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대제-54화 (54/225)

54화 14. 선거 (5)

그 저택의 지붕은 붉은색이었다.

지붕 위로는 높게 솟은 담장과 그 담장과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탑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수십 년간 철혈대제의 황후로 황궁 안을 지키던 안젤리나의 마지막 장소가 황궁 옆 저택이라는 건 어떻게 보면 순리에 맞는 선택처럼 보였다.

그 저택 주변엔 많은 병사가 지키고 있었지만, 메헨부르그나 슈발츠마인 저택처럼 창살을 박은 높은 담장은 없었다.

단지 장미 덤불로 만든 생울타리가 시간의 고즈넉함을 간직한 저택을 아담하게 둘러싸고 있을 뿐이었다.

갖가지 색깔의 장미들은 아직 채 꽃피지 않은 채 저마다의 꽃봉오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만개하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다.

제국의 장미는 여름부터 서서히 피며 가을에 절정을 맞이하니까.

이 저택은 정해진 이름은 없었다.

위치부터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대로의 끄트머리에다 그 옆엔 황궁이 자리 잡고 있었으니까.

이 저택을 아는 소수의 사람들은 이 저택의 위치와 담장을 보고 ‘장미 저택’이라고 불렀다.

장미 저택의 주인은 모든 손님의 방문을 거부했다.

예외는 없었다.

모든 선제후 중에서 가장 배분이 높은 아카이아 대주교 본인이 직접 찾아왔음에도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 저택 앞에 또 한 명의 권력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대단히 송구하오나 선제후님이라고 할지라도 이 저택에 발을 들이는 건 불가합니다.”

안젤리네의 시종이 정중하게 루페르트를 막아섰다.

그 뒤로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메헨부르그 때부터 인연이 있던 수렵대장 안투안 쿠르스트다.

물론 전과는 태도가 같을 수가 없다.

안투안 쿠르스트는 루페르트를 보자마자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제가 따로 선제후님에게 설명을 드려도 될까요?”

루페르트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저택 건너편에 자리 잡은 아담한 호수로 안내했다.

호수 주변엔 아무도 없었고, 그 너머로 호라교단 대성당이 우뚝 솟아 있었다.

성당의 모습을 고스란히 머금은 잔잔한 호수의 물결을 보며 안투안 쿠르스트가 깃털이 달린 챙 넓은 모자를 고쳐 썼다.

“알고 계시겠지만 지금 대황후께서는 대단히 위독한 상황입니다. 하루하루 넘기는 것 자체가 그분에겐 기적이지요.”

“그렇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안투안 쿠르스트의 얼굴인 은은한 슬픔과 상실감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한 시대의 막이 이렇게 초라하게 저물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

대황후의 전성기를 본 적은 없다.

초상화와 조각상을 통해 젊은 날의 아름다움을 어렴풋이 본 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녀가 가진 진정한 힘은 단순히 육체를 감싼 껍질에만 있지 않다는 걸 루페르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분도 죽는구나.’

그다지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고, 오랜 시간을 보낸 적도 없다.

하지만 그녀가 그에게 베풀었던 것들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어떤 의미로 제2의 부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존재였다.

‘부모님이라…….’

흐릿한 기억을 제외하면 육친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이부자리의 따뜻함, 떠들썩한 식탁, 손을 잡고 예배당에 가던 것들이 아련하게 뇌리에 떠돌 뿐이다.

그 이후는 방황의 연속이었다.

목동을 하기도 했고, 플루트 주자로 혹은 각 지역에서 벌어지는 축구 경기에서 선수로 활동하기도 했었다.

참으로 하릴없고 보잘것없는 나날이었다.

황궁에서 사람들이 오지 않았다면 죽을 때까지 그렇게 하루를 허비하며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부모님의 초상화. 챙겼었던가.’

적어도 집무실에 없는 건 확실하다.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나중에 확인하자. 그나저나.’

루페르트는 먼 곳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검은 로브를 걸친 노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정말 자신이 있는 걸까. 방법이 있는 걸까. 이분이라면 비장의 한 수가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대황후도 죽음을 앞둔 몸이다. 판단이 흐려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지.’

루돌프가 손짓했다.

“루페르트 가우저.”

그가 루페르트의 이름을 부르는 건 드문 일이다.

그의 시선이 똑바로 루페르트의 눈을 직시하는 것 또한 드문 일이다.

루돌프의 눈은 희미한 자줏빛을 띤 푸른 눈으로 무한한 지혜와 경륜(經綸), 그리고 의미를 알 수 없는 공허함이 서려 있었다.

“날 저택 앞으로 데리고 가 주게.”

“복안이 있습니까?”

“복안이랄 것도 없지. 일단 데리고 가 주게. 그대는 선제후니, 아무것도 없는 나 같은 자보다는 저 앞에 서기 수월해지겠지.”

“알겠습니다.”

루돌프를 데리고 저택 앞으로 갔다.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 시종이 다시금 저택 밖으로 나왔다.

선제후 앞이라 자제하고 있지만, 그의 얼굴엔 분명한 항의가 서려 있었다.

“슈발츠마인의 선제후님. 거듭 말씀드리지만, 현재 안젤리나 대황후께서는…….”

“제가 아닙니다.”

루페르트는 고개를 돌려 루돌프 쪽을 응시했다.

‘시종이라면 어쩌면 이분을 알고 있을지도.’

시종이 루돌프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루페르트는 조용히 시종의 표정을 살폈다.

분명 변할 것이다.

어쩌면 소스라치게 놀라는 걸 걱정해야 할지도 모를 것이다.

그런데.

“실례지만 어디의 누구신지요?”

시종은 루돌프를 알아보지 못했다.

꾸며 낸 움직임이 아니다.

실제로 전혀 모르는, 타인을 본 표정이다.

‘시종이 중간에 바뀐 것인가. 하긴 클라우데 2세가 돌아가신 이후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으니.’

그런데 덜컥 걱정이 든다.

‘시종이 알아보지 못한다면 이분이 대황후를 만날 기회도 없을 텐데? 이거 설마.’

갖가지 걱정과 의혹이 소용돌이치는 와중 루돌프가 저 호수의 표면처럼 잔잔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안드리아의 루돌프가 왔다고 전해 주시게.”

“안드리아의 루돌프 님 말씀입니까?”

시종은 여전히 모르는 눈치.

루돌프은 은은한 미소를 머금으며 상대방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시종은 그 태도에 의아함을 느꼈지만, 곧 알 수 없는 위압감을 느끼며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루페르트가 루돌프를 돌아보며 물었다.

“이걸로 충분할까요?”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루돌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하고도 남지.”

그의 목소리엔 확신이 묻어 있었다.

잠시 후, 저택의 문이 열렸다.

“들어오시지요.”

루돌프가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마치 자신이 이 자리의 상전인 것처럼.

루페르트는 반발하지 않았다.

단지 조용히 속으로 확신을 굳힐 뿐이다.

‘역시 이 사람은.’

철혈대제 루돌프 클라우데.

죽었다고 알려진 선제가 돌아왔다.

그가 있어야 할 자리에.

* * *

어두운 방 안은 죽은 듯한 적막에 잠겨 있었다.

은은한 장미 향이 방 안을 감싸고 있었지만, 만연한 죽음의 냄새까지는 가려 주지 못했다.

활짝 열린 창문, 높은 침대 하나가 창 너머의 호반에 떠오른 것처럼 솟아 있었다.

그 침대 위엔 죽어 가는 여인이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방 안엔 아무도 없었다.

자초한 초라함이라고 하지만 그 누구도 저 일세를 풍미했던 여인이 이런 식으로 쓸쓸하게 최후를 맞이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으리라.

두 눈을 감은 채 실낱같은 숨을 이어 나가는 여인을 향해, 한 사내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안젤리나.”

짧고 묵직한 한마디.

그러나 그 안엔 그 어떤 수사보다 더 깊고 풍부한 울림이 담겨 있었다.

안젤리나가 힘겹게 눈을 뜨고 루돌프를 간신히 올려다보았다.

앙상한 손이 경련하며 그 얼굴을 쓰다듬었다.

안젤리나는 그러나 목소리를 내진 못했다.

죽음의 기운은 이미 그녀의 목청마저 앗아 간 것이다.

하지만 둘 사이에 목소리가 나오고 말고는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서로 눈을 마주 보는 것만으로 둘은 모든 것을 이해한 듯 각자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굳은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루페르트는 안젤리나의 얼굴이 평소와 조금 다르다는 걸 발견했다.

저 대황후, 안젤리나가 얼굴에 화장을 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것이다.

알 수 없는 착잡함과 헤아릴 길 없는 숙명을 느끼며 루페르트는 고개를 숙였다.

“걱정 마시게.”

루돌프가 말했다.

“그대를 만난 것만으로 나는 모든 걸 얻었으니.”

안젤리나는 두 눈을 감은 채 행복한 미소에 잠겨 들었다.

루돌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루페르트는 마치 시종처럼 그의 뒤를 따랐다.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안젤리나의 숨소리는 끊이지 않았지만, 그건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리라.

하나의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철혈의 치세라 불리는 제2의 황금기가.

* * *

제국의 수도 테타우.

황궁 옆에 자리 잡은 제국의회에 무수히 많은 사람이 운집했다.

제국의 선제후, 각지의 군주, 호라교단의 주교들, 마법대학의 쟁쟁한 교수, 전쟁터에서 명성을 얻은 군인, 인기 있는 수도회, 갖가지 조합을 대표한 상인, 그리고 그들을 구경하러 나온 평범한 사람들.

이중 극히 일부만이 제국의회에 참가할 수 있으며 그중에서도 단지 여덟만이 선거에 참가할 수 있다.

[ 드디어 시작이네요. 루페르트 가우저. ]

모처럼 리프니에가 말을 걸어 주었다.

루페르트는 발코니 너머로 들려오는 군중들의 웅성거림을 들으며 거울의 비친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승리는 확정적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이렇게 긴장이 되는걸.

차라리 프리드리히의 말을 듣던 첫 회차가 덜 긴장이 됐던 것 같다.

[ 걱정하지 마세요. 루페르트 가우저. 당신은 그 사람의 도움을 받았잖아요? ]

“그렇죠.”

안드리아의 루돌프는 안젤리나를 만난 후 자리를 떠났다.

자신이 할 일이 모두 끝났으며 더는 할 게 없다는 이유를 들어서였다.

그가 어디로 떠난 지는 루페르트 본인조차 알지 못하지만 결국 그 또한 수레바퀴에 속하는 자, 어떤 식으로든 리프니에에게 돌아갔다는 게 루페르트의 생각이었다.

어떤 마법을 부린지 모르겠지만, 그의 얼굴은 수십 년간 안젤리나를 옆에서 모신 시녀조차 알아보지 못하였으니 말이다.

“네, 잘됐으면 좋겠군요.”

루페르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모았다.

운집한 군중들이 창가의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보며 손을 흔들며 환호했다.

“와아! 슈발츠마인 선제후다!”

“메헨부르그의 야수를 해치운 분이라지?! 엄청난 거인이라던데.”

“맨손으로 사람의 목을 뽑아 버린다고 들었는데 음? 생각한 것보다 작은 느낌인데?”

루페르트는 난무하는 낭설에 쓴웃음을 머금으면서도 눈에 밟히는 것들을 보고 미소를 지워 버렸다.

곳곳에 제국 성인을 묘사한 성화를 든 사람들이 서 있었다.

[ 영원한 고행자, 성 발렌티아누스 ]

[ 천연두를 지우는 자, 슈타우펜 ]

[ 아가티아, 만인의 연인 ]

‘제국 성인이라…….’

그 끔찍했던 판텔레온의 얼굴이 악몽처럼 눈앞을 덮어 나간다.

“…….”

속이 메스꺼워지고 기분이 안 좋아진다.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무슨 일이냐?”

“만슈타인이라는 분께서 편지를 보냈습니다.”

“만슈타인?”

‘아, 리히트 보덴에서 날 도와주었던 그 사람이군.’

“가지고 오게.”

편지의 내용은 단순했다.

[ 황제가 되신 걸 미리 축하드립니다. ]

루페르트는 실소를 머금었지만, 곧 한 가지 사실을 기억해 냈다.

‘저번 회차엔 이런 일이 없었잖아?’

그렇다.

프리드리히를 조언가로 두던 시절엔 만슈타인은 편지를 보내오지 않았다.

‘그 친구. 역시 평범한 사람은 아닌 모양이군.’

루페르트는 만슈타인의 편지를 시종에게 맡기며 거울 앞에 섰다.

이제 곧 선거가 있을 것이다.

다른 방엔 저마다의 경쟁자가 있다.

카를 호이징거가 죽은 현재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디터 팔츠 선제후의 아들인 로이겐 뇌르겐틀링이지만 객관적으로 그는 루페르트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복도에서도 두 눈으로 확인했다.

메헨부르그에서는 그토록 고압적이고 거만했던 청년이 이제는 그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숙이고 땅을 쳐다봐야 했던 것을.

‘결과는 명확하다.’

남은 건 그 결과를 확인하는 것.

여섯 선제후, 선제의 대리인, 호라 교단의 고위 성직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루페르트는 다른 경쟁자와 함께 제국의회의 가장 앞자리에 앉았다.

선거를 주관하는 아카이아 대주교가 금박을 입힌 화려한 두루마리를 들고 연단 위에 서자 장내엔 죽은 듯한 정적이 찾아왔다.

숨소리조차 제대로 낼 수 없는 그 정적 속에서 대주교가 느릿하고 힘없는 어조로 말했다.

“오랫동안 우리 제국엔 황제가 없었습니다. 선제후를 위시한 군주들의 노력으로 제국은 황제의 공백기 속에서도 평화와 안녕을 구가했지만, 제국 내외에서 불온한 움직임이 조금씩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는 건 여기 계신 제국의 군주들이라면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아카이아 대주교가 두루마리를 내려놓았다.

“누군가는 힘없는 황제를 원하셨을지도 모릅니다. 선제가 위대한 황제라고 하나 선제의 치세 동안 고통받은 사람도 있는 건 분명하니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또 다른 위기를 봅니다.”

철혈대제의 오른팔이자 친우, 그리고 심복이었던 노인의 시선은 루페르트를 향했다.

“누가 그 위기에 가장 잘 대처할 수 있는가? 그건 저의 통찰로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신심이 충만한 사람이라면 그 어떤 역경과 이단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겠지요.”

아카이아의 목소리가 변했다.

힘없고 어눌한 어조에서 광신적이고 포효하는 듯한 울림으로.

“슈발츠마인 선제후시여. 자리에서 일어나십시오.”

“…….”

루페르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수한 시선들이 꽂힌다.

의심, 질투, 분노, 조롱, 회의, 경계.

저마다의 생각들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제국을 칭하나 실상은 수백 개의 자치령으로 갈라지고, 거기에 대해 종교마저 반으로 찢긴 이 제국을 통합하는 것이 황제가 해야 할 일이니까.

이미 완성된 제국이 필요한 건 확장도 정복도 아니다.

천 년에 이르는 갈등의 봉합.

그것이 천년기(千年期)를 바라보는 황제가 해야 할 일이다.

“루페르트 가우저.”

“내가 루페르트 가우저요.”

율법에 따라 루페르트가 복창하자, 아카이아 대주교는 연단에서 내려와 루페르트 앞에 서서 두 손을 잡고 고개를 숙였다.

“그대는 이제 룸인의 왕이며 제국의 황제가 될 것입니다.”

모든 이가 고개를 숙였다.

제국의 새로운 황제를 향하여.

“…….”

루페르트는 굳은 얼굴로 자신에게 숙인 고개들을 응시했다.

제국의 새로운 시대는 이제부터 시작되리라.

* * *

루돌프가 떠나기 전의 일이었다.

집무실을 나서는 루돌프를 향해 루페르트가 소년처럼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은 채 그에게 다가갔다.

“저기. 루돌프 님.”

루돌프는 의아해하며 루페르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기, 갑자기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이상할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었습니다.”

루페르트는 황제의 벽 마지막을 차지한 마치 이 세상의 군주 같던 위대한 황제의 조각상을 떠올렸다.

그가 닮고 싶었던, 되고 싶었던 모범.

그 웅장했던 조각상을 떠올리며 루페르트가 말했다.

“당신의 정체는 루돌프 클라우데 2세. 저 철혈대제라 불리신 분이 맞으시지요?”

알고는 있었지만, 함부로 꺼낼 수 없었던 그 말.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오.”

루돌프가 살짝 놀라워하는 반응을 보였다.

“언제부터 그런 결론에 이르게 되었나?”

“그, 그야. 일어나는 상황과 대황후님과의 관계만 보더라도.”

“유추하신 거구만. 뭐, 어려운 건 아니지.”

“아, 사실 처음 볼 때부터 그런 느낌이 왔습니다.”

“그렇군.”

루돌프의 입가에 미소가 배어들기 시작했다.

“철혈대제, 맞으시지요?”

왜 같은 질문을 반복했는지 루페르트 본인조차 알 수 없었다.

단순한 치기인지 오랜 선망이 가져다준 조급함인지.

다행히 보상은 주어졌다.

“그런 이름으로 불린 적도 있었지.”

확답을 받았다.

“폐하!”

루페르트는 감동에 찬 얼굴로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가슴 속에서 솟아 나오는 격동을 진정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역시! 이분은 클라우데 2세! 내가 누구보다 닮고자 했던 바로 그 위대한 황제셨어!’

루돌프는 격동의 여운에 잠긴 루페르트를 보며 야릇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것은 그 자신이 루페르트에게 직접 가르쳐 주었던, 상대방이 스스로 오류에 빠지게 놔두는 그런 종류의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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