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3. 메헨부르그의 야수 (2)
메헨부르그는 테타우의 남쪽 어두운 숲이라 불리는 대삼림의 입구에 위치한 소도시다.
인구수는 약 3천 명, 특산품은 가죽과 목재 등 숲의 산물로 도시의 재정 상태는 그다지 부유하다고 볼 수 없고 시민들도 중하층에 머물렀다.
루페르트 가우저는 높은 성벽에 둘러싸인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벽돌로 가득 찬 도시 안엔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외지인 출신의 건장한 사내들이 많다.
루페르트는 모험자 길드의 게시판 전면을 당당하게 차지한 야수 현상금 광고를 눈에 담았다.
5만 탈러.
제국 황실에서 메헨부르그의 야수의 목에 건 현상금이다.
원래는 천 탈러 정도였던 몸값이 잇따른 야수의 살육으로 인해 가파르게 상승했다.
하지만 이건 중간 과정일 뿐이다.
루페르트는 머지않은 미래에 야수의 몸값이 10만 탈러 이상을 찍는다는 걸 알고 있다.
루페르트는 야수 수배 전단 아래 즐비하게 자리 잡은 작은 전단으로 시선을 옮겼다.
구인 광고로 빼곡하다.
대부분 메헨부르그의 야수를 처치하기 위한 귀족들의 토벌대 모집이다.
판이 커지다 보니 귀족들도 가세했다.
그들은 길드 게시판에 풍족한 보수와 대우를 약속하며 토벌대 모집 공고를 내고 있었다.
착수금만 최소 1,000탈러 보장이라는 문구가 심심찮게 보였다.
1,000탈러는 빈농의 1년 수입이다.
그걸 본 루페르트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무래도 메헨부르그의 야수는 한 마리만은 아닌 모양이야.’
도시 전체를 휘감은 탐욕의 불길.
그것은 메헨부르그에 서식하는 또 한 마리의 야수이리라.
루페르트는 섣불리 움직이는 대신 고급 여관에 여장을 풀고 도시를 돌아다니며 대략적인 분위기를 파악하는 한편, 정보 수집에 힘을 썼다.
메헨부르그의 야수는 이제 사냥꾼 한둘이 감당할 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평이 돌고 있었다.
북방의 노르드마르크 지방에서 이름난 야수 사냥꾼 하나가 자기 실력만을 믿고 홀로 야수 사냥에 나섰는데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시체로 발견된 이후 이런 움직임이 가속화됐다고 한다.
결국 몇 번의 비극적인 사고 이후에 단독으로 사냥에 나서려는 사람은 싹 사라졌고 대규모 토벌대를 조직할 수 있는 부호나 귀족들에게 차례가 넘어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메헨부르그의 야수는 끊임없이 무자비한 식인 행각을 계속하고 있었다.
과격한 축에선 사냥꾼에게 맡겨 둘 게 아니라 군대를 불러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었다.
‘리프니에 님의 예측이 맞는 모양이야.’
사냥꾼이 우글거리는 곳에서 태연하게 식인 행각을 벌이는 걸 보면 터무니없는 녀석이다.
루페르트는 목걸이처럼 패용한 소라고둥을 매만지며 생각했다.
소라고둥 안의 여신은 위버하임을 떠난 이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간혹 평범한 장식물로 생각될 정도였다.
덕분에 루페르트는 소라고둥 안에 여신이 살고 있다는 생각을 수정할 필요를 느꼈다.
‘이 소라고둥은 말씀을 전하는 도구에 불과한 건가.’
아무래도 좋다.
이미 여신님은 명을 내렸고 그녀의 유일한 사도인 루페르트는 명을 받들 뿐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토벌대의 조직이다.
토벌대의 규모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만, 규모가 커지면 비용도 크게 든다.
지참한 20,000탈러가 적은 돈은 아니지만, 각지에서 온 귀족들이 저마다 사냥꾼들의 몸값을 올려놓은 탓에 고용할 수 있는 숫자는 적은 반면, 돈 냄새를 맡고 몰려온 어중이떠중이들 덕분에 사냥꾼의 평균적인 질은 조악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정된 자원으로 최적의 인재를 뽑아 토벌대를 꾸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사냥 경험이 있다고 하지만 기껏해야 작은 새나 토끼 사냥이 전부인 루페르트로선 야수 급의 강력한 짐승을 상대하는 전문적인 사냥꾼의 기량을 알아볼 안목도, 그런 사람들을 소개받을 인맥도 없으니.
그런데 루페르트가 지닌 단점은 잠재적인 경쟁자인 다른 귀족도 함께 지니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루페르트에겐 타인에겐 없는 막강한 능력이 있다.
바로, 통찰의 만화경이다.
“…….”
루페르트는 품속에서 검은 천으로 만든 안대를 꺼내 자신의 왼눈을 가렸다.
끼이익-
루페르트는 먼저 도시 내의 위치한 여관 겸 주점을 방문했다.
안정보다는 위험 속에서 살아가길 택한 거친 사내들의 시선이 비수처럼 루페르트의 전신에 날아와 꽂힌다.
그럴 법도 한 게 루페르트의 복색은 모험자의 것이라기보다는 전형적인 귀족 자제의 외출복이기 때문이다.
다분히 의도한 결과다.
“어떻게 오셨나? 못 보던 젊은 양반.”
머리칼이 벗겨진 사내가 다리를 절며 루페르트에게 다가왔다. 그는 루페르트의 복장과 얼굴을 노골적으로 번갈아 응시했다.
“솜씨 좋은 사냥꾼을 찾는데.”
루페르트는 그 사내에게 1탈러짜리 은화 하나를 내밀었다.
사내의 입이 귀에 걸렸다.
“샌님처럼 보이는데 뭘 좀 아는 친구군. 날 따라오시오.”
그 사내는 루페르트를 주점 안 깊숙한 곳으로 데리고 갔다.
왁자지껄한 술집 안을 걸으면서 루페르트는 유독 눈에 띄는 사내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뭐지? 이 사람은?’
선명한 노란 색의 제복이 시선을 확 끌어당긴다.
그것도 몸에 착 달라붙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디자인이다.
시선을 위로 올려 얼굴을 보니 더 가관이다.
허옇게 분칠한 얼굴에 갈색 콧수염을 가지런히 길렀는데 그 콧수염 끝엔 우유 거품이 잔뜩 묻어 있었다.
그것만으로 피식 웃음이 나올 만한 광경이건만 정작 본인은 자신의 몰골이 어떤지 아는지 모르는지 쓸데없이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우유를 홀짝이고 있다.
그런데 더욱 웃긴 건 사람이 빼곡한 주점 안에 그 사내 중심으로 손님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설마 이 사람에게 안내하려는 건가.’
루페르트의 예상은 빗나갔다.
머리칼이 벗겨진 사내는 노란 제복의 우스꽝스런 사내를 지나, 좀 더 안쪽에 자리를 차지한 덩치가 크고 기골이 장대한 사내에게 데려갔다.
“이 친구는 메헨부르그 최고의 사냥꾼이지. 야수뿐만 아니라 마물과 사람을 잡는 데도 일가견이 있어.”
머리칼이 벗겨진 사내가 추켜세우자 거구의 사내는 자신의 팔 근육을 씰룩거려 보였다.
루페르트는 실소가 터져 나오는 걸 참으며 그에게 양해를 구했다.
“잠시 기다려 주시오.”
루페르트는 지그시 그를 관찰했다.
겉만 보면 힘 좀깨나 쓰는 타입에 옆에 장식처럼 놔둔 장비도 예사롭지 않다.
머리칼이 벗겨진 사내가 가게 벽면에 걸린 커다란 곰 머리 박제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술집에 있는 박제는 전부 이 친구가 잡아 온 물건이지. 그는 총을 아주 잘 다루거든!”
그러자 거구의 사내는 탁자 위에 올려 둔 화승총을 스윽 만지며 야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들이 뭐라고 하건 루페르트는 듣지 않는다.
들을 필요도 없다.
루페르트에겐 루페르트만의 방법이 있으니까.
[ 통찰의 권능을 사용하시겠습니까? ]
강한 긍정.
루페르트의 왼쪽 눈에 변화가 일어났다.
단순히 형태만으로 사람에게 기괴하고 오싹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미지의 문자와 마법진, 그리고 음울한 짙은 녹색의 빛이 차례로 그의 눈동자 위에 나타났다.
통찰의 권능이 발현됐다.
하지만 주점의 어두운 분위기, 머리 위에 쓴 넓은 챙이 드리운 그림자, 그리고 무엇보다 왼쪽 눈을 직접 덮은 안대로 인해 루페르트의 눈에 일어나는 변화는 눈에 띄지 않았다.
평온 속에서 루페르트는 타칭 최고의 사냥꾼이라는 자의 민낯을 고스란히 볼 수 있었다.
< “멋쟁이” 가스트에 관한 보고 >
1. 개요
종족: 인간 - 동부 제국인
분류: 범인
성별: 남성
연령: 24세
명성: 알려지지 않음
신체상의 특징: 없음
2. 운명의 실타래
눈먼 포탄에 맞은 병사: D-
목숨 건 결투의 패자: E
곰 가족의 한 끼 식사: E-
3. 특기사항
- 특별히 없음
4. 등급
E-
“…….”
최고의 사냥꾼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피리스도 한 수 접어 둘 처참한 미래만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 사냥꾼은 왜 찾는가? 젊은 형씨도 다른 젊은 귀족처럼 메헨부르그의 야수를 처치해 명성을 얻고 싶은 겐가?”
루페르트의 속을 알 리 없는 사내들은 이죽거리며 말을 걸었다.
루페르트는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떠났다.
“미안하지만, 급한 용무가 생각나서 이만.”
주점에서 직접 사람을 찾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의외의 행운을 기대했는데 사실 루페르트는 행운과는 거리가 먼 남자다.
‘평범하게 가자.’
루페르트는 그 길로 주점을 떠나 모험자 길드로 가서 길드의 게시판에 공고를 내 줄 것을 요청했다.
[ 야수 토벌대 모집, 상당한 착수금 약속, 현상금 보장 ]
길드 게시판에 토벌대 모집 광고는 이미 발에 챌 정도로 많다.
루페르트도 그들의 본을 따랐다. 그러나 루페르트는 그들보다 한 발 더 앞서 갔다.
그는 길드 관계자에게 웃돈을 주고 자신의 광고 문구를 다채로운 색으로 표시했다.
다른 광고가 검은색 일색인 것에 비해 확실히 눈에 띄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눈에 띄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오히려 조건이 좋지 않으면 여론의 몰매마저 맞을 우려가 있다.
광고의 진가는 화려한 색채 뒤에 숨겨진 문구에 있었다.
바로 5만 탈러에 달하는 현상금을 가볍게 포기한 것이다.
이것이 루페르트가 생각한 핵심이다.
명예에 관한 욕심만큼이나 돈 욕심도 많은 귀족들은 현상금은 당연히 자신의 몫으로 떨어질 전리품으로 생각했고 최소한 현상금의 일부는 본전치기용으로 자신의 몫으로 책정했다.
그에 비해 루페르트는 단 한 푼의 현상금도 손에 쥘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그 현상금을 자신을 차별화하기 위한 무기로 만들었다.
‘어차피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도 아니다.’
그 말인즉슨, 루페르트의 구매력은 수중에 쥐고 있는 자금에 더해 현상금 5만 탈러까지 더해진 셈이다.
이 정도면 메헨부르그에 모인 수많은 귀족 중에서도 단연 상위권에 달하는 자금력을 지니게 된 셈이다.
그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루페르트를 보고자 하는 사냥꾼들이 줄이 지어 나타났다.
“현상금을 그쪽에서 수령하지 않는다는 게 정말이오?”
주점에서 본 우락부락한 사내와 달리 날렵하게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을 지닌 자들이 나타났다.
그럴듯한 사냥꾼들이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두고 볼 일이다.
두꺼운 안대로 가려진 루페르트의 왼쪽 눈에 짙은 녹색의 음울한 광채가 희미하게 떠올랐다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