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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는 야근을 한다-5화 (5/201)

5화. A Hard Day’s Night (4)

오후 11시 44분.

택시에서 내리자, 지나간 겨울의 냉기를 여전히 머금고 있는 3월의 찬바람이 휭 하고 불어왔다.

“여기가 6구역인가요?”

“그렇슈.”

회사에서 1시간 정도 걸려 도착한 곳은 시에라시티의 남부 항만 지역― 사우스아치Southarch.

해안선을 따라 항구와 공장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어스테이트 2차 산업의 중심구다.

“손님이 말한 주소는 여기서 더 안쪽으로 가야 혀유. 기업 사유지라 나는 더 못 들어가는구마.”

“고맙습니다, 기사님. 살펴 가세요.”

부릉―. 택시는 먼 도로로 사라졌다.

나는 주변을 스윽 둘러보았다. 공장지대 구석의 썰렁한 거리에 행인이라곤 한 명도 없었다.

“어디, 이쪽인가…….”

목적지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10분쯤 걸었을까. 좁은 길목의 끝자락에 다다르자, 근방에서 가장 큰 규모의 시설이 나타났다.

시설 입구와 연결된 도로에 세워진 일시정지 표지판. 그리고 정자로 쓰인 명패가 눈에 들어왔다.

<우드게이트 웨어하우스>

제대로 찾아왔군.

출입구는 철제 차단기로 굳건히 막혀 있었다.

나는 입구 맡 경비실 창 너머에 전등불이 들어와 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실례합니다.”

야간 경비원은 무뚝뚝해 보이는 노인이었다.

내가 창을 두드리자, 그는 가자미눈으로 이쪽을 슬쩍 노려보고는 아주 느긋하게 창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윌슨앤코에서 왔습니다.”

“…….”

“운송 문제로 급한 일이 좀 생겨서요. 잠시 창고 안에 들어가서 물건을 찾아봐도 되겠습니까?”

경비원은 대답이 없었다.

사원증이나 출입증 제시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히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어르신?”

그는 대답 대신 숨을 한 번 푹 내쉬더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경비실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 나서 곧장 차단기 옆에 설치된 통로의 문을 열고 나와서는, 나한테 이렇게 말했다.

“따라와.”

아무것도 묻지 말란 의지가 전해졌다.

당장은, 아무것도 물을 필요는 없어 보였다.

경비원의 뒤를 쫓아 야밤의 창고로 들어섰다.

줄줄이 늘어선 컨테이너들을 지나 도착한 곳은, 다른 것과 똑같아 보이는 한 컨테이너 앞.

G4-8번 컨테이너.

전화 속 남자가 말한 번호와 같다.

“아, 여기예요. 이 안에 있는 물건입니다.”

“…….”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이거, 옮기는 게 좀 문제긴 하네요. 심야에도 운영하는 운송업체를 찾아 놓긴 했는데, 혹시 창고에 쓸 수 있는 트럭 같은 게 있다면 좀 빌릴 수 있을까요?”

경비원은 내가 한 말을 시원하게 무시했다.

그는 가져온 열쇠로 컨테이너의 자물쇠를 열고, 어두컴컴한 안쪽으로 혼자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그가 가지고 나온 것은―

“이것만 확실히 해 두지.”

공책 몇 권 들어갈 크기의,

작은 비즈니스용 백팩 하나.

“난 여기 없었고, 당신도 없었던 거야.”

나는 얼떨결에 그것을 받아 들었다.

가방은 상당히 가벼웠다. 안에 든 게 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가방보다 훨씬 작은 뭔가인 듯했다.

“저쪽. J열 컨테이너 뒤쪽으로 들어가면 뒷문이 있어. 그리로 나가.”

“…….”

“나간 다음 문 잠그고, 열쇠는 아무 데나 버려.”

경비원은 열쇠 한 개를 내게 쥐여 주고서 왔던 길을 따라 그대로 되돌아갔다.

나는 출근 첫날의 알바생처럼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물건은 그쪽에서 보관해 주게.」

「내가 나중에 연락하지.」

전화 속 남자는 그렇게 말했었지.

어쨌든 맡은 일은 마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일단 경비원이 말한 대로 창고에서 빠져나왔다. 열쇠는 근처 쓰레기 더미에 던져 버렸다.

자정을 넘긴 시각. 어두컴컴한 골목길. 가로등 불빛이 비추는 것은 아스팔트 바닥과 나뿐이었다.

“…….”

어쩐지 범죄에 준하는 짓을 저지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런 근거도 없었지만 말이다.

사실, 근거를 확인해볼 수는 있었다.

등에 메고 있던 가방을 풀었다.

이 안에 들어 있는 건…… 대체 뭘까?

호기심은 이따금 파멸을 불러일으킨다.

특히나 수상함으로 똘똘 뭉친 이런 장면에선, 잠깐의 충동으로 인한 재앙은 아주 당연하게도 일어나는 법.

“……열어보지 말란 말은 없었지…….”

나는 골목길 중간에 멈춰 섰다.

주변에는 도둑고양이 한 마리도 없었다.

꼴깍―.

침을 삼키고, 숨을 죽였다.

그러고 나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방의 지퍼를 열고 심연의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

꽁꽁 싸맨 보자기가 있었다.

한 손에 딱 들어오는 사이즈였다.

“이건…….”

보자기를 꺼내서 풀어 보니,

숨겨져 있던 물건의 정체가 드러났다.

“칼……?”

단검이었다.

부엌칼이나 나이프라기보다도, 그야말로 단검이었다. 고대나 중세의 느낌이 물씬 묻어나는.

칼자루는 목재를 대충 깎아 만든 투박한 모양새였다. 칼날은 검정색으로 도금된 금속이었는데, 이가 다 빠진 터라 닭고기도 자르기 어려워 보였다.

역사적 유물? 혹은 수집용 미술품?

당연하지만 나로서는 이 물건의 가치를 판단하기 어려웠다.

<사이버판타지>의 세계니까, 어쩌면 마법과 관련된 고급 아티팩트일 가능성도 있으려나.

좌우지간 물건은 잘 챙겨 놔야 했다.

잘못해서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곤란해질 테니까.

그리고,

바로 그즈음.

“이봐, 거기!”

앞 방향에서 누군가 외쳤다.

순간 몸이 움찔하고 떨렸다.

조심스럽게 앞을 보았다.

새까맣게 흐려진 골목길 끝에서부터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두 명의 사내가 보였다.

거리가 가까워짐에, 이내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이 경찰 제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저 말입니까?”

“그래, 네놈. 이런 데서 뭘 하고 있지?”

왼편에 있는 험악한 인상의 사내가 경봉으로 자기 손바닥을 퉁퉁 두드리며 말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가방을 뒤로 숨겼다.

“지나가는 길이었습니다, 경관님.”

“허어? 이 밤중에 어언 일로?”

“방금 퇴근해서요.”

최대한 여유로운 목소리로 정중하게 말했다.

얼굴 꼴은 말이 아니었지만, 복장만큼은 번듯한 정장 차림이었으니, 설득력이 없지만도 않았다.

“손에 든 건 뭐냐?”

오른쪽의 사내가 손가락으로 가방을 가리켰다.

“그냥 가방인데요.”

“잠깐 이리 내놔봐.”

……좆됐다.

웬 수상한 놈이 가방 속에 딴 거 없이 칼 한 자루만 떡하니 들고 다닌다? 최소 구속 대상이다.

“이건, 그게, 회사 기밀 서류가 있어서요…….”

“뭬야? 지금 우리 명령을 거부하겠다는 거냐?”

“경찰한테 말대답이라니, 거참 용감하신데.”

두 사내는 거칠게 으름장을 놓으며 나를 향해 위협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버티나 볼까. 응?”

제기랄.

이거 좀 위기인데.

선택지는…….

뭐가 있지……?

[ 도망친다 ] ◁

불가능해. 앞쪽은 저놈들이 가로막고 있고, 뒤로는 가봤자 잠긴 창고 뒷문만 나올 뿐. 길은 없어.

[ 뇌물을 준다 ] ◁

지금 지갑에 있는 돈은 아까 택시비 내고 남은 잔돈 30센트가 전부. 꼴랑 이거 받고 얌전히 갈 길 보내줄 녀석은 짐바브웨에도 없을 거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 맞서 싸운다 ] ◁

말할 것도 없이, 제일 최악인 선택지다.

나는 무기도 뭣도 없는 일반인. 상대는 경찰봉을 들고 있는, 나보다 덩치 큰 두 명.

A급 전과자인 내가 경찰을 상대로 폭력을 휘두르다 붙잡힌다면, 어떻게 될지는 뻔하지 않나.

“자아, 좋은 말로 할 때 그거 내놓으시지.”

글쎄,

그렇긴 하지만.

“싫습니다.”

아마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다.

“……뭐야?”

“제가 고분고분 말을 들을 이유는 없잖습니까.”

“이 자식이 뭐라는 거야? 경찰은 마, 수상한 자식을 불심 검문할 권리가 있다고, 이 새끼야!”

“당신들한테 그런 권리는 없을 텐데요.”

“뭐?”

나는 말했다.

최대한 여유로운 목소리로 정중하게.

“세상에 손전등도 없이 야간 순찰을 하는 경찰이 어디 있습니까?”

두 사내는 벙찐 눈으로 나를 봤다.

놈들의 멍청한 반응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훔친 경찰복을 입고 으슥한 골목을 돌아다니면서 이런 식으로 삥을 뜯는 거겠지. 지금 보니까 그 경봉도 그냥 절연테이프 붙인 쇠막대기네.”

“……이 새끼, 너 뭐야……?”

“말했잖아. 방금 퇴근한 회사원이라고.”

사내 중 하나는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는지 미리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른 험악한 인상을 가진 놈은 가지고 있는 관상만큼이나 객기도 있었다.

“좆까고 있네. 뒤지고 싶은 거냐? 엉?”

경봉, 아니, 쇠막대기를 휘두르며 다가온다.

저놈을 내가 혼자 무력으로 제압한다? 그건 좀 어려울 거다. 물론 그럴 필요는 없다.

“자신 있어?”

“뭐, 인마?”

“내가 누군지 모르는 모양인데.”

지금 필요한 것은,

저놈의 용기보다 조금 더 큰 허세.

“사실 난…….”

그리고,

손가락 끝에서 땀이 나오는 느낌.

“마법사거든.”

―푸샤악!

보랏빛 불꽃이 검은 하늘을 집어삼켰다.

내가 손가락을 뻗어 허공을 짚은 한순간, 좁다란 골목길은 순식간에 자주색의 지옥이 되었다.

“우, 우워아아아악―!?”

사내들은 놀라서 자빠졌다.

아마 그들이 평생 본 적도 없으며 볼 일도 없을, 실로 거대한 마력의 폭발.

뭐, 실제로는 CG로 일으킨 가짜 이펙트나 다름없는 단순한 마력 분사였을 뿐이지만 말이다.

“으, 지, 진짜 마, 마법, 마법사였…….”

반응을 보아하니, 효과는 죽여줬다.

“네 친군 발이 빠르네. 벌써 꽁무니 뺀 거 봐.”

“사, 살, 살려주십쇼, 제발……!”

“그건 아니지. 그냥 보내주면 수지가 안 맞잖아.”

나는 손등에 남은 마력의 잔불을 털었다.

“내가 오늘 늦게까지 잔업해서 좀 많이 피곤하고 짜증이 나거든. 그러니까…….”

그러고서 바닥에 주저앉아 덜덜 떠는 남자에게 살며시 다가가, 놈을 내려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집에 갈 택시비 좀 빌려 가자.”

***

웨스트록 7구역.

에덴파크 모텔 208호.

여기가 내 집이다.

지금은 그런 모양이었다.

방에 들어온 나는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누런 이불에서는 담배 찌든 내음과 액체세제 냄새가 났다.

졸리다.

배고프다.

그러고 보니 아침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구나.

허나 당장은 뭔가를 입안에 쑤셔 넣고 싶은 마음보다도, 잠깐이라도 눈을 감고 쉬고 싶었다.

오늘은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자고 나서 일어나면, 또 출근인가.

“후우우…….”

죽겠다.

죽을 것 같지만―

“죽진 않겠지…….”

나는 조용히 눈을 붙였다.

고단한 하루의 끝에 남은 것은,

피로와 공복과 한 자루의 단검뿐이었다.

***

“뉴스 봤어, 레오?”

지하실 같은 공간.

소녀는 신이 난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지금 틀어 놨잖아! TV 좀 보라구!”

소녀의 다그침에 사내는 시선을 옮겼다.

새벽의 브레이킹 뉴스는 전날 밤 사우스아치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한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흑백 CCTV 화면에 찍힌 것은, 가방을 멘 채 골목으로 들어가는 정장 차림의 어떤 인물.

그리고 잠시 후. 화면 구석 쪽에서 불꽃이 튀어 오른다. 이내 도망치는 한 남자와 뒤늦게 같은 방향으로 달아나는 다른 남자가 연달아 보인다.

“봤지, 레오? 응? 봤지?”

“그래.”

“자색 마법이야! 그것도 어엄―청 찐한 색!”

“보스에게 알려라. 아리엘.”

사내는 입을 열었다.

“암귀闇鬼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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