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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색화약의 용병대장-507화 (474/556)

47-42. 폴름스 전투, 셋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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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각!

“크아아앗!”

“어억!”

지금까지 앞을 막아주던 마차와 나무 상자가 폭발하듯 터져서 사방으로 파편이 튀어 오른다.

“으으윽, 으윽!”

그 충격에 나가떨어졌던 야로스가 간신히 일어선다. 고개를 흔들면서도 팔다리를 만져본다. 다행히 다 붙어있다.

그리고 자신이 두 눈을 뜨고 볼 수 있으며 똑바로 서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어깨가 이상하게 화끈거려 봤더니 얇은 천 옷 위로 나무 토막이 얕게 박혀있다. 고통을 참느라 쌍욕을 하며 대충 뽑아낸다.

투구와 징 박은 가죽 갑옷이 없었으면 하마터면 벌집이 됐을지도 모른다.

“괜찮나? 모두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저, 저도···.”

천만다행이었다.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다.

든든한 방패막이였던 수레는 대체 무슨 꼴을 당한 것인지, 허리가 부러져서는 가운데가 주저앉아 있다.

아마도 어디선가 날아온 적 포탄이 수레에 명중했고, 다행히도 수레와 나무 상자를 함께 뚫지는 못한 채 멈추었던 것이다.

포탄의 각도가 조금만 더 위험했으면, 위력이 조금만 강했다면··· 아찔하다.

박살난 것이 자신의 머리통이 아님을 감사할 뿐이었다.

“빌어먹을, 그룬발트 놈들이 포를 끌고 왔네! 저걸 어쩌지···.”

부근의 그룬발트 기병대는, 본래 이 지역을 지키고 있던 엘랑키아 경기병대가 기습해서 대부분 무력화 시켰다고 들었었다.

그런데 몇 문 남아있었던 것이 있었고, 상황이 이렇게 되자 흩어진 포병들을 불러모아 여기까지 끌고 온 모양이다.

이걸 어쩐다··· 이쪽 포병으로 쏴 맞출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야로스에게 그럴 재주는 없었다.

벼락치기 포수로서의 실력은 화약 양 계산은 잘 해서 자폭시키지는 않는 정도에 불과했으니.

그가 기억하는, 슈토르히 선임 중대장 시절의 체레스티나라면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그녀는 더 중요한 방어선 전체의 지휘를 맡고 있었다.

방금 막, 적의 공격 1파를 막아낸 상황이다. 다행히 적은 예상보다 완강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제대로 접전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집중 포격을 받아 영혼까지 털린 후에야 교전에 참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게다가 양 측면을 지키는 지빌링엔 반연대의 용병들이 가공할 활약을 보여주었다.

첼레스티나 중대장이 말한대로, 슈토르히의 동료들 보다는 못했지만 마치 야수처럼 싸운다.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고 덤벼드는 통에, 포화를 피해 보다 멀쩡한 상태로 접근해온 측면의 적 보병들 역시 얼마 버티지 못하고 떨어져 나간 것이다.

“저기, 적 포가 보입니다!”

“어디? 으··· 포술장님, 저거 맞출 수 있겠어요?”

“좀 어려운데··· 나는 이런 건 전문이 아니라서···.”

비스듬한 전방에, 적 포를 찾는 데 성공은 했다. 하지만 애매한 거리였기에 아군 포병들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잠깐 저희가 봐도 될까요?”

“어? 당신은··· 어, 얀이라고 했었죠?”

“예, 소대장 얀 고티에 입니다. 첼레스티나 부관님이 보내셔서 왔습니다.”

그 때, 몇 명의 총병이 다가온다. 슈뵈켄 포병 진지에서 함께 싸웠던 트랑카벨의 선발 사수들이었다.

청동으로 된 굉장히 길고 멋진 총을 가진 사수와, 수도사처럼 머리를 짧게 깎은 사수.

“거리가 110··· 120미터 정도 되어보입니다. 수사님 저희가 해야 합니다.”

“어휴··· 저한테는 무리일수도 있겠는데요···.”

수사라 불린 짧은 머리카락의 사수는 우는 소리를 하면서도 받침대를 설치하고 총열을 얹는다.

“아, 아니! 이 거리에서 저격이··· 되겠습니까?”

“어쨌거나 해 봐야지요.”

놀란 얀의 물음에 여상스럽게 대답한다. 많이 해 봤다는 듯.

얀은 받침대 대신, 망가진 마차의 잔해에 남달리 긴 청동 총열을 걸치고 조준한다. 둘은 호흡을 조절하며 신중하게 조준하고 있었다.

적이 가진 포는 가볍고 포신이 짧은 경야포이다.

사거리나 위력은 다소 부족하지만 보병의 행군 속도를 따라갈 수 있기에 전장에서는 굉장히 유용한 무기이다.

무엇보다 ‘포신이 짧고 가볍다’라는 특성 덕에, 재장전이 무척이나 빠르다.

그러니, 기회는 단 한 번 뿐이다. 더더욱 신중해 질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만약 빗나가 노려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적은 더 멀리 이동하거나 안전한 곳에 숨을 수도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이라고 할 수는 있었지만··· 무력화시키지는 못하니 다시는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수사님, 제가 망원경 들고 있는 자를 노리겠습니다.”

“예, 저는 갈색 모자를 쓴 포수를 노리지요. 후우우···. 주신이시여 바라나이다···.”

그렇게 표적이 정해졌다. 그리고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숨을 들이 쉬더니 멈춘다. 긴장되는 순간, 지켜보는 다른 이들도 일제히 숨을 멈춘다.

빠각!

뻐억!

통상적인 총성에 비해 좀 더 탁하고 둔한 소리가 연달아 울린다. 마치 울리는 총성을 억누른 듯한 소리.

야로스는 비슷한 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있었다. 저격의 달인, 모리츠 선임 중대장의 소리와는 달랐고···.

아! 언젠가 첼레스티나 선임 중대장이 슈토르히의 신임 사수들 앞에서 시범을 보일 때였다.

화약을 평소보다 빠듯하게 더 많이 채워 넣고, 더 단단한 총알을 총구에 빡빡하게 밀어 넣을 때 나는 소리라고 했던가.

후욱!

“며, 명중! 둘 다 명중!”

그렇게 외친 것은 방금 포의 재장전을 마치고 구경하고 있던 어린 포수였다. 야로스는 놀라서 입을 벌리고 있느라 말을 할 상황이 아니었고 말이다.

망원경을 들고 이쪽을 바라보며 손가락질 하던, 아마도 그룬발트 측의 포술장으로 보이던 자는 총에 맞았다는 것을 알기도 전에 상체가 뒤로 훽 젖혀졌다.

그가 놓친 망원경이 반대로 튀어 나가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

그 직후 이쪽으로 등을 돌리고 있던, 챙 없는 갈색 모자를 쓴 적병은 등 뒤에 작은 점이 생기더니 앞으로 엎어졌다.

하지만 치명상은 아니었던 듯, 주춤거리며 일어서더니 반쯤 기다시피 후방으로 이동한다. 적어도 살아 남더라도 이 전투에서 다시 장전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포술장을 포함한 두 명이 쓰러지자, 부지런히 장전 중이던 남은 두 명의 포수는 예상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 명은 그대로 얼굴을 땅바닥에 박으며 납작 업드렸으며, 다른 한 명은 그대로 뒤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다행이었다. 적 포는 침묵할 것이다. 적어도 누군가 적 장교가 빈 포를 발견하고, 새롭게 포수들을 구해 배치하기 전까지 한동안은.

“와! 정말 대단하군요!”

“이 거리에서? 미쳤네··· 정말 감탄 밖에 할 말이 없소!”

너무 놀라운 광경이었기에 반응은 한 박자 늦게 나왔다.

단순히 진기명기를 보았다 정도가 아니다. 그들을 위협하고 있던 적 화포의 위험을 현저히 줄여 버렸던 것이다.

이 짧은 평화의 시간 동안, 야로스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아군은 이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의 어설픈 급조 부대였지만, 생각보다 강하고 협력도 잘 되고 있었다.

중앙에서 지휘를 담당하고 있는 첼레스티나의 수완이 상상 이상이었다.

적 포병에 노출당하자 즉각적으로 ‘카운터’가 될 선발 사수들을 보내오는 모습은 놀라울 정도였다.

콘도티에레와 항상 함께 지내다 보니 전술적 능력도 배운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반대로 적은 수가 많아 부담스러웠으나, 생각보다 약했다.

오합지졸이다··· 정도는 아니지만 사기가 높지 않고 많이 지쳐 보인다. 오늘 종일 전투에 시달렸던 탓이기도 하겠지만··· 그건 이쪽도 절반 정도는 마찬가지인데?

어쨌든 화력에 큰 피해를 입자 연대 자체가 질서를 잃었고, 적 지휘관은 부대가 붕괴하기 전에 남은 병력을 재빠르게 빼는 것을 선택한 것 같았다.

글쎄··· 아마 여기 있는 지빌링엔 용병들이라면 어땠을까.

근거리에서 포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었다 하더라도, 살아남은 자들은 결코 전진을 멈추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슈토르히의 동료들도 그런 상황이었다면 마찬가지였겠지.

갑자기 사무치게 옛 동료들이 보고 싶었다.

밥만 먹으면 위험한 전투에 불려 나가는 것이 일상인 시절이었지만···.

그게 진절머리 나서 제대를 선택한 이후, 아이러니하게도 그 당시와 같은 ‘안정감’을 느껴본 적 없었던 것 같다.

어째서일까. 아직은 찾을 수 없었다.

“적이 또 옵니다!”

썰물 빠지듯 물러났던 적 선두 연대와 교대하듯 새로운 부대가 접근해오고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적들이, 갑자기 전장 한복판에 방어선을 세운 엘랑키아 급조부대를 향해 몰려들고 있었다.

최소한 적의 시선을 끌어 집결을 막고, 중앙부 전선을 지원하러 가지 못하게 한다는 측면에서는 대성공이었다.

이제 조금만, 조금만 시간을 끌 수 있다면.

그리고 살아남을 수 있다면.

야로스는 간절하게, 정말로 간절하게 이 자리에 슈토르히 동료들을 불러올 수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수 있겠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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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거리를 달려온 군마는 멈춰서자 마자, 앞다리를 꿇으며 주저앉는다.

“허억, 후우···.”

지금까지 전장을 종횡으로 가로지르며 대활약을 했던 디타레 드 카울은 그 기세에 자칫 넘어질 뻔 했으나, 간신히 중심을 잡고 말에서 내린다.

죽을 듯이 헐떡이던 군마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머리를 바닥에 누이면서 숨을 몰아쉰다.

기수와 혼연일체가 되어 달렸던 이 아름다운 생명체의 최후가 다가왔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고생했구나.”

전쟁 통에 낙마하여 본인의 말을 잃고, 주인 없는 말을 간신히 탔기 때문에, 디타레는 이 군마에 대해서 잘 모른다.

심지어 전장에서 쓰러진 자기 휘하 기병들 중 한 명의 말인지, 쓰러뜨린 그룬발트 기사의 말인지도 불명확했다.

허나 인생에서 가장 죽음과 가까웠던 시간 동안, 둘은 함께 몇 번이나 사선을 넘나들었다.

아니, 아마도 이 군마가 아니었다면 디타레는 죽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동료’의 밤색 털을 쓰다듬는 디타레의 손에 핏방울이 묻어 나온다.

몇번이나 창과 칼날의 벽을 간발의 차이로 뚫어가며 쏟아지는 총탄 속을 달렸으니 멀쩡할 리는 없다 생각했으나, 말의 상태는 상상 이상으로 좋지 않았다.

허나 그런 많은 상처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요구를 하는 기수의 요구에 충실히 따랐다.

그리고 최후의 순간까지도 버티고 버텼다. 만약 몇 초만 일찍 쓰러졌어도 타고 있던 디타레가 낙마하여 크게 다쳤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대로 고개를 들어 자신의 뒤를 따라온 기병들을 바라본다.

이번 전쟁 내내 엘랑키아 전군의 선봉이 되어 싸웠으며, 몇 번이나 적을 물리치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던 최정예 기병대가 최후를 맞이하려 하고 있었다.

애초에 지휘하던 숫자의 절반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직속이 아닌 분견대들 역시 상황이 특별히 더 좋지도 않을 것 같았다.

어쩌면 절반 정도 남은 것도 대단히 희망 섞인 예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절망이 느껴졌다.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든 말에서, 마찬가지로 녹초가 된 부하들이 내린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진짜 ‘최후’를 맞이하기 전에 잠시라도 쉴 기회가 생겨서.

“대장님!”

다소 날카로운, 하지만 전장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미성이 그를 부른다.

“왕실군의 기병대장이 맞으시지요? 저는 티테니아 드 몽파르지에라 합니다. 트랑카벨의 콘도티에레께서 내리신 명을 받아 오게 되었습니다.”

“디타레 드 카울입니다. 때 맞춘 지원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전투 중이라 말에서 내리지 못함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방어선 중앙에는 첼레스티나 참모가 전투를 지휘하고 있습니다! 부디 협력을 부탁드립니다.”

“기꺼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지금 디타레의 부대는, 또 한번 위험한 전장을 가로질러서 ‘생각지도 못한 아군’의 방어 진지 후방으로 피신한 상태였다.

말도 인간도 상처투성이에 녹초인 그들에게는 마치 하늘이 내린 것 같은 휴식처였다.

“모두 잠깐 쉬고 있어라. 그리고 남은 숫자··· 그리고 움직일 수 있는 군마의 숫자 파악을 부탁한다.”

“옛, 디타레 대장님!”

그럼에도 간신히 살아남은 부하들에게 다소 가혹한 요구를 하며, 방어선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종일 안장에 쓸린 허벅지가 아파서 무릎이 떨릴 지경이었지만, 그 정도로 얼빠진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기에 간신히 버텨낸다.

저 앞쪽에서는 총성과 포성이 끊임 없이 들리고 있었다. 전장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생각했는데···.

어느새 이런 ‘안전한’ 장소가 생겼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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