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552화 (552/556)

50-1. 폴름스 전투, 협정을 위한 암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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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랑키아 기병이 강한 이유는 특유의 높은 기강과 밀집 대형 훈련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적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싸우는 바람에 불리했던 것이다. 하지만 전투력 자체는 우리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난전을 유도해 적의 강점을 봉쇄한다!’

라는 것은 정찰을 맡은 어느 그룬발트군 기병 중대장의 주장이었다.

‘사흘째의 대격전에서, 엘랑키아 기병은 많은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려 할 것이다!’

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는 정찰에 나서기에 앞서 실제로 동료 장교나 휘하 병사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고 관련 훈련을 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진행했었다.

실제로 전투에 나가서도 각 기병간 거리를 넓게 잡고 더 작은 소부대로 쪼개 상호 견제를 하는 등 다양한 대응 준비를 갖추었다.

한동안은 엘랑키아 측 정찰대와 조우해도 견제만 할 뿐,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 마침내 엘랑키아 기마 정찰대가 견제에서 멈추지 않고 적극적으로 교전을 걸어왔다.

‘새로운 교전법’에 기세가 올라있던 그룬발트 기병대는 호전적인 함성을 지르며 도전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양측 기병대가 격돌했다.

타타탕! 탕! 타탕! 타앙!

“돌격!”

“이야아아아!”

“제국을 위하여! 가자아아!”

권총과 기병총이 요란하게 울부짖고, 자신들이 만들어낸 뿌연 화약 연기를 뚫고 기병들이 돌진한다.

양측의 숫자는 각각 200기 정도로 비슷했으나, 그룬발트 군에는 중기병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달랐다.

물론 엘랑키아 군 경기병이라 해도 갑옷을 입지 않거나 제대로 무장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근본부터 경기병과 중기병은 다르다.

그룬발트 군의 전술은 이러했다.

초전 맞돌격에서 우위에 점할 수 있도록, 육중한 중기병을 선두에 세워 첫 충돌에서 주도권을 가져온다.

그리고 일단 충돌하여 백병전에 들어간 적을 사방에서 습격하여 반포위하는 한편, 난전으로 유도한다.

전열이 무너지면 추격하면서 전과를 확대하고, 엘랑키아 장교급을 포로로 잡아 정보 또한 확보한다.

···라는 계획 자체는 좋았으나, 초장부터 틀어지고 말았다.

저돌적으로 나서는 것 같던 엘랑키아 기병들은, 중기병과 전면 충돌하는 대신 권총 사격 직후 미련도 가지지 않고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대열 유지를 위한 총총걸음도 아닌, 문자 그대로 전력으로 달아났기 때문에 그냥 전진하기 어려운 상황에 봉착해버렸다.

그렇게 그룬발트 중기병들이 돌격에 실패하고 어정쩡하게 멈춰버린 사이.

엘랑키아 기병대는 절반으로 나뉘어, 산개 대형으로 난전을 준비하고 있던 그룬발트 경기병의 측면을 공격했다.

“가, 갑자기 적이!”

“모두 침착해! 위치가 바뀌었을 뿐, 중기병과 함께 협공하면 된다!”

“버텨! 조금만 버텨!”

망치와 모루의 입장이 바뀌었을 뿐, 적을 묶어놓고 급습하여 무너뜨린다는 본질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라고 생각하기에는 순식간에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거리를 좁혀오는 돌격에 대응하지 못했다.

하필이면 난전을 한다며 병력까지 산개해 놓았으니, 억지로 병력 규모나 밀도로 버티는 것도 불가능했다.

결국 일격에 전열이 산산조각나며, 후열은 이를 받쳐주지 못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접전을 피해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는 것은 엘랑키아 기병대가 처음 했던 행동과 동일하였으나···.

한 번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한 기병대가 재집결하지 못했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달랐다.

“대장! 대장은 어디있나?”

“아까 낙마하셨습니다! 화, 확인은 못했습니다.”

“제기랄, 멈춰라! 멈추라고!”

“이미 선두는 작살났어! 엘랑키아 기사들은 못당한다고!”

자신만만하게 교전을 이끌었던 그룬발트 군 중대장은 양군이 충돌하자마자 전사한 모양.

아주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러 차례 훈련했던 작전은 전혀 먹히지 않았고 오히려 적에게 역공을 당했다.

이 상황에서 병사들의 머리속에 먼저 떠오른 것은 ‘엘랑키아 기병들에 대한 공포’였다.

현재 상대하는 적은, 기사들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망쳐! 도망쳐어!”

“으아아아앗!”

장교들이 미처 어떻게 해 볼 방법도 없었다. 아니, 장교들도 앞을 다투어 도망친다.

결국 자신만만하게 도전했던 그룬발트 기병대는 삽시간에 전장에서 사라져 버렸고, 꼬리가 잘리듯 추격당해 피해를 입었다.

“...상대가 뭘 하려고 했던 것인지 모르겠군. 왜 병력을 산개시켜 놓았던 거지?”

“아군의 표적을 분산시켜 보려고 했던 게 아닐까요?”

“설마 그런 머저리같은 짓을 했으려고···.”

위력 정찰을 위해 경기병 소부대를 이끌고 나온 것은, 다름아닌 엘랑키아 왕실군의 기병 부대장, 디타레 드 카울이었다.

전투 사흘째의 대격전에서, 아군 주력 기사대가 빠져나간 측면을 경기병 부대만을 이끌고 버텨냈었다.

당시 디타레 휘하의 엘랑키아 경기병대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 사실상 뼈를 깎아내며 적의 진격을 막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투가 끝난 후, 지금까지 디타레는 부대 재건 책임을 받아 노력하고 있던 참이었다.

일단 당장 자신을 포함한 핵심 장교들도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고 있었기에, 부상자들의 복귀가 중요했다.

다음으로는 부족하나마 쓸만한 짐말들을 전용해 말을 잃은 기병들을 복귀시키기도 했다.

그간 적극적으로 정찰 차단에 나서지 않은 것은 병력을 보존하는 한편, 혹시라도 엘랑키아 군 기병대가 큰 타격을 입었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렇게 부족하나마 내실을 다지다가 디타레가 경기병을 책임지는 지휘관이자 정찰대장으로서 받은 임무는 이러했다.

‘다음 공세 준비를 위해 적의 정보 수집을 차단하고 전장을 장악하라’

그래서 직접 선발대를 이끌고 양측 사이의 ‘중간 지대’를 탐색하기 위해 나온 것이 오늘로, 하필이면 잔뜩 벼르고 나온 그룬발트 기병대와 조우한 것이었다.

과연 다음 공세는 어디서 시작하게 될지, 그리고 어떤 형태로 전개가 될지.

당연히 총사령부에서 명령이 내려오면 그를 따를 뿐이지만, 나름 충실히 왕실군에서 복무하며 국왕 폐하를 모신 신하 입장에서 기대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지만.

그건 아마도 자신 뿐 아니라, 현재 폴름스 주변에 주둔하고 있는 엘랑키아 군 장교 대부분이 생각하는 것이겠지만.

“그룬발트 기병들은 왜 이렇게 맥을 추지 못할까요?”

돌아오는 아군을 지켜보던 어린 귀족 장교 한 명이 당연한 의문을 가졌고, 다른 장교들이 당연하다는 듯 웃음을 터뜨린다.

현재 엘랑키아 기병이라면 누구나 가질 법한 의문이었다.

그룬발트 제국령을 침공한 이후로, 기병 대 기병 싸움에서는 거의 이겼으며 심지어 불리한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대등하게 싸움을 벌인 것도 아니다. 대부분은 그룬발트 측이 이길 생각은 아예 없다는 듯, 격전이 벌어진 일 조차 거의 없었다.

하지만 단순히 ‘그룬발트 기병은 약하다!’라고 결론 짓고 끝낼 일은 아니다, 라고 디타레는 평소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어린 장교의 말에 진지하게 대답한다.

“겁을 먹고 있는 것이지. 아군 기병대가 이전에 했던 성공과 승리, 그리고 우리 선배들이 했던 과거의 성공과 승리까지. 그게 그림자가 되어 그룬발트 기병대의 눈을 가리고 있다네.”

“그렇다면 만약··· 이를 극복하게 된다면 지금보다 강해질 수도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마도 그렇게 되겠지. 그룬발트 제국 역시, 오랜 군사 귀족의 전통을 가진 대국이다. 언제나 우리가 우위에 있다는 생각은 피하는 게 좋겠지.”

“명심하겠습니다.”

어린 장교의 허투루 듣지 않은 모양인 진지한 대답에, 디타레는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사실, 부하들에게 쉽게 말하기 어려운 디타레만의 걱정도 없지만은 않았다.

엘랑키아 군의 기병대는 여전히 강력하지만, 지난 전투에서 확실히 큰 상처를 입은 것은 사실이다.

기병들도 많이 죽거나 다쳤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말을 잃은 것이 너무 심각한 문제였다.

당연하지만 원정군이 보유한 예비 군마로는 보충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경기병대야 역용마나 승용마 중 쓸만한 말들을 추려 그나마 숫자를 보충했지만, 중무장한 기사를 태울 군마를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그러니 다음 전투에서 투사할 수 있는 전력은 현격히 줄어들 것이다.

바로 이 점이 기병대 장교로서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었다. 오히려 전장에 나서는 것은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그에 비해서, 지난 전투에서 중기병이고 경기병이고 할 것 없이 엘랑키아 기병들이 상대했던 적의 대다수는 기병이 아니라 보병이었다.

그룬발트 기병은 꼴사납게도 제대로 된 교전을 해보기도 전에, ‘최후의 항전’ 따위의 표현을 붙이기도 힘들 정도로 빠르게 도망친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그래서 아마··· 전투가 끝나고 그들을 무사히 수습한다면, 그룬발트 기병이 실질적으로 입은 손해는 그다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아군 기병은 승리했고 대활약했으며 기세를 크게 올렷으나, 실질 전력에서 적지 않은 손해를 입었다.

적군 기병은 패배했고 별다른 활약 없이 기세를 크게 잃었으나, 실질 전력에서는 그다지 큰 손해를 보지 않았다.

이런 격차가 다음 전투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

하지만 불리했던 것으로 따지면, 지난 전투도 엉망진창이었다.

최초 좌측 전장에서 적과 교전했을 때 디타레와 휘하 기병대, 그리고 슈뵈켄 수비대는 적어도 4배의 적과 대치해야 했으니까.

나중에 남쪽에서 급히 왔던 지원군이 아니었다면, 엘랑키아 군의 좌측이 훤히 뚤려 중앙군의 측방을 노출했을지도 모른다.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간담이 서늘해진다.

한편으로는··· 그 최악의 상황에서도 자신을 믿고 맡겨 주었던 총사령관 다고베르 2세 폐하와···.

그리고 그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고 모자란 병력을 쪼개 지원군을 보내 주었던 에트 경에 대해 고마움과 믿음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 열세도 꾸역꾸역 버텨내고 결국 승리를 얻어 냈는데, 어지간히 불리한 상황은 버티기만 하면 결국은 우리가 이기지 않을까.

이런 기묘한 자신감과 신뢰감이 생기고 있던 것이었다.

잠시 상념에 빠져 있었던 그를 부하 장교의 외침이 현실로 돌아오게 한다.

“디타레 경! 추격 나갔던 부대가 돌아왔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우리는 예정된 정찰을 계속한다. 혹시라도 적의 움직임을 놓치지 말도록!”

“알겠습니다!”

걱정해도 해결되는 일은 없었다. 적이 혹시라도 자신감을 되찾지 않도록, 철저하게 밟아주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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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랑키아 국왕, 다고베르 드 팔라스 2세는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주제는 바로, 폴름스의 선제후에게 강화 조건으로서 ‘어떤 요구’를 하느냐에 대한 것이었다.

필요한 것, 요구하고 싶은 것은 잔뜩 있었지만 외교는 장난이 아니다. 원하는 것을 전부 얻을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우선시 해야 할 것인가.

이미 점유하고 있는 영토에 대한 권리와 정통성.

점유하지 못하고 있는 영토에 대한 영유권.

군대를 유지할 수 있는 식량과 화약 등 군수 물자.

마찬가지로 군대를 무장시키는 한편, 적을 약화시킬 무기와 갑주.

황금이나 보석 등 거래가 용이한 재화.

참으로 골치가 아픈 일이다. 일부는 금화로 가치를 예상할 수 있지만, 또 일부는 그러기에는 애매한 점이 있었다.

차라리 다고베르 2세 본인이 직접 회담장에 들어갈 수 있다면, 엘프 선제후와 담판을 지어 결정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이번에 폴름스의 선제후는 철저하게 이번 협상을 비밀리에 비공식적으로 진행하고자 하고 있었다.

실제로 자신들이 손해를 보더라도, 대외적으로는 그렇지 않도록 보이고 싶은 모양이다.

그래서 양측 군주의 의견을 가지고, 약간의 자율권을 가진 사절이 서로 만나 진행하게 된다. 따라서 생각보다 협상이 길고 지루하게 이어질 것도 각오하고 있었다.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시지요. 대신에 우리는 실질적인 부분을 더 뜯어낼 수 있을 겁니다.’

측근들의 의견은 대체로 일치했다. 선제후가 그룬발트 내에서 체면을 차리도록 해 주자.

대신 우리는 팔스부르와 랄렌 강 유역의 권리를 확고히 하고, 주머니에는 그룬발트 금화를 가득 챙겨 엘랑키아로 돌아가면 된다는 것이다.

그것 자체는 다고베르 2세도 크게 불만은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엘프들 사이에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한 도도한 미녀’라는 폴름스 선제후가 패배를 인정하는 꼴을 보고 싶다는 음습한 마음도 없지는 않다.

다만 그만큼 황금을 더 받을 수 있다면 그 쪽을 택해야지.

그런데 대체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는 좀처럼 결정이 되지 않는다.

“흠··· 에트 경이 분명 ‘요정금’ 이라고 했던가···.”

방금 오랜만에 만나 회의를 한 김에, 참모인 트랑카벨의 에트 경에게 문의를 했더니 처음 듣는 이야기를 했었다.

요정금이라니, 그것이 대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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