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38. 더러운 전쟁 (5)
퍽!
우두머리가 야수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끼에에에엑!!!”
야수가 격렬히 몸부림치더니 이윽고 안에 있던 내용물을 게워 냈다.
소화되지 않은 것들이 지하에 또 다른 악취를 풍기며 너부러졌다.
“자. 다시 먹여.”
지켜보던 사내들이 수레에 있던 또 다른 시체를 야수 앞에 던졌다.
야수는 언제 고통스러웠냐는 듯 게걸스럽게 또 다른 시체로 굶주린 배를 채워 나갔다.
“…….”
우두머리는 말없이 자기의 자리로 돌아갔다.
단지 야수를 걷어차서 위장의 내용물을 게워 내게 할 뿐인 행동이다.
그러나 거기엔 그만의 비법이 있다.
그를 우두머리로 만들어 준, 따라서 그가 계속해서 우두머리 짓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비천한 영역이지만 그 비천한 영역에서만 통용되는 기술이랄까.
방금도 그렇다.
시체를 먹는 자는 평소엔 온순하지만, 인간을 공격하면 인간 따위는 한 입 거리 간식으로 만들 정도로 힘이 세고 우악스러운 놈이다.
정확한 급소를 노려야 한다.
인간으로 치면 명치 옆.
거기에 못과 비슷한 교묘한 장치를 박아 넣었다.
야수에게 극한의 고통과 더불어 안의 내용물을 게워 내게 하는.
동방 제국이 지난 전쟁에서 남기고 간 패잔병의 후예에게서 직접 배운 기술이다.
그 기술이 있기에 그 우두머리, 디에고 투르소는 가족을 부양하며 살아갈 수 있다.
물론 그 기술을 호시탐탐 노리는 놈들이 있다.
시체 수레를 지키며 시체를 던지는 놈들이다.
일견 디에고를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디에고처럼 저만의 야수를 넣어 가족을 가지고 부양할 수 있는 삶을 가지길 원한다.
그걸 위해서 그들은 저토록 비천하고 비참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디에고는 내버려 두었다.
무기력한 채 시체처럼 흐느적거리는 쓸모없는 놈보다 착각 속에 사는 놈들이 더 쓸모가 있으니까.
그는 고향에 있을 가족들을 생각했다.
예순을 앞에 둔 노모와 자신을 닮은 아들을. 딸 셋이 있지만, 남아를 선호하는 카스무어인답게 디에고는 딸에겐 아무런 애정을 쏟지 않았다.
‘까를로스에게 이번에 뭘 사 들고 갈까.’
그가 어둠 너머에서 햇살이 유난히 강한 고향 집의 풍경을 그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야수가 이상한 방향으로 격렬하게 땅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어, 왜 이래? 이놈?!”
야수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땅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뒤편에서 흙을 수레로 실어 나르는 30명의 인부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뭐 하는 거야?”
주변이 흙으로 덮이고 보강되지 않은 토굴이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위험을 느끼면서 디에고는 자신의 가장 큰 재산인 야수에게 접근했다.
발로 차서 움직임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 야수의 움직임이 평소와 다르다.
적극적이고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뭐지?’
알 것 같다.
녀석이 좋아하는 걸 발견했을 때다.
동방 제국의 사막 속에 산다는 거대한 지렁이를 발견할 때 녀석은 광분한다고 한다.
아니면 녀석이 좋아하는 신선한 시체가 있거나.
죽은 지 한 달 정도인.
그런 시체는 여기에 없다.
있었지만 이미 소모했다.
“그 괴물이 갑자기 흥분해서 땅을 파헤친다면 도망가는 게 좋아.”
디에고에게 비법을 알려 준 동방인이 말했다.
“죽을 신호니까.”
하지만 이 야수를 놓칠 순 없다.
이 야수가 없다면 디에고는 아무것도 아니다.
저 위에 포격을 얻어맞으며 삽질을 놀리는 공병만도 못한 존재다.
그는 다급히 야수를 멈추려고 야수 옆구리까지 흙과 돌의 파편을 얻어맞아 가며 접근했다.
파편에 이 하나가 부러졌다.
“퉤!”
핏물을 삼키며 디에고는 손바닥으로 눈을 보호하며 위치를 확인했다.
바로 옆이다.
그런데.
“어?”
야수가 판 땅 너머에 빈 영역이 보였다.
거기엔 한 뭉텅이의 시체가 또 다른 악취를 풍기며 너부러져 있었다.
그 옆엔 덩그러니 놓인 화약통과 타들어 가는 도화선이 있었다.
“……호라신이시여.”
그가 성호를 긋는 순간, 야수가 시체를 덮쳤고 그 직전에 굉음과 파멸의 소용돌이가 모든 걸 찢어 버렸다.
쿠웅!
그레나스 능보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지면이 움푹 튀어 올랐다 꺼졌다.
푹 꺼진 땅 너머로 하얀 연기가 수줍게 피어오르며 겨울비를 뚫고 하늘로 승천했다.
“…….”
루페르트는 성벽 위에서 그 모습을 지켜 보고 있었다.
‘하드리아멘디쿠스의 야수가 죽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
변화가 발생했다.
그 변화가 어떤 결과를 야기할 것인지는 앞으로 지켜볼 문제이리라.
하지만 루페르트가 알지 못하는 사실이 하나가 있다.
이미 그는 변화를 일으켰다.
성벽 곳곳에 설치된 흉벽의 그늘 아래 챙 넓은 모자를 쓴 금발의 여성이 그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어디서 본 느낌이 있어.”
마를로네가 그를 주시하고 있다.
의심이 아닌, 구체적인 확신으로 발전하려는 꿈틀거리는 생각을 안은 채 말이다.
* * *
제국 수도 테타우.
회차로(回車路)라 불리는 막다른 구역엔 하브루타인이라 불리는 박대받는 이민족이 사는 구역이 있다.
황제가 한번 들린 바 있는 은밀한 주점엔 거구의 사내가 테이블 앞에 앉아 묵묵히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세 번을 놀랄 것이다.
하나는 그가 황제였다는 사실에, 그것도 철혈대제였다는 사실에, 그리고 그 철혈대제의 정체가 제국을 건국한 노예제 티그리트라는 사실에.
술잔을 기울이던 티그리트는 고개를 들었다.
주점 앞을 지키던 호위가 쓰러졌다.
평범한 인간 정도는 가볍게 제압할 수 있는 사내가 마치 잠이 든 것처럼 스르르 다리가 풀려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이런 기적이 가능한 건 마법사 정도겠지만, 티그리트는 상대방이 누군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앞에 나타난 건 흑발의 소녀였다.
“폐하.”
그 소녀가 미소 지었다.
티그리트는 무표정한 얼굴로 소녀를 바라보았다.
“이 모습이 참 싫죠? 그런데 어쩌겠어요? 제 마음에 쏙 드는걸요. 좀 자랐답니다? 표가 나나요?”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그 소녀의 정체는 다름 아닌 리프니에다.
리프니에가 은은한 미소를 머금었다.
“루페르트 가우저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나요?”
“글쎄요. 세상일에 무심한지라.”
“당신의 시대가 올 거라고 생각하고 계시는 모양이죠.”
“그것이 우리의 약조 아니겠습니까?”
“루페르트 가우저는 잘하고 있어요. 당신 예상보다 더.”
“그렇습니까?”
“그레나스, 기억나나요?”
티그리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잊을 수 없는 이름이다.
루드비히 4세.
끊임없이 몰아치는 시간의 파도 속에서 사멸되어 버려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황제의 시대가 있었다.
그 황제의 치세는 그러나, 실패했다.
그 황제의 정체가 티그리트라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천 년간 쌓아 올린 업보가 제국의 천년 기 그 자체를 파괴하려는 듯 일제히 터졌다.
티그리트의 권능도, 지혜도, 경험도 그 해일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제국은 무참하게 부서졌다.
루페르트 가우저의 제국보다 더 처참하게.
그 시작점은 그레나스다.
그곳의 함락을 막지 못했다.
“당신의 강력한 영혼 동맹으로도 해결하지 못한 전쟁을 루페르트 가우저가 해결하려 하고 있답니다.”
“그렇습니까?”
티그리트는 일견 무관심한 표정으로 응답했다.
리프니에의 미소가 짙어졌다.
“루페르트 가우저가 그 일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쉽지 않을 겁니다. 하드리아멘디쿠스는 공성의 귀재입니다. 그를 상대로 도시를 지켜 내는 건 이능을 쓰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지요. 하지만 이능을 쓰는 순간, 숨어 있던 제국의 적들이 일거에 모습을 드러내겠지요. 의심이 아닌, 확신을 가지고.”
“루페르트 가우저는 별다른 이능을 쓸 생각이 없어 보이던데요? 폐하가 즐겨 쓰던 안개 가면과 참수된 왕의 머리. 아, 폐하가 남기신 그 불쌍한 사람들도 있네요. 뭐였더라? 도, 도, 도레미?”
“도펠죌트너.”
“네. 그 불쌍한 사람들 말고는 없어요. 정말요.”
리프니에가 생긋 웃으며 티그리트의 눈치를 살피더니 결심한 표정을 지으며 한마디를 던졌다.
“루페르트 가우저가 이번 사태를 해결하면 어쩌면 그가 폐하보다 더 나은 황제라는 걸 인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
티그리트의 건장한 몸이 잠깐 움찔거렸다.
필사적으로 참고 있지만, 그 푸른 눈엔 헤아릴 수 없는 반감과 분노가 스멀스멀 감정의 장막 뒤로 불온한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또 사람 속을 긁으러 온 건가. 이 악마는.’
천 년을 당했다.
소원을 대가로 천 년 동안 감정을 희롱당했다.
천 년 정도면 그 어떤 순수한 신앙도, 기대도 스러지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 리프니에가 소녀의 얼굴로 소녀처럼 웃었다.
“저에게 폐하는 폐하밖에 없어요. 폐하의 제국인걸요.”
“…….”
“하지만 말이죠. 폐하보다 유능한 사람이 그냥 잊혀지는 것도 온당한 일은 아니겠지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티그리트가 분노를 간신히 떨쳐 내며 시선을 돌렸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건 취향이 아닙니다만, 하드리아멘디쿠스는 위대한 장군입니다.”
“알아요.”
리프니에의 눈동자에 초록색 불길이 일렁거렸다.
“공성전? 거기서 당대 최고의 기량을 가진 사람이었죠?”
눈에서 피어오른 불길은 이내 리프니에의 몸 전체로 번져 나가더니 글자 그대로 그녀를 종이처럼 덧없이 태워 버렸다.
재처럼 흩날리는 잔불의 휘날림 속에서 리프니에의 마지막 목소리가 티그리트의 머릿속에 똑바로 들려왔다.
[ 당신이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지 정도는 다 알고 있어요. 저, 신이랍니다. 폐하. 단지 못 본 척하는 거예요. 아시겠죠? ]
“…….”
그 울림이 사라진 후 티그리트는 잠자코 무표정을 유지하다 이내 비릿한 냉소를 머금었다.
“……죽어 가는 주제에.”
* * *
폭음이 울리며 지축 한가운데가 움푹 들렸다 가라앉았다.
거대한 폭발이었다.
한쪽에서는 환호성이 한쪽에서는 한숨이 터져 나왔다.
아군과 적이 있는 전쟁터의 특수한 상대성이다.
다만 그 전쟁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양측 사령관의 태도는 미온적이었다.
“겨우 하나 막은 건가.”
그레나스의 사령관 얀한데는 움푹 팬 땅 너머 순식간에 정돈되어 가는 참호의 연장선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책에서 본 광경이 그대로 재현될 줄이야.”
공성군을 이끄는 팔만 군대의 수장, 하드리아멘디쿠스는 살짝 놀란 반응을 보인 게 전부였다.
“그래도 그 괴물은 충분히 자신의 역할을 잘해 주었다.”
하드리아멘디쿠스의 군사 경력은 짧지 않다.
이미 십 대 초반부터 전쟁에 뜻을 품고 종군하여 다채로운 경험을 쌓았다.
장군의 가장 큰 자산은 지식이다.
그는 수학과 기하에 능했고, 공학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그는 군인이라기보다는 학자에 가까운 사람이었고 실제로 용모에서 풍기는 분위기도 그러했다.
장군은 군막 안에 펼쳐 놓은 드넓은 지도를 응시했다.
그 지도 안엔 그레나스와 그 주변의 지형이 과할 정도로 상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장군이 꺼내든 건 각도기와 컴퍼스였다.
그는 세심하게 컴퍼스로 거리를 재고 성벽과 참호 사이의 각을 재면서 주위에 도열한 간부들을 힐끗 쳐다보았다.
“댐을 만들 생각이야.”
“댐 말입니까?”
장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도시는 3면에 물줄기가 지나가고 있다. 이러한 도시는 물의 소중함을 잘 모르는 경향이 있더군. 그런 사람들에게 물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 줘야지.”
한 무리의 병사들이 나무를 베고 돌멩이와 진흙으로 강줄기를 막기 시작했다.
공성전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