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Money For Nothing (2)
“7…… 아니지, 여기선 4가 들어가야 맞지…… 그렇다면 이쪽도 후보가 줄어들긴 하는데…….”
사장은 한창 숫자 계산에 열중이었다.
이 인간이 웬일로 책상에 붙어서 일을 하고 있지? 하고 놀랄 필요는 없다. 사실은 자동차 잡지에 붙어 있는 스도쿠 퍼즐을 푸는 중이니까.
“으으음, 어렵구만. 어려워…….”
“사장님. 제 얘기 들으셨습니까?”
“물론이지! 근데 뭐라고 했지?”
나는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사내 조직도에 있어서 난해한 부분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우선은 현재 ‘영업팀장’인 제 직함을 ‘운영팀장’으로 변경했으면 합니다. 맡은 직무를 고려했을 때, 그편이 더 일관성이 있거든요.”
“음, 일리가 있군.”
“다음은 비효율적인 업무 환경과 시스템 개선에 대해서입니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인력 보충 건인데, 내달까지 밀려 있는 업무를 늦지 않게 처리하려면 사무원이 최소 2명은 더 필요합니다.”
“으흠, 일리가 있네.”
“그리고 주말엔 화분 좀 가져가십시오. 선인장은 몰라도 바질은 하루라도 물 안 주면 금방 시들어 버린단 말입니다.(일요일에 내가 물 줬다고.)”
“그것 역시 일리가 있어.”
사장은 고개를 끄떡거리며 바쁘게 펜대를 굴렸다. 지금 막 한쪽 줄을 다 채운 모양이었다.
“됐다! ……으잉? 9가 왜 여러 개지?”
“사장님. 제 얘기 들으신 거 맞습니까?”
“물론 들었지. 헌데 자네, 수학은 좀 잘하나? 지금 거의 다 풀었는데 사알짝 막혀서 말이야.”
이번엔 한숨이 나오는 것을 참지 못했다.
“제일 중요한 걸 아직 말씀 안 드렸습니다.”
“으흠?”
“급여 문제에 관해서입니다.”
그렇게 말한 뒤, 나는 내내 한 손에 가지고 있던 종이들을 책상 위에 정중히 올려 두었다.
아까 전 ATM에서 뽑아온 입금 내역.
그리고 연봉 계약서와 임금 명세서다.
“오늘 제 급여가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금액이 3만 4,300달러더군요.”
“그래서?”
“지난주 월요일에도 3만 달러 넘게 들어왔던데요. 그 지난주에도, 또 그 지난주에도.”
“그게 뭐?”
“연봉 계약서에 쓰여 있다시피, 올해 제가 받는 임금의 월 수령액은 2,700달러입니다.”
“…….”
“즉, 저는 원래 받아야 하는 돈의 50배 이상 되는 급여를 회사로부터 수령했다는 거죠.”
명백한 수치적 모순.
바야흐로 숫자놀음에 실컷 빠져 있는 사장이기에, 그것을 모른 척 발뺌할 수는 없으리라.
“무어, 그냥 고과가 착실히 반영된 거라 생각하게. 자네 그동안 고생 많이 했잖나. 맨날 잔업하고, 야근하고, 주말 출근하고. 일 열심히 한 사람이 돈 많이 받아 가는 게 이상할 게 뭐가 있나?”
“무지막지하게 이상하죠. 성과급 4,900%를 받을 정도의 일을 하지는 않았으니까요.”
“거참, 행복한 상황에 까다롭게도 구는구만그래. 내 딴엔 자네가 부러울 따름인데 말이야.”
“사장님은 연봉 얼마 받으십니까?”
“나야 뭐 일한 만큼 받지.”
사장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스도쿠 퍼즐만 쳐다보고 있었을 뿐.
“아무튼,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뭐를?”
“제가 이 돈을 받는 이유에 대해서요.”
내가 단호한 어투로 그렇게 말하자, 사장은 그제야 나를 향해 고개를 1cm 정도 움직였다.
“자네, 입사 때랑은 묘하게 태도가 다르군.”
“그렇습니까.”
“분위기도 달라졌어. 그때는 뭐랄까,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관심 흥미 그런 거 하나도 없고, 자기 포함 세상 사람 하루아침에 다 죽어 버려도 아무 상관 없다는 눈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아예 딴 사람 같아. 눈빛이 쓸데없이 또렷해.”
“사람은 변하는 법이니까요.”
“변하는 게 좋기만 한 건 아니지.”
“질문에 대답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래, 자네가 그 돈을 받는 이유 말인가.”
탁―.
사장은 볼펜을 내려놓았다.
“없어, 그런 거.”
그것은 대답조차도 아닌 대답이었다.
하지만 왜인지, 명쾌한 해답처럼도 들렸다.
“용건 더 있나? 없으면 나가줬으면 하는데.”
나는 조용히 있었다.
해야 할 말도 하고 싶은 말도 이제는 없었기에, 꾸벅 묵례하고서 사장실 밖으로 나왔다.
그대로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결국 알아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후우.”
최근 골치 아픈 일들이 너무 많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늪에 빠진 기분이다. 허우적거릴수록 수렁 속으로 빨려 들어갈 뿐인 듯하다.
차라리 허우적거리는 것을 그만두면,
언젠가 부력에 의해 자연스럽게 위로 떠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던 찰나.
따르릉―.
전화기가 바쁘게 울렸다.
마치 내게 허우적거리라고 보채는 듯이.
“예, 윌슨앤코입니다.”
나는 전화를 받기도 전부터, 이 전화가 어디의 누가 걸어온 것인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오랜만이군. 팀장.」
쿠바산 시가처럼 묵직한 목소리.
윌슨앤코 인터내셔널의 그 남자다.
「연락한 지 한참 됐는데, 그간 별일 없었나?」
“……없지는 않았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소식은 들었네. 금요일 밤을 꽤 격하게 보냈다면서.」
“피차 원나잇 상대를 잘못 골랐죠, 뭐.”
「칸투가 제대로 된 장비를 가지고 갔더라면, 자네는 영영 누운 채로 있었겠지만 말이지.」
“제가 그냥 경찰에 신고하고 말았으면 그 친구 팔 하나 터질 일도 없었을 테죠. 안 그런가요?”
나는 여유롭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존 렘브란트 버미어 씨.”
정적.
전화기 너머의 남자는 잠시 침묵했다.
「……이건 좀 놀랐군. 어떻게 알았지?」
“별거 아닙니다. 무역회사는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서, 회사 홈페이지에 주요 직원의 연락처를 적어 놓은 긴급 연락망을 마련해 두는 경우가 있죠. 윌슨앤코 인터내셔널도 그렇더군요.”
「…….」
“당신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이름이 ‘존’이라는 것뿐. 일단은 높으신 분일 거란 추측으로 임원 목록을 쭉 뒤져 봤습니다. 근데 디렉터 이상에 ‘존’이란 이름을 가진 분이 무려 10분이나 계시더라고요. 저는 무슨 임원 승진 평가에 이름이 ‘존’이면 가산점이라도 들어가는 줄 알았다니까요.”
1단계로 추려낸 10명의 ‘존’의 연락처.
그렇게 알아낸 번호로, 회사 앞 공중전화를 써서 한 명씩, 일일이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비서가 받으면, 이렇게 말했다.
―급한 일이라고 전해주시겠습니까?
―우드게이트 웨어하우스 관련입니다.
대부분은 이후 일절 응답이 없었다.
그러나 딱 한 명. 비서가 곧바로 전화를 연결해 주겠다고 한 인물이 있었다.
“그게 당신입니다. 존 렘브란트 버미어. 윌슨앤코 인터내셔널 물류사무책임자 겸 총괄 VP.”
「……그런가. 아침 일찍부터 기분 나쁜 장난 전화가 왔나 했더니, 그게 자네 짓이었군.」
“개인적으로 비즈니스 관계에 있어 정보의 불균형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서요.”
그쪽은 내 이름과 주말에 있었던 일까지 다 아는데, 내가 그쪽 풀네임조차도 모르는 건 아무래도 불공평하지 않은가.
“칸투인지 칸쵸인지 하는 친구한테도 전했다시피, 이제부터는 비즈니스입니다. 버미어 씨.”
「보기보다 무모하고 똘똘한 친구로군.」
“용건이 있으시다면 서둘러 말씀해주시죠. 업무 전화 받고 있을 시간도 없거든요, 지금.”
전화 속 남자는 다시금 말이 끊어졌다.
그가 입을 연 것은 3초간의 침묵 후였다.
「흑마법.」
내뱉은 것은,
세 음절의 단어.
「어떤가? 악마에게 심장을 판 기분은.」
“제값을 받지 못한 것 같아서 좀 별로입니다.”
「후회하고 있지는 않나?」
“짜증이 나긴 하지만 애초에 네고 불가였어가지고요. 그냥 불평까지만 뱉고 있습니다.”
「하핫, 선택 하나하나가 충동적인 것치고는 우스울 정도로 차분하군. 정말 재미난 친구야.」
“어째 아까부터 공연히 담소만 이어가시는데요. 하실 말씀이 있어서 전화하신 것 아닙니까?”
「그러려고 했지만, 가만 생각해 보니 전화로 할 만한 얘기는 아닌 듯해서 말이지.」
전화 속 남자는 씩 웃었다.
왠지 그랬을 거란 느낌이 들었다.
「조만간 만나서 얘기해 보자고.」
뚝―.
전화는 끊어졌다.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러고 나서 발아래를 슬쩍 바라보았다.
책상 밑의 가방에는 여전히 그 물건이 담겨 있다. ‘카인의 단도’라 불리는 악마의 성물이.
“……흑마법…….”
여전히 잘 모르겠다.
무시무시한 짓거리를 벌인 것 같기도 한데,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놀라울만치로 평이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저주’나 ‘악마’ 같은 단어들은 어디에 끼워 맞추려 해도 전혀 연상이 되지 않는다.
흑마법사가 되었다.
아마도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이제부터 뭘 하면 되는데?
아무래도 정보가 부족하다. 아까 전에도 말했지만, 정보의 불균형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알아봐야지, 그럼.”
나는 인터넷 브라우저를 켰다.
그리고 즐겨찾기 해둔 블로그로 바로 접속.
<마녀일기>
~세실리아 화이트럼의 마법 연구소~
그동안 인터넷의 마법과 관련된 사이트들 이곳저곳을 샅샅이 뒤져 봤지만, 아무리 뒤져 본들 여기만큼 자료의 양과 질이 좋은 곳이 없었다.
팩트에 기반을 둔 정보를 알기 쉬운 문장으로 풀어 써 초등학생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글.
그렇기에 개인 블로그라고는 믿기지 않을 수준의 높은 방문자 수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근데, 흑마법 얘기는 별로 없네…….”
블로그에 작성된 수백 개 이상의 포스팅 중에서, 흑마법에 대해 다룬 포스팅은 단 1개.
그마저도 상세한 내용은 뭐가 없다시피 했고, 다른 사이트라 해도 상황은 거의 마찬가지였다.
하여간 인터넷에서 흑마법에 대한 정보를 찾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조금 다르게 접근해 볼까.”
명색이 흑마법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받은 힘은 어디까지나 강화 마법.
마력의 색이 <기타 색채>란 것만 제외하면, 실상 일반적인 마법과 별달리 차이가 없을 것이다.
다만 이것도 <기타 색채>인 점이 좀 크다.
보라색 마력으로 쓰는 마법에 대한 정보는 흑마법에 대한 정보보다도 월등히 부족했으니까.
“흐으음, 어쩐다…….”
손등으로 턱을 괸 채 가만히 마우스 스크롤만 움직여 블로그 글을 주욱 내려다보던 와중.
문득 포스팅의 댓글창이 눈에 들어왔다.
“오?”
거기에는 블로그 방문객들의 다양한 질문 세례와 더불어 그에 대한 주인장 세실리아의 정성 가득한 장문의 답댓글들이 주르륵 달려 있었다.
가만있자.
여기에 질문을 쓰면 댓글을 달아 주려나?
크게 고민은 하지 않았다.
나는 즉석에서 가입한 아이디로 곧장 아무 게시글에나 댓글을 남겼다.
○ yjy343
안녕하세요.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조금 질문할 것이 있어 댓글을 남깁니다.
만약에 마나 보유량이 무한대에 가까운 보라색 마력의 소유자가 강화 마법을 익혔다 가정한다면, 그걸 어떤 식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요?
엔터 후 클릭.
성공적으로 댓글이 올라갔다.
“흠.”
답글은 언제쯤 달리려나.
게시물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주인장은 늦어도 일주일 안에는 답변을 달아 주는 모양이었다.
다른 댓글들을 살펴보던 그때.
띠링―.
갑자기 효과음이 울렸다.
“응?”
화면 가장자리에 무슨 알림이 떠 있었다.
나는 알림창을 눌러서 그게 뭔지 확인했다.
[ 비너스 님이 일대일 채팅을 신청했습니다 ]
“……?”
비너스?
이건 누구지?
적어도 블로그 주인장은 아니다.
채팅 신청 타이밍을 보면 방금 내가 쓴 댓글을 보고서 걸어온 것 같은데…….
[ 채팅방에 입장하시겠습니까? ]
의구심과 호기심이 동시에 든다.
일단은 확인차 한번 들어가 볼까. 광고나 뭐 이상한 것 같으면 바로 그냥 나오면 되겠지.
[ 예 ] ◀
[ 아니요 ]
클릭.
나는 채팅방에 들어갔다.
[ yjy343 님이 입장했습니다 ]
비너스 : 하이염
비너스 : 마녀님 블로그에 댓글 쓴 분 맞져?
입장하자마자 바로 상대의 말풍선들이 달렸다.
나도 분당 600타 정도는 치는 편인데, 아예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타자 스피드였다.
yjy343 : 안녕하세요
비너스 : 넹 안뇽하세용^^
비너스 : 방금 세실리아 블로그에 댓글 쓰셧죠?
yjy343 : 네
yjy343 : 무슨 일이시죠?
비너스 : 몬가 많이 궁금해 하고 계시길래 ㅎㅎ
비너스 : 혹시 저가 알려드릴까영??
흐음.
좀 미심쩍긴 한데.
yjy343 : 마법에 대해 잘 아시나요?
비너스 : 쫌요ㅋ 저 샌마대 아케인특기생임
비너스 : 학생증 찍어서 메일루 보내드려여?
나는 채팅창을 그대로 둔 채 포털사이트를 열어 ‘샌마대’라고 검색해 보았다.
샌제이비어 국립마법대학교. 연간 입학생이 총원 100명 이하인 세계 최고의 명문 마법대학.
yjy343 : 명문대생이시네요
비너스 : 사실 3수해서 들어가써요. ㅎ….
yjy343 : 그러면 질문 몇 개만 해도 될까요
비너스 : 네넹
비너스 : 근데
비너스 : 제가 안구건조증이 있어서
비너스 : 컴퓨터 앞에 오래 못 앉아 있거등여
비너스 : 그래서 말인데
상대의 다음 말풍선은,
조금 느릿하게 올라왔다.
비너스 : 만나서 얘기하지 않을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