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Out of the Blue, Into The Black (1)
월요일 아침 같은 기분이다.
“허으으…….”
묵직한 눈꺼풀을 억지로 벌렸다.
시계를 보니 오전 6시가 조금 넘었다.
“벌써 아침이냐…….”
나는 침대에서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물때 묻은 유리창 너머로 새벽 어스름의 어둑한 푸른빛이 방안에 들어오고 있었다.
“…….”
말할 것도 없이, 컨디션은 최악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12시간 넘게 근무했지. 그러고 나서 아닌 밤중에 불법스러운 모험을 했지. 밤새 잠 설쳤지. 그러는 동안 한 끼도 못 먹었지.
그래도 출근은 해야 한다.
직장인이니까.
―쏴아아.
고장난 샤워기의 빈약한 물줄기로 샤워를 하며, 나는 앞으로의 생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시급한 것은 의식주, 그리고 전반적인 생활환경에 대한 개선이었다.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 그 문제점들은 빠르게 드러났다.
샴푸 통에 샴푸가 없다.
냉장고에 먹을 게 없다.
옷장에 옷이 없다.
이게 과연 사람이 사는 방이 맞나 싶다.
시민증에 집 주소랍시고 찍혀 있는 곳이 싸구려 모텔일 때부터 느낌이 싸했는데, 설마 이 정도로 하류 인생을 살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꼭 필요한 물건들조차 없으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아침도 웬만하면 집에서 챙겨 먹고 싶은데. 퇴근하고 오면서 장을 좀 봐야겠지?
가진 돈은 얼마쯤 있더라. 현금이라면 어제 가짜 경찰 놈한테 빌린 게 50달러 정도 남았었지. 점심에 은행에 들러서 통장 잔액도 확인해 보자.
“할 일 많구만, 오늘도.”
칼라 부분이 누렇게 뜬 와이셔츠의 단추를 채우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싱크대에서 퍼 온 냉수를 모닝커피 대신 홀짝이면서, 리모컨으로 TV를 틀었다.
TV에선 아침 뉴스 방송이 한창이었다.
리포터가 야외에서 보도를 하고 있었는데, 어젯밤에 벌어진 무슨 사건의 현장이라는 모양이었다.
「이곳입니다.」
「어제 새벽 사우스아치 6구역 크릭 드라이브의 이 골목에서 발견된 시신 두 구는 신원 파악이 어려울 정도로 처참한 상태였다고 하는데요.」
그때,
피해자의 것으로 올라온 사진은,
“어……?”
내가 어제 골목에서 마주쳤던 두 남자.
경찰 행세를 하던 바로 그 두 명의 얼굴이었다.
“뭐야……?”
그놈들이 죽었다고?
도대체 왜? 무슨 일로?
당연히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마력을 쓴 불꽃놀이로 겁을 좀 주고, 한 놈한테서 돈을 조금 뺏…… 빌렸을 뿐이다.
당황한 나를 두고서,
뉴스는 계속 이어졌다.
「경찰은 근처 골목의 CCTV 영상을 통해 피해자와 용의자로 추정되는 인물을 포착했습니다.」
「해당 CCTV 영상입니다.」
「0시 28분. 골목으로 들어가는 두 남성이 보입니다. 경찰 제복을 입고 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화면 구석에서 불꽃이 튀기 시작합니다.」
「피해자로 추정되는 두 남성이 달아납니다.」
「이후 다른 각도의 CCTV 영상에는, 골목에서 빠져나오는 한 인물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이 자가 현재 사건의 유일한 용의자입니다.」
「용의자는 남성으로 추정됩니다. 정장 차림에 가방을 멨으며, 풀어 헤친 산발 머리의……」
나는 조용히 TV를 껐다.
그러자, 브라운관의 볼록한 화면에 비친 내 덥수룩한 머리털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
아무래도―
가장 먼저 할 일이 정해진 듯했다.
“……머리부터 깎자…….”
***
금요일 아침의 출근길.
리타 스몰필드는 시에라시티의 잿빛 하늘을 올려다보며 북적이는 거리를 걷고 있었다.
‘오늘도 날씨 꽝이네.’
회사로 향하는 발걸음은 여느 때처럼 무거웠지만, 그래도 몸은 평소에 비해 제법 가벼웠다.
어제 일찍 들어가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며 쉬었던 덕분일까. 컨디션은 오랜만에 쌩쌩했다.
‘……누구 덕분이라곤 말 못 하지. 절대.’
걷다 보니 어느덧 회사 앞이었다.
웨스트록 3구역. 캐니언 빌딩.
엘리베이터에 타서 곧장 13층 버튼을 누르고, 또 닫힘 버튼을 13번 정도 연타했을 무렵.
“잠시만요!”
누군가 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열림 버튼을 누르자, 닫혀 가던 문이 슥 열렸고, 한 남자가 부리나케 달려 들어왔다.
“휴우, 감사합니다.”
올라탄 남자는 상쾌한 느낌의 미남이었다.
포마드로 자연스럽게 넘긴 금발 사이드파트에 갈색 눈을 가진, 서양적인 외모의 젊은 동양인.
시원시원한 외모 덕분일까. 코를 찌르는 데오도란트 냄새가 썩 불쾌하지만은 않았다.
“엇.”
눈이 마주친 순간.
남자가 돌연히 웃으며 말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스몰필드 씨.”
……?
리타 스몰필드는 물음표를 띄웠다.
“네?”
“일찍 오셨네요. 원래 이때 출근하나요?”
자신을 향해 마구 아는 척을 해 오는 남자.
그녀는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그러고 보니 이 남자…….
목소리가 좀 익숙한 것 같기도 하고……?
어라.
설마.
“……혹시, 팀장님이세요?”
엘리베이터 안은 잠시 조용해졌다.
반응을 보니, 맙소사. 진짠가 보다.
“죄, 죄송해요! 모르는 사람인 줄 알고…….”
“하핫. 아뇨, 괜찮습니다. 뭐, 저도 실은 사람 얼굴이랑 이름을 잘 기억 못 하거든요.”
남자, 유진은 멋쩍은 듯이 웃었다.
그리고 리타 스몰필드는 진심으로 경악했다.
―말도 안 돼.
이 한국 드라마 남자 주인공같이 생긴 놈이, 그 걸어 다니는 설사 덩어리랑 동일 인물이라고?
“저기, 스몰필드 씨?”
“……네, 네? 왜, 왜요?”
“버튼은 언제까지 누르고 계시나 해서요.”
그녀는 흐앗 하고 놀라며 열림 버튼에서 손가락을 급히 뗐다. 그제야 엘리베이터는 출발했다.
“그, 그나저나 티, 팀장님이야말로 일찍 오셨네요. 평소엔 맨날 지각만 하시더니…….”
“아, 실은 늦게 온 겁니다. 잠깐 이발소에 들렀다 왔거든요. 제 머리가 좀 많이 지저분했잖아요.”
“어, 그, 그랬던가요오……?”
당황해서 말이 잘 나오지가 않았다.
진정해, 리타. 뭘 그리 놀라고 그래. 겉모습이 좀 바뀌어 봤자지. 어차피 속 알맹이는 그대로인걸.
“참, 몸은 좀 괜찮아졌나요?”
“네? 아, 네에. 괜찮아진 것 같아요…….”
“앞으로는 상태 안 좋은 것 같으면 바로바로 연차 쓰고 쉬도록 하세요. 나중에 산재 처리해야 할 정도로 앓아 버리면 회사 입장에서도 손해니까.”
리타 스몰필드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필요 이상으로 당황한 이유를.
“오늘도 아파 보이면 바로 돌려보내려 했는데, 마스크 안 하고 온 거 보니까 안심이 되네요.”
이 남자는 겉모습만 바뀐 게 아니었다.
겉도 속도, 아예 사람 그 자체가, 기가 막힐 정도로 완전히 180도만큼 바뀌어 있었다.
그녀는 쓰레기 같았던 이전의 팀장을 떠올렸다.
혹사를 당연히 여기는 폭정도, 선을 몇 번이고 넘나드는 폭언도, 점차 익숙해지는 중이었다.
“다 왔군요.”
“…….”
“자, 들어갑시다.”
이런 팀장도 익숙해지는 날이 과연 올까.
“……데오도란트.”
“예?”
“……냄새 너무 독해요.”
“앗, 그래요? 죄송합니다. 처음 써본 거라.”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다.
***
금요일은 직장인이 가장 좋아하는 요일이라고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퇴근 이후의 얘기다.
“아오. 죽겠네, 진짜.”
실제로는 한 주의 마지막 날인 만큼 주말 전까지 무조건 처리해야 할 업무를 몽땅 다 마쳐 놓아야 하는, 일종의 불가항력적 마감일이나 다름없다.
“제길, 왜 어제보다 일이 더 많은 거냐고…….”
어째 이놈의 업무는 해도 해도 줄지가 않았다. 마치 복리 먹은 마이너스통장마냥 쌓여만 갔다.
뭐, 이유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인력이 턱없이 모자라.”
업무량과 대비해 인원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지금 이 사무실 안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은 팀장인 나와 계약직 사원 스몰필드 씨 두 명뿐.
사장은 회사에 1시간 이상 붙어 있질 않고 하루 종일 바깥을 싸돌아다니기만 한다. 사실상 아무것도 안 한다 봐도 될 거다.
“일할 사람을 더 뽑아야 할 텐데, 음.”
이대로 가다간 가까운 시일 내로 대규모 펑크 사례가 우후죽순 돋아날 것이 틀림없었다.
하여간 사장에게 인력 보충을 요청할 생각이다. 오늘 중으로 그가 사무실에 돌아온다면 말이지만.
“팀장님.”
그 무렵 스몰필드 씨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녀는 (사장을 제외하고는. 솔직히 제외해도 싸지.) 현재로서는 나의 유일한 직장 동료였다.
“여기, 투자전략팀 월간 자산운용 보고서요.”
“아, 고마워요.”
나는 서류를 받아들고는 검토를 시작했다.
“…….”
문득.
수십 개의 의문이 동시에 휘몰아쳤다.
“스몰필드 씨, 물어볼 게 좀 있는데요.”
“어떤 거요?”
“여기, 보고서 초안 작성한 투자전략팀의 ‘폴 뷰캐넌’이란 사람은 어디서 일하시는 분인 거죠?”
내 질문에 스몰필드 씨는 고개를 갸웃했다.
“모르겠는데요.”
“……그러면 여기, 이쪽에 결재 사인 넣은, 투자전략팀 주니어 디렉터 ‘제임스 크루그먼’은요?”
“으음, 모르겠어요.”
“……애초에 투자전략팀 보고서를 왜 영업팀장인 제가 검토하고 있는 거죠?”
“죄송해요. 그것도 잘 모르겠네요.”
나는 이마를 손으로 감싸 쥐었다.
역시 이 회사는 정상이 아니다. 여러모로.
“저희 사무실에 그, 다른 직원은 없는 건가요?”
“저는 들어온 지 3개월밖에 안 되긴 했는데, 그동안 다른 팀 사람들은 사무실에서 본 적 없어요.”
윌슨앤코의 공식적인 사원 수는 128명.
사원들은 실제 서류상으로도 존재는 하지만, 현실의 사무실에선 3명밖에 찾아볼 수 없다. 나머지는 출장, 파견, 외근 중인 것으로 되어 있다.
“……그래요. 보고서는 처리해 두겠습니다.”
“네, 팀장님.”
나는 보고서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스몰필드 씨가 자리로 돌아가고 난 뒤, 책상 아래에 둔 가방을 슬쩍 열어젖혔다.
당연하지만, 거기에 있었다.
어젯밤 창고에서 받아온 정체불명의 단검이.
솔직히 갖고 오면서도 내내 쫄렸다.
가뜩이나 어제 그런 사건을 겪기도 했고, 게다가 왜인지는 몰라도 그때 만난 두 불량배가 시신으로 발견됐다고 하니, 아무래도 겁이 났던 것이다.
허나 적어도 회사에다 보관하는 것이 모텔 방에 덩그러니 두고 오는 것보단 나아 보였다.
“대체 뭘까, 이건.”
내가 아는 <사이버판타지>의 중요 아이템 중에서 이런 단검과 비슷한 것은 한 개도 없었다.
그러니 사실은 별것도 아닌 잡템일 확률이 높다. 좋은 물건이라면 내가 모를 리 없으니까.
가방 속을 살펴보던 와중.
따르릉―. 나를 보채듯 전화가 울렸다.
“예, 윌슨앤코입니다.”
나는 수화기를 들었다.
그러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신가, 팀장.」
중후하고 굵직한 남성의 목소리.
어제 걸려온 그 전화의 남자였다.
“……윌슨앤코 인터내셔널인가요.”
「그래. 물건은 잘 받아 갔나?」
“가방 말씀이시죠. 가져는 왔습니다. 일단은.”
나는 밑에 둔 가방을 흘깃 보았다.
「내용물이 뭔지 봤나?」
“…….”
「당연히 봤겠지. 누군들 안 그럴까.」
남자는 클클클 하고 작은 목소리로 웃었다.
“단검이 들어 있던데요. 대체 이게 뭡니까?”
「칼이지. 짧은 칼.」
“어디에 쓰는 칼입니까?”
「글쎄. 아마도 뭔가 찌르거나 자르거나, 하여튼 칼이 필요할 때 쓰는 칼이겠지.」
“아무것도 알려줄 생각이 없으시군요.”
「대답은 착실히 해준 것 같네만.」
잠시 가볍지 않은 침묵이 흘렀다.
「곧 물건 찾아갈 사람을 보내겠네.」
“…….”
「조금 늦을지도 모르니, 그때까지 잘 보관하고 있어 주게나. 팀장.」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질문을 했다.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으흠?」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남자는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자네 이름은 뭐지?」
“유진입니다. 유진 연.”
「그렇군. 나는…….」
다음 말이 마지막이었다.
「그냥 존이라고 부르게.」
전화는 끊어졌고,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나는 의자를 가능한 뒤로 쭉 구부려 누웠다. 그 상태로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위험한 일에 동참하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어제의 사건.
오늘 아침의 뉴스.
이틀 연속으로 온 전화.
상황은 천천히 위태로워지는 듯한 느낌이다.
하긴 <사이버판타지>의 세계에서 조용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기대하는 게 잘못됐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대로는 안 돼.”
언제까지고 살아남기란 버거운 일이다.
레벨 1짜리 초심자 캐릭터인 채로는.
그래,
어떻게 해서든―
“강해져야 해.”
……회사에서 혼자 ‘강해져야 해’라고 속삭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자니 심히 부끄러웠다.
쪽팔림을 애써 무시하고 의자를 고쳐 앉았다. 다행히도 방금 그걸 들은 사람은 없는 듯했다.
어쨌거나.
<사이버판타지>의 마법사 캐릭터가 강해지는 방법이라 하면―
“당연히 마법밖에 없긴 한데…….”
문제는 역시,
내게 마법 재능이 없다는 것.
어제 혹시나 싶어서 그 블로그 말고 다른 사이트들도 열심히 뒤져봤지만, 정론은 모두 같았다.
‘보라색 마력으로 쓸 수 있는 마법은 없다.’
<5대 색채>가 아닌 <기타 색채>.
그중에서도 자색 마력은 성질이 남달라 현대에 정립된 마법 원리와는 동떨어져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지.”
아직 마법 고자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내가 인터넷에서 찾은 자색 마력에 관한 정보들은 대다수가 마법계의 ‘썰’에 의존하고 있었다.
즉, 신빙성이 낮았다.
“실제로 어떨지는 모르는 거니까.”
내가 마법을 쓸 수 있을지 없을지.
그걸 확인해 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점심시간은 아직 멀었지만, 잠깐 나갔다 와도 상관은 없겠지. 사장도 자리에 없겠다.
“그럼, 가볼까.”
<사이버판타지>의 마법사 캐릭터라면,
최소 한 번 이상은 반드시 들르는 장소.
“―마법 상점.”
나는 그곳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