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453화 (490/556)

46-7. 폴름스 전투, 첫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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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셨습니까, 에트 경?”

“별다른 보고는 없습니까?”

“예, 현재 전황은 전선 모든 부분에서 적이 공세 중, 아직 위태로운 방면은 없습니다.”

“다행이군요.”

나는 후방을 둘러보고 서둘러 엘랑키아 국왕 다고베르 2세의 본진이 있는 아우페브라즈로 돌아왔다.

이번 전투는 전장으로 설정한 공간 자체가 매우 넓은 데다가, 후방 전선은 내가 직접 담당했기 때문에 체크할 부분이 많았다.

그런데 우리의 국왕 폐하는··· 나를 아룬하비크와 파두자이트를 담당하는 후위 사령관에 이어 ‘원수부 위촉 수석 참모’라는 괴상한 직위를 안겨주고 말았다.

왜냐하면 고루하디 고루한 엘랑키아 왕실 전통의 군사제도에서는, 왕실군 원수가 참모장 역할을 맡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수 자신이 병력을 이끌고 국왕의 사령부를 떠나는 경우, 원수부 소속의 다른 인물이 그 역할을 대행하는 것이 전통이다.

하지만 두 명의 왕실군 원수, 아르밀 드 브라뇰 공작과 프레니히 드 루블랭 백작이 모두 전선에서 일군을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었기에 자리를 비웠다.

그래서 어느새 그 역할을 내가 하고 있었다는 결말이다.

결국 새벽부터 일어나 사방을 돌아다녀야만 했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래도 최소한 나를 찾는 전령이 아직까지 없었던 것으로 봐선, 심각한 일이 터진 전장은 없다는 것이겠지.

“콘도티에레! 여기, 이거라도 드세요.”

“고마워, 첼레스티나.”

첼레스티나는 하얀 덩어리 같은 빵을 작은 접시에 담아서 나에게 준다. 지친 상태였던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덥썩 물었다.

보기보다 부드럽고 눅눅한 빵 껍질이 바스라지면서, 잘게 썰어 넣은 말린 과일과 설탕이 입 안에서 뒤섞인다.

살짝 직무유기를 하려 들던 뇌가 갑자기 정신을 번쩍 차릴 정도로, 잇몸이 아파질 정도로 단맛이다.

통상 단맛이 귀한 전장에서 버터와 설탕을 잔뜩 섞은 실로 사치스러운 음식이었다.

다만 기호품으로서 먹는 것은 아니고, 앉아서 제대로 된 식사도 하기 힘들 정도로 급한 와중에 빠르게 영양을 보급하기 위한 ‘대용식’에 가깝다.

저번에 들렀던 마을 여관에서 보존식으로 관리하고 있던 것을 첼레스티나가 대량으로 구매했다는 모양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무척 고마운 음식이지만, 그마저도 맛을 음미할 틈이 없었던 나는 대충 미지근한 차에 섞어 목구멍 너머로 넘겨 버린다.

그리고 서둘러 2층, 다고베르 2세의 사령부로 올라간다.

소수의 고위 참모들과 근위병들이 지키고 있는 지휘소는 다소 긴장된 분위기는 흐르고 있으나 전쟁터 답지 않은 평온함이 있다.

아직 지휘소에서 즉각적으로 대응해야 할 만큼 전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지는 않다는 이야기이고.

현재 지휘소에서 느껴지는 전쟁의 기운이란, 멀리서 들리는 포성 밖에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왔군, 에트 경.”

“예, 폐하. 후방 진지를 둘러보고 왔습니다.”

전망이 좋은 2층 방에 앉아있던 엘랑키아 국왕과 가볍게 인사를 한다. 전시에는 많은 예법이 생략되고, 많은 결례가 인정받는다.

“별다른 보고 사항은 없나?”

“예, 아직은 없습니다.”

폴름스의 남쪽인 아룬하비크 마을이나, 서쪽으로 통하는 유일한 마을인 파두자이트는 후방이지만, 아니 후방이기에 그냥 둘 수 없는 곳이다.

아룬하비크는 실제로 예비대 상당수가 주둔하고 있는 곳이며, 아우페브라즈와 비슷할 정도로 보급 물자를 쌓아놓은 중요 거점이다.

설령 아우페브라즈나 다른 거점들이 무너지더라도 전투를 계속할 수 있도록 말이다.

게다가 ‘지금’은 아직 전투가 벌어지지 않은 후방이지만, 적이 전선을 확장한다면 바로 전장이 될 수 있는 곳이니 대비를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실제로 우선순위가 조금 떨어질 뿐이지, 상당한 병력이 주둔하고 있다.

다른 전선에서 성과가 나지 않을수록, 초조해진 적군이 결국에는 공격할 것이다··· 라는 것이 내가, 그리고 사령부에서 내린 판단이었다.

다만 아무리 전력에서 우위에 있다 해도 새로운 전선을 여는 것은 부담이 가는 일이다. 하물며 만 명이 넘는 대군이 새로 움직인다면 그 물자 관리만 해도 큰 일이니까.

그러므로 그 점은 아군이 장기적으로 노려야 할 약점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서쪽의 파두자이트 마을은, 여러모로 주 전선과는 떨어져 있는 상황이다.

아마 적도 많은 병력을 배정하지는 못하겠지.

적이 예상을 뒤엎고, 만약에라도 과하게 많은 병력을 배치해 공격한다면··· 대응하려면 어려운 싸움이 되겠지만 전략적으로는 아군에게 유리한 일이 되리라 생각한다.

다만 파두자이트가 가지는 의미, 엘랑키아 본토로 이어지는 연락망의 시작이자 보급로라는 상징적 의미는 완전히 무시 할 수만은 없다.

설령 현재 엘랑키아 군은 ‘자진해서’ 포위 당하는 입장을 감수하고 단단하게 방어를 굳힌 뒤 내선의 이점을 이용하겠다는 생각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룬발트 군이 작정한다 해도 정말로 폴름스와 그 주변에 주둔한 엘랑키아 군을 완전히 포위하는 것은 불가능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역시 서쪽으로 뚫린, 든든한 연락보급로가 되는 마을이 막힌다는 것은 앞뒤사정을 다 아는 내 입장에서도 확실히 숨 막히는 일이다.

어쨌든, 이런 점들을 고려해서 방비를 늦추지는 않고 있기는 하다.

전투가 오래 지속된다면, 서로 가용 부대를 여기저기서 다 뽑아 쓴 가운데 기진맥진하여 드잡이질을 하는 상황이 반드시 올 것이다.

오히려 문제가 생기는 것은 그럴 때가 아닐까··· 라는 불안함이 들기도 했다.

“폴름스 본성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나?”

“네에, 콘도티에레. 아직은 성 밖까지 특별한 움직임이 관측되지는 않았네요.”

폴름스 성 내부에 주둔한, 다른 의미로 가둬버린 그룬발트 수비군의 숫자는 2만 안팎으로 추정된다.

아군의 계획대로라면, 이들은 ‘폴름스 주변’의 전투가 끝날 때까지 없는 병력이 된다.

그 이유는 아군이 거의 한 달을 걸려 건설한 포위망이 철저하게 성 안으로부터의 출성 돌격을 막아내는 데 심혈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폴름스의 경우, 적이 뛰쳐나왔을 때 위협이 될 수 있는 대규모 성문은 모두 5개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거대한 대도시라고 해도 성문의 폭은 몇 미터 정도. 한 번에 뛰쳐나올 수 있는 병력의 수는 기껏해야 수백 명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 장소마다 겹겹이 마방책을 설치하고, 귀하디 귀한 포대를 설치하고, 쪼개고 쪼갠 방어선 주둔군도 집중배치한 상태.

만약 적이 기습적으로 뛰쳐 나온다고 할지라도, 아마 열 걸음도 나아가기 전에 끔찍한 꼴이 될 것이다.

어둠을 틈타 다른 수를 쓸 수는 있겠지만··· 뭐 그건 그거대로 대응을 하면 될 일이다.

“에트 경, 모든 전선에서 적의 공세가 강화되었소.”

“저도 오다가 보았습니다, 폐하.”

“다행스럽게도 모든 전선에서 아군은 잘 싸워주고 있지만 말이오.”

“모두 폐하께서 훌륭한 전략을 준비하신 덕분입니다.”

“하핫, 귀경도 아부가 많이 늘었구려.”

절반 정도는 국왕에 대한 아부에 가깝지만, 나머지 절반은 진심이 섞여있었다.

세부적인 조정이야 다른 휘하 장교들이 진행했다 하더라도, 신성 그룬발트 제국 한 가운데로 뛰어들어 적을 끌어들인다··· 라는 구도를 생각해낸 건 다고베르 2세가 분명하니까.

“그래서 말인데, 한 군데 정도는 아군이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겠소?”

다고베르 2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도 못한 말이었다.

‘오늘은 일이 힘들었으니, 한 끼 정도는 맛있는 것을 먹자’로 내용을 치환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터무니 없는 소리였다.

지금은 분명 우리가 지키는 싸움이고, 심지어 전투 첫 날인데.

“...그 말씀은, 지엽적인 반격을 지시하시는 것입니까?”

“으음, 그건 아니오. 이제 첫 날이고, 전투가 며칠이나 진행될지 모르는데 그럴 수야 있겠소.”

휴우,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도 다고베르 2세는 그 정도로 생각이 없는 군주는 아닌 모양이다.

분명히 지켜야 하는 상황에서 정신 못차리고 무모한 반격을 준비한 끝에, 예비대와 전략적 자산을 몽땅 말아먹고 패망하는 예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물론 방어전이라는 것이, 철저하게 성벽이나 엄폐물 뒤에 몸을 숨기고 무조건 지키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맞다.

상황에 따라 위험을 무릅쓰고 반격도 가하고, 약점이 있으면 때려야 한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교과서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그 편이 공격을 지속하는 상대에게도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그 적절한 상황이라는 것을 판단하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다고베르 2세의 생각도 그런 점에서는 이해가 간다.

다만 오늘은 전투 개시 첫 날이고, 아직 적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니 반격을 한다면 이틀에서 사흘 정도 후가 적절하다고 생각하긴 했었지만···.

“오늘은 첫 날, 개전 첫 날이지 않소. 우리도 상대를 잘 모르지만, 상대도 우리를 모르기는 마찬가지겠지. 분명 어깨에 과하게 힘이 들어가고 전공을 서두르는 자가 한 명 쯤은 있지 않겠소?”

“적이 약점을 드러낸다면··· 반격을 노려 보라는 말씀이시군요.”

“바로 그렇소. 자신들이 우세하다 생각하면 무리를 하는 경우가 생기니까. 짐은 그런 점을 노려 지금까지 이겨왔고.”

다고베르 2세가 격의없이 씨익 웃는다.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확실히 즉위 이래로 계속해서 전쟁을 이끌고 있는 이 국왕은 전술전략적으로 대단한 지식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그럼에도 꾸준히 승리해온 이유는, 다고베르 2세가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방금 이야기한 것처럼 적의 심리를 읽고 약점을 예상하는 것도 그렇지만.

아군, 즉 부하들의 심리를 파악해서 강병을 양성하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다. 이런 재능은 어딜 가도 인정받을 병참장교의 재능이기도 하고.

한편 궁금한 것은 가장 가까운 사람, 자기자신에 대해서는 어떻게 파악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부디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스스로를 잘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좋을 텐데.

“그렇게 하겠습니다 폐하. 전장을 돌아보고 다시 보고드리겠습니다.”

“고맙소, 에트 경. 허나 정말 좋은 기회라 여겨진다면, 굳이 보고할 필요도 없소. 짐이, 그리고 엘랑키아가 원하는 것은 결과로 충분하니까.”

“...명심하겠습니다.”

중간과정은 굳이 알릴 필요 없다.

결과만 들고 와라.

한 국가의 통치자이자 군의 수장에게 신뢰를 받는다는 점에서는 참 기쁜 일이지만···.

또 이렇게 무서운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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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디오보르크 루프트 폰 제블링 공작 직할의 신성 그룬발트 제국군 사령부는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어차피 전투는 이제 시작되었고, 심지어 이쪽은 손에 가지고 있는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완벽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슈뵈켄의 상황은 어떻지?”

“펠쿠트 백작 휘하의 아군이 우회 공격을 시도하고 있는 상황으로, 아직 다른 보고는 없습니다.”

“흐음···.”

만프레트 그로블 폰 자이트리츠, 전쟁관에서 파견 온 총참모장은 고민하듯 눈을 감고 턱수염을 만지작거린다.

하지만 보인 반응은 그게 전부였다.

“만프레트 경··· 지금 기병대 지휘관들이 불만이 많소이다. 공격 명령을 내려 달라고 성화인데···.”

“기병 공격을? 지금 말입니까?”

“그게··· 즉시 적의 본진을 타격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저 마을들 사이의 공간을 가로질러 아우페브라즈를 치겠다··· 이겁니까?”

“그렇소! 분명 그러고 싶어하는 모양이오.”

‘기병대 지휘관’을 구실 삼기는 했으나, 실은 사령부의 그룬발트 고위 귀족들 또한 공격, 그것도 ‘자신이 지휘하는’ 공격을 시작하고 싶어하고 있었다.

“저 다섯 개의 마을은 엘랑키아가 설치한 덫입니다. 매듭을 잘 풀어놓고 들어가지 않는다면 다시는 빠져 나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 하지만 압도적인 대군을 일시에 투입하면···.”

“한 번 들어가면 보병의 지원 없이 엘랑키아 기사들과 정면 대결을 해야 할 텐데, 이긴다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큭....”

분하지만 할 말이 없었다. 그룬발트 기병대의 엘랑키아 기병에 대한 공포증과 열등감은 하나의 현상이라고 할 정도로 확연한 것이었으니까.

특히 미신이나 소문을 잘 믿는 하급 전투병들 사이에 깊게 퍼져있었다.

“결국 승리의 쐐기를 박는 것은 기병 여러분이 될 것입니다. 지금은 기다려주시지요.”

“...알겠소이다.”

“오늘은 아직은 보병의 차례입니다.”

만프레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해가 중천에 이르고 있다. 예정보다는 조금 이르지만··· 크게 상관은 없으리라.

“전선에 있는 전군에 명령을.”

“옛! 무슨 명령입니까?”

“보다 빠르게 식사를 배급하고, 정오를 기해 대기중인 병력 모두가 공격을 시작한다.”

마을을 둘러싼 요새에 대한 제한적 공격만 진행하고 있는 전방 부대에, 제한이 풀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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