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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제-164화 (164/225)

164화 38. 더러운 전쟁 (4)

시체를 다루는 병사들의 손길은 거칠고 난폭했다.

누군가의 아버지거나 어머니였던 것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진창 속에 처박혔다.

그것도 모자라 병사들은 생선을 썩힌 물을 시체에 끼얹었다.

“낙센 대장 말로는 이렇게 해야 그 괴물이 환장한다고 하더라고.”

마를로네는 냉담한 눈으로 땅굴을 오가며 시체를 옮기고 모독하는 병사들을 노려보았다.

베르크 란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따라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도시에서 사람을 추적하고 죽이는 것도 평범한 사람이 할 일이 아니지만, 그것조차 전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한두 명의 폭력이 아니다.

수천, 수만 명의 폭력이 휘몰아치는 폭풍처럼 평범한 사람의 자아를 잠식하고 무너뜨린다.

그 안에서 개인의 의지는 아무것도 아니다.

“……장군이나 군주 곁에서 보는 전장과 밑바닥에서 보는 전장은 전혀 풍경이 다르다. 마리.”

마를로네의 시선은 참호 밖에 상반신을 떡하니 내밀고 있는 거인병을 향했다.

“마음에 안 들어.”

“마음에 안 들면 어떡할 거냐. 저자는 네가 이길 수가 없다.”

“알고 있어. 알고는 있지만.”

그녀는 도랑 아래 쪼그리고 앉은 채 울고 있는 소년을 응시했다.

“왜 저렇게까지 해야 해?”

“이기기 위해서.”

베르크 란이 답했다.

“이기기 위해서는 뭐든 해야 하는 거야?”

“지면 모든 걸 잃는다.”

베르크 란이 그녀를 노려보았다.

“정확히는, 적의 자비에 모든 걸 맡겨야 하는 거겠지.”

“……그런 건.”

“승자는 도시의 지배권만을 취할 수도 있고 약탈을 명할 수도 있다. 약탈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지. 시민의 재산에만 손을 대는 것과 시민에게도 손을 대는 것. 어떤 군주는 파괴와 학살을 명하기도 한다.”

“…….”

“그 모든 게 승자의 뜻에 달렸다. 그런 선택지를 받아들여야 하는 게 패자의 운명이다. 심지어 승자가 뜻대로 할 수 없는 경우도 발생한다. 내가 젊을 때 장군은 도시에 관대한 처분을 내렸지만, 병사들이 광분하여 사람들을 죽이고 약탈하고 집에 불을 질렀지. 누구도 죄책감을 가지지 않았다. 저들은 동료를 죽이고 우리를 힘들게 했고 거기에 패배자였으니.”

“……이번이 마지막이지?”

마를로네가 슬픈 눈으로 조부를 올려다보았다.

“나, 이제 부르봉으로 돌아가고 싶어. 빨간 명찰도 뗐잖아. 돈도 충분히 모였고. 그냥 같이 살면 안 돼?”

베르크 란은 고개를 숙이며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지막으로 그 사람에게 말해 보마.”

“안 되면?”

“…….”

“그 사람이 그 말을 들어줄까? 선, 아니 다른 인간들 눈치를 보느라 결혼도 포기한 사람한테? 그런 사람이 우리를 신경이나 써 줄까?”

“……그분은 좋은 사람이다. 어쩌면 수락할지도 모르지.”

“그거랑 전쟁이랑 뭐가 달라?”

마를로네가 똑바로 조부에게 고개를 쳐들었다.

주위를 돌아다니던 병사들이 그 모습을 보며 지나쳤지만 마를로네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녀도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느끼고 있었다.

슬슬 한계에 왔다는 걸.

그들의 삶의 방식이 근본부터 잘못됐다는 걸.

나이를 먹을수록 몸이 커 갈수록 반감은 줄어들기는커녕 나이와 훌쩍 자란 몸에 비례하여 커졌다.

“우리 스스로 아무리 뭔가를 해 봐야 결국 그 사람의 선의에 기대야 하잖아?”

그녀의 물음에 베르크 란은 침묵했다.

그녀의 말에 반박하는 건 방금 자신의 한 말을 뒤집는 것과 같으니.

결국 베르크 란이 택한 건 비겁한 어른의 방식이었다.

“내 방식이 싫으면 나를 떠나라.”

“……뭐?”

“네가 뭐라고 하든, 나는 내 길을 걷겠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너도 이제 어른이다. 이미 시집을 가고도 남을 나이다. 정 갈 곳이 없으면 네 모친을 찾아가거라.”

마를로네의 입가에 싸늘한 냉소가 걸렸다.

“첩살이하는 그 여자가 날 만나나 줄까? 아, 동생들은 있겠네. 걔들 뭐라고 불러? 이복동생은 아니고, 응? 난 못 배워서 무식하니까.”

“…….”

마를로네가 검을 챙겼다.

“뭐 하는 거냐?”

“내가 직접 죽이려고.”

“누구를?”

“그 괴물.”

“그 괴물?”

“괴물 때문에 이 사달이 난 거 아니야?”

“네가 죽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제국 성인도 죽인 내가 못 죽일 게 뭐가 있겠어?”

그녀는 베르크 란을 지나쳐 땅굴로 향했다.

땅굴의 입구엔 이 모든 일을 계획한 비정한 거인이 시체를 나르는 병사들을 냉담한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가 낙센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던 순간이었다.

한 사내가 그녀의 앞을 막았다.

“당신은?”

류크라고 불리는 사내다.

황제의 심복.

베르크 란 조손의 보호 대상이다.

‘이 사람.’

볼 때마다 위화감이 느껴지는 얼굴이다.

분명 평범한 사람 같은데 그 평범함이 너무 흐리멍덩할 정도로 모호해 뭐라고 특정 지을 수가 없다.

마치 신기루를 보는 느낌이다.

살인자의 얼룩은 다행스럽게도 희미했다.

시커멓게 물들어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 낙센과는 전혀 다른 사람인 건 분명하다.

그 사람이 말했다.

“내가 낙센 대장한테 말해서 저 소년 모친을 저기서 빼내도록 하겠다.”

“네?”

“치졸한 방식인 건 알아. 하지만 당신이 그토록 화를 내는 건 저 소년 때문이잖아?”

“…….”

아주 잠깐 마를로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 사내의 말대로다.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걸 인정해 버리면 자신이 또 다른 속물이라는 걸 인정해 버리는 것밖에 안 되기 때문에.

대신 그녀는 항의 어린 시선을 이 흐릿한, 안개 같은 얼굴을 가진 사내에게 던졌다.

그 사내가 빙그레 웃었다.

“급한 불이라도 꺼야지. 모든 걸 순리대로 할 수 없어. 그걸 모를 정도로 아가씨는 어린가?”

“…….”

마를로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표정은 처음보다 확연히 누그러졌다.

적어도 당장이라도 낙센을 베어 버릴 것 같던 살기가 가라앉은 건 확실했다.

“비겁한 걸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아니, 사람이라면 부끄러워하는 게 당연한 것이지. 그러나 그 부끄러운 게 무서워서 자기도 뻔히 아는 파멸로 걸어가는 게 장기적으로 보면 더 부끄러워해야 할 짓이 아닐까?”

“의외로 재밌는 분이시네요.”

마를로네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힘없이 웃었다.

“마차 안에서는 말씀이 거의 없으셔서 이런 분인 줄 몰랐어요.”

그녀가 다소곳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비겁해질게요.”

그녀는 소년에게 돌아갔고 울고 있는 소년 옆에 아무렇게나 앉아 소년에게 귓속말을 해 주었다.

소년이 고개를 들어 마를로네와 함께 루페르트를 보았다.

약간의 부담이 루페르트의 어깨에 느껴졌다.

루페르트는 그들을 보며 아마, 보일 리는 없겠지만 진심으로 우러나온 쓴웃음을 머금어 보였다.

아주 잠깐 마를로네가 고개를 갸우뚱하는 게 보였다.

‘뭐지? 설마 날 본 건가. 아니, 그럴 리는 없겠지. 시종조차 못 알아보는 게 안개 가면의 힘인데.’

루페르트는 그대로 낙센에게 향했고 그에게 용건을 말했다.

“어처구니없는 부탁을 하시는군요.”

루페르트가 금화 몇 닢을 내밀었다.

“하지만 말은 통하시는 분 같으니, 뭐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낙센이 부하에게 명했다.

“목매달아 죽은 흔적 있는 젊은 여자 시체가 있을 거다. 그건 도로 묘지에 묻어 놔.”

그러자 부하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낙센에게 모여들었다.

“대장. 갑자기 왜 그런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을?”

“설마 저 소년과 계집의 말을 듣고 그러시는 겁니까?”

“듣자 하니 자살한 여자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니 그 영혼은 이미 지옥에 있을 텐데 시체를 어떻게 처리하든 그게 무슨 상관이 있단 말입니까?”

이에 낙센은 루페르트에게 받은 금화를 전부 부하들에게 뿌렸다.

“너희들을 위해서다.”

루페르트는 낙센이 부하들에게 금화를 뿌리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낙센이라는 사내.

칭찬할 구석은 있다.

자신 몫으로 단 한 닢의 금화를 챙기지 않은 걸 보면 말이다.

* * *

흔히 괴수, 괴물이라 불리는 무시무시한 야수들은 일찍부터 전쟁의 도구로 쓰였다.

그 자체로 극도로 위험하고 아군에게 역으로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지만, 그 야수를 제대로 다룰 수만 있다면 그 괴수는 사용하는 측에게 엄청난 이점을 가져다준다.

시체를 먹는 자, 동방제국의 언어로 알 운두르라고 불리는 괴수도 그러한 전쟁 야수 중 하나로 동방제국이 가장 어려움을 겪던 공성전이라는 난제를 해결해 준 승리의 열쇠였다.

동방제국의 엄연한 적성국인 카스무어 왕국이 어떻게 그 괴수를 손에 넣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혹자는 왕국이 동방제국이 지배하는 약소 부족에게 큰돈을 건네고 사 왔다 하고, 혹자는 카스무어 왕국이 은밀히 동방 제국과 손을 잡았고 그 은밀한 우호의 선물로 받은 것이라고도 말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건 그 끔찍한 짐승이 카스무어 왕국의 진중에 있는 건 확실하다.

“방향이 틀어졌다. 좀 더 왼쪽으로.”

야수를 다루는 자들은 야수 조련사라고 불리는데, 그 특성상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모임인 경우가 많다.

홀로 야수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 시체를 먹는 자도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야수고 아울러 이들이 하는 일은 고도의 정밀함과 방향성을 요구한다.

특히 그 우두머리는 공성전이라는 특화된 전쟁에 대한 지식과 감이 있어야 한다.

“어이. 마법사. 방향을 확인해 봐.”

우두머리는 다른 비천한 사람과 다르게 투구를 쓰고 있었다.

그가 마법사라 명한 두건을 두른 사내가 지팡이를 들어 마법의 주문을 외치고 지팡이의 끝에서 일직선의 빛을 끝없는 어둠 너머로 쏘았다.

빛 그 자체인 광선일 뿐이다.

빛으로 사람을 태우거나 상처를 입히는 권능은 그에게 없다.

제국의 마법 대학에서 그는 도형은커녕 선조차 될 수 없는 하찮은 존재니까.

하지만 그의 빛은 이러한 특징적인 상황에서는 아주 요긴한 효과를 가져다준다.

“방향이 틀어졌어!”

저 너머에서 어떤 사내의 고함이 들렸다.

“좀 더 서쪽으로! 서쪽으로!”

우두머리가 고개를 끄덕이곤 야수 쪽에 모여 있는 사내들을 돌아보았다.

“들었지? 왼쪽으로 유도해. 왼쪽이 저쪽이 말하는 서쪽이다.”

동굴 저편에서 한기가 퍼져 나왔다.

겨울의 추위라고는 믿기기 어려울 정도의 환기.

동굴 너머엔 또 다른 마법사가 있다.

대학 기준으로 삼각급 정도가 되는 고위 마법사가.

그 늙은 여자는 야수가 파헤친 굴을 마법의 힘으로 일시적으로 얼려 버려 토굴의 붕괴를 막는다.

얼어붙은 땅들이 버텨 주는 동안 뒤편에선 수백 명의 공병들이 부지런히 지지대로 동굴을 받치고 삽으로 천정을 파헤쳐 야수의 토굴을 인간의 힘으로 만들기 어려운 참호로 바꿔 가고 있었다.

“야수가 더 이상 시체를 먹지 않습니다! 배가 부른 모양입니다!”

선두에 있던 음산한 사내가 소리쳤다.

우두머리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 못 하는 야수 옆으로 걸어갔다.

끔찍한 악취와 더불어 어둠 속에서 확연히 보이는 추악한 용모가 보인다.

누가 이런 괴물과 함께 일하고 싶겠는가.

하지만 이 괴물은 그 사내의 밥줄이다.

이런 괴물이라도 있기에 그는 가족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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