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Out of The Blue, Into The Black (2)
웨스트록 3구역.
찰튼 애버뉴의 상점가.
“사람 많네.”
들끓는 인파로 때아닌 활기를 띈 거리는 연휴 무렵의 남대문시장 같은 느낌을 자아냈다.
그런가 하면, 쏘다니는 사람들의 생김새는 마치 코믹콘 행사의 코스플레이어들을 보는 듯도 했다.
AK-47을 등에 메고 있는 인간.
새빨간 마법사 로브를 입고 있는 수인종.
오크랑 같이 대화하며 걷고 있는 안드로이드.
정말로 익숙해질 것 같지가 않은 광경들이다.
오늘 아침 출근할 때도 느낀 거지만, 역시 여기는 <사이버판타지>의 세계가 맞구나 싶었다.
나는 흐르는 인파에 합류해 거리를 걸었다.
그러다 멈춰 선 곳은, 상점가 골목의 가장 깊은 구석.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한 가게 앞이었다.
<마제스틱&도메스틱>
앗! 마법서 신발보다 싸다!
@@@웨스트록 최저가 보장@@@@
오픈3개월기념대박할인사장님이미쳤어요
“…….”
거들떠보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굉장히 싼티 나는 문구의 홍보지와 입간판들이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격하게 방해했다.
포털사이트 평점은 분명 4.8이었는데, 가게 상태를 보아하니 조작된 수치일 게 뻔했다.
아무래도 잘못 찾아온 듯싶지만…….
“쯧.”
별수 없다.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마법 상점이 여기인걸.
가게 내부도 별로인 것 같으면 그냥 나오면 된다. 설마 입장료를 받지는 않겠지.
나는 문을 열고 상점 안으로 들어갔다.
짤랑―.
청아한 종소리가 울렸다.
“어서 오세요.”
곧 종소리보다도 맑은 목소리가 나를 반겼다.
가게 안쪽의 카운터 너머에는 하얗고 길게 뻗은 생머리를 가진 요정 같은 인상의 여자가 있었다.
“찾으시는 물건 있으신가요?”
“아뇨. 그냥 구경하려고요.”
나는 가게 안을 슥 둘러보았다.
오래된 책방 같은 분위기였다. 책장에 빼곡한 서적들, 나무통에 다발로 꽂혀 있는 두루마리, 용도 불명의 조각품 따위가 여기저기 즐비했다.
“찾으시는 물건 있으신가요?”
“……아뇨. 그거 아까도 물어보셨는데.”
“후후, 미안해요. 사실 손님이 오늘 우리 가게 첫 손님이세요.”
“아, 그런가요?”
“그래서 가능하면 참견이랑 서비스를 잔뜩 해 드리고 싶어서요.”
“음, 말씀은 감사한데, 전 괜찮습니다. 정말 구경만 하러 온 거라서요. 신경 안 써주셔도 돼요.”
“흐으음. 네. 알겠어요.”
“예, 고맙습니다.”
“찾으시는 물건 있으신가요?”
“…….”
“있으신 것 같은데에.”
여자는 나를 지그시 보며 미소를 지었다.
저런 미소를 그냥 무시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백화점 옷가게 직원의 과도한 친절 따위에 그닥 강하지 못한 남자였다.
“그러면 저기, 주문서를 좀 보고 싶은데요.”
“스펠 스크롤 말씀이시죠? 물론 뭐든지 있답니다. 아케인, 디바인, 알케미, 사이오닉, 엘리멘탈, 드라고닉, 에인션트, 퓨저널……. 계파 취향은 어떻게 되시나요? 신테르마옌주의? 포스트슈이즘? 고대 학파 쪽을 지향하신다면 저희 가게에서만 찾아보실 수 있는 돈 르마이스 1404 시리즈의 개정판 재해석본이 몇 장 있는데요. 어떠세요?”
“아무거나 상관없어요. 다만 기초 마법 중에서, 가성비 좋은 걸로 좀 부탁드릴게요.”
“가성비 좋은 기초 마법 말인가요, 후훗.”
여자는 카운터에서 나와 내 옆에 섰다.
가까이서 보니 미인이란 말이 딱 맞는 외모였다. 소매 부분은 헐렁하면서도 몸매가 잘 드러나는 검은 원피스가 그녀의 매력에 한몫을 더했다.
“거기 앞쪽에 있는 것들이 아카데미에서도 쓰는 교육용 스크롤이에요. 예를 들어, 이건…….”
여자는 긴 손가락으로 진열대를 가리켰다.
그러고는 진열대 안의 두루마리 하나를 직접 꺼내서 나에게 건넸다.
“―빛이 있으라.”
펼쳐진 두루마리의 안쪽은,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했다.
“‘최초의 마법’이라고도 불리는 마법이죠. 이름 그대로, 불빛으로 주변을 밝히는 마법이에요.”
나 역시도 알고 있는 마법이었다.
마법사 캐릭터가 아니라 해도 쓸 수 있는 마법. 어두운 지형을 탐색할 때 횃불이나 라이트 따위보다 훨씬 더 유용한 필수 기초 마법 중 하나.
“이 주문서로 마법을 익힐 수 있는 거죠?”
“네. 특히 ‘빛이 있으라’는 기초 중의 기초인 마법이라, 최소한의 마력만 보유하고 있다면 시간을 그리 들이지 않고도 충분히 배울 수 있어요.”
그렇게 말하고는 갑자기,
내게 한 발짝 다가온 여자.
“어디, 시험을 좀 해볼까요?”
살포시,
그녀는 내 손을 포개어 잡았다.
“몸에서 힘을 빼고, 의식을 손끝에 모으세요.”
나는 잠깐 움찔했다.
그녀의 차가운 손길이 내 손등을 사뿐히 밀어, 손바닥을 마법서의 한가운데에 가볍게 붙였다.
“마법서는 그림책 같은 거예요.”
“당신은 빈 공간에 색칠공부를 하는 어린애죠.”
“무의식이 이 마법의 형태를 간직할 수 있도록, 천천히, 시나브로…… 선을 따라 칠해 보세요.”
주문서의 표면을 보자,
기이한 마성이 느껴졌다.
직선과 곡선. 타원과 육각형.
현대의 방언과 고대의 문자열.
이 종잇장에 그려져 있는 것들은.
유한한 복잡함이자 무한한 단순함.
“이해했나요?”
“후후, 좋아요. 그럼 이제 말해 볼까요.”
「―빛이 있으라.」
….
….
침묵이 흘렀다.
여자는 옆에서 갸우뚱했다.
“……어라라?”
아무 일도 없었다.
놀라울 정도로, 아무 일도.
“이상하네, 마력은 분명 느껴졌는데…….”
여자는 눈썹을 찡그리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다 이내 멍청히 서 있는 나를 보고 물었다.
“저기 손님, 마력 좀 뿜어 볼래요?”
“예?”
“초보 같은데 그 정돈 할 수 있죠?”
마력 분사 테스트를 말하는 건가.
나는 지난번에 했던 대로, 손가락에서 땀이 나오는 느낌을 상상했다. 최대한 절제하면서.
그러자, 화륵―!
자줏빛 불꽃이 손가락 끝에서 피어올랐다.
다행히 불꽃은 저번처럼 폭발하지 않고 정상적인 크기로 나와 줬지만…….
“아이쿠, 이런. 자색 마력이셨구나아.”
“저어, 설마……?”
“네에. 마력을 주입했는데도 마법서에 반응이 없는 경우는 보통 세 가지예요. 마법서가 잘못됐거나, 이미 알고 있는 마법이거나…… 사용자가 <기타 색채> 마력 보유자거나.”
그녀는 자조 섞인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현대 마법의 술식은 백이면 백, <5대 색채> 마력에 맞춰져 있거든요. 애초에 <기타 색채> 전용 마법은 실용성이 거의 없어서 사장된 지 오래예요. 그나마 역사에 남아 있는 최근 관련 연구 기록도 아마 켈트 문명 시절이 마지막일걸요.”
“그러면, 저는 마법을 쓸 방도가 아예 없는 겁니까……?”
“아예 없진 않아요. 직접 대학에 가서 술식을 연구하는 방법이 있죠. 기초 마법용 술식 1개 제정하는 데, 음, 짧게 잡아 8년 정도면 되겠네요.”
쿠궁―.
멘탈이 밑바닥까지 내려앉았다. 그것은 남아 있던 희망마저 박살 났음을 의미했다.
“하……. 그렇군요…….”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결국 마법 없는 마법사 캐릭터 신세인가.
“저기, 손님.”
우울에 빠져 있을 즈음,
여자가 다시 말을 걸었다.
“으으음, 마법사 윤리에 어긋나는 발언이긴 한데…… 뭐어, 그래도 오늘 첫 손님이시니깐.”
그녀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특별히 서비스예요!’라고 덧붙이며.
“혹시 ‘흑마법’이라고 들어 봤어요?”
***
─반갑습니다. 세실리아입니다.
오늘은 여러분이 잘 모르는, 조금 다른 종류의 마법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드려볼까 합니다.
그전에 먼저, 마법이란 무엇일까요?
마법은 마력 에너지를 술식으로서 변환시키는 과정 혹은 그 결과물을 뜻합니다.
일부는 마법을 추상적인 기술로 여기곤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마법은 수학적 원리와 과학적 이론에 기초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마법도 존재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흑마법이라 부릅니다.
불가사의한 존재의 힘을 빌려 억지로 일으킨 버그투성이 기적이자, 마법을 부정하는 마법.
일반적으로 마법을 쓰기 위해선 마법론에 의거해 작성한 술식을 마력에 적용해야 하지만, 불가사의한 존재―편의상 ‘악마’라 칭하겠습니다―는 이론을 통째로 무시한, 일종의 ‘기적’을 일으킵니다.
이것이 흑마법의 작동 원리입니다.
─“흑마법이라…….”
내게는 낯선 울림이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흑마법이란 것은, 원래 <사이버판타지>의 본편에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었으니까.
“분명 그런 모드를 깔았던 것 같은데.”
마법 시스템 확장 패치.
해외 게임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구매한 유료 모드 중의 하나였다.
물론 그 모드도 내가 만든 합본 모드팩에 들어가 있었지만, 플레이 테스트까진 아직이었다.
“더 읽어 볼까.”
나는 다시 스크롤을 내렸다.
─흑마법을 익히는 방법은 악마와의 계약입니다.
악마는 자신의 힘을 빌리길 원하는 술사에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요구합니다.
악마가 요구하는 대가는 보통 술사 자신의 몸속에 살아 뛰는 ‘심장’이라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한 번이라도 흑마법을 사용한 자는, 천편일률로 끔찍한 최후를 맞게 된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도시전설 같은 이야기입니다만.
괴담이란 것은 실제로 비슷한 일이 일어났었기에 생겨나지 않았을까요. 필자의 생각입니다.
악마와의 계약은 해당 악마의 영혼이 봉인되어 있는 ‘아티팩트’를 통해 이뤄지는데요.
이하는 유명 흑마법 관련 아티팩트의 사진과 알려져 있는 현재 소재지입니다.
○ 비탄의 큐브 (어스테이트, 메이슨 타워)
○ 흐느적거리는 원숭이 손 (영국, 대영 박물관)
○ 카인의 단도 (소재지 불명)
○ 므두셀라의 뼛조각 (소재지 불명)
……─멈칫.
화면을 내리던 손이 정지했다.
“……응……?”
다시 스크롤을 위로 올렸다.
“……잠깐, 이거……?”
나열된 대여섯 장의 사진 가운데,
뭔가 익숙한 형태의 물건이 있었다.
○ 카인의 단도 (소재지 불명)
―투박한 목재 칼자루.
―검정색으로 도금된 칼날.
나는 허겁지겁 책상 밑에 있는 가방을 열었다.
“……똑같잖아…….”
몇 번을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우드게이트 창고에서 가져온 단검은, 포스팅에 나와 있는 사진 속의 물건과 완전 판박이였다.
순간 뒷목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호러 소설의 복선을 중간에 눈치챈 겁 많은 독자처럼 저도 모르게 숨을 힘껏 참았다.
―악마와의 계약.
―흑마법 관련 아티팩트.
―현재 소재지 불명.
머릿속에서 퍼즐이 얼추 맞춰졌다.
진실은 생각한 것만큼이나 불길했고, 생각한 것보다 더 짙은 어둠 속에 있었다.
……그자는 대체 뭘 하려는 거지?
……왜 하필 나한테 이걸 맡긴 건데?
참았던 숨을 내쉬고 침을 꼴깍 삼켰다.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전화기 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기다렸던 것처럼.
따르릉―.
전화가 울렸다.
“…….”
받아야 하나.
처음보다도 배는 고민됐다.
선택권은 내게 없었다.
이미 떠난 지 오래였기에.
“……예, 윌슨앤코입니다.”
나는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들려온 목소리는―
「여어, 유진 군!」
생각한 것보다 더,
경박하고 호탕했다.
“…….”
「나일세! 자네 사장! 에드먼드 하인즈일세!」
“목소리만 들어도 압니다, 사장님.”
「일 열심히 하고 있나? 무어, 열심히 하고 있겠지! 적어도 나보다만 열심히 하면 돼! 파하핫!」
“무슨 일로 전화하셨습니까?”
「아하, 으음, 그게 말이야, 실은 내가 오늘 회사에 못 돌아갈 것 같거든?」
“오늘도 못 돌아오시는군요.”
「그래. 아무튼 그래서 말이지. 미안한데 내 방 화분에 자네가 나 대신 물 좀 줄 수 있겠나?」
“사장님. 제가 오늘 회사에서 급히 전해드릴 사항이 있다고, 아침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랬던가? 으으음, 정―말 미안하네. 그 얘긴 내일 하도록 하자고. 괜찮지? 응?」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아 그리고, 화분 말인데. 선인장은 오후 3시에 물 주고, 바질은 밤 9시에 부탁함세. 끊겠네.」
뚝―.
전화는 바로 끊어졌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하여간 긴장이 풀렸다.
“하아.”
뭐, 밤 9시에 물을 주라고?
야근을 디폴트로 쳐 잡고 있네.
하기야, 잔뜩 밀려 있는 업무들을 생각하면 오늘도 야근은 당연히 해야 하는 건 맞다.
벌써 점심시간인데, 아무리 계산해도 남은 일들을 오늘 밤까지 끝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쯧.
하는 수 없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 나서 반대편 자리로 향했다.
“저기, 스몰필드 씨?”
멍하니 마우스를 만지작거리고 있던 스몰필드 씨는 갑자기 다가온 내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네? 앗……. 왜요?”
“지금 많이 바쁜가요?”
“지금요? 어어, 별로, 어, 아니, 바쁘긴 한데, 저기, 엄청 바쁜 정돈 아닌데요……. 왜요?”
“점심은 드셨어요?”
“아, 아뇨……. 왜요?”
“그게, 실은 저도 아직 안 먹었거든요.”
그녀는 어쩐지 눈을 마구 끔뻑였다.
“아, 네에……. 근데요?”
“스몰필드 씨도 점심 안 드셨으면, 지금―.”
“……!”
나는 말했다.
“편의점 갈 건데 뭐 사 올 거 있어요?”
“…….”
스몰필드 씨는 반응이 없었다.
갑자기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아니요. 필요 없어요.”
어째 날 보는 눈빛도 좀 무서워졌다.
기껏 나온 말도, 무진장 딱딱한 말투였다.
“으음,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하실 말씀은 그게 전부인가요.”
“참, 하나만 더 물어봐도 될까요.”
“뭔데요.”
나는 입을 열었다.
“이번 주말에 혹시 시간 있나요?”
그녀가 다시 눈을 끔뻑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