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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제-184화 (184/225)

184화 41. 역병의 주인 (5)

숲은 어둡고 눅눅했다.

애당초 숲은 짐승의 것이었지만 사람이 사라진 숲엔 평소보다 더 많은 짐승이 돌아다녔다.

숲엔 수많은 야수가 있지만, 가장 인간에게 위협적인 건 짧은 머리 곰이다.

말만 한 덩치를 가진 고대의 늑대무리가 위험도만 놓고 보면 훨씬 위험하나 그것은 적어도 나무 위에 기어오른 사람은 공격하지 못하니까.

짧은 머리 곰은 다르다.

다른 곰과 달리 얼굴이 배나 짧아 짧은 머리라는 이름을 가진 그 곰은 겨우 성인 남성보다 좀 더 큰 체구에 힘도 불곰 같은 대형 곰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그것은 인간을 우선적으로 포식 대상으로 삼는다.

한두 마리의 예외가 아닌, 종 전체가 기회가 있으면 언제든지 식인 곰으로 변할 수 있는 인간의 적이라고 할까.

그것은 지능이 대단히 높아 거울에 비친 자신을 인식할 수 있고 매복의 개념을 알고 있으며 때로는 무리를 이루어 마을 전체를 파괴하기도 한다.

곰 중에서 힘이 약하다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썩어도 준치라고 인간을 일격에 가볍게 때려죽이는 힘 정도는 갖고 있으니까.

한스 징펠만은 이 짧은 머리 곰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

불과 철의 형제단의 정식 형제가 되기 위한 첫 번째 시련은 이 짧은 머리 곰의 갓 벗긴 가죽과 살아 있는 새끼를 잡아 오는 것이다.

“시체의 악취가 나는군.”

한스 징펠만은 코를 킁킁거렸다.

그가 술을 마시지 않고 담배를 피지 않는 이유는 감각을 언제나 최대 감도로 끌어올리기 위함이다.

술은 정신을 혼란하게 하고 담배는 미각과 후각을 망가뜨린다.

인간의 후각이 다른 짐승보다 열등한 건 사실이지만, 아주 쓸모없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야생의 감을 잃지 않은 사람은 타고난 덕성인 지능과 더불어 후각을 유용하게 활용한다.

때로는 개나 늑대보다 더 효율적으로 말이다.

곧 한스 징펠만이 나무 그루터기 안에서 시체 하나를 발견했다.

죽은 지 하루 정도.

왱왱거리는 파리와 구더기, 처참하게 일그러진 시체의 상태를 보고 한스 징펠만은 사망 시점과 그 범인을 추측했다.

“하루는 지났지만, 이틀은 넘지 않았군. 곰이 시체를 뜯은 흔적은 있지만 반항의 흔적은 보이지 않아. 딱히 목을 물린 것도 아닌데. 하지만 시체를 먹힌 것도 아니다. 이 혈흔은 그가 살아 있을 때 당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지. 종합하자면, 이 사람은 곰을 만나기 전에 이미 거의 죽음에 이를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고, 그 상태에서 죽임을 당했다.”

무엇이 희생자의 상태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지는 얼 수가 없다.

짧은 머리 곰은 희생자의 얼굴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했으니.

인간의 얼굴을 훼손하는 건 짧은 머리 곰의 습성이다.

“잘 봐 둬라.”

한스 징펠만은 쌍둥이들이 시체를 보도록 자리를 비켜 주었다.

쌍둥이들이 말없이 그루터기 앞에서 시체를 관찰했다.

“알다시피 저 곰은 인간의 오랜 적이다. 내 아버지와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씨를 말리기 위해 보이는 족족 죽이고 있지만, 뿌리 뽑히지 않는 녀석이지. 너희들이 활동하는 시기에도 여전히 노르드마르크의 숲속에서 인간을 노리고 있을 것이다.”

이제 쌍둥이 도제도 졸업할 시기가 왔다.

그동안 황제와 엮은 수많은 사건으로 인해 기회가 늦어졌지만 한스 징펠만은 이 쌍둥이 도제를 어엿한 불과 철의 형제단으로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훈련도는 충분하다.

경험도 동년배에 비하면 압도적이다.

사격술, 총기에 대한 지식, 제련술 모든 기술을 전수했다.

형제단의 특성상 여성을 받아들이지 못해 쌍둥이 중 한 명만이 형제단의 일원이 될 수 있겠지만, 한 명만 명부에 올려놓고 예전처럼 둘이서 하나가 된 것처럼 활동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불과 철의 형제단은 부르는 곳이 많다.

그 고객은 대부분 제국의 제후들이다.

굳이 외국에 나갈 필요도 없이 부유한 제국 군주와 귀족의 아래서 솜씨를 팔거나, 영지를 위협하는 위험한 짐승을 사냥할 수 있다.

그 수입은 결코 적지 않다.

도시의 상인에 비교했을 때 사치스러운 삶은 살지 못하겠지만, 땅을 파는 사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안락하고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다.

한스 징펠만은 오랫동안 자신의 옆을 함께 한 도제들에게 기꺼이 길을 열어 줄 생각이었다.

‘이번 문제만 해결한다면, 기를 형제단의 일원으로 맞이하리라.’

하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저 쌍둥이 도제, 루와 기의 부친 콘라드 투른은 형제단의 규율을 어긴 사람이다.

형제단의 창시자가 교리로 삼은 총기 제조술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불필요한 장치와 구조를 만들어 형제단의 규율을 무너뜨렸다.

그것만으로 중죄지만 그는 한술 더 떠 그 기술을 스베아 왕국에 팔려고 시도했다.

군사력 증강에 혈안이 된 스베아 왕은 거액의 돈과 훌륭한 처우를 약속해 콘라드 투른을 왕국의 손님으로 맞이하려 했지만, 망명 직전 한스 징펠만에게 적발되어 처형당했다.

정당한 처벌이었다.

콘라드 투른은 체포 전에 형제 단원에게 총부리를 들이대며 저항하려 했으니.

그는 형제 단원의 총격에 의해 몸에 다섯 발, 한스 징펠만에 의해 머리에 두 발을 얻어맞고 눈을 부릅뜬 채 죽었다.

시체는 불에 태워져 유골이 빙해에 뿌려졌고 묘도 없었다.

그 배신자의 아들을 형제단에 추천한다는 건, 형제단 사이에서도 상당한 저항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걱정하진 않는다.

한스 징펠만은 형제단 안에서 최고의 실력자이거니와 그는 황제의 사냥꾼이니까.

형제단의 그 어떤 단원도 한스 징펠만 만큼 높은 자리에 오른 적이 없었다.

황제의 후광을 빌릴 생각 따윈 추호도 없지만, 후광이라는 건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저절로 상대방 측에서 알아 모시는 효과가 있는 법이다.

기의 형제단 입단은 별문제 없이 진행될 것이리라.

“마이스터예거.”

훌쩍 덩치가 커지고 목소리도 굵직해진 기가 한스 징펠만을 불렀다.

“무슨 일이냐.”

“곰의 기척이 느껴집니다.”

“그래?”

한스 징펠만도 알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짧은 머리 곰이 조잡한 매복을 한 채 이쪽을 노리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아마 늙은 놈일 것이다.

젊은 놈에게 영역을 빼앗기고, 기운찬 젊은 동물을 사냥할 능력도 없는.

짧은 머리 곰이 인간을 먹이로 노리는 건 다른 짐승보다 노리기 쉽기 때문이다.

무기를 든 인간은 만만치 않겠지만 그 무기를 봉쇄하거나 무기를 없는 인간을 노린다면 사슴과는 비교도 안 되는 노력을 들이고 배를 채울 수 있다.

“루와 함께 잡아 보거라.”

“네. 마이스터예거.”

루와 기가 가방을 내려놓고 총기를 조립했다.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남매를 보며 한스 징펠만은 과거를 추억했다.

‘예전엔 루의 키가 좀 더 컸는데, 결국은 사내아이인 기의 키가 압도적으로 커 버렸군.’

조그만 소년이었던 기는 훌쩍 자라 이제는 한스 징펠만을 넘볼 정도로 성장했다.

180cm를 가볍게 넘기는 큰 키. 체구는 아직 얇지만, 곧 수사슴처럼 늠름한 가슴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제는 진짜 떠나보낼 때가 온 것이다.

짧은 머리 곰 사냥은 형제단 입단의 첫 번째 시련.

비록 늙은 곰이라고 하나 짧은 머리 곰의 전투력은 늙은 놈이나 젊은 놈이나 큰 차이가 없다.

탕! 탕!

기와 루의 총이 불을 뿜었다.

인간의 총이 연사가 불가능하고 상당한 장전 시간을 필요로 하는 걸 잘 아는 짧은 머리 곰은 남매가 총을 격발하자마자 매복 장소에서 뛰쳐나와 남매를 덮쳤다.

루가 숨겨 둔 피스톨을 꺼내 격발했다.

탕!

탄환은 정확히 곰의 한쪽에 적중했다.

“크릉!”

곰은 괴로워하면서도 질주를 멈추지 않았다.

하나 남은 눈에 인간에 대한 증오를 배가하며 기의 몸을 발톱으로 찢어발기려 했다.

기는 그 곰이 직전까지 오는 걸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싸늘하게 응시하다 그것이 발톱을 휘두르기 위해 앞발을 젖힌 순간 품속에서 또 다른 권총을 꺼내 남은 안구 하나마저 앗아가 버렸다.

“크르르릉!”

두 눈을 잃은 곰이 바닥에 처박혔다.

루와 기는 발작하는 곰을 응시하며 신중하게 재장전을 하다 곰을 향해 총을 겨누었고, 그것을 죽였다.

타점은 둘 다 귓구멍.

가죽에 상처 하나 남기지 않은 최상의 타점이었다.

최상의 사냥꾼은 가죽에 상처를 남기지 않는 법이다.

한스 징펠만은 박수를 치며 도제의 실력을 칭찬했다.

“역시 너희들에겐 더 이상 가르칠 게 없구나.”

“아닙니다. 마이스터예거.”

“가자. 슬슬 해가 지는군.”

“죽은 사슴은 어쩌시고요?”

기가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곰의 가죽이나 벗기거라. 어차피 강령술사의 말이다. 놈들의 말에서 진실은 찾아보기 어렵지. 너희들도 명심해라. 망자의 목동이라는 것들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들의 비천한 직업이 그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는 걸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순간 한스 징펠만은 루와 기가 말없이 눈빛을 교환하는 걸 발견했다.

“…….”

불온한 눈빛이다.

알고 있었다.

이 남매가 그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 정도는.

스승이라고 하지만 그 전에 아버지의 원수다.

유복하진 않지만 부족한 것 없던 집안을 박살 내고 도제로 부리며 제국 곳곳을 끌고 다닌 작자다.

그들이 자라면 복수를 하리라는 예상은 오래전부터 했었다.

하지만 그들이 진짜 복수를 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오랫동안 미뤄 둔 숙제다.

뭔가를 해야겠다는 추상적인 생각이 있었지만, 그 두루뭉술한 구상 속에 쌍둥이 도제를 죽인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쌍둥이의 스승이면서 동시에 어떤 의미로는 그들의 아버지와 다를 바 없는 위치였으니.

곰의 사체를 해체하는 쌍둥이를 보며 한스 징펠만은 마음에 하얗게 타들어 가는 쓸쓸함을 느꼈다.

문득 황제의 얼굴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직도 이십 대 초반의 젊은 나이.

그러나 그 젊은 황제엔 꽤 나이를 먹은 그마저도 경탄할 정도로 원숙함이 있었다.

무엇이 그 황제에게 그러한 경륜을 줬는지는 알 수 없겠지만, 한스 징펠만은 그 누구보다 황제 루페르트의 굳건한 지지자다.

가끔은 황제의 의견에 이상함을 느낄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자기도 알 수 없는 변명이 머릿속에서 흘러나와 황제의 의견이 맞다는 결론을 내리곤 했다.

‘빨리 역병의 원인을 밝혀내고 폐하에게 돌아가는 것도 일이군.’

가장 시급한 건 역시 역병의 원인을 밝혀내는 것.

쌍둥이들이 곰의 해체를 끝내고 가죽을 추리고 있었다.

“가자.”

오늘은 에핑겐에서 하루를 묵을 생각이다.

망자의 목동을 다시 불러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금 그 죽은 사슴을 찾을 생각이다.

숲의 밤은 천하의 형제단도 감히 들어서지 않는다.

해가 진 숲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 완연한 짐승의 것이니까.

그런데 에핑겐에 사고가 터졌다.

“오시면 안 됩니다! 사냥꾼 나으리!”

마을엔 너부러진 시체가 여러 구 놓여 있었고, 사람들이 부리나케 달아난 흔적들이 있었다.

연로한 촌장이 한스 징펠만 일행을 입구에서 막았다.

“신의 회초리가 우리 마을마저 강타했습니다! 우리 마을은 곧 끝장이 날 겁니다!”

한스 징펠만은 참담한 얼굴로 마을을 돌아보았다.

‘내가 있는 곳에서도 역병을 막지 못했단 말인가.’

마을에 남은 건 죽어 가는 사람과 촌장뿐이었다.

나머지는 역병이 발생하자 최소한의 가재도구만을 챙기고 마을에서 달아났다.

‘이대로는 안 된다.’

한스 징펠만도 응당 달아나야 할 터였다.

황제의 사냥꾼마저 역병에 걸려 버리면 모든 게 끝나 버릴 테니.

그러나 한스 징펠만은 물러서지 않았다.

“병자에게 나를 안내해라.”

황제의 사냥꾼이 엄중한 목소리로 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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