 없었다.
인터넷에서 접근해 오는 사람치고 정상적인 인간이 몇이나 있겠는가. 하물며 일면식도 없거늘.
yjy343 : 다단계 같은 건 아니죠?
비너스 : 아 증말
비너스 : 사람을 멀루 보구 ㅡㅡ
사기꾼. 종교 권유. 인신매매.
이런 식의 온라인 만남은 멀쩡한 세상에서도 가급적 피해야 했다. 게다가 이곳은 범죄자의 천국 어스테이트가 아니던가. 꽃뱀에게 된통 당한 정도로는 신고거리조차 되지 않는 곳이다.
yjy343 : 감사하긴 한데 좀 무서워서요
yjy343 : 모르는 분이 갑자기 이러시니까
비너스 : 음... 머라 해야 대나
비너스 : 제가 나대는 걸 조아해서 ㅋㅋㅋ
비너스 : 온라인 게임 같은 것도 보면
비너스 : 고인물이 뉴비 챙겨주고 그러자나요
비너스 : 저두 머 그런 거에여 ㅎ
사실은 그때, 게임 오타쿠 입장에서 게임 얘기로 비유를 드니 살짝 흔들린 감도 없잖아 있었다.
“게임이라…….”
이게 만약 <사이버판타지> 속 상황이라고 친다면, 랜덤 인카운터로 퀘스트를 마주한 셈이겠지.
그리고 당연히, RPG 게임을 플레이 하면서 퀘스트를 수락하겠냐는 창이 나왔을 때 ‘아니요’를 누르는 사람이란 웬만해서는 존재하지 않는 법.
비너스 : 그래서
비너스 : 어쩌실래영?
고민할 것도 없었다.
나는 곧바로 메시지를 보냈다.
yjy343: 죄송합니다
yjy343: 역시 안 되겠네요
내 대답은 ‘아니요’였다.
RPG 게이머로서는 아무래도 비상식적인 선택.
그러나 <사이버판타지> 게이머로서는 이것이야말로 아주 정상적인 선택이라 할 수 있었다.
시대를 초월한 게임성을 가지고 있었던 <사이버판타지>가 발매 당시 똥겜 취급을 받았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엉망진창인 인게임 밸런스.
100만 크레딧짜리 장비가 있어야 클리어 할 수 있는 퀘스트의 보상이 꼴랑 3만 크레딧이라거나.
레벨 10밖에 못 찍은 초반부에 느닷없이 레벨 80인 보스급 NPC와 일기토를 치르게 한다거나.
게임을 붙잡고 있는 내내 당최 이걸 깨라고 만든 건지 싶은 상황들이 벌어지기 일쑤였다.
때문에 열불이 터진 유저들(나 포함)이 직접 만든 밸런스 패치 모드를 설치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마저도 완벽하지는 않아, 나름대로 ‘완전판’이라 자부하는 모드팩을 만들어냈지만 게임의 밸런스 문제는 여전히 숱하게 남아 있는 형국이다.
그리고 지금,
게이머로서의 감이 말하고 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고―.
비너스 : ㅠㅠ
비너스 : 안 되시는구나
yjy343 : 거듭 죄송합니다
yjy343 : 마음은 감사합니다만
yjy343 : 번개모임 같은 걸 싫어해서요
비너스 : 아녜영 ㅎ
비너스 : 어쩔 수 없져
흑마법에 대해 궁금한 것은 잔뜩 있긴 하지만, 굳이 께름칙한 방식을 택할 필요는 없으리라.
일단은 블로그에 질문글을 올렸으니 주인장의 댓글이 달릴 때까지 천천히 기다려보기로 했다.
비너스 : 혹시 나중에라도 도움이 필요하시면
비너스 : 언제든 연락해주세엽!!
비너스 : (๑>ᴗ<๑)
[ 비너스 님이 퇴장했습니다. ]
채팅을 걸어온 상대는 의외로 금방 물러났다. 어쩌면 딱히 나쁜 의도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채팅창을 닫고 난 직후.
“저어, 팀장님?”
옆에서 스몰필드 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모니터에서 돌려 그녀에게로 향했다. 스몰필드 씨는 곧장 입을 열었다.
“신타케미컬에서 연락이 왔는데요.”
“예?”
“그쪽 사장이란 분이 팀장님 계시냐고 묻길래, 바꿔 드리려니까 갑자기 아니라고, 자기가 찾아뵙겠다고, 지금 여기로 오겠다고 하던데요……?”
그녀는 굉장히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 얘기를 전해들은 내 표정도 비슷했을 것이다.
“사장이 여기로 온다고요? 직접?”
“네에.”
“그, 연락 준 게 어디라고 했죠?”
“신타케미컬이요.”
나는 거래처 리스트를 머릿속으로 되새겼다.
음, 기억났다. 신타케미컬. 북미 쪽에 유통 보낼 마나 전지 재료를 조달하는 곳이다.
아직 거래액은 그리 크지 않지만 전망이 꽤 튼실한 터라, 회사 측면에서 꾸준히 파트너십을 키워가고 있는 유망 중소 업체 중 하나인데…….
“혹시 무슨 용무인지는 말 안 하던가요?”
“아무것도요. 목소리가 좀 많이 다급했어요.”
“급하게 해결해야 할 일이었다면 분명 전화로 말을 했을 텐데, 말을 하지 않았다는 건…….”
나는 허공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해결할 수 없는 일이 터졌단 거군.”
***
오후 2시경.
게스트룸 소파에는 중년의 뚱뚱한 남성이 앉아 있었다. 별로 덥지도 않은 날씨에 어째서인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는데, 하도 울상인 표정 탓에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정말로 면목 없습니다…….”
애당초 예상했던 것처럼, 그가 우리 사무실까지 들고 온 소식은 그리 유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제조 공정에 문제가 생겼단 얘기죠.”
“예…….”
“1차 가공된 마석으로부터 분류시킨 마나 전해질을 운송하는 기계에 과부하가 걸려, 마무리 작업이 불가해 공장이 올스탑 상태다. 맞습니까?”
“맞습니다…….”
“그래서, 저희 쪽과 계약한 납품 일정을 도저히 제때 맞추지 못할 듯하다―는 말씀이고요.”
“…….”
신타케미컬 사장은 숙인 고개와 침묵으로 답했다. 나는 나오려는 한숨을 가까스로 삼켰다.
“기계가 멈춘 게 금요일 저녁이라고 하셨죠. 좀 더 일찍 전달해 주실 순 없었던 겁니까?”
“그, 원래대로라면 기계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곧바로 대체 장비 지원을 받았어야 했습니다만, 보험사에서 갑자기 말이 달라지는 바람에…….”
“보험 회사랑 괜히 실랑이하다 결과적으로 그쪽 시간 이쪽 시간 죄다 날려 먹었다는 거군요.”
신타 사장은 다시 침묵.
나는 결국 한숨을 참지 못하고 내뱉어 버렸다.
“그, 그래도 일단 생산은 다 마친 겁니다! 단지 운송기에 문제가 생겨 공장 외부로 출하가 안 되고 있을 뿐이죠. 수리만 끝난다면 납품량 전부 3시간 이내로 항구까지 보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기계 수리는 언제쯤 완료되나요?”
“아, 그게, 아직 들어가지도 않았습니다…….”
“뭐라고요?”
“제조사 쪽에 긴급 수리 서비스를 신청했는데, 금주 내로는 작업이 어렵다고만 들어서요…….”
“고장 정도가 그렇게나 심한 건가요?”
“아, 아뇨. 박스 운송기의 마모된 컨베이어 벨트를 교체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왜 수리가 지체되는 거죠?”
“마, 마석 가공 공정에는 필연적으로 악성 에테르가 다량 발생을 합니다만, 아시다시피 공기 중의 에테르는 인체에 무척이나 치명적이기 때문에, 방진복 없이는 공장 내부에 들어가지도 못하거든요. 게다가 운송기를 수리하려면 에테르 농도가 가장 높은 CVD룸을 통과해야 하는데, 거기는 방진복도 소용이 없습니다. 항에테르 처리를 받은 안드로이드나 에테르 저항력이 높은 특이 체질의 인간, 아니면 마법사 정도나 가능하겠지요. 이론상 체내의 마나가 에테르를 중화시켜줄 테니까요.”
“…….”
“여튼 고급 인력이 필요한 작업이라, 수리에는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카이젠 쪽에도 문의는 해 봤는데, 마법사란 원체 귀하지 않습니까…….”
신타케미컬 사장은 최선을 다해 변명하듯이 이런저런 잡소리들을 주저리주저리 읊어 댔다. 나로서는 귀담아들을 필요가 전혀 없는 얘기들이었다.
“후우, 알겠습니다. 어떻게 해서도 납품 일정을 맞추지 못하겠다니 뭐 어쩔 수도 없네요.”
“예에, 물론입죠. 납기 일정을 조금만 늦춰 주신다면 그때는 아무 문제없이…….”
“이번 납품 계약은 없던 걸로 하죠.”
순간 신타 사장의 표정이 싹 굳었다.
“예, 예에……?”
“계약상 납기 불이행이라는 귀사의 일방적 귀책사유로 인한 계약해제를 통보하도록 하겠습니다. 송금수표로 선지급한 거래금 98만 9000달러는 수수료 포함 전액 청구할 예정입니다.”
무덤덤하게 말하는 나를 보며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새파래진 낯을 들이대는 신타 사장.
“자, 잠시, 잠시만요, 팀장님? 그,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계, 계약해제라뇨? 아, 안 됩니다!”
“뭐가 안 된다는 거죠?”
“마,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납품할 물건 생산은 이미 완료했다고요. 재고는 지금 공장에 다 있습니다. 운송기만 고치면 되는 거라니깐요!”
“납기일은 3일 뒤입니다. 그때까지 운송기 수리가 끝난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그, 그건…….”
“저희는 거래 물품을 해당 날짜에 반드시 배에 실어 보내야 합니다. 그런 계약이었으니까요.”
나는 단호히 말했고, 신타 사장은 손짓 발짓을 총동원해 가며 나를 설득하려 애썼다.
“티, 팀장님,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지금 선지급금 반환했다간 기계 수리도 못 합니다. 이번에 실적 못 내서 융자 끊기면 저희 공장 망해요!”
자기보다 배는 살았을 인간이 자존심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머리를 조아리는 광경을 보게 된다면, 누구라도 조금은 마음이 흔들릴 터였다.
“우리 회사요, 세운 진 얼마 안 됐지만 딸린 식구가 벌써 열둘입니다. 저번 달에 결혼한 친구도 있는데, 회사가 덜컥 망해 버리면 어떡하게요. 요새 불경기인 거 아시잖습니까. 예? 팀장님,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제발 사정 좀 봐주셔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한테는 해당사항 없는 얘기였다..
“손해배상 청구를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사정 봐드린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
“돈을 줬는데 물건을 못 받았으면, 줬던 돈을 다시 돌려받아야 하는 게 맞죠. 아닌가요?”
갑질도 뭣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당연한 상식을 이야기할 뿐이었다.
“세상에 공짜로 버는 돈은 없습니다, 사장님.”
신타 사장은 침묵했다.
이번 침묵은 완전한 침묵에 가까웠다.
“일이 이렇게 돼서 유감입니다.”
“……아뇨, 아닙니다…….”
“배웅이라도 해 드리고 싶지만 발등에 불 떨어진 건 매한가지여서요. 그럴 여유도 없네요.”
신타케미컬 사장은 실패자의 축 늘어진 어깨를 짊어진 채 사무실 밖으로 쓸쓸히 퇴장했다.
그를 보내고 돌아선 찰나, 좀 전부터 회의실 근처에서 서성거리며 이쪽으로 근심 어린 시선을 보내오는 스몰필드 씨가 내 눈에 띄었다.
“스몰필드 씨? 뭐 할 말 있습니까?”
“네? 아, 아니요…….”
“그럼 빨리 일이나 합시다. 저는 신타케미컬 대타로 물건을 납품해줄 업체를 찾아볼 테니, 스몰필드 씨는 LA 쪽에 연락해서 납기일을 미룰 수 있는지 좀 알아봐 줘요.”
“아, 네.”
“그리고 신타에 서면으로 보낼 계약해제 통보문이랑 거래대금 반환 청구서도 작성해 주시고요.”
스몰필드 씨는 맥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로 돌아갔고, 나도 맞은편 내 자리로 가서 앉았다.
가뜩이나 할 일이 태산이었는데 거기에 신타케미컬 건까지 겹쳐 완전 히말라야 산맥이 되어 버렸다. 등정하려면 오늘도 야근은 필수일 듯했다.
나는 열심히 자판을 두드렸다. ‘마법’이나 ‘흑마법’ 따위로 가득했던 인터넷 검색 기록은 곧 비즈니스맨과 어울리는 단어들로 덮어 씌워졌다.
일을 하는 동안은 여기가 게임 속 세상이라는 걸 잠시 잊게 된다. 현실로 돌아온 듯한 이 기분이 뭐 딱히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또 그런가 하면 그래 봤자 이건 다 결국 게임에 불과하다고 뇌가 자꾸 멋대로 되뇌기도 한다.
참 묘한 느낌이 아닐 수 없다. 이리 바빠 죽겠는 상황임에도, 게임할 때 곧잘 하는 노가다 같은 것이라 생각하니 꽤나 즐겁다는 착각까지 든다.
내가 있는 이곳은 현실이 맞다.
하지만 동시에 게임 속이기도 하다.
경계선을 갈라 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겠지.
“후우.”
오후 7시경.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다 받았다 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팀장님, 여기 환어음 매입 신청서요.”
“아, 고마워요.”
“……대타 업체는 아직 못 고르셨나요?”
“몇 군데 후보는 정해 두긴 했는데, 이것저것 애매한 부분이 있어서요. 확인할 게 좀 많네요.”
납품이 3일 남은 시점에 이제 와서 생산 계약을 덜컥 새로 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었기에, 재고 물량을 가지고 있는 업체를 찾는 중이었다.
허나 100만 달러어치에 육박하는 물량을 3일 안에 공급 가능한 업체는 소수.
결국 방법은 다수 업체와 동시에 납품 계약을 하는 것뿐인데, 그러면 당연히 품질이나 규격 등을 통일하는 것에 문제가 생기니, 무한 검수와 서류 작업 노가다로써 이를 해결해야 했다.
“……죄송해요…….”
그때, 느닷없이 스몰필드 씨가 사과를 했다.
어쩐지 잔뜩 풀이 죽은 목소리였다.
“예?”
“신타케미컬, 예전에 제가 품의 올려서 고른 업체였어요. 그땐 팀장님 안 계실 때였는데, 처음으로 맡았던 제대로 된 일이라 좀 성급하게 처리했었거든요. 그래서 실수한 것 같아요…….”
에이, 난 또 뭐라고.
괜한 죄책감을 가지는 그녀의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귀엽게 느껴져 피식 웃고 말았다.
“스몰필드 씨가 실수한 건 없습니다. 오히려 잘 골랐다고 칭찬해 주는 게 맞을 정도예요. 객관적으로 봤을 때 신타는 아주 괜찮은 업체거든요.”
그저 위로해 주려고 던진 빈말이 아니었다.
신타케미컬은 회사 규모는 작지만 마석 가공 분야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우수한 기술력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이번 사건만 아니었다면 추후 업계 1인자 비슷한 위치까지도 노려볼 만했을 텐데.
하여튼 간에 정말 아깝게 됐다.
물건 생산은 끝났다고 했지. 그냥 옮기기만 하면 되는 건데, 기계가 고장 나서 불가능하다니.
“운송기를 수리하려면 에테르 농도가 가장 높은 CVD룸을 통과해야 하는데, 거기는 방진복도 소용이 없습니다.”
“항에테르 처리를 받은 안드로이드나 에테르 저항력이 높은 특이 체질의 인간, 아니면 마법사 정도나 가능하겠지요. 이론상 체내의 마나가 에테르를 중화시켜줄 테니까요.”
“마법사란 원체 귀하지 않습니까.”
문득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허나 그것들은 하나같이 나 자신에게는 이로울 것이 전혀 없는 한심하고 멍청한 생각들이었다.
“…….”
자기한테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개고생만 하다가 남 좋은 일만 만드는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면, 누구라도 그런 전개만은 피하고 싶어 할 터였다.
“스몰필드 씨.”
“네?”
“신타 쪽에 연락 좀 해주시겠습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한테는 해당사항 없는 얘기였다..
“지금 갈 테니, 공장 문 열어 두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