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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제-211화 (211/225)

211화 47. 트라이아 전역 (2)

먼저 진을 잡고 기다린 건 만슈타인이다.

하지만 그의 군대는 분산된 상태다.

부교 여러 개를 동시다발적으로 다리를 건너오는 부크의 병사를 보자 만슈타인은 전군을 뒤로 물렸다.

그에겐 다리까지 닿는 6문의 중포가 있지만 한 발도 쏘지 않고 대포 또한 뒤로 물렸다.

그 모습을 본 부크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뭐 하자는 거지? 저 애송이 장군은?”

다수의 피해를 감수했다.

도하나 도강은 필연적으로 많은 병력을 잃는 일이니.

대포만 쏴도 수백 명이 죽거나 다쳤을 것이다.

맹렬하게 반격을 했다면 도하를 포기하고 안개가 끼기를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만슈타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병력이 분산된 걸 의식하는 건가. 실제로 병사가 많지는 않군. 보병만 이만 명이 넘는다고 들었는데 전개된 건 만 명가량이다. 기병대는 보이지도 않고. 그 숫자의 부족 때문에 자신감을 잃은 건가. 그렇지 않다면 절호의 기회를 저렇게 날려 보내지는 않았겠지.’

순간 섬뜩한 가정이 부크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쩌면 만슈타인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전군을 다리 앞에 두게 한 뒤 군대 전체를 멸하려는 게 아닐까 하는.

그 대목에서 부크는 부관이 놀랄 정도로 큰 웃음을 터뜨렸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

그가 생각하기에 이번 전투는 성립이 되지 않을 정도로 전력의 차이가 난다.

움직이는 방벽-수레를 어떻게 뚫을 것인가?

만슈타인의 군대는 신병이 대부분이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고참병은 거의 없고, 고참병의 부재는 보병대 전투력에서 드러난다.

부크의 움직이는 방벽은 평범한 수레 벽이 아니다.

철판과 가죽으로 보강한 수레 위에 작은 대포를 실었다.

만슈타인이 가진 중포에 비하면 사거리가 열세겠지만, 다가오는 병사들을 쫓아내기엔 충분한 화력이다.

중앙을 두텁게 보강하여 군대 전체의 균형을 잡은 후 중포의 숫자는 부족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대포의 화력으로 포격전을 벌여 적의 전열을 꺾어 놓겠다는 게 부크가 생각하는 전쟁의 형태다.

어차피 상대방은 신병.

대포알 몇 발을 맞으면 그의 보병대는 왕겨처럼 흩어질 테니.

이쪽 병사도 신병에 제대로 된 훈련과 급여를 받지 못하는 농민군 출신인 건 맞지만 이쪽은 든든한 의지가 되는 방벽-수레가 있다.

같은 포격을 얻어맞아도 와해되는 속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기병의 숫자는 7천 대 5천으로 이쪽이 확실히 열세지만, 트라이아 선제후령에서 파견 온 기병들이 많은지라 질적인 우위는 확실히 보장된다.

쉽게 밀리진 않을 것이고 어쩌면 적의 기병을 쫓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기병전에서 이긴다면 이 싸움은 더욱 쉽게 끝날 것이다.

당초 구상대로 만슈타인의 군대 전체를 멸하지는 못하겠지만, 지금은 한 번의 승리가 시급한 시점.

부크는 부하 장군과 부관들에게 빠르게 전투 배치할 것을 명했다.

북소리와 나팔 소리 아래 트라이아의 동맹국이 전열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에 맞서는 만슈타인의 군대는 황제군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음에도 허술해 보였다.

화려한 군기를 휘날리고 있지만 제대로 된 전공도 역사도 없는 연대다.

아직 기병대는 도착하지도 않았다.

부크가 전열을 갖추는 동안 만슈타인은 군대를 더욱 뒤로 물렸다.

그 뒤편엔 낮은 구릉이 있었다.

만슈타인은 여섯 문의 대포를 포함한 포병대를 구릉 위에 배치했다.

그에겐 중포가 여섯 문 표준 대포는 10문 정도가 있었다.

그에 비해 부크에겐 중포는 하나도 없지만, 표준 대포는 30문을 넘게 보유 중이다.

포병의 숙련도는 비슷할 것이다.

발사 속도도 정확도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표준 대포와 중포의 차이점은 사거리다.

대포의 사거리가 1.5km 남짓이지만 중포는 2km가 넘는 거리에서도 힘을 잃지 않은 포탄을 쏠 수 있다.

발사 속도도 정확도도 중포가 더 빠르다.

더 크고 좋은 금속을 썼기에 포신이 덜 빠르게 달구어지기 때문이다.

현재 시점에서 만슈타인의 중포는 이쪽을 노릴 수 있지만 이쪽의 대포로는 적에게 유효타를 가할 수 없다.

다행스럽게도 만슈타인의 대포는 불을 뿜지 않았다.

계속해서 그는 군대를 소집하는 것으로 보였다.

다리에 갇혀 있었던 지형 특성상 적에 대한 정보는 그다지 많지 않다.

강변을 따라 우회한 정찰병들이 있긴 하지만 만슈타인의 기병대가 수시로 돌아다니며 정찰을 방해했다.

부크가 아는 정보는 만슈타인의 군대는 지금 주변 마을과 도시를 약탈하는 데 여념이 없다.

그가 공격을 결심한 것도 만슈타인에게 시달리는 도시의 간청 때문이지만 말이다.

오전 6시부터 시작된 도하는 두 시간이 되기 전에 끝이 났다.

부크의 군대는 다리 앞에서 전열을 갖추었다.

좌우익에 각 3천 기의 기병대, 중앙엔 부크가 자랑하는 움직이는 방벽을 앞세운 보병대.

수레 앞엔 30문의 대포를 빼곡하게 배치했다.

그의 군대가 배치를 하는 동안 구릉 뒤에서 만슈타인의 지원군이 도착했다.

기병대다.

숫자는 4천 기가량.

전투 전에 보고됐던 기병보다 숫자가 확연히 적다.

부크처럼 만슈타인도 기병을 반으로 쪼개 양익에 배치했다.

뒤늦게 1개 연대가 더 도착해 만슈타인의 중군은 1만 3천 남짓한 숫자까지 불어났다.

2만 명에 달하는 부크에 비하면 명백한 열세.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역시 적은 풋내기 지휘관이군요.”

부크의 부관들은 전투가 시작되기 전부터 부크를 승리를 축하했다.

부크는 코웃음을 친 채 쏟아지는 칭찬을 무시했다.

싸움은 해 봐야 아는 것이다.

어차피 그래 봐야 자신이 이길 테지만 미소 짓는 건 적의 군기를 빼앗은 다음에 해도 늦지 않으리라.

특히 저 만슈타인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능선 위에 화려한 금실로 장식한 황제군의 군기를 뺏을 수 있다면 레벤호스트에게 바치는 최상의 선물이 될 것이다.

“포격을 시작해라.”

부크가 좌우에 명했다.

장군이 명하자 30문의 대포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펑! 펑!

하얀 포연과 폭음과 함께 포탄이 적진을 향해 날아갔다.

대부분은 맨땅에 처박혔지만, 일부는 보병대에 정확히 꽂혀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펑! 펑!

만슈타인의 대포가 뒤늦게 불을 뿜었다.

명중률도 사상자도 비슷하지만, 저쪽은 이쪽보다 포병전력이 반이나 적다.

분당 발사되는 포탄의 숫자가 다르다는 이야기다.

포격전이 이어지면서 만슈타인의 중군이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동요를 일으킨 것이다.

곧 만슈타인의 보병대는 황제군의 군기를 가지고도 뒤로 물러났다.

부크는 즉각 병사들에게 명했다.

“전군 전진.”

방벽을 이룬 수레가 90도로 회전하며 적을 향한 전진을 시작했다.

그 뒤를 트라이아의 병사들이 따랐다.

군기가 휘날렸고, 북소리가 울렸다.

기병대는 말의 투레 소리를 제외하면 고요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예비대를 제외한 보병대는 천천히 포병대의 우위를 앞세워 적을 밀어붙였다.

나팔소리가 만슈타인의 좌익에서 울려 퍼졌다.

적의 좌익 기병 2천 기가 뛰쳐나왔다.

아마 참지 못하고 전황을 바꾸기 위해 움직인 모양.

부크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이쪽의 우익 기병대를 내보냈다.

적은 2천 기. 아군은 2천 5백 기.

질은 아마 이쪽이 더 높을 것이다.

반짝이는 갑주를 걸친 부크의 기병대가 함성을 지르며 돌진하자, 만슈타인의 기병대는 이전의 기세는 간데없이 말머리를 돌려 뒤로 꽁무니를 쳤다.

구릉을 넘어 사라진 그들은 전장으로 복귀하지 않았다.

기병대의 지휘관이 깃발로 추격을 할 것인지 물어봤지만, 부크는 신중한 사람이다.

움직이는 방벽-수레를 고안한 사람답게 신속하게 전과를 확장하는 대신 안전하게 천천히 적을 밀어붙여 압살하는 방법을 선호한다.

행여라도 사각에서 기병을 잃게 된다면 그의 큰 그림이 무너진다.

부크가 명령하자 기병대가 뒤로 원위치로 복귀했다.

그 와중에도 30문의 대포는 적과 포격전을 계속했다.

오전 내내 지루한 포격전이 이어졌다.

포병들이 포탄과 화약의 부족을 보고했다.

부크는 지금 상황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적 보병대가 슬금슬금 물러나면서 대포의 유효 사거리를 아슬아슬하게 걸쳐 포격에 의한 피해가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질 같아서는 선두 두 연대 정도는 아주 박살을 내고 싶었는데 약간의 상처만 낸 느낌.

부크는 적이 물러난 만큼 전진을 요구하게 했다.

그에게도 생각은 있었다.

‘저 구릉. 고지를 차지한다면 이 지루한 싸움도 끝이 날 터. 만슈타인은 물러나거나 패배하거나 두 개의 선택지밖에 없겠지.’

다만 그 전진은 지지부진했다.

부크의 움직이는 수레-방벽이 전대미문의 방어력을 보장해 주는 건 맞지만 그 방어력은 수레를 가로로 돌려 수레들이 맞닿게 하는 것으로 완성된다.

수레가 흩어지거나 열과 오가 흐트러지면 방벽의 의미가 사라진다.

한 대도 아니고 80대나 되는 방벽-수레를 일일이 정렬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전진과 정렬을 반복하기에 전진 자체가 지지부진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이다.

구릉의 입구에 수레가 닿은 건 정오가 지나서였다.

야트막한 경사지만 육중한 수레를 올리기엔 험난한 각도.

하지만 구릉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부크는 일단 보병대를 올려 보냈다.

수레 뒤에 서 있던 병사들이 구릉을 올랐다.

이미 적의 중포는 뒤로 물러난 상태.

이쪽에서 쓸 방법은 기병대 돌격이나 보병대 전진 말고는 없다.

기병대는 귀중한 전력이기에 일부의 보병대를 정찰대로 내보내 적의 동정을 확인하려 했다.

그런데 적의 저항이 거세다.

소수의 병사들이 집요하게 구릉을 오르는 병사들에게 총격을 가해 그들을 흩어 놓았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신병이긴 매한가지.

병사들 몇 명이 죽어 나가자, 보병대 인원들이 혼비백산 내려갔다.

부크는 조바심을 느꼈다.

보병대보다는 역시 기병대다.

그는 다수의 기병대를 올려 보내는 것으로 대응했다.

천 명 남짓한 병사들이 능선을 올랐다.

구릉 위에서 저항하던 적의 총병은 다수의 적이 다가오는 걸 보자 뒤로 물러났다.

이제 구릉은 부크의 것이다.

부크는 능선 위에 자신의 기병대가 오르는 걸 흐뭇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그런데 능선 위에 기병대가 오르는 순간 대량의 총성과 포성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능선을 장악했던 기병대의 전열이 붕괴되며 병사들이 뛰어 내려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부크가 그들에게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양옆에서 요란한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만슈타인의 기병대다.

숫자가 아까보다 많아졌다.

파견 나간 적의 주력이 돌아온 모양.

그런데 적은 기병대만이 아니다.

양옆에서 쇄도하는 기병대 측면으로 또 다른 보병대가 양익에 가까운 지점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부크는 즉시 방벽-수레 뒤로 전 병력을 움직였다.

은빛으로 번들거리는 방벽-수레가 낮은 구릉 아래 성채처럼 버티고 선 건 확실히 보기가 좋았다.

어떤 공격이라도 막아 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능선 위에 선 만슈타인의 생각은 달랐다.

일렬로 늘어선 수레의 벽을 보며 만슈타인은 코웃음을 쳤다.

“그런 장난감 몇 개를 만들었다고 전쟁에서 이길 거 같은가?”

능선 위에 사라졌던 보병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좌우에 보병과 기병대가 양익을 휘몰아쳤다.

그러나 중군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북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만슈타인의 기병대가 적을 향해 돌격했다.

“황제 폐하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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