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458화 (494/556)

46-12. 폴름스 전투, 첫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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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앙! 탕!

타타타탕! 타탕!

기병들이 갖춘 권총이나 총열이 짧은 기병총들이 불을 뿜는다.

사수끼리 어깨가 붙을 정도로 빽빽하게, 그것도 두 줄 세 줄 늘어서서 말 그대로 총구의 벽을 만들어 낸 보병 대열이 뿜어내는 파멸적인 일제사격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마상에서 쓰기 위해 총렬을 단축한 모델이나, 애초에 한 손으로 쓰는 목적인 권총은 보병용의 소총보다 명중률이 한참 떨어진다.

하물며 달리는 말 위라는 악조건중의 악조건이다. 어지간히 숙련된 기병일지라도 하늘로 치솟는 총구를 진정시키는 것도 큰 일이다.

숙련자가 이런 판인데, 정말 처음으로 마상 사격을 하는 입장이라면, 총탄을 하늘에 쏴서 허비하는 건 오히려 양반일지도 모른다.

나란히 달리는 아군은 물론, 자신이 탄 말의 뒤통수를 쏴서 스스로 낙마하고 마는 끔찍한 일도 자주 생기기 때문이다.

이렇듯 가격에 제한이 생기니, 총병 대열의 앞에 노출된 압박감이나, 한번 스쳐지나가면 부대 절반이 날아가는 위협은 없다.

하지만 교전거리가 훨씬 짧고, 거의 총구가 닿을 듯한 거리에서 오가는 사격이기에 당하는 입장에서는 훨씬 치명적일 수도 있다.

탕! 타탕!

“끄윽!”

“크아앗, 죽어라!”

“허억!”

“으윽, 엘랑키아를 위하여어!”

양측의 선두가 교차하며 권총에 명중당한 기병들이 말에서 우수수 떨어진다. 전체로 보면 그 수는 많다고는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숫자로 따지면, 기병창이 떨구는 숫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양측이 뒤섞였다고 사격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사실 다수의 기병들이 권총을 ‘조금 긴 창’ 정도로 생각하고 그렇게 활용하기 때문이다.

타앙!

“커억!”

말머리가 부딪칠 정도의 거리, 말 그대로 총구를 상대방의 흉갑에 대고 쏘자 흉갑이 폭발하듯 구멍이 뚫리며 피가 솟아 오른다.

한편으로는 백병전이 시작됐는데 여전히 권총을 손에 쥐고 있다는 것이 패널티가 되기에, 미리 쏘고 다른 무기로 바꿀지 이를 감수할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정말 숙련되었다면, 고삐를 쥔 손에 다른 무기까지 들거나, 심지어 쌍권총을 휘두르며 압도적인 화력을 뿜어내는 선택지도 있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각자 자신의 장기를 발휘하며 자신은 살아남고 상대방은 떨구며 첫 교전에서 살아남은 양측의 기병들이 다음 적을 찾아 나선다.

“엘랑키아를 위하여!”

“엘랑키아!”

“브라우나인에 승리를!”

“가자, 드 레뮤즈 만세!”

“그룬발트! 그룬발트으!”

서로가 섬기고 지키려 하는 대상의 이름을 외친다.

“상포리앙을 위하여! 가자!”

“상포리앙!”

카렐 드 상포리앙의 주변에서는 그의 가병 출신인 호위병들이 드 상포리앙 백작가의 이름을 외친다.

그를 둘러싸고 똘똘 뭉친 호위병들은 마치 창날처럼 적을 파고 들었다.

카렐의 어깨 위에서 하얀 빛무리가 마치 아지랑이처럼 피어 오른다. 그가 타고난 기프트를 통해 자신과 주변의 갑주를 강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때 전투에서 심장이 멈췄던 기억이 트라우마가 되어, 기프트를 사용할 엄두도 못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를 극복했고 전장 한가운데서도 기프트를 활용할 수 있었다.

간부 교육을 받기 위해서 잠시 카르카냑에 머물렀을 때, 주디칼리 출신의 무기 장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다.

자신처럼 물질의 성질을 다루는 기프트 사용자, 아키텍티들은 금속 등 자재의 가공과 제조 업종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도련님은 군인에 싫증나시면 저희와 같이 무기 만드시면 되겠네요!’

라고 하며 껄껄 웃던 기술자가 생각난다.

그러면서, 그 기술자는 자신은 아키텍티들을 꽤 많이 보긴 했지만 전투에서 직접적으로 방어력 강화에 활용하는 경우는 많이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장에서 활약하는 기프티드들은 대체로 4대 원소와 자연현상을 다루는 엘리멘탈리에 속한다고 했던가.

그 이후, 적어도 무기를 만드는 장인들 만큼은 쓸모 있는 기프티드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가능한 만큼은 능력을 갈고 닦았다.

다행히도 트랑카벨 영지군에는 기프트를 활용하는 이들이 여럿 있었다. 당장 콘도티에레의 부관을 하고 있는 첼레스티나도 불과 열을 다루는 엘리멘탈리였고···.

그래서 조언을 통해 능력의 지속시간을 늘리고, 강도나 범위를 조절하는 능력을 조금은 더 키울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 카렐의 주위에 화살촉 형태로 펼쳐진 10여명의 기사들이 입은 흉갑은 근거리에서 발사된 표준 화승총 탄환을 튕겨 낼 정도로 강화되어 있었다.

물론 충격까지 없애주는 것이 아니라 무적이라 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이 훨씬 과감하게 적진으로 뛰어들 수 있도록 하는 이유가 되었다.

기병창과 기사검이 적을 낙마시키며 길을 연다.

카렐 자신은 그 뒤를 바짝 따를 뿐, 직접 적과 무기를 부딪치며 싸우지는 않는다.

“휴우···.”

유지하던 기프트를 해제한다. 대신 집중력을 다른 데 돌린다. 그는 약 1천 기의 기병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눈 앞의 백병전에만 신경을 쓸 수는 없었다.

“훌륭하셨습니다, 카렐 경!”

“고맙네. 노력한 결과는 있군.”

솔직한 마음으로는 ‘내 능력이 이만큼 발전했다’고 주변에 자랑하고 싶었지만 그런 체통없는 짓을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전체 전황을 살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엽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전방 지휘관들이 전령을 보내오겠지만, 지휘관이 전체적인 흐름을 놓치는 것은 문제가 심각하다.

“적은 평소보다 밀집도를 높여 아군의 침투를 막고 있습니다.”

“그렇군··· 아군을 쓰러뜨리는 것보다 병력을 온존하는 데 더 신경을 쓰는 것인가?”

확실히 적은 말과 인간의 장벽을 만들었다는 느낌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위에 탄 기수가 아무리 용맹하더라도 말이 부담스러워해서 억지로 적을 비집고 들어가기가 힘들어진다.

적 기수가 쓰러지더라도 말은 그 자리에 남아 또 다른 살아있는 장벽의 일부가 된다.

그렇다고 적의 말을 죽이는 선택을 한들, 인간보다 훨씬 부피가 큰 죽었거나 죽어가는 말의 유체는 마찬가지로 기병의 활동을 제약하는 장애물이 된다.

보병 상대로는 절대로 사용할 수 없는 전술이다. 오히려 기동성을 상실해서 밀집도가 훨씬 높은 보병들에게 밥이 될 수도 있으니까.

심지어 이 밀집도에서 사격을 당할 경우, 산 말과 죽은 말이 뒤섞여 부대 전체가 기동성을 상실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결국 돌격시의 충격 효과를 잃어버린 카렐 휘하의 엘랑키아 기병들은 그 인마 장벽의 겉에 부딪치듯 공격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 새끼들아! 덤벼!”

“끝장내주마!”

짜증이 난 엘랑키아 기사들이 창과 검으로 교전하며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예상했던 것처럼, 양측이 마구 뒤섞이는 격렬한 기병전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은 어딘가 얼어붙어 있다는 느낌이다. 실제로 진형 자체도 단단한 밀집 진형이지만, 전투 자체를 꺼린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확실히 그룬발트 인들은 엘랑키아 기사들을 두려워하는 모양이군.”

“미터스하임에서도 그랬었지요!”

참모 장교의 호기 넘치는 대답에 카렐 역시 그 비탈길에서의 전투를 기억해낸다.

당시에는 워낙 ‘철저하게 이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만 돌격 명령이 내려왔기 때문에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에트 경이 그만큼 완벽한 타이밍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지만.

그래서 그룬발트 지휘관은 이기기보다, 다소 기동성을 상실하더라도 지지 않는 구도를 원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자군 보병의 측면을 보호한다는 목적은 달성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카렐의 엘랑키아 기병대 입장에서도 그렇게 나쁜 상황은 아니리라. 그들 역시 반드시 적진을 돌파해 어떤 성과를 얻으려는 목적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카렐이 모르는 이유도 있었다.

그건 바로 현재 그의 기병대와 교전하고 있는 그룬발트 기병대가 미터스하임에 출전했던 브라우나인 선제후령의 부대라는 것이다.

당시 직접 교전에 참여하진 않았더라도, 자타공인 선제후령 최정예인 흑기병 연대가 아무 활약도 못하고 고스란히 무너지는 것을 언덕 아래에서 보았었다.

이런 상황이니, 움직임이 소극적이 되고 철저하게 ‘지지 않는’ 싸움을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양측이 나름의 목적을 이루고 있는 애매한 교전은 한동안 계속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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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겼다! 이겼어!”

“이겼다아아!”

브레세른 마을 방어를 담당한 엘랑키아 군 지휘관, 루제 드 제브레도뉴 공작은 부하들의 함성 소리를 듣는다.

방금까지도 격렬하게 밀고 들어오던 그룬발트 군이 슬금슬금 물러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꺼져라! 돌아오지 마!”

“그룬발트 머저리 놈들!”

오랜 용병생활을 했던 병사들이 욕설을 하며 대열보다 앞으로 나가 도발하기도 한다. 규정상 있을 수 없는 일이나, 고참병들에게 허락되는 일종의 ‘관습’이었다.

이런 경우, 발끈한 적의 일부가 돌아와 싸움이 벌어지는 일도 있지만, 이번에는 그런 일은 없었다.

“기세는 너무 올리지 말라고 전하게. 아직 오늘 하루는 많이 남았으니, 적이 다시 올지도 몰라.”

“예, 공작님.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아, 나무라는 꼴이 되지는 않도록 말이야. 승리를 즐길 수는 있게 해줘야지.”

“물론입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지금 머리 위로 주먹과 무기를 치켜들며 승리의 함성을 지르고 있는 병사들은 겉보기에는 저래도, 실제로는 많이 지쳐있었다.

부대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겠지만, 적어도 1.5배의 적을 맞아 조금씩 물러서면서도 질서와 전선을 지켜온 것이다.

원래 이런 전력차이는 당장은 크게 티가 나지 않아도 전투가 지속될수록, 마치 느린 독이라도 되는 것처럼 병사들의 정신과 체력을 좀먹어간다.

지금이야 신나서 기세가 올랐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보다 지쳐버린 자신을 발견하고 당황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생각보다 전투가 일찍 끝나버린 것은, 우익에서 벌어진 우베노 연대의 대활약 덕분이었다.

드 제브레도뉴 영지군의 최고참 용병 지휘관인 피락스 우베노는 원래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는 인물이고, 휘하 병력 역시 최소 3년 이상의 종군으로 다져진 정예부대였다.

적군의 공세가 뜸해지고 병력 불균형이 일어난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재빠르게 적의 측면을 선점해 버렸다.

1.5배의 적에게 압박받는 와중에, 그 지점만은 적을 2:1로 정면과 측면에서 압박하는 최적의 포지션을 잡은 것이다.

실제로 기습에 가까운 이 공격으로 2개 연대를 완전히 격파해 후퇴시켰다.

그리고 세 번째 연대는 이를 예상했다는 듯, 완강하게 저항해서 더 이상의 전과를 올리는 데는 실패했으나, 20분이 지나기 전에 그룬발트 군은 후퇴하기 시작했다.

공격이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아 지지부진한데 거기 더해 측면에서는 역으로 반격당했다··· 인 상황이니 병력을 뺐다는 느낌이다.

“적장이 누구인지는 아직 모르나?”

“예, 적진에 걸린 깃발은 아마도 브라우나인 선제후령의 것으로 보이나 지휘관이 누구인지는 포로들을 신문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흠, 엘프 놈들은 자기네 가문 구성을 외부에 잘 알리지 않으니 어쩔 수 없겠지.”

확실한 것은, 적장은 그다지 경험이 많아 보이지 않았다.

특히 이렇게 전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전투를 포기해버리는 것은 어정쩡하게 미봉책만 반복하다가 전투 자체를 그르치는 얼간이들에 비하면 차라리 시원시원하고 나은 행동일지는 모르겠다.

왜냐하면,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미봉책만 반복하는 류의 지휘관은 병사들만 죽어라 고생시키고 이어질 다음 전투의 기력마저 빼앗아 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왠지··· 아직 미숙하고 자기 객관화가 되지 못한 지휘관의 행동처럼도 느껴졌다.

생각대로 잘 되지 않는다며 놀이를 포기해 버리는 유아적 행동처럼 말이다.

하지만 기병의 투입은 상당히 기민했다. 그렇다면 적장의 센스나 전술적 능력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혹은··· 지휘부가 아직 통일되지 못했을지도 모르지.

어떤 이유로든, 만약에 적 기병이 제때 그 장소에 도착하지 않았더라면 우베노 연대는 승리를 조금 더 이어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오늘 공훈의 절반 정도는 아룬하비크에서 에트 경이 보내준 기병대의 활약에 있다 보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그 기병이 적의 후방까지 위협하고, 적이 똑바로 대응하지 못했다면···?

그때는 아예 브레세른 수비군 전체가 전면적인 반격에 나서 적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게 되었을지도.

“일단 아우페브라즈에 보고를 올리게. ‘브레세른, 적 격퇴.’ 이상일세.”

어차피 큰 피해도 없고 그렇다고 대단한 전과를 얻은 것도 없었다. 이러쿵저러쿵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전투 보고서를 따로 작성하게 되겠지.

그렇게 브레세른 전선에서는 결정적인 장면이 나오기 전에, 그룬발트 군이 퇴각하면서 전투가 빠르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전선은 전투가 마무리되기는 커녕, 더더욱 격화되는 모양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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