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대제-14화 (14/225)

14화 5. 야수의 정체 (1)

쌍둥이는 새로운 총을 조립해 그들의 주인에게 건넸다.

그것은 두 개의 총구를 지닌 총이라기보다는 화포에 가까운 무기였다.

10kg은 가볍게 넘길 법한 무기지만, 한스 징펠만은 가볍게 들어 올리며 아돌프와 메이어 쪽으로 뛰어갔다.

그는 미끼 역을 맡은 자들에겐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야수가 남긴 흔적만을 살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뒤에서 퀭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나으리, 시키는 대로 했으니 나머지 몫도 주시오.”

미끼 역을 맡은 아돌프다.

오늘 죽음의 문턱을 본 그는 혼이 빠진 얼굴로 격한 숨을 몰아 내쉬면서도 추가 수당을 요구하려 했다. 메이어도 마찬가지였다. 눈을 똑바로 뜨고 행여라도 한스 징펠만이 떠나면 그의 바짓가랑이라도 잡을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한스 징펠만은 이들에 대해 단지 싸늘한 눈빛을 보내는 것만으로 이들을 침묵시켰다.

야수는 그들을 잡는 사냥꾼에 대항하지 못한다.

그것이 인간의 탈을 쓴 야수이건, 짐승의 탈을 쓴 야수이건 관계없다.

“내 앞에서 사라져라. 다음 사냥감이 되고 싶지 않다면.”

한스 징펠만에게 있어 야수란 인간 또한 포함하는 것이기에.

간신히 살아남은 악인들은 고개를 떨구었다.

한스 징펠만은 루페르트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지금 바로 추적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준비는 되셨습니까?”

루페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주변은 암흑천지다.

제아무리 숲길에 익숙한 사람이라고 해도 방향을 잃고 헤맬 것이다.

한스 징펠만은 이에 대한 대비책도 준비해 뒀었다.

그가 데리고 온 또 다른 대원.

사디라는 이름을 지닌 노파다.

“이 노파는 평생을 어두운 숲을 돌아다니며 약초를 캐고 돌아다닌 사람입니다.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땅의 감촉과 나무들이 풍기는 냄새, 희미하게 들려오는 개울 소리만 듣고도 자신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죠.”

미끼로 쓴 두 남녀와 달리 약초꾼은 오로지 실력을 보고 데리고 온 인물이었다.

루페르트와 한스 징펠만은 사디의 안내를 받아 어두운 숲속으로 향해 과감하게 들어갔다.

야수가 흘린 핏자국은 군데군데 이어져 있었다.

한스 징펠만은 새로운 핏자국이 보일 때마다 추적을 멈추고 피의 상태를 확인했다.

“약 10분 전에 이곳을 통과했군요.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야수가 우리보다 빠르다고 하나 우리보다 끈질길 순 없을 테니까요.”

한스 징펠만은 사냥의 성공을 자신하고 있었다. 중상을 입힌 걸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 추세라면 야수는 그들이 발견하기도 전에 출혈로 죽을지도 모른다.

추적은 밤새도록 계속됐다.

거리 자체는 멀지 않았지만, 어둠의 장막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에 지나친 힘을 쏟아서 그런지 빠르게 지쳤다.

사디는 간신히 따라오는 상태다.

야수도 슬슬 힘이 다하는지 여기저기 바닥에 쓰러지고 나뒹군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한스 징펠만은 콧수염을 매만지며 칭찬했다.

“꽤 의지가 강한 녀석이군.”

하지만 모두들 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동녘에 희미한 여명이 다가올 무렵, 약초꾼 사디가 입을 열었다.

“저기, 나으리들. 죄송합니다만, 여기서부터는 들어가시면 안 될 것 같습니다요.”

여명이 서렸다 하나 여전히 칠흑의 장막에 가려진 숲속이다. 루페르트로선 뭐가 문제인지 알 도리가 없다.

“문제라도 있소?”

한스 징펠만이 노파에게 물었다.

노파는 거칠게 숨을 내쉬고는 허리를 두드리며 답했다.

“자작나무 냄새와 장미 향기가 바람에 섞여 날아오네요. 자작나무는 어두운 숲에 살던 나무가 아닙니다. 바깥에서 들여온 거죠. 장미도 마찬가지. 어두운 숲에 들장미는 군데군데 피지만 이토록 코를 혼미하게 할 정도로 짙은 향은 풍기지 못한답니다.”

“그래서, 앞에 뭐가 있다는 거요?”

한스 징펠만이 재차 물었다.

노파는 뜸을 들이고 대답했다.

“이 앞엔 비두킨트 가문의 저택이 있어요.”

“비두킨트 가문?”

루페르트 가우저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비두킨트 가문.

일곱 선제후 중에 가장 부유하며 강대한 영지인 슈발츠마인의 선제후 가문이다.

메헨부르그는 물론, 북쪽의 제도 테타우도 그들의 영지 안에 포함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전임 황제 클라우데 2세가 바로 이 비두킨트 가문 출신이다.

루페르트 가우저 또한 넓은 의미로 보면 비두킨트 가문의 혈족. 비록 조부 대에 비두킨트 가문에서 갈라져 나왔지만, 기원이 같은 핏줄을 지니고 있기에 황위 계승권자 후보로 선택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비두킨트 가문 사람 중 조부를 기억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오래전 사람이기도 하거니와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전부 죽은 탓도 있겠지만, 비두킨트 가문의 구성원으로 황제직에 오른 루페르트에겐 대단히 불리한 사정이었다.

그러나 비두킨트 가문의 저택 안엔 가계의 계보를 그린, 조상의 나무가 존재한다.

비두킨트라는 하나의 씨앗에서 나온 무수히 갈라지는 나뭇가지의 형태를 빌어 기록한 가문의 계보도다.

그 계보도에 정확히 조부의 존재가 기록되어 있다.

가문으로 받은 이름은 물론 개명 후의 이름까지.

그렇기에 비두킨트 가문은 루페르트에 대해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조상의 나무에 적힌 이름을 부정하는 건 조상 전체를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일이기에.

“비두킨트 가문의 영지라.”

그 가문의 영지에 도착했다.

문득 안투안 쿠르스트의 목소리가 생생한 형태로 재현됐다.

그는 어두운 숲 어딘가에 높으신 분의 저택이 있으니 들어가지 말라고 말했다.

‘안투안 쿠르스트. 그 사람. 평범한 사냥꾼은 아니야. 사냥꾼이라기보다는…….’

안투안 쿠르스트는 제국수렵대의 황실 사냥꾼.

비록 클라우데 2세는 승하했지만, 황실 내엔 비두킨트 가문이 심어 둔 고관대작이 즐비하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안투안 쿠르스트는 단순히 야수 토벌을 명목으로 이곳에 파견된 게 아니라 비두킨트 가문의 사유지를 지키기 위한 호위병일지도 몰라.’

제국수렵대의 황실 사냥꾼을 개인 호위로 돌리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저 막강한 선제후 중에서도 불가능한 이가 부지기수다.

그러나 비두킨트 가문은 그만한 힘을 지니고 있다.

“어떻게 할까요?”

루페르트의 흔들림을 읽은 한스 징펠만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냥꾼으로서 끝을 봐야 하는 것이 그의 본심이었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고용된 사람이다. 중대한 사항에선 고용주의 의견에 따라야 한다. 그것이 고용된 사냥꾼이 지켜야 할 계율이다.

루페르트는 장고에 들어갔다.

두 가지 가치가 부딪치고 있다.

하나는 비두킨트 가문에 대한 두려움이다.

전생에서 비두킨트 가문은 철저한 중립을 지켰다.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지도 않았고, 통치에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한 적도 없었다.

악운으로 얼룩진 전생에서 몇 안 되는 호재였다.

혹 그들이 루페르트의 자격을 문제 삼는다면 황제가 되지 못함은 물론, 제위에서 끌어 내려질지도 몰랐으니.

무엇보다 루페르트는 비두킨트 가문의 떨어져 나간 조각이다. 사이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 그의 근본이 비두킨트 가문에 있다.

‘비두킨트 가문의 눈 밖에 나는 일은 삼가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사냥을 포기한다면 리프니에의 퀘스트를 포기하는 것이 된다.

리프니에가 누군가.

치욕스런 죽음 직전의 그를 이곳으로 돌려보낸 그가 섬기는 신이 아닌가.

그가 섬기는 유일한 여신.

루페르트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퀘스트를 수행하자니, 막강한 비두킨트 가문의 미움을 사 버리고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나면 퀘스트를 포기하는 일이 된다.

야속하게도 지금 이 순간, 리프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루페르트는 본능적으로 지금 리프니에가 차분히 자신의 행동을 관망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라, 루페르트 가우저. 뭐가 더 중요한 일인지!’

혼란으로 흔들리는 그의 눈길은 이윽고 목에 건 소라고둥으로 향했다.

그 끝을 불면 회귀라는 기적을 일으키는 신비로운 물건. 그 소라고둥을 보는 순간 루페르트의 눈동자에 이채가 떠올랐다.

‘그렇다. 나에겐 무한의 기회가 있었지.’

회귀의 힘이 있다고 하나 루페르트는 아직은 한 번 사는 삶에 익숙하고 그렇게 적응되어 있었다.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과는 커다란 격차가 있다.

오랜 장고는 어쩌면 그 격차를 메우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수레바퀴 위에 선 자. 나에겐 무한한 기회가 있다. 지금 나는 진정으로 실패를 어머니라 부를 수 있는 존재일 것이다.’

흔들림 없는 확고한 결의가 투명한 눈빛 너머로 번득였다.

결정을 내린 루페르트 가우저는 초조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한스 징펠만을 바라보며 쾌활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역시, 야수 놈의 목을 따야 직성이 풀릴 거 같네요.”

“비두킨트 가문의 영지인데 괜찮겠습니까?”

“그런 건 일단 잡고 생각합시다.”

루페르트의 호쾌한 웃음에 한스 징펠만은 미소로 화답했다.

그는 푸주한의 망치로 명명된 육중한 화기를 든 채 야수가 흘린 핏자국을 따라 전진했다.

어두운 숲의 우거진 가지 위로 떠오르는 태양의 빛이 스며들어 오고 있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