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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제-212화 (212/225)

212화 47. 트라이아 전역 (3)

기병대의 싸움은 보병대의 싸움과 다르다.

보병대가 서로 발을 디디고 선 영역에 단단하게 고정된 상태에서 치열하게 일진일퇴의 공방을 펼친다면, 기병대의 전투는 기세다.

한 번의 총격과 검의 격돌 후 불리한 쪽은 재빠르게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고, 우세한 쪽은 그 뒤를 추격한다.

기병대의 싸움에 관여하는 가장 큰 변수는 숫자고, 그다음이 질이다.

부크의 생각과 달리 만슈타인 기병대의 수준이 그렇게 낮은 건 아니다.

다들 하급 귀족의 자제들로 승마에 능하고 기본적인 전투 훈련은 확실히 받았으니.

두 기병대의 기량은 대동소이하다.

문제는 숫자.

기병대를 양성하거나 고용할 정도의 자금이 없는 부크와 달리, 황제군의 군기를 가진 만슈타인은 슈발츠마인 일대에 모인 젊은 귀족 한량들을 싹싹 긁어 왔다.

소수 정예 기병이 섞여 있다고 하지만 하나의 총과 검이 세 정의 총과 검을 당할 순 없는 노릇.

탕! 탕! 탕!

피스톨을 격발하며 달려드는 만슈타인의 기병대를 본 순간 부크의 기병대는 패배를 직감했다.

“트라리아 만세!”

그들도 피스톨을 응사하며 맞돌격을 실시했지만, 전투가 시작된 지 10분도 되지 않아 만슈타인의 우세가 드러났다.

끝없이 쏟아지는 숫자와 질량으로 만슈타인의 기병대는 부크의 기병대를 압도했고, 곧 그들을 거세게 밀어붙였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기병대가 싸우는 도중에 만슈타인의 보병대가 좌우익 쪽에서 행군 대형으로 전진했다.

안 그대로 기병 싸움에서도 밀리는데 보병대가 총격이 닿을 거리까지 접근해 오자 부크의 기병대의 사기는 금방 바닥이 났다.

패색이 짙어지자 후방의 기병대는 말머리를 돌릴 생각을 했고, 곧 선두가 패주하자 부리나케 다리 쪽으로 달려 나갔다.

기병대장이 소집 나팔을 불며 전투를 독려했지만, 이미 기세가 꺾인 기병대가 할 수 있는 그다지 많지 않다.

좌익이 먼저 패주했고, 우익이 뒤를 따랐다.

구릉 앞에 성채를 구축한 부크의 보병대 뒤로 기병들이 달아났고, 만슈타인의 기병대가 그들을 바짝 추격했다.

추격은 부크의 기병대가 다리를 건너 전장에서 자취를 감출 때까지 이어졌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좌우익 기병대와 거의 붙을 정도로 측면에 쏠린 만슈타인의 보병대가 글자 그대로 맹진격을 가했다.

마치 자신이 기병대인 것처럼 말이다.

기병대의 패주 속에서 평정심을 잃어 가는 와중 부크는 적의 진형과 의도를 파악하려 애를 썼다.

패주한 기병대의 뒤를 이어 전진하는 좌우익의 보병대의 숫자는 얼추 잡아 2만 명에 이른다.

부크의 눈에 비친 그 숫자는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뭐지, 왜 이렇게 숫자가 많은 거지? 예비대가 따로 있었나?’

그럴 리가 없다.

숫자는 호각이었다.

심지어 보병대의 숫자는 이쪽이 좀 더 다수로 알고 있다.

‘설마 그 짧은 시간 안에 장정을 징발한 건가?’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그토록 빠른 시간 안에 병사를 양성하는 건 전쟁의 신이 나타나도 불가능한 일이다.

곧 부크는 원인을 파악했다.

중앙이 비어 있다.

저 빌어먹을 구릉에 대포만이 있을 뿐, 보병대의 모습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이쪽에서 볼 수 없는 구릉의 뒷 사면에 예비대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많진 않을 것이다.

즉, 만슈타인은 전 보병대를 측면에 배치해 그대로 진격시킨 것이다.

그 의도는.

“이런.”

점점 확고하게 굳어 가는 불안감 속에서 부크는 비로소 적장의 의도를 파악했다.

적의 보병대가 움직이는 성채를 무시하고 있다.

수레의 벽을 정면으로 부딪치는 대신 우회하며 뒤를 포위하려 하는 것이다.

중앙을 훤히 열어 둔 채 말이다.

그러나 그 비어 있는 중앙은 부크의 기회가 되지 못한다.

그의 군대는 단단하지만 느리니까.

군대의 수레-방벽은 거북이처럼 느릿하기에 핵심이 될 수 있는 것.

이런 상황에서 수레-방벽이 가지는 전술적 맹점은 피할 수 없어 보였다.

적의 중앙을 찌르는 기습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 와중에 이미 기병대는 패퇴했고, 후방을 위협하고 있다.

만슈타인의 보병대는 맹진격하여 어느새 수레-방벽의 측면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 잘난 방벽이 오히려 그들을 퇴로를 막게 될 것이다.”

구릉 위에서, 나부끼는 황제군의 깃발 아래서 만슈타인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아래의 전장을 내려다보았다.

보병대가 측면을 돌아 부크의 중군을 좌우에서 위협하고 기병대가 돌아와 후방을 위협했다.

전방은 굳이 병력이 필요 없다.

만슈타인의 말대로 그 잘난 방벽이 그 자체로 만슈타인의 포위망 한 축을 차지하게 될 테니까.

사방이 포위당한 상태에서 구릉 위의 포병대가 불을 뿜었다.

불운은 쌍으로 찾아온다.

중포의 포탄 하나가 가련한 수레의 철판을 뚫고, 수레 위에 올린 소형 대포의 화약통에 적중했다.

콰쾅!

수레가 공처럼 날아가며 화려하게 뒤집혔고 그와 동시에 부크 군대의 사기도 수레처럼 산산이 조각난 채 바닥으로 처박혔다.

최후의 전투는 인상적이지만 결정적이지 않았다.

부크와 그의 부관들이 소수의 호위 기병을 이끌고 용감하게 포위망을 돌파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다.

자신의 만든 방벽과 적군에 포위당한 부크의 보병대는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백기를 걸었다.

2만 명에 이르는 트라이아의 군대는 포로가 되었고, 30문의 대포도 남김없이 노획당했다.

만슈타인의 군대는 단지 천삼백 명이 죽거나 부상을 입었을 뿐이다.

만슈타인은 그 승리의 공을 호라와 황제에게 돌리며 전리품으로 노획한 군기 23개를 테타우로 보냈다.

* * *

부크가 무너졌다.

이제 만슈타인의 앞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트라이아의 백성들은 만슈타인의 이름을 확실하게 외웠고, 이제 그들이 오는 걸 기다려야 했다.

트라이아의 각 도시와 동맹국은 서둘러 공성전을 준비했다.

비록 부크는 패했지만, 아직 카렐리아에 있는 그들의 선제후와 군대는 건재하다.

그들이 패망하지 않는 한 그들에겐 주군인 선제후를 위해 각자의 영역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물론 전장의 흐름을 결정하는 건 오롯이 만슈타인의 몫이다.

대부분의 호사가는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 그가 렌타이어마르크 때처럼 무리할 정도로 빠르게 진군하여 트라이아가 저항하기도 전에 장악하는 걸 예견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만슈타인은 느릿하게 전진했다.

어떨 때는 하루에 겨우 10km만을 행군하는 날도 있었다.

그의 노림수는 수많은 의구심과 함께 황제의 귀에 들어왔다.

만슈타인이 세금을 거두고 있다.

반란군 영지의 안전과 안녕을 대가로.

그 방식은 렌타이어마르크에서 하던 것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저항하는 도시 앞엔 적에게서 뺏은 30문의 대포를 들이댔다.

무수한 부가 트라이아와 그 동맹국에서 만슈타인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만슈타인의 진정한 노림수가 무엇인지는 아직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 돈을 다 어디에 쓰실 겁니까?”

만슈타인의 부관 바이크스가 묻자 만슈타인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적어도, 이 돈으로 반란군이 엉뚱한 일을 벌일 순 없겠지?”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지는 아직 만슈타인 본인도 알지 못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그 확신으로 가득 찬 눈동자엔 어느새 시커먼 구름이 끼고 있었다.

* * *

“만슈타인이 부크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만슈타인의 승전보는 군기와 함께 테타우에 전해졌다.

루페르트는 알현실 바닥에 가지런히 놓인 23개의 군기들을 보며 쾌활하게 웃었다.

“역시. 그가 해 줬군.”

만슈타인은 평범한 자가 아니다.

위대한 장군이다.

루페르트가 간절히 원했던, 그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던.

어쩌면 만슈타인은 하벨을 넘어 대륙 최고의 장군으로 이름을 떨칠지도 모른다.

그 무력이 있다면 뭐가 두려울까.

그러나 만슈타인이 가지고 온 건 좋은 소식만이 아니다.

귀족들과 중신들이 불만 어린 어조로 만슈타인의 만행을 보고했다.

“만슈타인이 또 불필요한 특별세를 친 트라이아 군주의 영지에서 걷는 모양입니다.”

“렌타이어마르크에서 저질렀던 그 짓을 또 벌이고 있습니다. 이는 제국 헌법에 대한 심각한 위배입니다.”

루페르트는 난감함을 느꼈다.

객관적으로 만슈타인이 트라이아 일원에서 벌이는 특별세 부과는 확실히 정도를 넘어선 일이다.

“적어도 그에게 주의는 줄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루페르트의 총신 중 하나인 베르너가 진언했다.

아무리 루페르트가 만슈타인을 총애한다고 하지만 그가 정치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건 확실히 교정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루페르트가 서기를 불렀다.

“만슈타인에게 전하라. 하나는 그의 승리를 치하한다는 내용. 다른 하나는 그의 과도한 점령지 세금 부과를 자제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

서기가 문장을 작성해 가안을 보여 주었다.

루페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게.”

곧 완성된 편지가 루페르트 앞에 배달됐고, 루페르트는 거기에 황제의 인장을 찍고 서명을 했다.

“모든 사람이 완벽할 수 없는 거죠.”

만슈타인에 대한 중재를 요구했던 베르너가 다가와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완벽한 사람은 없다.

누구에게나 흠은 있길 마련이다.

만슈타인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얼마 후 만슈타인이 답장을 보내왔다.

그는 극진하게 용서를 구함과 동시에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을 이야기했다.

군대 모집으로 인해 상당한 돈이 소모됐고, 궁정에서 보내 준 급료만으로 군대의 운영을 할 수 없어 불가피하게 특별세를 걷을 수밖에 없었다고.

게다가 돈을 걷는 것도 자신의 사욕이 아닌, 트라이아의 동맹국의 힘을 약화하기 위해서라는 명분도 추가했다.

완벽한 설명은 아니다.

하지만 나름의 충실한 이유도 있다.

만슈타인 말대로 그의 군대는 그가 사비로 모집했다.

어떻게 보면 황제에게 빚을 세웠다는 이야기다.

그로 인한 자금 부족이라면, 그 자금 부족을 황제의 돈만으로 보충해 줄 수 없다면 괘씸한 반란군에게서 걷는 것도 그리 나쁜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루페르트는 믿고 있다.

만슈타인에게 흠이 있다고 해서 그가 자신에게 심각한 문제로 발전할 일은 없을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적어도 루페르트가 경험했던 미래 속에 만슈타인이라는 이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무명의 귀족이었고 아마 무명인 채로 죽었을 것이다.

오히려 잘된 일이다.

다루기 힘든 말이 더 잘 달린다는 속담이 있다.

루페르트는 만슈타인이라는 준마를 타고 험준한 정치의 지형을 굳건하게 질주하리라.

“……승리.”

승리가 임박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카렐리아의 전장은 아직 현재 진행 중이다.

* * *

루페르트가 만슈타인의 답장을 받은 날 테타우의 인쇄소 하나가 불길에 휩싸였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마를로네가 애타게 그의 조부를 찾았다.

갑자기 인쇄소에서 난 불길은 황제의 인쇄소를 사정없이 불태웠다.

직공 몇 명이 불길에 그을리고 연기를 마신 것 말고는 인명 피해는 없지만, 베르크 란은 사라졌다.

“할아버지! 대체 어디로 간 거야?”

마를로네는 불에 타는 인쇄소를 망연자실한 눈으로 응시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의 조부가 불에 타서 죽을 거라는 걱정이 아니다.

그녀의 걱정은 저 불길 너머에 있다.

‘설마, 불을 지른 게 할아버지는 아니겠지?’

어느 순간 베르크 란은 변했다.

계기를 준 건 저 가증스러운 루돌프다.

그를 만나고 조부는 변했다.

어쩌면 그 변화가 저 불길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대체, 무슨 생각이야……?”

불길이 잡히고 수색이 시작됐다.

베르크 란이라는 이름을 가진 도펠죌트너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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