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Out of The Blue. Into The Black (3)
“주, 주말에 시간 있, 있냐구요……?”
스몰필드 씨는 괜히 안경을 고쳐 쓰거나 사무실 바닥을 내려다보거나 헛기침을 하거나 했다.
“크흠! 아, 아무 일정도 없는데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솔직히 말해서, 직장 상사인 입장에서 이런 얘기를 꺼내도 될진 모르겠지만……. 싫으면 싫다고 하셔도 돼요.”
그 무렵 스몰필드 씨의 눈은 떨리고 있었다. 불안감과 뭔지 모를 감정들이 마구 뒤섞인 채로.
“스몰필드 씨.”
“네, 네엡?”
“이번 주말에…….”
그녀의 동그란 안경 너머 금빛으로 반짝이는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나는 말했다.
“회사 좀 나와 주실 수 있겠습니까.”
……긴 침묵이 흘렀다.
스몰필드 씨는 잠시 말이 없었다가, ‘그럼 그렇지’ 하는 느낌의 한숨을 후우 하고 내쉬었다.
“주말 근무란 말이죠. 알겠습니다.”
“정말로 미안해요. 어떻게 해서든 오늘 끝내고 싶었는데, 상황이 여의치가 않아서…….”
“괜찮아요. 한두 번도 아닌데요, 뭘.”
그녀는 무덤덤한 어투로 말했다.
나는 사과와 경의의 표시로 고개를 살짝 앞으로 수그렸다.
“그럼, 내일 하루만 부탁드리겠습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스몰필드 씨가 되물었다.
“에, 내일이요……?”
“음? 토요일에 출근 가능하신 것 아니었나요?”
“아니, 잠깐만요.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왜인지 서로 핀트가 어긋난 듯한 상황.
스몰필드 씨는 내게 충격적인 말을 던졌다.
“내일은 원래 출근하는 날이잖아요.”
……또다시 긴 침묵이 흘렀다.
나는 잠깐 할 말을 잃었다가, ‘이게 당최 뭔 소리지’ 하는 느낌으로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그러니까, 지금 스몰필드 씨 말은, 원래 우리 회사는 토요일 출근이 기본이란 겁니까?”
“어째 모르셨던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아, 하긴 팀장님은 토요일에 제때 출근하신 적이 없었죠.”
어이가 없어서 숨이 턱 막혔다.
우리나라라면 몰라도, 서양에서 주 5일 근무제는 이미 20세기 초반에 상식이 된 제도다.
그런데,
명색이 대기업이란 회사가 토요일 근무?
게다가 일요일 근무까지 종종 있었단 말이야?
“저어, 팀장님? 그래서 저는 일요일에 출근하면 되는 건가요?”
“……아뇨. 일요일은 아니에요.”
“네? 안 나와도 돼요?”
“예에, 토요일만 나와 주시면 됩니다.”
스몰필드 씨는 다행이라는 듯 휴우 하고 숨을 뱉었다. 나로선 뭐가 다행인 건지 잘 몰랐다.
나는 자리로 돌아왔다.
내가 처한 상황은 어제와 별로 다를 바 없었지만, 문득 아무것도 몰랐던 시절이 그리워졌다.
“…….”
일할 사람을 더 뽑기 전에, 우선 이 똥통 같은 회사를 필요 최저한으로는 정상화시켜야 한다.
그리고 강해져야 한다. 이 정글 같은 도시에서 살아남으려면 믿을 것은 자신의 힘밖에 없기에.
또 그런 와중에, 흑마법에 대한 이야기와 내 수중에 있는 그 단검이 무지하게 신경이 쓰인다.
“하아.”
감당 안 될 정보와 고민들로,
머릿속은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할 일이 너무 많잖아, 제기랄…….”
점심시간은 애저녁에 끝나 있었다.
***
오후 9시.
사장실 창틀 구석에 놓인 조막만 한 바질 화분에 물줄기를 흘려주며 사르르 하품을 지었다.
“커피 한 잔만 더 할까.”
나는 사장실에서 나와, 텅 빈 사무실을 일자로 가로질러 탕비품 팬트리 쪽으로 향했다.
벽에 몸을 기댄 채 인스턴트커피를 한 모금 홀짝였다. 아무래도 맥심이 그리워지는 맛이었다.
사무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것은,
웨스트록Westrock의 화려한 밤거리.
네온. LED. 할로겐. 헤드라이트.
태양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지금, 이 도시의 거리는 수많은 인공 광원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가끔은 완연한 어둠 속에서 잠드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으련만, 거만한 도시는 도통 어둡다는 개념을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나오려는 하품을 삼킨 뒤 마른 눈을 비볐다.
아마 지금 추세라면 남은 업무를 끝마치는 데에 대략 두 시간 정도는 더 걸릴 터였다.
“…….”
오늘 그 남자의 전화는 결국 오지 않았다.
뭐, 업무에 집중할 수 있던 건 다행이었지만.
나는 다 마신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휙 버리고 사무실 책상들을 빙 돌아 현관으로 향했다.
책상 앞에 진득이 붙어 있기 전에, 마지막으로 화장실에 가서 세수나 하고 올 생각이었다.
그렇게 문을 열고 나가려던 그때.
―툭.
뭔가가 문짝에 걸렸다.
“……?”
복도 바닥에 휴대전화가 떨어져 있었다.
얼핏 리모컨으로 착각할 비주얼의, 버튼 커버도 달리지 않은 파란색 구형 벽돌폰.
나는 그걸 무심코 주워들었다.
전화 중앙의 녹색 모노크롬 화면에는 ‘통화 중’이라는 글자가 떠 있었고, 그 아래에 깜빡거리는 통화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가는 중이었다.
전화를 귀에 갖다 대 보자,
곧바로 누군가의 음성이 들렸다.
「물건을 가지고, 건물 밖으로 나와라.」
흠칫, 나는 주위를 살폈다.
컴컴한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혼자서 당황해 우왕좌왕하는 나만이 있었을 뿐이다.
“여보세요? 뭐라고요?”
「…….」
“당신 누구야? 지금 뭐 하자는 건데?”
대답은 없었다.
처음 듣는 목소리. 당연히 누군지는 알 턱이 없었으나, 적어도 누가 시킨 일인지는 알 수 있었다. 나는 상황 파악을 못 하는 바보가 아니었다.
윌슨앤코 인터내셔널의 ‘존’.
전화 속 그 남자의 부하인가.
「물건을 가지고, 건물 밖으로 나와라.」
같은 말을 구태여 두 번 한다는 건,
배려보다도 협박에 가까운 언사였다.
그러니 다른 선택지는 없다고 봐도 좋았다.
누차 말하지만, 나는 상황 파악을 못 하는 바보가 아니었기에.
“…….”
우선 내 책상으로 돌아가 물건이 든 가방을 챙겼다. 사무실 문은 열어둔 채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와 회사 건물을 나왔다.
치직―.
휴대전화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른쪽으로 계속 걸어라.」
「쓸데없이 두리번거리지 말도록.」
어딘가에서 나를 보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놈의 명령에 따랐다. 전화를 귀에 바싹 갖다 대고서, 앞에 놓인 보도를 따라 쭉 걸었다.
「멈춰라.」
놈이 말했다.
나는 우뚝 멈춰 섰다.
「거기서 오른쪽 건물 지하로 들어가라.」
시야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7층짜리 낡은 상가 건물의 지하 주차장으로 향하는 입구가 보였다. 곧장 그리로 향했다.
주차장에 들어서자, 퀴퀴한 공기가 맞이했다.
널찍한 공간. 주차되어 있는 차는 몇 대 없었다. 그마저도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언젠가 여기서 나오기는 하는 것인지, 무용한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주차장에 내려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와 같은 입구로 들어온 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다.”
아무렇게나 묶은 듯한 드레드헤어. 올리브색 야상 재킷을 입은 태산만 한 덩치의 히스패닉 남자.
놈은 내가 들고 있는 것과 같은 종류의 휴대전화를 들고 내려오다가 그걸 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러고선 천천히 나를 향해 걸어왔다.
가까이서 보니, 그 체구는 그야말로 압도적.
“물건을 넘겨라.”
놈은 그렇게 말하며 손을 뻗었다.
나는 최대한 머뭇거리지 않으려 노력하며, 메고 있던 가방을 풀어 놈에게 얌전히 건넸다.
“수고했다.”
“……이걸로 그냥 땡인 건가?”
“문제 있나?”
“그냥, 어제오늘 그쪽서 시키는 대로 잘 해내 줬는데, 뭐 떡고물 같은 건 안 떨어지나 해서.”
방금 던진 말에 큰 뜻은 없었다.
내 입장에서는 그저 한번 떠본 것에 불과했다.
“…그렇군.”
헌데 놈이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가 싶더니,
가만히 고개를 두어 번 앞뒤로 끄덕거렸다.
“그러면, 이걸 주지.”
놈은 주머니에서 손을 꺼냈고,
내가 확실히 본 건 그 장면뿐이었다.
―퍼억!
두돈반 트럭에 치인 듯했다.
몇 미터나 날아간 걸까. 허공에 튕겨져 나간 내 몸뚱이는 그대로 주차장 바닥을 데구루루 굴러 반대편 벽 앞의 기둥에 쿵 하고 강하게 부딪혔다.
“……커헉…….”
명치가 철근에 뚫린 듯한 고통.
허파가 시멘트로 막힌 듯한 느낌.
나는 마취 풀린 환자처럼 신음했다.
저절로 벌어진 입술 사이로 주르륵 흘러나온 타액에는 벌건 핏물이 약간 섞여 있었다.
“착각하지 마라.”
“…….”
“이건 비즈니스가 아니다.”
놈이 말한 대로다.
나는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핫…….”
여기가 어떤 세계인지 잊고 있었던 것이다.
뒤통수 처맞는 것쯤이야 늘 찾아오는 일상이라 상정하고 있어야 했거늘.
“……멍청하기는…….”
내가 그렇게 읊조리자,
뒤돌아서려던 놈이 반응했다.
“누구한테 한 소리지?”
나는 피식 웃었다.
설마 몰라서 묻는 걸까.
“당연히 너한테 한 소리지. 멍청한 새끼야.”
정적.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놈은 먼발치에서 가만히 나를 노려보았다.
무의미한 침묵이 싫어,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 당근마○ 안 해 봤지.”
생전 처음 듣는 단어에 놈이 인상을 썼다.
“……뭐라고?”
“쿨거래가 하고 싶었으면, 현장에서 물건 확인 정도는 똑바로 했어야지. 이 얼간아.”
비웃듯이 그렇게 말하며,
나는 품에서 그걸 꺼내 들었다.
보자기로 칭칭 감싼 검은 단검.
놈이 받아 갔어야 할 진짜 ‘물건’을.
“……!”
그제야 놈은 성급히 가방 속 내용물을 뒤졌다.
물론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아까 회사 앞 달러샵에서 사 온 다용도 부엌칼이다. 정가 3달러.
“참고로 영수증 없어서 환불 못 한다, 그거.”
놈은 다시금 나를 노려보았다.
다만 눈매가 아까보다 훨씬 더 공격적이었다.
“선생님께서는 겁만 조금 주라고 하셨지만, 지금 네 눈빛을 보니 대충 감이 잡히는군.”
“…….”
“팔다리 한두 군데 부러진 정도로는,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을 눈빛이다.”
놈은 가방을 버리고 천천히 재킷을 벗었다.
그러자 러닝셔츠 한 장으론 가릴 수 없는 근육질의 몸과, 강철 기계로 된 양쪽 팔이 드러났다.
“……허어…….”
스크랩몽크Scrap Monk.
특수 개조한 기계 팔을 신체에 장착해 무기로 쓰는, 무투가 직업군의 상위 전직 클래스다.
“……좀 빡센데…….”
쪼렙인 내가 맨몸으로 덤비기엔 수지가 맞지 않는 괴물이므로, 당연히 도망치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불가능하다. 유일한 출구는 저놈이 막아 서 있고, 애초에 속이 뒤집어져서 뛰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차선은 무엇일까.
……안일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다.
지금 나에게 최선 이외의 선택지는 없다.
허나 구태여 찾으려 든다면,
남은 선택지는 오직 최악뿐이다.
그리고 나는―
최악을 택하기로 마음먹었다.
파르르 떨리며 비틀거리는 손으로,
단검을 감싸고 있는 보자기를 스르륵 풀었다.
“잠깐, 이봐.”
놈의 목소리가 다급해지는 게 느껴졌다.
“이봐, 지금 무슨, 뭘 하려는 거냐.”
이것의 정체가 뭔지, 저놈도 알고 있나 보군.
―카인의 단도.
악마를 부르는 금지된 성물.
흑마법을 사용하는 대가로 바쳐야 하는 것은, 살아 뛰는 자신 몸속의 심장.
“그만둬라. 미친 짓이다.”
흑색 칼날이 나를 유혹하듯 반짝였다.
나는 그 칼을 오른손에 역수로 쥐었다.
그때.
몸 안에서 무언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감정이었다.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무의식의 부정적인 감정들.
하얗게 녹아내린 절망과 검게 불타는 분노가, 육체와 정신을 집어삼켰다.
그 이후로 벌어진 일들은,
모두 내 통제와 의지 밖이었다.
찰나의 망설임조차 없었다.
마치 마운드 위의 투수가 포수의 미트로 공을 힘껏 집어던지는 것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오른손의 단검으로,
나는 내 심장을 찔렀다.
푸욱―.
뜨거운 감촉. 차가운 통증.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걸까.
가슴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왔다.
심장은 이미 나의 것이 아니었다.
이윽고 온 세상이 멈췄다.
……아니, 멈춘 것은 아니었다.
시간은 분명하게, 허나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똑똑히 느꼈다.
심장이 찢어졌음에도, 아직 살아있었다.
눈은 처음부터 끝까지 뜬 채로 있었으나, 주변은 칠흑처럼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쓰레기 같은 그릇이군.」
고요가 익숙해질 무렵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인의 연령대는 짐작할 수 없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래, 바라는 건 얼마큼이냐?」
악마의 것치고는 상냥한 질문이었지만,
나는 딱히 기껍게 대답할 생각이 없었다.
“알아서 정해.”
잘은 몰라도 아마 그때쯤,
웃음소리가 들렸다고 생각한다.
「그럴 참이었다.」
악마가 내게 말했다.
「심장 하나에 마법 하나.」
「불만은 없겠지?」
어둠속에서 마지막으로 들린 것은,
붉은 피로 적신 듯한 악마의 속삭임.
「카인 나호르. 내 이름을 기억해라.」
그리고 보인 것은―
심연에 묻힌 보랏빛 눈동자.
「계약은 성립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