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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제-99화 (99/225)

99화 25. 믿음 (7)

완고한 연대장 출신의 군인은 미세한 경악이 깃든 눈으로 자신의 부관을 노려보았다.

“설마? 그대가 말한 사람이라는 게 모집병인가?”

미소를 유지한 채 만슈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외부에서 올 겁니다. 도시의 인간들은 제국의 적보다는 자신의 아내나 아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걸 선호하는 작자들이니까요. 대저 보병은 농촌에서 답을 찾지 못한 시골뜨기가 지원하고, 기병은 상속받을 재산이 없는 하급 귀족이 지원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만슈타인이 고개를 돌리더니 망원경을 들어 가도 저편을 주시했다.

망원경의 둥근 시야 안에 촌뜨기 네다섯 명이 봇짐을 들고 삼삼오오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지금도 모집병이 오고 있군요. 이 모집병은 렌타이어마르크 안에서 연대 장교를 만나 계약서에 서명하고, 장비를 받고, 훈련을 받아 한 명의 병사로 탄생할 겁니다.”

“그야 그렇겠지. 신병은 한 번이라도 모아서 훈련할 필요가 있으니.”

누구보다 보병대의 운영에 대해 잘 아는 게 분더발트다.

신병은 말 그대로 한 마리 짐승이다.

어디로 튈지도 모르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골칫덩이다.

그들에게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것이 제자리에서 죽는 법이다.

죽음을 강요하기 위해서는 기율을 필요로 한다.

기율은 다그침만으로 되지 않는다.

하나의 덩어리진 큰 집단 속에서만 효율적으로 주입할 수 있다.

어깨를 맞댄 동료, 코앞을 스치고 지나갈 듯이 지나가는 성마른 하사관, 매의 눈으로 주시하며 처벌할 거리를 찾는 장교 따위가 필요하다는 소리다.

‘그런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분더발트가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눈으로 부관을 노려보았다.

만슈타인이 웃으며 말했다.

“저는 그들을 우리의 진중에서 훈련시키려 합니다.”

“!!!!”

그 말을 듣는 순간 분더발트는 좀처럼 느껴 보지 강렬한 전율을 느꼈다.

입이 떡 벌어지고 소름이 돋으며 식은땀이 솟았다.

머리 위에 포탄이 스치고 지나가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던 천상 전장의 남자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극히 드물다.

‘이런 수를 생각해 냈다고? 이 일천한 경력의 카렐리아 촌놈이?’

드디어 분더발트도 만슈타인의 생각을 이해했다.

그의 계획은 터무니없었다.

적진에서 적진에 모여드는 병사를 가로채 이쪽으로 끌어들인다.

‘설마 지금까지 한 무모한 행군은 이를 위한 포석이었나?!’

“……사람이 오가는 주요한 길목을 우리가 막아섰습니다. 렌타이어마르크 다른 지방에서 올라오는 모집병과 서쪽 드라쿨레아 공국을 비롯한 외국 출신 모집병 대부분을 우리가 장악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할 일은 아마 그들의 고향에서 활동하고 있을 렌타이어마르크 모병관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겁니다. 제가 볼 때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으로 보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한 전장에 황제와 반역자 두 군주가 있습니다. 폐하가 병사라면 누구를 따르겠습니까?”

루페르트가 미소로 화답했다.

“당연히 황제 아니겠나?”

‘역시.’

루페르트는 흡족함을 감추지 않았다.

‘여신님의 통찰력은 완벽하군. 이 친구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의 거물이다.’

아직 배워야 할 게 많겠지만, 그가 배우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기계적인 행정과 관습에 불과하다.

만슈타인에겐 번득이는 천재성이 있다.

범인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그런 인재가 뒤셀하펜에서, 리히트보덴에서 그리고 테타우를 거쳐 여기까지 와서 그 반짝이는 원석의 진가를 드러낸 것이다.

‘이 친구가 이대로 잘 성장해서 나의 군대를 대신해서 이끌어 줄 대리 장군이 되어 준다면.’

루페르트의 눈앞에 불타는 테타우의 풍경이 펼쳐졌다.

늘 보는 광경이지만 이제 그의 시선은 그 너머, 테타우를 포위한 융커스 베샤문트의 군대를 바라본다.

성벽 너머에서 또 하나의 군세가 횃불을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아마 그 구원의 군대를 이끄는 건 저 사내, 만슈타인일지도 모른다.

“저기.”

루페르트의 감상은 분더발트의 목소리에 의해 깨어졌다.

분더발트가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으며 만슈타인에게 물었다.

“자금은 어떻게 하지?”

“자금 말입니까?”

“병사들을 새로 모집하고, 고용하고, 장비를 마련하려면 많은 자금이 필요하지 않겠나?”

단순하지만 핵심을 찌르는 지적이다.

돈은 거의 모든 걸 결정한다.

특히 돈은 전쟁에 있어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것.

장비를 마련하고, 병사를 병사답게 만드는 군대의 연료다.

급료를 받지 못한 군대는 폭도로 돌변한다.

현재 루페르트는 그다지 많은 금전을 지참하지 않았다.

워낙 소규모이기도 할뿐더러 딱 그 소규모 군대를 유지할 정도의 금전만을 가지고 왔을 뿐이다.

테타우나 더 가까운 카렐리아에 지원 요청을 할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걸릴 것이다.

적지에서 보급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또 다른 군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소리와 다를 바 없으니.

“병사 계약금은 선금조로 지급되는 것 정도는 알고 있겠지?”

이미 격의 차이를 느꼈지만, 그걸 받아들이기 싫은 강렬한 마음을 안고 분더발트가 그답지 않게 조롱하는 투의 말투로 물었다.

‘이건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만슈타인.’

그러나 만슈타인은 다르다.

그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미 마련하고 있었다.

“세금을 거두죠.”

“세금? 누구에게?!”

만슈타인이 명랑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렌타이어마르크의 모든 촌락과 도시에 말입니다.”

“그게 가능할 거라 믿나?”

마지막 자존심을 부여잡고 분더발트가 물었다.

만슈타인은 전보다 더 간단하게 대답했다.

“우리가 기병이 더 많지 않습니까?”

* * *

헤켄바하는 바이엔으로부터 10km 떨어진 작은 촌락이다.

부유하진 않지만, 늪지대도 적고 역병도 돌지 않아 바이엔에 공급하는 곡식과 채소의 상당량을 공급하는 곳이다.

이 평화로운 도시에 한 무리의 기병이 도착했다.

챙 넓은 모자에 새의 하얀 꽁지깃을 탄 멋들어진 기병대의 우두머리가 촌장과 장로를 불러 모아 놓고 두루마리를 펼친 채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다시피 렌타이어마르크 선제후는 황제에게 반기를 든 제국의 반역자이며, 너희들은 선제후의 부역자다. 그 죄를 면하기 어려우나 황제가 특별히 너희들에게 사면받을 기회를 주셨다. 황제 폐하의 군대를 위한 특별세를 부과하겠다. 촌장과 장로는 책임지고 이하의 금원을 제국을 위해 납부하도록.”

사람들이 술렁거렸지만, 누구도 느닷없이 들이닥친 기병대에 저항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거기다가 기병대장이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황제의 명에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는 황제의 군대 권한을 행사하겠다. 다시 말해 강제력을 동반한 공출을 하겠다는 소리다.”

바꿔 말하면 약탈을 하겠다는 소리다.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촌락에 불을 지르고, 밭을 칼로 갈아엎고, 사람을 죽이고, 아이를 내던지고, 부녀자를 겁간하고, 찬장에 남은 동전 하나까지 싹싹 긁어 가겠다는 소리다.

압도적인 폭력을 동반한 위협 앞에 촌장과 장로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화, 황제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오후까지 준비해라.”

협박은 헤켄바하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성벽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지킬 병사가 없는 인근 취락 대부분이 비슷한 꼴을 겪었다.

거기서 마련한 돈은 바이엔에 모여드는 촌뜨기들의 손에 들어갔다.

“제국의 병사가 되겠는가? 반역자의 병사가 되겠는가? 승리자가 되어 고향에 금의환향하겠는가? 시체가 되어 아무도 모르는 벌판에서 썩겠는가?”

분더발트의 모병 장교가 신교 목사보다 더 쩌렁쩌렁한 어조로 얼치기 촌놈들을 속박했다.

멋모르고 바이엔에 오던 신병들은 고스란히 황제의 군대에 흡수됐다.

군대의 규모가 가파르게 오르자 만슈타인의 협박은 더욱 대담해졌다.

다수의 병사를 동반한 협박 무리가 이제는 성벽에 보호받는 도시 아래까지 와서 세금을 요구했고, 그 규모를 보고 지레 겁먹은 군주나 도시의 의장이 성문을 열고 황제에 대한 특별세를 냈다.

분더발트는 굵은 얼굴로 이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며 루페르트에게 말했다.

“이 방법은 대단히 효율적이나, 대단히 사악하군요.”

적지에서 뜯은 돈으로 적지에서 병력을 모집하고, 그 병력으로 더 큰 협박으로 돈을 뜯어낸다.

분더발트는 속으로 생각했다.

‘말이 특별세지, 폭력을 동반하지 않는 약탈 아닌가? 그것도 같은 제국인에 대해서?!’

만슈타인의 세금은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

제국의 군인이라면 모두 알고 있다.

외국에서 벌어지는 전쟁에서 제국군이 외국의 도시와 촌락에 어떤 요구를 하는지.

겨우 아사를 면할 수준까지 착취해 전쟁 비용과 물자를 충당한다.

말을 듣지 않으면 밭을 갈아엎고 가축을 죽이고 가옥에 불을 지른다.

선제적 약탈은 제국군의 오랜 관습이다.

그런데 만슈타인은 오래전부터 행해 오던 관습을 외국이 아닌 제국의 영토에 시전하려 한다.

아무리 반란자의 영역이라고 하나, 그들 또한 제국인이다.

제국 헌법과 황제의 보호를 받아야 할 존재들이다.

만슈타인은 그런 허울뿐인 방패를 너무나도 간단히 무시했고, 어떠한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다.

“장군님. 보십시오. 이번에는 드라쿨레아에서 온 기병들이 황제 폐하의 군대에 합류했습니다.”

어느 시점부터 분더발트는 만슈타인의 행동에 어떠한 제동도 걸지 않고 그저 지켜보기만을 했다.

만슈타인은 밝고 활기차며 평균 이하의 외모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잡아끄는 신비한 매력이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관습과 도덕을 비웃는 이단아의 위험성도 품고 있다.

“장군님. 만슈타인의 군대가 수녀원에 불을 지르고 수녀들을 겁박해 거액의 돈을 갈취했다고 합니다.”

“에팅겐에서는 재판도 없이 반란죄 명목으로 몇 명의 목을 매달았다고 하더군요.”

“상단으로 추정받는 한 무리의 시체가 길바닥에서 널브러진 채 발견됐습니다. 어지러운 말발굽은 만슈타인의 진영으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분더발트의 심복들이 앞다투어 만슈타인의 새로운 군대가 일으키는 비행을 보고했다.

그는 선을 넘어서고 있었다.

하지만 분더발트는 이를 황제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그 앞엔 테타우를 출발할 때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군대가 모여 있었다.

2만 명의 보병, 3천 명의 기병.

그것은 순전히 만슈타인이 만들어 낸 기적이다.

승리가 눈앞에 보인다.

어떤 장군이 이를 마다할 수 있단 말인가.

“제국인은 장창을 아래에서 위로 찍듯이 비스듬히 내리친다. 위에서 아래로 올려 치는 건 산악 민족의 저급한 방식이다!”

바이엔의 성벽 앞에서 새로 모집한 병사들이 다름 아닌 분더발트의 장교와 하사관의 지도를 받으며 훈련하고 있다.

강에서는 테타우에서 보내온 물자가, 육로에선 카렐리아에서 보낸 무기와 장비가 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어느새 군대 뒤엔 종군 상인들이 따라붙었다.

종군 상인단에 속한 대장장이들이 경쾌한 망치 소리를 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제국군에 공급할 무구를 만들고 있다.

봄이 끝나기 전에 황제의 군대는 바이엔을 완전 포위했다.

성벽 위에서 조촐한 황제의 군대를 비웃던 렌타이어마르크의 반역자들은 그들의 운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체감했다.

비난의 화살은 이 모든 일을 일으킨 원흉, 프리드리히 마티아스로 향했다.

* * *

명분 없는 전쟁이란 입 안에 독을 넣은 채 내달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형태로든 피해가 오는 법이다.

특히 전쟁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원하는 국면과 거리가 멀어질 때 입 안에 넣은 독의 독성은 더 치명적으로 변한다.

“선제후의 미친 짓이 우리 렌타이어마르크를 멸망으로 이끄는군.”

“황제가 한 번 용서했는데도 선제후는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왜 일족 군주와 가문의 원로들은 가만히 있는 거지? 자격 없는 선제후를 그렇게까지 모셔야 할 이유가 있는가?”

바이엔 의회에서는 이미 선제후를 인정하지 않는 의견이 지배적인 위치를 점했다.

“우리 장군은 뭐 하는 거지? 저들이 모집병을 가로챌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잖아?”

“이제 와서 도시민들을 무장시키겠다는데. 글쎄…….”

“황제 폐하 군대의 급료가 우리보다 높다더군.”

병사들의 사기 또한 급격하게 악화됐다.

저자에선 선제후를 둘러싼 음울한 소문이 퍼져 나갔다.

“들었나? 일전에 선제후가 말 안 듣는 군주와 봉신들을 불러 모은 적이 있잖아. 그 높으신 분들 상태가 하나같이 이상하다고 하던데.”

“제국 성인이라는 자가 선제후의 궁정에 있다던데. 아 글쎄 그 사람 나병에 걸렸다고 하더라고.”

“악마와 손을 잡은 건 아닐까?”

렌타이어마르크에 독이 풀렸다.

그 독은 걷잡을 수 없이 상층부에서 시민 사회로 시민 사회에서 하층민의 영역까지 빠르게 퍼져 나갔다.

제국력 991년 늦은 봄, 황제가 도시에 최후통첩을 보냈다.

선제후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날 밤. 야음을 틈타 백기를 든 시민이 성벽을 내려왔다.

“우리는 반역자인 선제후를 위해 죽을 생각이 없습니다. 언질만 주시면 정해진 때에 저의 동료들이 스스로 성문을 열 것입니다.”

투항자들은 프리드리히 마티아스의 파멸을 보여 주는 살아 있는 증거였다.

루페르트는 흡족한 얼굴로 그의 진정한 장군을 보았다.

만슈타인 또한 황제를 마주 보았다.

또 한 번, 신뢰는 보답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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