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501화 (468/556)

47-36. 폴름스 전투, 셋째 날

“그··· 어, 첼레스티나 선임 중대장··· 님이시군요?”

“네에? 앗! 야로스! 야로스 맞죠?”

아르옌과 얀은 무슨 일인가 싶어, 방금 그들과 함께 싸웠던 쌍검의 사나이와 콘도티에레의 참모 첼레스티나가 대화하는 것을 바라본다.

“예, 야로스 발렌켄드, 인사드립니다. 여기 계셨었군요. 그렇다면 설마 콘도티에레도 여기에···?”

“음음, 아니에요. 콘도티에레는 저기 남부 전선에서 부대를 지휘하고 계셔요. 저는 명령을 받고 반격을 위한 포병대를 조직하기 위해 왔네요!”

“그러··· 시군요. 언제나 고생하시는 것 같네요, 콘도티에레께서는.”

야로스는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다. 콘도티에레는 전장에만 나서면 언제 어디서나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그게 그 곁을 떠난 이유 중 하나였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야로스는 왜 여기에 있나요? 이제 싸우는 데 지쳤다고 제대 신청했던 것 아닌가요?”

“그랬지요··· 그랬는데요, 그게··· 사정이 좀···.”

“어차피 엘랑키아 측에서 싸울 거라면 슈토르히에서 소집령 보냈을 때 합류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아뇨, 그게 말입니다. 나우데사에서 정착하려고 했는데 거기서도 전쟁이 터져서 어쩌다보니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손으로는 흙바닥에 흩어진 포탄을 주워 모으면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포술장이 한 마디 끼어든다.

“야로스 그 친구, 나우데사에서 탈출하다가 하필이면 간첩으로 몰려서 고생좀 했지요!”

“네에? 야로스 나우데사의 간첩이었어요오?”

“아뇨! 아닙니다! 오해였어요! 오히려 나우데사랑은 원수를 지고 도망오는 길이었습니다!”

갑자기 자기를 둘러싼 환경이 급변하고 있음을 느낀 야로스가 황급히 양 손을 휘저으며 자신을 변호한다.

그나저나 팔자가 참 더럽게 꼬였다는 생각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저 평온하고 안락한 생활을 바랐을 뿐인데, 전재산은 날리고 알거지가 된 데다 더더욱 열악한 전장에서 죽기살기로 싸우고 있으니 말이다.

“야로스, 자네 사령부 어딘가에 찾는 사람이 있다지 않았나? 아까 중대장이라고 했던가? 이 아가씨가 자네가 찾는 분인가?”

“아닙니다, 포술장님. 이 분은··· 옛 상관입니다. 제가 찾는 분은 이 분이 섬기시는 더 위에 계신 분입니다.”

그 말을 들은 첼레스티나의 눈이 의외라는 듯 동그랗게 커진다.

“네에, 그랬나요오? 야로스는 콘도티에레를 찾고 있었나요?”

“예, 뭐··· 그랬었죠.”

“아하, 그러셨구나···.”

솔직히 열성적으로 찾을 노력은 전혀 하지 않았고··· 그저 핑계 중의 하나였을 뿐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참, 온갖 일이 많았는데 죽지도 않고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스스로도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래요! 잘 됐어요. 지금은 사람이 너무 부족해요, 야로스. 일을 도와줄 수 있나요? 전장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서 무척 반갑네요오.”

“예? 저, 첼레스티나 중대장님, 저 지금은 공성 포병대 분들을 돕고 있어서···.”

야로스는 뜨악하는 표정을 지으며 포병대 동료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역시 옛 동료이자 상관인 첼레스티나가 반갑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서 끌려가서 다른 무엇인가도 모를 상황에 처하는 불확실성이 두려울 뿐이었다.

그는 어디까지나 안정을 지향하는 사람이었으니까.

“허헛, 이 사람! 어서 가서 도와드리게! 우리 일은 어련히 알아서 할 테니까!”

“그래요, 야로스 씨. 그 동안 신세 많이 졌네요. 옛 친구분 만나서 정말 다행입니다!”

“우리 살아남아서 전쟁 끝나고 좋은 술 한 잔 합시다!”

야속하게도 그의 포병 동료들은 야로스의 생각을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모두 좋은 사람들이기는 했지만.

“...알겠습니다, 첼레스티나 중대장님. 제가 무얼 하면 되겠습니까?”

“네에, 가면서 설명할게요오! 그럼, 모두 이동 준비 부탁드릴게요.”

“알겠습니다, 대장님!”

어쩔 수 없었다. 야로스는 최근 몇 년 동안 자신의 선택들이 잘못됐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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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는 눈이 없어서 그렇소만, 슈뵈켄 쪽은 지금 전황이 나아지고 있는 게 맞소?”

“...타를라가 애를 먹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룬발트 군 우익 지휘관, 펠쿠트 벨톤 폰 비덴누벨 백작의 물음에, 만프레트 그로블 폰 자이트리츠가 애둘러서 대답한다.

“젠장할! 엘랑키아 놈들은 자꾸 어디에서 병력이 새로 나타나는 것이오?”

“아마도 남쪽, 전장의 반대편에서 온 병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혹은 폴름스 포위망에서 빼 온 병력일 수도 있겠군요.”

“만프레트 총참모장, 우리 그룬발트 제국군이 적보다 배 가까이 병력이 우세한 상황이 아니었습니까?”

“...면목이 없습니다, 백작님.”

짜증이 가득한 펠쿠트 백작에게 별다른 반박을 할 수 없었다.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전력으로 전투를 시작한 것은 바로 이쪽, 그룬발트 군 측이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결정적인 순간만 되면 엘랑키아 군의 증원이 이쪽의 계획을 망쳐버린다.

아까 전장을 절반 가로지르며 좌익군에 예상하지 못한 충격을 가해버린 엘랑키아 기사들이 그랬고, 방금 슈뵈켄 마을 방향에 나타난 지원군이 그랬다.

하지만 이 병력은 갑자기 나타난 것,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아니다.

대군을 지휘하는 입장에서, 전술적 상황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예비대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양측이 호각인 상황에서 갑자기 적의 측면에 짠 하고 나타나는 예비대 만큼 결정적인 승리의 보증수표는 또 없기 때문이다.

예비대는 중요하다. 그렇다면 예비대를 충분히 확보하자. 그러면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전혀 아니다. 이런 생각으로 병력을 배치할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호각’인 상황. ‘결정적’인 상황에서 유용하다고 해서 그런 상황을 일부러 만들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비대를 따로 빼 둔다는 것은, 그만큼 본대의 전력이 약화된다는 것을 말한다.

‘결정적인 순간의 예비대 투입’은 반대로 병력 낭비의 극치인 축차 투입과 종이 한 장 차이가 될 수 있다.

전방에서 그만큼의 병력이 빠진 상황에서 호각을 이루었다는 것은, 역으로 말하면 그 병력이 예비대가 아니라 본대에 속했다면 처음부터 호각이 아니라 우세로 싸울 수도 있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알량한 전술적 식견 때문에 예비대를 빼 두었다가 본대가 순식간에 밀리는 바람에, 예비대는 활약할 기회도 얻지 못하는 경우까지 생긴다.

그러니 예비 병력 확보는 결코 만능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거의 불가능하기도 하며, 무의미하기도 하니까.

그런 점에서, 엘랑키아 군의 예비 전력 활용은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뛰어난 점이 있다.

일단, ‘예비대’ 상태에서도 전장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가령 그룬발트 좌익군에 심각한 피해를 선사했던 집중된 기사대의 경우, 전장 반대편에 배치된 상황에서 전투를 피하면서도 ‘자기 역할’을 하고 있었다.

바로 펠쿠트 백작 휘하의 군대, 그룬발트 우익군을 한참 동안이나 묶어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7천 기의 엘랑키아 기병대가 거대한 창을 이루어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데, 이를 마주보는 입장에서 무슨 시도를 할 수 있었겠는가.

이번에 갑자기 슈뵈켄 배후에 나타난 병력도 그랬다.

그렇게 많지도 않은 기병과 보병이 뒤섞인 혼성 1개 연대 정도에 불과했다.

이들 역시 후방에서 구경만 하던 예비대는 아니었을 것이다. 단일 부대가 아니라, 그 잡스러워 보이는 혼성 부대라는 특성이 그 증거였다.

아마도 다른 전선을 담당한 부대에서 여유가 생기자 조금씩 병력을 차출해, 하나로 묶어 보낸 흔한 케이스이리라 추측된다.

하지만 아주 훌륭한 타이밍에, 완벽한 위치에서 나타났다. 효과도 훌륭했고 말이다.

이런 점까지 엘랑키아 군이 예상하고 계획했다고는 믿을 수 없었다.

기량이나 재능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만프레트는 굳이 표출하지는 않았으나, 속으로는 말도 안되는 자신의 추측에 아주 강하게 반발했다.

아무리 내선의 이점을 십분 활용하는 엘랑키아 사령부라고 할지라도, 정보와 명령을 가진 전령이 오가는 시간까지 어떻게 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북부 전선에 병력이 딱 필요할 타이밍에 남부 전선에서 보낸 병력이 도착하려면, 사령부가 미래를 보는 예언가가 되어야 했다.

물론 어처구니 없는 소리이다. 어쩌다 맞아 들어간 것이겠지···.

그 맞아 들어간 것이 상당히 아프게 와서 닿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런 병력을 보낼 정도로, 남부 전선에서는 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인지, 솔직히 조금 걱정이 된다.

남부에는 만프레트가 누구보다도 신뢰하는 후배이자 측근, 플로리안이 있었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차피 여기서 만프레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불필요한 걱정은 하지 않기로 한다.

그리고 설령 남부 전선에서 이변이 일이날지라도 여기서 이기면 된다. 이기고, 엘랑키아 국왕을 포로로 잡는다.

그렇게만 된다면 다른 구구하고도 지엽적인 승패는 따지지 않아도 될 테니까.

“슈뵈켄 방향은 타를라에게 믿고 맡겼습니다. 다소 불리하더라도 버티고 있는 한, 주전선에 큰 영향은 없을 것입니다.”

“그, 그렇소?”

“또한 타를라는 유능한 참모입니다. 결코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인 부대에게 밀리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으음! 확실히 타를라 경은 훌륭한 인물이지. 내가 괜한 걱정을 한 것 같소. 눈 앞의 적에게 집중해야겠지.”

펠쿠트 백작은 자신의 실언을 인정하며 전장에 집중한다.

만프레트가 그로부터 지휘권을 위임받은 후, 그룬발트 우익군의 상황은 훨씬 나아졌다.

적은 목숨을 걸고 시간을 벌고자 하는 기병 집단이다.

여러 개로 나뉘어 마치 농락하듯 전장을 가로세로로 가로지르며 그룬발트 보병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도록 놔 둔다. 이쪽은 이쪽대로 할 일을 하면 된다. 대신, 만약에 다가온다면 철저하게 그 대가를 받아낸다.

개념적으로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보다 밀도 높게 병력을 배치하고, 피할수 없는 피해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한 태도로 전환한다.

그룬발트 군이 더 이상 위협에 대응하지 않자, 엘랑키아 기병대는 당황한 것으로 보였고 더욱 대담한 접근을 시도하게 된다.

그 결과는 물론 조금만 실수해도 분견대 전체가 날아가는 치명적인 피해였다.

두 차례, 무리해서 접근하자 거의 전멸에 가까운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본 엘랑키아 기병대는 훨씬 소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한참을 혼란에 빠져 길을 잃은 듯 보였던 그룬발트 우익군 보병대는 통일된 진형을 갖출 수 있었으며, 본래의 목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적 중앙군의 측후방을 공격하는 우회 기동 말이다.

물론 엘랑키아 기병대는 여전히 호전적인 모습을 버리지 않으며,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 그들이 작정하고 공격을 해온다면, 그 공격은 상당히 날카로울 것이었다.

지금처럼 빠른 속도로 이동하면서 안전하게 막을 수 있는 수준은 아니리라.

그렇다고 막겠다고 사각 밀집 대형을 갖춘다면, 기동성을 상실하고 적이 바라는 대로 될 뿐이다.

최악의 경우, 하나나 두 개 정도의 연대를 잃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것이 만프레트의 생각이었고 펠쿠트 백작도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

만프레트가 준비하는 것은, 그 치명적일 적 기병의 공격이 ‘마지막 공격’이 되도록 하는 것 뿐이었다.

···좌익군에게 내린 명령도 그랬지만, 이번 전투에서 만프레트는 유난히 아군의 희생을 전제로 한 작전을 짜고 있었다.

물론 이는 ‘검은 늑대’ 만프레트가 좋아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저 숫자에만 의존하는 느낌이라 전술가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점도 없지 않았으니까.

허나 중요한 것은 신속한 승리였다. 이대로 성과 없이 시간을 끌다가는 고용주인 디오보르크 공작의 목이 날아갈지도 모른다.

전술적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말이다.

“만프레트 경, 혹시 걱정되는 게 있으시오?”

“음··· 아닙니다, 백작님.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셨습니까?”

“아니··· 방금 표정이 무척 안좋아져서 말이오.”

펠쿠트 백작은 딱히 나무라는 태도는 아니었으며, 오히려 걱정된다는 표정이다. 그럼에도 쉽게 자신의 치부를 보였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걱정되는 점이 하나 있었다.

만프레트가 파악하기로, 현재 그가 맞서는 엘랑키아 진영에는 ‘스승님의 또 다른 제자’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정확히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 고명한 ‘암월 검희’ 세델레네의 제자라면, 병력을 마주하고 있는 자신이 모를 리가 없었다.

분명, 예상하지 못한 날카로운 움직임과 남다른 판단이 느껴지기는 한다.

허나··· 최소한 엘랑키아 군 전체를 통솔하고 있는 입장은 아니다. 또한 어느 하나의 부대를 이끌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예상과 달리 특출난 점이 없는 평범한 인물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정보가 잘못 된 것일까.

뭐 아무래도 좋았다. 정말로 그런 ‘동문’이 있다면, 엘랑키아 군을 서서히 붕괴시키는 과정에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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