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대제-183화 (183/225)

183화 41. 역병의 주인 (4)

“역병이라고……?”

“네. 신의 회초리라 불리는 반드시 죽음에 이르는 역병에 말입니다.”

들은 바 있다.

현재 노르드마르크를 사실상 반신불수로 만들고 있다는 끔찍한 역병.

그 병은 흑사병보다 더욱 지독해서 노약자라면 병의 징후가 나타난 지 반나절도 되지 않아 죽음에 이를 정도로 치명적이다.

어느 정도냐면 병이 퍼지기도 전에 마을이 전멸해 퍼지지 않는 수준이다.

“왜 그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지?”

지겔슈타트가 쌍둥이를 다그쳤다.

쌍둥이들은 잠시 서로의 시선을 교환하다 이내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마법사의 질문에 답했다.

“……스승께서 이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스승이 그 병에 걸린 이상, 다른 사람에게 병을 퍼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자초지종을 들었다.

한스 징펠만은 반드시 죽음에 이르는 역병에 걸리고도 다른 사람들과 같은 결말을 맞지 않았으며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있을지 모른다고 한다.

대학의 마법사로서 지겔슈타트는 신의 회초리라는 역병에 대해서 약간의 정보를 갖고 있었다.

그 역병은 다른 역병과 달리 인간의 뇌를 공격한다.

노르드마르크의 한 지역 의사가 목숨을 걸고 역병에 걸려 죽은 사람의 시신을 해부한 결과, 다른 장기엔 별다른 문제는 발견되지 않으나 뇌 쪽이 마치 그을음을 뒤집어쓴 것처럼 시커멓게 변색됐다고 한다.

역병의 잠복기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길어 봐야 2~3일 정도로 추정되며 일단 역병이 증세를 나타내면 그 사람은 견딜 수 없는 졸음을 느끼고 눈을 감은 채 그대로 죽는다.

증상이 발현되고 죽기까지 시간은 길어 봐야 이틀.

왜 그 역병이 신의 회초리라고 이름 지어졌는지 뼈저리게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 역병에 걸리고도 살아 있을 수 있다고?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할 정도로 이 녀석들이 멍청한 것 같진 않다. 일단은 사실 확인이 우선이겠지.’

불안과 기대, 알 수 없는 미지의 공포를 느끼며 마차는 노르드마르크로 향했다.

한스 징펠만은 그 노르드마르크에서도 북쪽 끝에 자리 잡은 에핑겐이라는 작은 마을에 있었다.

마부가 역병의 소문을 믿고 더 이상 마차를 몰고 가지 않으려 하기에 그를 중간에 해고하고 대신 루와 기에게 마부석을 맡겼다.

고문으로 상처를 입긴 했지만 둘이서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임무였고, 설령 그들이 중간에 다른 마음을 먹고 지겔슈타트를 함정으로 몰아넣는다고 하더라도 누가 감히 사각의 마법사 상대로 함정을 판단 말인가.

오각의 마법사를 데려오지 않는 이상 지겔슈타트를 죽일 방법은 사실상 전무하다.

홀로 마차에 앉은 지겔슈타트는 흔들리는 차창 밖의 하얗게 물든 대지를 보며 노르드마르크적인 흥취를 흠뻑 느낄 수 있었다.

노르드마르크 또한 원래는 야만족의 땅이었다.

제국을 이룬 부족 중 야만적이지 않은 부족이 있었겠냐마는 노르드마르크는 그 수많은 부족 중에서도 특히 흉포한 야만인이 살고 있었다.

가장 유명한 건 나체전사라 불리는 머리에 썩은 냄새가 나는 버터를 바르고 아무 옷도 입지 않은 상태로 광란의 돌격을 가하던 광전사 무리였다.

전설에 따르면 노예제 티그리트는 홀로 나체전사 무리를 상대하여 백 명을 베어 내고 우두머리를 불러내 단칼에 나체전사의 몸뚱이를 두 조각 내는 것으로 야만적인 북부를 굴복시켰다고 한다.

다만 빠른 정복과 다르게 종교적인 문제에서는 꽤 오랫동안 티그리트의 속을 썩이기도 했다.

국토의 대부분이 숲으로 뒤덮인 제국에서는 사냥의 여신 다르타니아 신앙이 강세를 띠고 있었는데 그 다르타니아 신앙의 중심점이 노르드마르크였기 때문이다.

신이 세상을 만들 때 조성한 태초의 숲 그대로의 모습은 간직했다고 여겨지는 노르드마르크엔 농업이나 상업보다 사냥으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이 더 많았고, 그러한 사냥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다르타니아를 숭배한다.

그 신앙을 뺏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호라 교단은 예로부터 지방민들이 믿는 “작은 신”을 죽은 신으로 만들고 그 죽은 신을 만신전의 구석에 던져 놓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오랜 회유와 은밀한 탄압, 아이에게 부모를 비난하고 손가락질하게 만드는 교육, 기존의 미덕을 촌스럽고 열등한 것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공작, 룸제국적인 세련된 문화의 도입, 현실적인 압박을 주는 차별적인 세금의 부과 등 잡다한 수단으로 다르타니아 신앙을 노르드마르크의 백성들에게 빼앗은 뒤 다르타니아를 제국 만신전이라는 죽은 신들의 전당 구석에 처박아 놓았다.

다르타니아 신앙이 금지된 건 아니지만 그 신앙은 한물가거나 해서는 안 되는, 모자란 사람들의 신앙으로 여겨졌고, 다르타니아를 믿는 사람들은 공적에서나 사적에서나 차별당했다.

다르타니아라는 영원히 노르드마르크의 숲속을 뛰어놀 것 같은 신이 신도를 잃고 죽은 신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한스 징펠만 엽사는 그 다르타니아의 은밀한 신도였지.”

신도를 잃은 신은 죽은 신으로 치부된다.

죽은 신은 얼마든지 있다.

인간은 필요에 따라 수많은 신을 만들어 내고 또 버렸으니까.

마차는 그 죽은 신의 땅 끝자락에 멈췄다.

해무에 잠긴 군도가 멀리 내다보이는 쇠락한 마을의 입구였다.

“여깁니다.”

루와 기가 마차에서 내려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지겔슈타트를 안내했다.

지겔슈타트는 그들이 왜 절뚝거리는지 알고 있다.

황궁에 압송되기 전에 이단 심문관의 고문을 받았다.

노르드마르크 교구 소속 이단 심문관 에른스트 팔켄하우젠이 쌍둥이를 붙잡아 다리에 무거운 추를 매달며 자백을 종용했다.

다행히 무릎 관절이 뽑히기 전에 고문이 종료됐고, 둘은 불구의 몸이 되는 걸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

제국 귀족들은 부정하겠지만, 제국은 충분히 잔혹한 사회다.

힘 있는 자는 죄를 범하고도 큰 벌을 받지 않는 반면, 힘없는 자는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수많은 폭력에 휘말린다.

같은 죄를 범한다고 해도 둘이 받는 대접은 전혀 다르다.

이러한 불만은 이미 제국 하부 사회에 팽배하게 깔려 있고, 실제로 그 불만은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농민 반란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루페르트의 치세 이래 대규모 농민 반란은 없었지만, 제국이 혼란에 접어들면 해묵은 불만은 또다시 피를 부르는 반란으로 연결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노르드마르크에서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반란을 일으킬 사람도 몇 없어 보이니.

지겔슈타트는 불에 타고 남은 잿더미를 보았다.

시체를 태운 자리다.

마을 전체가 전멸했다.

신의 회초리가 강림하는 곳마다 마을이 전멸하고 사람이 깡그리 죽어 나간다는 건 대학에서도 익히 들은 이야기지만, 실제로 본 풍경은 더 을씨년스러웠고 더 공허했다.

“저기에 우리의 스승이 있습니다.”

쌍둥이들이 문 앞에 섰다.

“여기서 더 들어가시면 아니 됩니다. 역병에 옮을 수도 있으니까요.”

지겔슈타트는 고개를 끄덕이고 쌍둥이들이 문을 열게끔 했다.

곧 쌍둥이들이 문을 열었다.

비좁고, 정돈되지 않은 집 안에선 약간의 온기가 느껴졌다.

지금은 불을 껐지만 밤새 난방을 한 것처럼 보인다.

“마이스터예거.”

쌍둥이들이 그들의 스승을 불렀다.

잠시 후 집 안쪽에서 기침 소리가 났고, 곧 사람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쌍둥이들이 놀란 눈으로 서로를 보았다.

살아 있다.

그들의 스승이.

그건 이곳에 마법사를 데리고 온 쌍둥이들조차 확신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들의 놀라움을 보며 지겔슈타트는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문제의 주인공이 나타나길 기다렸다.

곧 특유의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사냥꾼이 마법사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마법사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징펠만 엽사님?”

놀랄 수밖에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한스 징펠만의 얼굴엔 어떠한 이상도 찾을 수 없었으니까.

그는 완벽하게 건강했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요?”

북구의 해는 빠르게 진다.

오후 3시경에 이미 해는 떨어졌고, 땅거미가 눈 덮인 하얀 대지를 덮어 오고 있었다.

타오르는 난롯가 옆에서 한스 징펠만은 그 옆에 부동자세로 서 있는 쌍둥이 조수들을 안쓰러운 시선으로 응시했다.

그는 도제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았다.

상처 입고 초췌한 몰골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도제가 당했던 개인적인 고통이 아니다.

한스 징펠만은 더 중요한 진실을 보았다.

“……대단히 이단적인 발언이겠지만 말입니다. 법사님.”

한스 징펠만이 콧수염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냥꾼의 얼굴에 결연한 표정이 들어섰다.

“저는 신을 보았습니다.”

“신요?”

지겔슈타트가 적잖은 놀라움을 그 신비로운 눈동자에 드러내며 물었다.

“네. 신이지요. 제국의 신이 아닌, 노르드마르크의 신 말입니다.”

한스 징펠만이 지겔슈타트를 똑바로 보았다.

“저는 다르타니아를 보았습니다.”

* * *

이야기는 한스 징펠만이 도제를 끌고 에핑겐이라는 역병 지대에 노출된 마을에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된다.

아직 마을은 역병에 걸리지 않았으나, 주변 마을은 모두 역병으로 사멸해 한 명의 생존자조차 남기지 못하고 전멸해 갔다.

마치 거대한 불이 이 숲을 덮치는 기분이었다.

오직 사람만을 태우는 불길로 이루어진 산불이 말이다.

망자의 목동이 한스 징펠만에게 이상한 것을 보았다는 제보를 해 왔다.

그것은 죽어서 썩어 가는 사슴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유령처럼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고 했다.

나면서부터 노르드마르크의 숲속에서 자란 한스 징펠만은 단번에 그 기묘한 것이 어릴 때부터 듣던 숲속의 괴이와 맞닿아 있다는 예감을 느꼈다.

숲에는 인간의 지식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세상이 창조될 때부터 숲을 누빈 태고의 짐승들, 수천 년에 한 번씩 모습을 드러낸다는 신의 짐승과 숲의 음지에서 사람을 꾀고 죽이는 괴물, 셀 수 없는 전쟁에서 죽어 간 자들의 망령.

불과 철의 형제단이 절대 사냥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신신당부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러한 괴이가 인간 세상을 어지럽히고 인간에게 재앙을 가져다준다면 그때는 다르다.

불과 철의 형제단의 제련 기술과 화약 기술, 총포술은 인간의 적을 죽이기 위해 개발하고 만든 것.

아무리 그것이 오래됐건, 신비롭고 강하건, 그건 총사가 걱정해야 할 문제는 아니다.

신의 회초리라고 불리는 거역할 수 없는 질병의 원인을 밝혀내고 해결할 수 있다면 한스 징펠만은 목숨도 걸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그 질병으로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를 잃었다.

황제가 기회를 주지 않았더라도 그는 이 문제에 목숨을 걸었을 것이다.

“여기서 보았다 이건가?”

함께 데리고 온 망자의 목동에게 한스 징펠만은 다그치듯 물었다.

망자의 목동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습니다. 여기서 시체들을 끌고 가던 중 괴기스러운 사슴을 보았습니다.”

흔히 강령술사라고도 불리는 망자의 목동들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죽은 자의 영을 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전한다.

그 망자의 목동은 동종업계에서 그다지 뛰어난 능력의 보유자는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그조차도 확신을 걸고 말할 정도로 그 기괴한 존재에서는 특별한 냄새가 난 모양이다.

“죽은 것의 냄새가 났습니다. 그 사슴에게서는.”

“그거 좋군.”

한스 징펠만이 총기를 점검하며 앞으로 걸어갔다.

“한 번 죽인 건 두 번 죽일 수 있다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

때는 정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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