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537화 (537/556)

48-6. 폴름스 전투, 임시 휴전

자신이 찾아다니던 스승님의 제자, 즉 옛 동문에 대한 질문.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나?”

“엘랑키아 국왕의 인정을 받는 용병대장이 있다는 소문 자체는 원래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휴전 협정을 위해 적진을 방문했던 사절이 신기한 말을 하더군요.”

“어떤 말 말인가?”

“엘랑키아 국왕이 조언자로 동행한 인물이, 아무리 봐도 엘랑키아 귀족이 아닌, 용병 지휘관으로 보였다는 것입니다. 실제로도 소개를 할 때 작위를 언급하지 않았고요.”

“흐음···.”

“그래서··· 제 짧은 생각으로는, 통상적으로 용병을 신임하지 않는 엘랑키아 왕국에서 이 정도의 지위를 보장받을 정도의 인물이라면 혹시···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플로리안의 대답을 들은 만프레트는 잠시 고민하는 듯 했다.

무언가를 숨기거나,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당황한 눈치는 아니다.

오히려 자신도 부분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을 신뢰하는 후배이자 동료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한 모습이다.

“거기에 대해서는, 나 역시도 확실치 않은 부분이 있어서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군.”

“혹시 말씀하시기 곤란하신 이야기라면···.”

“음, 아닐세. 자이트리츠 전쟁관과 관련된 이야기이고, 자네라면 알고 있는 게 좋겠지. 먼저 옛날 이야기를 조금 해야겠군.”

자이트리츠 전쟁관은 오랜 기간 번성하고 있는 가문이자 사업이었지만, 그 긴 역사 동안 부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연이은 패배로 전쟁관 출신 참모들의 자질을 믿을 수 없다며 고용주들에게 외면당해 몰락했던 시기도 있었고.

충분히 기량과 재능을 가진 참모들을 양성하지 못해 전쟁관이 존립 위기에 처한 것도 그다지 오래 전의 일은 아니다.

오히려 한동안 ‘암흑기’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던 시절 얼마 전이었으며, 만프레트가 그 끝낸 세대의 멤버 중 하나였으니까.

플로리안은 상대적으로 풍족했고 교육도 잘 받을 수 있었던 그 다음 세대였다.

하지만 그 세대의 차이 때문에, 플로리안이 모르는 것이 많았다. 예를 들자면, 만프레트가 간혹 신경을 쓰는 것으로 보이는 ‘스승’과 ‘동문’에 대한 내용처럼 말이다.

“플로리안, 자네도 알겠지. 당시 전쟁관은 지금보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대외적으로 명성은 실추되고, 고용주들은 과연 우리 가문을 믿을 수 있을지 확신을 못 해 고용을 꺼리고 있었지.”

“유년 교육 시절이라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확실히 지금과 비교하면 어려웠던 것은 기억에 남습니다. 일단··· 식사가요.”

힘든 시절을 기억하는 만큼, 플로리안에게 만프레트는 존경하는 선배이자 교관, 각별한 가문의 어른이기도 하다.

“당시 가주께서는 그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교관으로 ‘전설’을 초빙하고자 하셨다.”

“전설이요? 설마···.”

“그 설마가 맞겠지. 비젤키르헨의 세델레네 공, 바로 암월의 검희. 나의 스승님이었다.”

“하지만 암월··· 세델레네 공은 돈을 얼마를 준다 해도, 어떤 대가를 지불한다 해도 초빙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고 하지 않습니까?”

당시 아직 어렸던 플로리안으로서는, 자신이 아침 부터 저녁까지 ‘교육을 받을 가치가 있는 후보의 예비’가 되기 위해 교육을 받던 시절에 그 전설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높은 산맥 중턱에 있는 데다가, 정식 참모가 되기 전까지는 행동할 수 있는 구역이 엄격히 제한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물론 스승께서는 어떤 이유로도, 특히 황금이나 이권 따위로는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다. 비젤키르헨 선제후령의 장로를 맡고 계신 몸이기도 하고.”

“예··· 저도 그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세대에게는··· 뭐랄까, 한 번도 함께 해본 적이 없어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인지 실감이 잘 가지 않는군요.”

“하하, 그럴 수 있겠지.”

언제나 진중함을 잃지 않는 만프레트가 그 말을 듣더니 드물게도 소리 내어 웃는다.

아마도 그에게는, 상당히 오래된 스승과의 기억이 아주 소중했던 시간으로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스승님께서는 그 당시도, 지금도 활동하고 계신다네. 다만 비젤키르헨 선제후령의 고문으로 계시다 보니, 우리와 같은 용병들 처럼 아무 전장에서나 참가하실 수 없는 것이지.”

“그렇군요··· 물랐습니다.”

“게다가 절대로 자신의 전공을 내세우지도 않으시며, 승리로 자기 역할이 끝나면 바로 떠나시는 바람과도 같은 분이시라··· 나 역시 스승님의 활약은 풍문으로나 들을 뿐이지.”

자이트리츠 전쟁관에게 있어, 전쟁 참가는 당연하지만 비지니스의 일부이다.

그런 만큼 공훈을 인정받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보통 승리시 약속받았던 다양한 추가 보상, 예를 들면 전쟁 배상금의 일부에 해당하는 엄청난 황금이나 영지 따위는 잊혀지는 경우가 많지만 ‘명예’는 그렇지 않았다.

전쟁을 이끈 참모로서 고용주에게 인정받는 것은 ‘전쟁관’의 위상을 유지하는 데도, 개인의 커리어를 인정받는 데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싸울 장소를 찾아 전 대륙을 떠돌아 다니는 용병들이 고용주 귀족이나 연대장에게 받은 감사장과 공훈 확인서를 소중하게 품고 다니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니··· 마치 확인되지 않은 환상의 동물처럼, 소식은 끊임없이 전해지지만 그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리라.

“하지만··· 어째서 그런 행동을 하시는 겁니까? 그 스승님, 세델레네 공 께서는요?”

“워낙 언행이 특이한 분이시라 나도 잘은 모르겠네. 다만 비젤키르헨 선제후령을 위한 활동일 것으로 믿고 있네. 때문에 그룬발트 제국에 해가 되는 행동은 하지 않으시지.”

이 말을 들은 플로리안은, ‘그렇다면 미증유의 위기인 이번 엘랑키아 왕국의 침공은 왜 돕지 않느냐’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로 그런 대단한 인물이라면, 기꺼이 모시면서 승리로 향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아마도 자네는, 그런데 왜 이번 전쟁은 도와주지 않느냐는 의문이 드는 모양이군.”

“예··· 실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차마 입 밖으로 내기에는 부끄러운 내용이라 생각했었는데, 얼굴로는 티가 많이 난 모양이다.

“그건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 이번 전쟁을 후원하는 선제후들은, 비젤키르헨과 파벌이 다르기도 하고.”

듣고 보니 그 말 대로였다.

카젤하겐을 주축으로 디오보르크 공작을 지지하는 여섯 선제후와, 폴름스의 선제후는 서로 적대하는 파벌이며, 둘 중 어느 누구도 비젤키르헨과는 우호 관계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 제국 전역에서 모인 대군의 지휘권을 세델레네 공이 잡는다면··· 실질적인 효율이야 어떻든 다소 애매한 상황이 될 수는 있었다.

확실히··· 명분만 따지는 것은 패착이 되나, 때로는 실리만 챙길 수는 없는 법이니까.

“또한, 이는 내 개인적인 추측에 불과하지만··· 스승님께서는 이번 전쟁을 그렇게까지 큰 위기로 생각하고 계시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

“서, 설마··· 만프레트 경, 엘랑키아의 6만을 넘는 대군이 위기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겁니까?”

“물론, 그 병력은 큰 위협이긴 하다. 그러나 그게 비젤키르헨 선제후령이나, 신성 그룬발트 제국 전체에 위협이 될 침공인지는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겠지.”

만프레트의 의도는 이러했다.

엘랑키아의 대군은 분명 위협적이다. 하지만 그들이 바라는 것은 제국 전체의 정복이나 파괴, 약탈이 아닐 것이라는 이야기다.

설령 폴름스가 함락이 된들, 선제후령 전체가 엘랑키아 왕국에 귀속이 될까?

플로리안이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지는 않다. 아무리 무력으로 땅을 정복한다 해도,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을 지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6만 대군으로 침공을 했다 한들, 그 병력을 계속 주둔시켜 점령지를 유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다면, 기껏해야 폴름스 선제후령 중 랄렌 강 주변인 변경 영토 일부를 할양 당하는 정도로 끝나겠지.

현실적으로 엘랑키아 국왕이 그 이상을 바란다면, 이는 분명 엘랑키아 왕국의 몰락으로 이어 질 것이다. 그것 하나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잠깐··· 그렇게 생각하니···.

그렇다면 굳이 엘랑키아의 침공을 대군을 동원해 막을 필요까지도 없는 것 아닐까?

어쩌면··· 오히려 이번 전쟁은 아군 측의, 디오보르크 공작과 그를 후원하는 세력들이 가장 원했던 ‘기회’인 것은 아닐까?

심지어 그런 생각이 들자, 플로리안은 괜히 마음이 불편해졌다.

“...만프레트 경의 말씀이 맞습니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군요.”

“물론 우리는 참모의 역할을 대리할 뿐, 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끝내는 것도 폰 자이트리츠의 역할은 아니지만 말이지.”

“예. 그걸 잊으면 안 되겠지요.”

자이트리츠 전쟁관의 역할은 고용주의 전쟁을 대신 해 주는 것.

본질적으로 품삯을 받고 무너진 담벼락을 고치는 조적공이나, 고용주의 취향에 맞는 그림을 그려주는 화가가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원래 이야기에서 너무 멀리까지 왔군. 자네가 궁금한 것은 스승님과, 그 이름 모를 제자에 대한 이야기겠지?”

“아, 맞습니다 만프레트 경. 무례한 질문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어느 날, 세델레네 공, 스승님께서 전쟁관에 도착하셨지. 어떤 계약이나 대가가 있었는지는 모르네. 다만 내가 추측하기로는 폰 자이트리츠가 오랜 세월 수집하고 정리한 군사 도서관을 공유하기로 했던 게 아닌가 싶네.”

“...세델레네 공이 호기심을 가질 만 한 도서관이라. 자부심을 가져도 되겠습니다.”

특히나 플로리안은 보좌 참모 시절, 도서관의 관리를 맡은 적이 있었다.

역사서. 병법서. 훈련교본.

제국재상이 쓴 비망록. 종군사제의 일기장.

고명한 전역의 작전 지도. 함락 직전의 성주가 보낸 구원 요청. 어느 공작령의 모든 청년을 징발하는 징집령.

수백 년 전 그룬발트에서 활동했던 어느 연대의 무기 납품 계약서. 주디칼리에서 용맹히 싸웠던 하급 용병이 공을 세워 받은 감사장.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종다양한 서적과 자료들이 망라되어 있는 위대한 군사 학술의 장.

그중 몇몇의 출처는,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고대 아란 제국 시절에 만들어진 행정 문서라고도 한다.

이것들을 모두 실물로 확인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자이트리츠 전쟁관의 군사 도서관이었다.

“스승님께서는 도서관에 많은 관심을 가지셨다네. 그리고 그러지 않은 동안에는 우리를 가르치셨지.”

“어, 어떤 식으로 가르치셨습니까?”

“매번 달랐네. 전쟁관 강의나, 보좌 참모끼리 진행하는 전략 토론 수업을 한켠에서 조용히 들으시다가 생각났다는 듯 한 마디씩 조언을 하시기도 했고.”

만프레트는 당시가 상당히 즐거웠다는 듯, 턱수염을 문지르다가 말을 이어간다.

“모두가 집중했던 것은, 우리 중 몇 명을 불러 진행하는 전술전략 수업, 옛 전투의 복기였지.”

“복기라면··· 전투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재구성하는 것 말입니까? 그게 어떤 점이 대단했습니까?”

“바로 당시 전역을 지휘했던 당사자가, 본인의 판단과 감정을 설명해주는 데 대단하지 않았겠나?”

“허어··· 그건 좀··· 정말로 부럽게 느껴집니다.”

인간과는 비교도 불가능할 정도로 긴 삶을 살며, 무한에 가깝게 경험과 지식을 쌓을 기회를 가진 축복받은 고대 혈족 엘프만이 가능한 수업이었다.

전투의 복기와 병행되는 전술의 토론은 전쟁관 참모라면 적어도 수십 번은 반복해서 진행하는 기본 중의 기본.

때로는 며칠 동안 잠을 줄여가며 계속되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는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

만약에 이랬다면 어땠을까?

이 시점에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을까?

전쟁관 최고의 두뇌를 가진 교관과 생도들이 모여, 온갖 자료를 산처럼 쌓아놓고 당시의 상황을 낱낱이 해부하듯 분석한다.

하지만 필경에는 오래 전 벌어졌던 전투. 고증을 바탕한 추측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한다.

그런데 그걸··· 직접 전투에 참전했던, 그것도 사령관으로서 이끌었던 이의 관점에서 볼 수 있다니.

전쟁과 전투를 업으로 삼는 전쟁관의 일원으로서 그 이상의 가치는, 쾌락은 찾기 어려우리라.

“매번 불려가는 자들의 숫자는 줄어들었지만, 스승님께서는 다른 자들도 자신의 강의를 듣는 걸 꺼려 하시지는 않았지.”

“저도 조금만 더 나이가 많았더라면 들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불려가는 이름은 나 혼자가 되었다.”

만프레트의 말투는 평소와 거의 같았으나, 숨길 수 없는 자부심과 기쁨이 느껴졌다.

경쟁을 거듭하며 엘리트들만이 모인 전쟁관에서, 전설속의 전략가 세델레네 공에게 ‘유일한 제자’로 간택되었을 때의 기쁨 말이다.

하지만 플로리안도 그 후의 일은 알고 있다.

갑작스럽게 세델레네 공은 제자를 두고 떠나, 소식마저 끊기게 된다.

대체 당시 전쟁관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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