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520화 (520/556)

47-55. 폴름스 전투, 셋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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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라면 양 측의 보병 부대가 스쳐 지나가게 되는 상황.

당연히 최전선에서는 혼란에 빠졌다.

“이거, 이거 어떻게 해야합니까? 이대로라면 적과 지나치게 됩니다.”

“위에서는 특별한 지시가 없었다. 이대로 ‘정면으로’ 진격하라는 말 외에는.”

“이대로는··· 전방과 후방이 바뀌게 되는데 괜찮겠습니까···.”

“지휘부에 다시 전령을 보내 의향을 물어보긴 하겠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명령대로 진행하도록.”

“알겠습니다, 백작님.”

직접 둘로 나뉜 보병 연대 중 하나를 지휘하고 있던 펠쿠트 벨톤 폰 비덴누벨 백작은 가문을 오래 섬겨온 베테랑 가신을 설득하면서도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보병 연대가 사각 대형을 갖춰 전방위에 대한 방어력을 갖춘다고 한들 이는 권장되는 상황은 아니다.

명확한 전선을 그어 최전방을 안정시키고 한 방향으로 연대가 가진 모든 화력을 투사하는 것이 당연히 유리하기 때문이다.

물론 기병이 갑자기 침투하는 등, 불가피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예외상황일 뿐이다.

하지만 기병이 아닌, 대열을 갖춘 보병이 측방 혹은 후방에 오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다.

이 때문에 휘하 장교들이 신경이 곤두서 있는 게 느껴진다.

상식적이라면, 지금처럼 부대가 지나칠 상황이라면 방향을 바꿔 서로 정면을 마주볼 수 있도록 하는 게 당연할 것이다.

혹은 그냥 이동을 멈추고 자연스럽게 적의 공격을 기다리거나 말이다.

뻐엉! 쾅! 퍼억, 퍽!

“으아아악!”

“커억!”

멀리 적 후방에서 발사한 포탄이 다시 대열을 휩쓸고 사상자가 발생한다. 많은 숫자는 아니더라도 가뜩이나 지친 병사들의 스트레스는 심해질 것이다.

펠쿠트 백작의 휘하에도 총 4문, 좌우 부대에 절반씩 각 2문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아직 사용은 하지 않고 있었다.

이 정도 거리에서 적 포병을 저격하는 건 가능성도 높지 않을 뿐더러 사격각도 나오지 않으니 가까운 거리에서 보병을 쏘는 게 나았다.

전투 시작 시점에서는 훨씬 많은 포병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빌어먹을 엘랑키아 기병 놈들이 어찌나 쑤시고 다니는지 포대 대부분을 잃고 말았다.

분하지만, 오늘 전투의 전반부는 고통스러운 패배의 연속이었으니까.

“백작님, 곧 엘랑키아 군이 사거리에 들어옵니다. 어떻게 할까요?”

“흠···.”

잠시 망설였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사격전을 위해서는 당연히 서로 넓은 면을 마주하고 화력을 투사해야 하는데, 보다 좁은 측면을 마주하는 이상한 상황.

하지만 기세 때문에라도, 적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라도 공격을 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중대장 판단에 따라 사격을 허가한다.”

“옛,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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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상황에 혼란에 빠진 것은 엘랑키아 군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중대장이 보낸 전령들이 주변을 오가며 소식을 전하거나 명령을 확인하고 있었고, 당황한 전방 장교들도 명령을 되묻는 등 전투를 앞두고 난리통이었다.

하지만 그나마 나은 점이 있었으니, 바로 이 난리통에도 확신을 가진 지휘관이 있었다는 것이다.

“진정하세요, 야로스. 콘도티에레 휘하에서 겪어 본 일이잖아요?”

“하지만 그때는 아군이 슈토르히였고 지금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보다 콘도티에레가 이 자리에 없는 게 더 큰 문제가 아닌가요?”

“허어, 그 생각을 못했군요!”

예전 슈토르히 시절 선임 중대장과 소대장이었던 두 사람은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대화를 나누면서도 몸은 쉬지 않고 있었다.

길게 전선을 이룬, 창병과 총병이 섞인 보병 부대가 천천히 전진하는 사이, 그 뒤에서 열심히 포대를 옮기고 있었던 것이다.

화포 자체도 기본적으로 옮겨가며 쓰는 용도는 아닐 뿐더러, 장전과 발사에 필요한 각종 장비와 포를 식히기 위한 물통, 만만찮게 무겁고 부피도 큰 화약과 포탄을 실은 수레까지.

아무리 공병대의 지원을 받는다 한들 모든걸 인력으로 옮겨야 하는 상황에서 쉬운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포대 전체를 한쪽으로 옮겨도 되는 것입니까?”

“글쎄요오··· 그 부분은 확신은 없네요.”

“하필 왼쪽 오른쪽 중 왼쪽에 몰아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른쪽 적이 더 강해보였어요!”

“아하···.”

제한된 화력을 강한 적과 약한 적, 어느 쪽에 먼저 사용할 것인가는 예민한 문제이다.

그 중 첼레스티나는 약한 적을 먼저 제압해 적의 한쪽 날개를 무너뜨리기로 판단한 모양이었다.

야로스는 이의가 없었다. 아니, 반대편인 더 강한 쪽을 먼저 때리거나, 절반씩 나누어 양쪽을 동시에 때린다고 한들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만큼 총포화 활용 차원에 대해서는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말 그대로 깊은 신뢰이다.

슈토르히에서 보고 경험한 것은 항상 우세한 적이 간발의 차이로 큰 피해를 입고 쫓겨나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니 부디 이번에도 그렇게 되기를.

“저기 깃발이 기준 위치예요! 거기서부터 오른편으로 비스듬하고, 네에, 그렇게요!”

물론 그녀의 지휘와 사격 통제에 강한 인상을 받았던 것은 다른 포수들도 마찬가지였는지, 중노동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평소와 달리 화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 비스듬하게 배치한다. 또한 자폭에 대비해 포 사이에 안전 간격을 두는 원칙도 이번만은 지키지 않는다.

일정 수준 이상의 화력을 동시에 투사하기 위해서 몇 미터씩 밀었다 당겼다 고생하고 있었지만, 오늘 짧고 굵은 포수들도 알고 있었다.

지금 하는 일이 자신들의 목숨, 그리고 전투의 승패를 결정적으로 가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대로 보병 대열이 스쳐 지나가게 되면, 우리 포대는 적 측면을 노릴 기회가 분명 올 거예요. 그 때가 사격 타이밍이에요.”

이론은 몰라도 실전 경험은 나름대로 갖춘 야로스가 듣고 나니 그럴듯했다.

대열이 종으로 얕아지고 횡으로 길어지는 이유는, 화력과 전술이 발전하면서 같은 병력으로 넓은 영역을 장악하고 효율적으로 화력을 투사하기 위해서이다.

거기에 한가지 이유가 더 있으니, 포격에 의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이다.

적절하게 조준된 포탄이 보병 대열에 떨어지면 한 줄을 쓸어 버린다 가정한다.

만약에 100명의 4열 횡대로 늘어설 경우, 정면에서 발사된 한 발의 포탄은 4명의 보병을 쓰러뜨린다.

하지만 10열 횡대인 경우, 같은 조건에서 한 발의 포탄은 10명의 보병을 쓰러뜨리게 된다.

이 때문에 포병을 상대할 경우는 가급적 얕은 대열을 유지하려고 하나, 이 경우 또 기병을 상대로 약점을 보이게 되니 각 병과가 협력하여 약점을 보완하는 게 필요해지는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얕은 종심을 가진 진형에 치명적인 약점이 존재하는데···.

바로 측면에서 포탄을 쏘는 것이다.

이 경우 종대와 횡대가 반대가 되므로, 4X25 대열의 경우 이론상 한 발에 무려 25명이 나가떨어지게 된다.

물론 포탄이 튀는 각도나 위력의 약화 등 변수에 의해 예상만큼 잘 되진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포탄에 측면에서 쓸고 지나간다는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문제는 이럴 기회가 잘 없다는 것이다.

어떤 바보가, 뻔히 약점인 것을 알면서 측면을 보여주겠는가.

하물며 포병이 아니라 보병이든 기병이든 측면을 잡았다는 것 부터가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보병이나 기병은 부대 자체가 움직이는 기동성이라도 있지, 기본적으로 붙박이 상태로 포탄이나 날리는 게 본업인 포병은 그럴 일도 없다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가능할지도 모른다. 양측 보병이 지나치면서 서로 측면을 보이게 되기 때문이다.

“준비 완료 됐습니다!”

“네에, 잠시 기다리죠! 명령 없이는 절대 발사 금지!”

“옛!”

모두가 긴장한 상황. 양측의 보병들이 서서히 지나치려 하고 있었다.

탕! 타탕! 탕!

따당! 탕!

산발적으로 총소리가 들린다. 양쪽의 모서리가 서로 사격 범위에 들어오면서 외곽을 지키던 선발 사수들이 서로 총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진짜 기묘한 광경이었다. 연대급이 보병 부대가 서로 접근은 하지만, 교전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인.

“어어어, 보, 보인다! 적이 보입니다!”

“아직이에요!”

아군 보병 대열의 좌측 끝이 전진하면서 점점 멀어져 가고···.

대신 적 보병 대열의 끄트머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죽을 고생을 하며 포를 옮기고 방열하면서 노리고자 했던, 적군의 측면이 보이기 시작한다.

“조금만, 조금만 더 틀자···.”

“자, 하나 둘! 으쌰!”

이제 뜨겁게 달궈진 철사를 점화구에 꽂기만 하면 발사되는 상황에서, 명령이 내려오기 직전까지도 포수들은 정밀하게 조준을 한다.

포신과 수평이 되도록 무릎을 꿇거나, 반쯤 엎드리는 자세를 취하면서까지. 마치 다음 발사되는 포탄에 영혼이라도 거는 것처럼.

아니, 어떤 면에서는 거기 목숨이 달려 있으니, 영혼을 건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겠다.

첼레스티나 역시, 흙바닥에 양쪽 무릎을 대고 최후의 최후까지 각도를 살핀다.

아군 보병의 후열이 멀어져가고, 적 보병의 후열이 눈에 들어올 무렵···.

“1번 포부터, 발사!”

첼레스티나의 날카로운 외침과 거의 동시에, 뜨거운 철사가 점화구 안에 가득한 화약에 불을 붙인다.

통상적인 개인 화기용에 비해 입자가 거친 화약에 불이 붙자, 순차적으로 폭발이 일어나고 그렇게 발생한 압력이 쇠구슬을 밀어 올린다.

뻐엉!

눈으로는 확인도 할 수 없는 속도로 발사된 포탄은 포구에서 화염과 함께 토해지자마자 거의 수평으로 뻗어 나가서는, 정확히 표적인 그룬발트 보병 대열에서 2미터 정도 떨어진 위치에서 한 번 튕겼다.

바닥에 시커먼 그을음 자국을 남기며 튕겨 나간 쇠구슬이 처음 부순 것은, 한쪽 모서리를 지키고 있던 전방 부사관의 정강이였다.

비스듬한 측면에서 날아왔기에, 희생자는 자신이 포탄에 맞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충격과 고통보다 균형을 잃어버렸다는 당황함이 먼저 느껴질 정도였다.

그 몸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그대로 뻗어나간 포탄은 다음 병사의 갑옷 허벅지 받이와 허벅지 뼈를 동시에 산산조각냈다.

그렇게 강철과 섬유, 살덩어리와 뼈가 뒤섞인 덩어리를 만들어낸 직후, 궤도를 조금 틀어 다음 희생자의 흉갑을 눌러 부순다.

그 시점에야 비로소, 그룬발트 보병 대열은 자신들이 포격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거의 동시에, 9번 포에서 발사한 두 번째 포탄이 대열을 찢어버리기 시작했다.

뻥! 뻥! 퍼엉! 뻐벙!

화포가 연이어 포탄을 뱉어내며 뒤로 밀려난다. 그럼 포수들은 기다렸다는 듯, 아직 뜨거운 포신을 원래대로 되돌리고 재장전을 시작한다.

물에 적신 털뭉치로 포신 내부를 문질러 그을음을 닦아내고 열기를 식히는 것이다.

이번에는 세 발 분량의 포탄과 화약을 미리 꺼내놓고 대기하고 있었다.

포구 청소가 끝나자마자 이번에는 화약을 다져 넣고, 장전봉이 포구를 빠져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다음 포탄을 밀어 넣는다.

숙련된 소구경 포의 재장전은 통상적인 총병의 화승총 재장전 속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더 빠를 때도 있었다.

“장전완료! 어··· 으어···.”

정신없이 장전봉을 꺼내고 장전 완료를 외치던 포수가 괴상한 신음소리를 낸다.

그제서야 ‘자신들의 전과’를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비스듬한 측면으로부터 터지듯이 연달아 포격을 당한 그룬발트 대열은 한쪽 날개가 완전히 꺾여있었다.

눈으로 대충 보기에만 수십 명이 누워 있었고, 서 있는 경우에도 상태가 많이 좋지 않아 보였다.

엎드리거나 쪼그린 자세로 엉금엉금 움직이거나 절규하는 경우도 있었고, 화가 난 듯 이쪽을 향해 뭔가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더 두려운 것은, 포탄이 훑고 지나가며 ‘만들어낸’ 소름끼치는 부산물들이 허공으로 날아 올라 떨어지면서 내는 후두둑 소리가 여기까지도 들렸다는 것이다.

“서둘러! 장전! 장전!”

팟! 파팟! 피잉!

“아앗! 적이 쏜다!”

“겁 먹지 마! 아직 거리가 멀다!”

적 총탄이 날아온다는 것을 확인하자 모두 어깨를 움츠리기는 했으나 장전을 멈추지 않는다.

좀 전이 짧지만 격렬했던 전투 경험을 통해 빨리 다음까지 장전해서 쏴버리는 것이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 라고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쏴라!”

뻐엉!

다음 포탄도 아주 정확한 조준이었다.

이쪽을 향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던 장교의 머리를 터뜨려 버렸다.

투구에 둘러져 있던 붉은색 리본이 투구 안쪽에서 튀어나온 붉은 색의 뭔가와 뒤섞여서는 너울거리며 떨어져 내린다.

주변에서 명령에 따라 반격하던 사수들은 붉고 허옇고 질척질척한 것들이 자신에게 튀자 악마라도 본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 광경을 복잡한 심경을 지켜보던 포수는 심상치 않은 무언가를 발견한다. 어린 포수의 찢어지는 목소리가 포격과 재장전으로 후끈 달아오른 포대에 울려 퍼진다.

“적의 대포! 적이 대포를 끌고 왔습니다!”

첼레스티나와 포술장, 다른 포수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선제 공격은 성공했고, 충분한 효과도 봤다. 그렇다고 적을 전멸시키거나 질서를 붕괴시킨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화력이 아무리 충분해도 충분하지 못하다는 말은 진리인 모양이다.

마지막 세번째 포탄을 쏘기 전에, 이쪽이 얻어 맞을 차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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