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508화 (475/556)

47-43. 폴름스 전투, 셋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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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인원이 얼마나 되지?”

디타레 드 카울은 무거운 목소리로 휘하 기병 장교들에게 묻는다. 목소리가 무거운 이유는··· 대충 보아도 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240명 정도입니다. 사람이 상하거나 말이 상해서··· 만약 다음에 출격을 한다면 200명 정도를 잡을 수 있을것 같습니다···.”

대답하는 휘하 중대장의 얼굴에는 울 것 같은 표정이 어려있다.

예상보다도 수가 더 적었다. 디타레는 잠시 눈을 감았다. 마치 이 참혹한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듯 말이다.

괴롭지만 필요한 싸움이었고, 필요한 희생이었다.

그들이 끊임 없이 적을 괴롭히며 사선을 넘었던 덕분에 아직 호각으로 싸울 수 있다.

지금 그들이 피신해 있는 장소, 남부 전선으로 부터 지원 온 병력이 진형을 펼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허나··· 자신이 최선의 선택을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그의 부대는 붕괴되었으며, 간발의 차이로 온 지원이 아니었다면 정말로 전멸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낙오된 병력들이 조금씩 합류하고 있습니다. 군마들의 체력이 좀 회복되면, 전령을 보내서 다른 분견대에도 합류를 요청할 생각입니다.”

“그렇군··· 그게 좋겠군.”

울 것 같던 고참 중대장의 얼굴에는 다시 희망의 빛이 보였다.

디타레 역시 다소 우울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생각에 동의했다.

하지만 그건 희망을 찾은 자의 미소는 아니었다.

오히려 자부심 강한 근위기병대의 지휘관으로서, 마지막 싸움 정도는 다 함께, 후회 없는 돌격으로 마무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럼 부대를 부탁하겠네. 이 부대의 지휘관을 만나지 않을 수 없겠지.”

“옛, 다녀오십시오!”

디타레는 지친채로 휴식하는 부하들을 남겨놓고, 몸을 돌려 이 작은 방어 진지의 한 가운데로 이동한다.

쾅! 콰쾅!

타타타타탕! 타타탕!

사방에서 요란한 총성과 포성, 고함과 비명이 울린다. 거듭해서 몰려드는 적을 상대로 전투가 계속되고 있었다.

그가 희망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사방에서’ 적이 몰려들고 있다.

수레로 울타리를 짜 버티는 이 작은 방어 진지로 말이다.

그들의 역할은 본질적으로 디타레가 이끌었던 경기병 분견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병력으로 압도적인 그룬발트 대군을 상대로 시간을 끈다.

수적으로 압도적으로 불리한 엘랑키아 군이 이기려면 이렇게 하는 수 밖에 없다.

특정 전선에서 전력 우위에 서려면, 다른 전선에서는 병력이 빠질 수박에 없다.

모든 전선에 병력을 균일하게 배치해봤자, 어떤 승리의 희망도 없이 천천히 무너져 갈 뿐일 테니 말이다.

그런 만큼 이 손바닥만한 부대가 할 수 있는 일은··· 조만간 한계에 봉착할 것이다.

물론, 디타레는 기꺼이 그들과 함께 할 것이다. 이들을 방패막이로 세우고 기동성을 활용해 도망친다는 생각 따위는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 번 더 싸울 자리를 얻은 것 같아 기쁠 따름이었다.

부디, 그것이 다고베르 2세 폐하의 승리로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진형 한가운데서 어떻게 연락 장교를 찾아 지휘관을 만나고 싶다고 하자, 젊은 연락 장교는 디타레를 이끌고 그를 전방으로 데리고 갔다.

역시나, 절망적인 상황을 맞아 지휘관은 진두 지휘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측부터, 신호에 따라 발사하고 다음 포는 3초 후에 발사해요옷!”

“옛, 알겠습니다!”

“그럼 모두 전방으로! 힘내요!”

“옛!”

“갑시다아!”

그가 안내된 곳은, 최전방의 뒤집힌 수레 방어선에서 후방으로 몇 미터 떨어진 곳으로, 생전 처음 보는 거대한 화포가 3문 있는 장소였다.

물론 근위기병대 소속으로 이번 원정군에는 엘랑키아 역사상 가장 거대한 공성포가 투입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다.

포 한 문에 무려 여섯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달라붙어서는 전방으로 옮기고 있었다. 아마도 후방에서 장전을 한 후 전방으로 끌고 가는 모양이었다.

“자··· 준비! 준비이!”

“먼저 쏘지 마!”

엘랑키아 전군에서 기동성이 가장 뛰어난 기병대 지휘관으로서, 이렇게 포대 가까이에 서는 것이 처음인 것 같다.

호기심을 느낀 디타레는 그들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엘랑키아의 기사, 그것도 그 정점에 가장 가까운 인간 중 하나로서, 아무래도 기병 이외의 병과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었다.

“쏴라!”

“쏴라아아!”

투쾅!

“크윽!”

가장 오른편의 포가 발사되었다. 어찌나 소리가 크고 폭압의 여파로 돌풍이 몰아치는지, 하마터면 뒤로 넘어갈 뻔 했다.

마치 폭풍 속에 있는 것처럼 망토가 뒤로 휘날렸다. 혹시 발사가 잘못되어 대포가 폭발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쏴!”

투쾅!

“쏴라아아아!”

꽈광!

몇 초 정도 간격을 두고 세 문의 포가 모두 발사되었다.

그 직후 포수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연기가 피어 오르는 육중한 포를 끌고 후방으로 이동한다.

“좌, 후퇴, 후퇴!”

“서둘러! 양동이 준비해!”

“예엡!”

엄청나가 거대해서, 포수가 점화하려면 어깨 위로 손을 들어야 할 정도로 거포이다.

당연히 매우 무거울 것이다.모두가 헐떡대면서도, 탄약 찌꺼기로 새카맣게 변한 얼굴에서는 기묘한 희열까지 느껴진다.

그래서 그 세 문의 연이은 포격이 어떤 위력을 발휘했는지 궁금했다.

다음 순간, 디타레는 흐읍, 하고 숨을 들이쉬다가 너무 놀라서 멈추고 말았다. 대략 화승총 사거리까지 들어온 적 대열에 시뻘건 구멍이 세 개 뚫려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아무리 사람이 머리를 들이밀어 안을 살펴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대포라 할지라도··· 저런 위력은 들은 적도 본 적도 없었다.

대체 무엇을 쐈길래 저런 장면이 나왔는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만약 ‘저런 게’ 적 부대 부근에서 기동 중인 기병대에 떨어진다면···.

“첼레스티나 부관님! 다른 부대에서 손님이 오셨습니다!”

“네에? 손님이요?”

연락 장교가 안내한 상대는, 키는 큰 편이지만 포수들 사이에서 가장 호리호리한 여자 용병이었다.

다른 포수들처럼 얼굴이 온통 검댕으로 엉망이었지만, 디타레는 그녀가 누군지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이번 원정을 떠난 이후로도 사령부에서 몇 번 지나친 적이 있지만, 라솔 왕국과의 생뢰르반 전투 직후 만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분명, 왜인지 폐하께서 매우 신임하는 용병 지휘관의 측근이었다. 허나 그녀가 방어선을 책임지고 지휘하는 것은 의외였다.

“아! 디타레 경이시죠?”

“그렇습니다, 첼레스티나 경.”

그녀 역시 디타레를 알아보는 모양이었다.

“후방으로 합류하셨다는 말은 티테니아 경이 보낸 전령에게 들었어요! 무사하셔서 다행이네요오!”

“전장 한 가운데에서 쉼터를 제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부하들이 흩어진 병력을 규합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조금만 더 쉬면 다시 기병대로서 활동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네에, 정말 반가운 소리네요! 국왕 폐하의 기사님들이 도와주신다면 정말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국왕 폐하의 기사’라는 말을 들었을 때 디타레는 왠지 울컥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 단어가 잠시 흔들리고 있었던 근위기사의 자존심에 다시 불을 붙였다. 가슴과 얼굴이 뜨거워졌다.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맡겨 주십시오.”

“네에, 혹시 필요하신 게 있나요?”

“저희가 전투를 거듭하면서 창과 탄약을 거의 소모한 상황입니다. 탄약을 조금 받을 수 있을까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상대가 보병이든 기병이든 격돌 순간에 장전된 권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특히나 그 기병이 전투 중에 자유롭게 무기를 바꿔 쓸 정도로 숙련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말이다.

물론 디타레의 근위기병들은 이 분야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로 전문가들이었다.

“네에, 보병용의 탄약이기는 하지만, 지빌링엔 반연대가 아우페브라즈에서 오면서 예비 탄약을 가져왔으니 나눠 드릴 수 있을것 같아요. 사람을 보내 불출하라고 할게요.”

“감사합니다, 첼레스티나 경.”

그녀는 말이 끝나자마자, 디타레를 안내해온 연락 장교에게 지시해 탄약 보급을 지시했다.

필요한 것은 받았다. 하지만 돌아가기에 앞서 묻고 싶은 게 있었다.

“저, 그런데 아까 대포로 무엇을 쏜 것입니까? 적진 상황이···.”

“네에! 산탄을 쏘고 싶었는데, 적합한 탄환이 없어서 더 작은 구경의 포탄을 넣고 쐈어요! 사람은 뼈가 꺾이면 마음도 꺾이게 마련이니까요?”

“허어···.”

뭔가 예쁘장한 얼굴과 사근사근한 말투에 어울리지 않는 소름끼치는 표현이었다.

그러고보니 주변에는 거대한 공성포에는 어울리지 않는, 달걀 정도 크기의 쇠구슬이 잔뜩 굴러다니는 통이 몇 개나 있었다.

여기 당한 적 입장에서는, 몇 배나 되는 대규모 포대의 일제사격을 한 번에 얻어 맞은 상황이겠지.

“그럼··· 계속 쏘면 되지 않습니까?”

“네에, 그럼 좋지만··· 아쉽지만 앞으로 쏠 수 있는 건 한 번 정도일 거예요오···.”

그녀는 정말로 아쉬워 보인다. 어째서 한 번 정도만 쏠 수 있다는 것일지.

“혹시 대포가 파열 위험이 있어서 그렇습니까?”

“딱 맞는 크기의 포탄이나 아예 작은 산탄이 아니라, 이런 어중간한 크기의 소구경 포탄을 넣으면 포 수명이 줄기는 하는데 당장 터지진 않을 거예요.”

“그럼 어째서인가요?”

“네에, 그건··· 화약도 포탄도 부족해서 그래요오···. 여기 이쁜이들은 위력은 화끈하지만 화약을 정말··· 정말 정말 엄청나게 먹어 치우거든요!”

“아···.”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작은 포로 여러 번 쏘는 게 효율적이니까요.”

생각해보니 그렇다. 개인용 화기의 경우에도, 구경이 조금 커지면 화약을 두 배 가까이 먹는다던가.

그만큼 위력도 강해진다고는 하지만, 면적이 늘어나는 만큼 부피로 화약을 채워야 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나 거대한 공성포는 화약을 얼마나 써야 할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말 그대로 삽으로 화약을 퍼서 넣어야 하겠지.

하지만 또 궁금한 점이 있었다.

“그럼··· 몇 번 쏠 수 없다면 아꼈다가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결정적인 순간에···.”

“아하하··· 그 말씀도 맞아요. 하지만 시작부터 쏴 버려야 적이 또 맞을까 봐 무서워 할 테니까요!”

첼레스티나가 그렇게 말하자, 주변에서 부지런히 포신을 청소하고 화약을 준비하던 포수들이 폭소를 터뜨린다.

“확실히 포병들은 기사님들이랑 생각하는 방향이 다른 것 같네요오!”

그녀 역시 그렇게 말하며 웃었지만, ‘생각하는 방향이 다른’ 디타레는 웃을 수 없었다.

확실히, 기병을 이끌고 적진의 주변을 노리다가 저런 걸 한 방 맞아서 부하들이 끔찍한 꼴을 당했다고 하자.

···솔직히 가능하면 그 주변을 가지 않으려 할 테고, 다가가더라도 위축이 될 수 밖에 없다.

아니 멀쩡히 살아서 이야기하며 뒤를 따라오던 부하가 갑자기 고기 조각이 되어 버렸는데 그걸 어떻게 무시하냐는 말이다.

아마 정면으로 다가왔다가 된통 얻어맞은 그룬발트 보병들 역시, 그 이상의 끔찍함을 느꼈겠지.

누가 말하기를, 기병이 동료를 잃으면 옆에 빈자리가 생겨 분노를 느끼지만, 보병이 동료를 잃으면 그 일부가 자기한테 쏟아져 공포를 느끼게 된다던가.

적어도 한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압도적인 적의 물결에 휩쓸려 버릴 것으로 생각했던, 그리고 기꺼이 그들과 함께 마지막까지 싸우겠다고 결심했던.

전장 한 가운데에 생겨난 아주 작은 안전한 방어 진지는···.

어쩌면 생각보다 오래, 아주 오래 버틸지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화약을 받았으니, 이제는 밥값을 하는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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