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9. 세계의 끝 (3)
선제의 치세 때 대륙엔 아래와 같은 말이 떠돌아다녔다.
제국엔 두 개의 태양이 있다.
하나는 철혈대제라 불리는 클라우데 2세이며, 다른 하나는 그의 반려인 안젤리나다.
으레 황후는 낮과 밤과 빗대 달에 비유되는 게 일상이나, 안젤리나는 그렇지 않았다.
당대 외국의 군주와 세인들은 안젤리나를 철혈대제와 동급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실제로 경험한 대황후의 일 처리는 그야말로 빈틈이 없었다.
그녀는 이미 모든 일을 안배에 둔 상태에서 각 단계에서 해야 할 일과 그 일을 할 사람을 배치해 모든 일이 마치 톱니바퀴처럼 맞물리게 처리하게끔 했다.
베르크 란이 첫 번째 톱니바퀴였다면, 클로버스는 그 첫 번째 톱니바퀴와 맞물린 또 다른 톱니바퀴다.
그는 대황후 본인이 남긴 또 다른 서찰을 루페르트에게 내밀었다.
새로운 서찰에서 대황후는 100만 탈러라는 거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항목별로 나누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 100만 탈러 중,
50만 탈러를 상한선으로 하여 양질의 선박을 마련한다. 최상의 방법은 배를 빌리고 그 부담을 저지인들의 해상보험 회사에 떠넘기는 것인데, 선박의 목적지를 안다면 아무도 그 부담을 안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한편, 클로버스는 지역의 조선공들과 인맥이 있으며 좋은 배를 구할 때 도움을 줄 것이다.
10만에서 20만 탈러를 들여 철괴를 구입한다. 그 수량은 배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항해 중에 사고가 발생해 짐을 버려야 할 경우가 있더라도 가능한 한 철괴를 보존하는 것이 좋다. 배에 여유가 있다면 땔감으로 쓸 만한 잡목들을 공간에 채워 넣을 것.
5만 탈러를 상한으로 해서 선장과 승무원을 구한다. 선장은 전투 경험이 있는 쪽을 추천하며 승무원은 최소한으로 고용하되, 보수를 높여 질적 수준을 높이는 게 좋다.
주의. 외국인은 되도록 승무원으로 받아들이지 말 것. 특히 저지인과 부르봉인.
선상 반란의 위험이 있다.
나머지 자금은 예비비로 하스 상회에 보관하라. 리히트 보덴의 일을 성공리에 마치고 돌아온다면 하스 상회의 지배인이 남은 돈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알려 줄 것이다.
끝으로 항해자에 관해서는 내가 해 줄 말은 없다. 빙해를 누비던 선장들은 이미 죽거나 은퇴했고 과거의 항로를 기억하는 사람은 사라졌다. 황제의 자질 중 하나는 사람을 알아보는 것. 황제는 설령 자기가 알지 못하는 영역이라고 할지라도 소임에 걸맞은 인물을 알아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그대에게 그런 능력이 있기를 바란다. ]
편지를 단숨에 읽어 내려간 루페르트는 몸이 뜨거워지는 걸 느껴졌다.
아마도 처음일 것이다.
내 편이 있다는 자각은.
물론 대황후의 입장은 어디까지나 루페르트를 시험하는 것이지만, 오랜 기간 철저한 고독 속에서 홀로 싸워야 했던 루페르트에게 대황후의 철두철미한 조언은 단 한 번도 받아 본 적 없는 환대이자, 지원이었다.
‘지도를 가지고 여행을 한다는 게 이토록 편한 것이었을 줄이야.’
벅찬 마음을 뒤로하고, 루페르트는 클로버스와 함께 빙해를 건널 선박을 알아보았다. 클로버스 본인은 항해와 선박에 대해 무지했지만, 주민들에게 인기가 높았고 그 주민들 중 일부가 기꺼이 클로버스의 힘이 되어 주었다.
“이 3개의 가로돛을 지닌 범선은 건조된 지 이제 겨우 5년이 지난 새 배입니다. 크기도 적당하고 화물칸도 넉넉해 많은 물품을 적재할 수 있지요. 속도가 빠른 건 덤이고요! 다만 배의 특성상 숙련된 선원을 필요로 하고 무장이 빈약한 게 흠인데 이 부분은 그쪽에서 따로 개조하거나, 무장을 늘이면 해결될 것입니다.”
루페르트는 튼튼하고 날렵하면서도 짐을 많이 실을 수 있는 배를 구할 수 있었다.
선박의 가격은 35만 탈러. 제값을 주고 샀다면 50만 탈러까지 호가할 정도로 훌륭한 선박이었다.
배의 이름은 때까치 호로 원래는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과거의 선주가 북부인과 싸우면서 그 시체를 때까치처럼 돛 위에 꿰어 놓았다고 해서 새로 붙인 이름이다.
기원이 섬뜩하긴 하지만 루페르트는 그 배의 이름을 그대로 승계하기로 정했다.
다음으로 루페르트는 하스 상회의 지배인에게 철괴의 매입을 부탁했다. 하스 상회의 지배인은 12만 탈러로 때까치 호의 최대 적재 중량에 가까운 철괴를 구입했다.
다음으로 루페르트는 유명한 여인숙에서 한스 징펠만과 재회했다. 한발 앞서 뒤셀하펜에 도착한 한스 징펠만은 항해의 안내자가 될 선장 및 항해사들을 알아보는 일을 맡았다.
“안타깝게도 1급의 선장은 찾지 못했습니다. 경기가 호황이다 보니 실력 있는 선장들은 죄다 상선으로 몰렸거든요. 남은 자들은 실력이 부족하거나 품행에 문제가 있는 사람, 그리고 외국인 선장입니다.”
대황후의 당부에 따라 루페르트는 외국인은 배제하고 나머지, 하자가 있는 인물들을 만나 보길 원했다.
선발 방식은 토벌대장을 뽑을 때와 동일하게 진행됐다. 선원 길드의 직원을 면담자로 내세우고 루페르트가 비켜서서 통찰의 권능으로 상대방의 진정한 능력을 알아보는 방식이다.
수많은 지원자 중에 3명의 후보가 남았다.
그러나 한스 징펠만이 말한 것처럼 하나같이 하자가 있는 인물들이었다.
첫 번째 인물은 군터 야스펠이라는 칠순이 넘은 노인이었다. 그는 오랜 항해 경험을 지녔고 어렸을 때 리히트 보덴에 간 경험이 있다고 주장한다. 한스 징펠만이 이 노인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밝혀내긴 했지만, 이 노인이 지닌 풍부한 경험과 지식은 진짜다. 통찰의 만화경은 그를 아래와 같이 판단했다.
- 뭍에서 천수를 누린 뱃사람 C+
두 번째 인물은 슈미트 헬젠이라는 사내로 바다를 배에서가 아닌 책에서 배운 특이한 인물이었다. 뱃사람으로의 경험은 일천하지만, 그는 북방 빙해 항로에 대해 누구보다 많은 지식을 지녔다. 운명의 실타래 항목에서 루페르트가 주목한 항목은 다음과 같았다.
- 북쪽 항로의 외로운 연구자 B-
한편 뱃사람으로서 그의 자질은 아래와 같다.
- 뱃멀미를 하다 죽은 익사체 E-
마지막 후보인 페르난도 오르도라는 사내는 30대 후반으로 경험과 실력, 모든 면에서 나무랄 데가 없는 인재다. 하지만 그에겐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바로 외국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제국의 남서쪽에 있는 반도 국가 카스무어 출신이다.
카스무어 왕국은 제국의 오랜 동맹국이지만 카스무어인이라는 족속들은 게으르고 속임수를 좋아하는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 알려졌다. 운명의 실타래는 항해자로서 그의 자질을 아래와 같이 평가했다.
- 천상 뱃사람 B+
능력만 놓고 보면 고민할 것도 없다.
군터 야스펠은 언제 죽을 줄 모르는 노인이고, 지식만 있고 경험은 없는 슈미트 헬젠은 제대로 된 항해는커녕 선원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지나 의문이다.
그에 비해 페르난도 오르도는 모든 면에서 완벽했다. 딱 한 가지 단점을 제외하면 말이다.
‘대황후는 외국인을 등용하지 말 것을 조언했다.’
하지만 대황후의 말은 절대적인 명령이 아니다.
그녀는 되도록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선은 루페르트의 몫이다.
그는 섣부른 선입견 대신 자신이 지닌 궁극의 무기, 리프니에의 힘을 믿기로 결심했다.
‘앞으로 수많은 선택의 순간이 있을 것이다. 내가 내게 주어진 권능을 믿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루페르트는 페르난도 오르도를 불러오게 했다.
“당신에게 내 배를 맡기려고 하오.”
“……그게 정말입니까?”
페르난도는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
“정말로 믿기 어렵군요. 저 같은 외국인을 선장으로 임명해 주시다니요.”
떨리는 눈동자는 양처럼 유순했지만, 루페르트는 양의 눈동자가 어떻게 늑대의 눈동자로 변하는지 몇 번이고 보아 왔다.
“대신, 그대에겐 최대의 노력과 봉사를 기대하겠소.”
그가 양이 될지, 늑대가 될지는 루페르트에게 달렸다.
‘사람을 쉽게 믿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지.’
루페르트는 페르난도 오르도를 견제하기 위해 또 다른 후보, 슈미트 헬젠을 고문 자격으로 배에 태웠다. 그는 부선장 자리를 원했지만, 루페르트는 허락하지 않았다.
슈미트 헬젠이 기질이 드세고 사람들과 작당하는 걸 좋아하는 인물이라는 걸 알아봤기 때문이다.
견제를 위해 데려오긴 했지만 지나친 힘을 실어 줄 경우 역효과가 일어날 수도 있으니.
“아무리 제가 해상 경험이 없다고 해도 외국인 선장보다 한참 못한 대접을 받는 것은, 솔직하게 한 명의 제국인으로서 자존심과 관련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슈미트 헬젠은 즉각 불만을 드러냈지만, 루페르트는 이 또한 능수능란하게 대처했다.
“이 금액이라면 어떻습니까?”
“이 금액요?”
금액 자체엔 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건 금액 그 이상의 무언가.
루페르트는 페르난도 오르도와 체결한 계약서를 내밀었다.
슈미트 헬젠의 눈은 계약서 첫 장에 기재된 보수 쪽을 향했다.
“이건……?!”
슈미트 헬젠의 삐쭉 내민 입이 쏙 들어갔다.
자신의 보수가 선장보다 많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루페르트는 능글맞게 웃으며 은근히 속삭였다.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입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무, 물론입니다.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가장 어려운 고비는 그렇게 쉽게 넘어갔다.
이후의 인선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선장으로 임명된 페르난도는 즉각 각지에서 쓸 만한 뱃사람을 모집했고 일주일이 지나가기 전에 그는 삼십 명에 달하는 승무원을 모았다.
루페르트는 그들의 능력 하나하나를 통찰의 만화경을 통해 들여다보고, 선상 반란의 위험성이 있는 자를 미연에 걸러 냈다.
얄궂게도 한 번 선장 후보에서 제외된 군터 야스펠이 수석 항해사 겸 부선장 후보로 추천받았다.
칠순의 노인이긴 하지만 루페르트는 이것도 운명이겠거니 하고 그를 부선장으로 받아들였다.
위험한 항해이니만큼 루페르트는 선원들에게 최상급의 보수를 약속했다.
얼음이 녹기 시작하는 봄은 빙해 항해에 있어 겨울보다 더 위험한 시기였지만, 선원들의 사기는 높았고 선장 페르난도의 열정도 뜨거웠다.
오래된 항구에서 때까치 호는 자갈 같은 얼음이 뭉친 바다를 해치고 북쪽으로 향했다.
항로는 북동.
목적지는 잊힌 개척지 리히트 보덴.
쾌조의 출발로 시작된 항해는 이후에도 순조롭게 이어졌다.
뒤셀하펜을 떠난 지 3일이 지날 무렵, 갑판 쪽에서 경보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둘러 갑판에 나온 루페르트 앞에 베르크 란의 손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루페르트를 호위하는 것처럼 옆을 지켰다.
그다지 친한 사이도 아니고 말을 할 기회도 없었지만, 이왕 가까운 거리에 마주친 김에 인사를 건넸다.
“안녕?”
소년이 이쪽을 돌아본다.
눈과 눈이 마주쳤다.
처음으로 가까운 거리에서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확연히 시선을 사로잡는 짙은 에메랄드빛 동공 너머로 몽환적인 색채가 해무처럼 서려 있지만, 그 중심엔 안개 속에서도 뚜렷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자기주장이 강한 눈빛이 반짝이고 있다.
눈이 마주치자 소년은 불쾌감을 드러내며 고개를 돌렸다.
완연한 무시.
루페르트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이 녀석.’
솔직히 귀여운 녀석은 아니다.
오히려 무서운 녀석이랄까.
당장 도리안 비하스 부녀를 죽이던 그날의 모습이 생생히 기억에 남아 있다.
게다가 여느 제국 촌놈처럼 루페르트도 도펠죌트너라는 존재에 대한 미지의 공포감을 품고 있었다.
황족이라고 하나 일단 그도 촌놈 출신이니 말이다.
‘날 싫어하나?’
잠시 쓴웃음을 머금은 채 잠자코 있자니 페르난도가 다가왔다.
적절한 타이밍에 나타난 선장에게 인사를 건네며 루페르트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난리 통의 원인을 물었다.
이에 페르난도는 망원경을 건네며 바다 저편을 가리켰다.
“북부인입니다.”
과연 먼 바다에 길쭉하고 갑판이 없는 날렵하고 미려한 배 한 척이 바다를 떠돌고 있었다. 그 배 위엔 멀리서도 확연히 알아볼 수 있는 크고 건장한 몸을 가진 사내와 여성이 탑승하고 있었다.
‘저게 북부인들인가?’
북부인.
빙해 너머 영구동토의 대지 위에 살아간다는 이교도. 그들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다.
평균 신장이 2m가 넘는다는 소문은 진짜였다. 그들은 하나 같이 기골이 장대하고 덩치가 컸다. 남자의 덩치도 덩치지만 여자 쪽도 만만치 않다.
“저, 저! 빌어먹을 이교도 놈들! 당장 대포로 쓸어버립시다!”
부선장 군터 야스펠이 역정을 내며 당장이라도 저 배를 침몰시키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루페르트의 눈에 저들은 그다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페르난도의 의견도 마찬가지였다.
“괜한 곳에서 시간을 허비할 수 없습니다. 빙해의 날씨는 시시각각 변하니까요.”
군터 야스펠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저 야만인 놈들을 그냥 돌려보내면 안 됩니다. 놈들은 지나가는 배를 봐 놓았다가 나중에 무리를 이끌고 습격하는 방법을 씁니다. 당장! 저것들을 물속에 가라앉혀야 합니다!”
페르난도의 말도 군터 야스펠의 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루페르트는 배에 흐르는 묘한 기류를 감지했다.
그것은 선장에 대한 선원들의 태도였다.
페르난도 본인이 뽑은 선원이긴 하나 대부분 제국 출신들이다. 그들은 페르난도가 아닌 군터 야스펠의 편을 은밀히 들고 있었다.
‘페르난도 정도 되는 경력을 지닌 자라면 간부들을 자신의 측근으로 채워 넣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건 능력만 보고 선임했다는 것이겠지.’
루페르트는 배에 숨겨 두었던 한 사내를 갑판 위로 불러냈다.
두꺼운 외투를 걸친 건장한 사내가 나타났다.
그가 외투를 벗자 갑판 위가 술렁였다.
붉은 명찰, 도펠죌트너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베르크 란이 낡은 기병도를 칼집 채로 쥔 채 루페르트에게 다가왔다.
루페르트는 가만히 그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손자와 같은 짙은 에메랄드빛.
그러나 몽환적인 흐릿함을 간직한 손자와 달리 그의 동공에 담긴 건 오로지 이글거리는 분노뿐이었다.
세상에서 철저히 버림받은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분노 말이다.
“…….”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이 사내가 가장 적절한 예시일지도 모르리라.
루페르트는 위축되는 감정을 억제하며 베르크 란에게 말했다.
“내 호위는 이 꼬마로 충분하오.”
“꼬…… 꼬마!?”
금발 꼬마가 불만스러운 시선으로 루페르트를 슬쩍 돌아봤다. 루페르트는 내색하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당신은 이 선장을 지켜 주시오. 혹, 누가 선장에게 위해를 가하려고 하면 누구든 좋소. 당신에게 처분을 맡기리다.”
베르크 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무시무시한 살기가 담긴 눈으로 주변을 돌아봤다. 어느 누구도 그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페르난도의 권위는 그렇게 살아났고, 배는 신속하게 동쪽으로 나아갔다.
때까치 호는 신속하게 항진을 계속해 사흘이 지난 후엔 멸망한 개척지 잿더미 섬을 지났고, 다시 사흘이 지난 후엔 눈과 안개로 뒤덮인 신천지에 도착했다.
리히트 보덴.
빛이 머무는 바닥이라는 뜻을 지닌 제국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개척지가 삼십 년의 세월을 넘어 루페르트 앞에 생생한 모습으로 되살아났다.
사망자는 물론 부상자 하나도 없는 완벽한 항해였다.
루페르트의 눈은 정확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선원들이 술렁였다.
루페르트도 곧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모피를 덧댄 방한복마저 파고드는 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을의 굴뚝엔 연기 한 점 찾아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