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6. 폴름스 전투, 첫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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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 퍼펑!
투콰콱, 쾅! 뻐벙!
엘랑키아의 아르밀 드 브라뇰 공작이 지키고 있는 슈뵈켄 마을과 프레니히 드 루블랭 원수가 지키는 호펜로이테를 잇는 선 부근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다.
동북쪽으로 향하는 고대 도로가 연결되어 삼거리를 형성하는 부근에서 그룬발트 군 별동대가 움직이고 있었다.
횡으로 늘어선 보병 3개 연대를 선두로 하여, 1개 연대는 예비대처럼 뒤따르고 있었다.
거기에 상당한 규모의 기병 지원대가 그 측후방에서 보병들을 지원한다.
총 병력은 대략 8천에서 9천 정도가 되어 보였다.
한편, 이에 대응하는 엘랑키아 군은 보병 2개 연대가 선두에, 1개 연대가 후위인 총 3개 연대 구성으로 약 5천 정도의 보병 전력이다.
같은 3개 연대임에도 병력이 훨씬 적은 이유는, 후위에 배치된 예비 연대가 다른 곳에 병력이 차출되었는지 숫자가 훨씬 적었기 때문이다.
당장 뒤따르는 기병은 없었으나, 엘랑키아 군의 방어선에 가까운 지점이므로 필요에 따라 기병은 물론 보병의 지원도 훨씬 빠르게 가능하다.
게다가 그룬발트 군의 공격은 포병의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었다.
반대로 엘랑키아 군은 이미 배치된 포대에서 지원이 가능한 정도의 위치이니, 전장을 마음 놓고 확장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고려하면 반드시 불리한 상황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다만, 원래부터 총병력이 상대의 절반에 가까운 열세인 엘랑키아 군이 근본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하겠다.
만약에라도 서로가 서로에게 큰 피해를 입혀 재편성이 필요한 연대가 나온다면 그 결과는 엘랑키아 측에 더 파멸적으로 다가갈 것이기 때문이다.
엘랑키아 왕국과 신성 그룬발트 제국 양측이 무시무시할 정도로 병력과 화력을 집중해 밀도가 넘쳐나는 상황.
거기서 본격적으로 벌어지는 최초의 대규모 접전이다.
쾅! 퍼엉!
탁, 타탁, 펑!
엘랑키아 군의 포탄 몇 발이 그룬발트 보병대의 선두 대열을 훑고 지나가자 운 없는 병사들이 인형처럼 튕겨 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즉사했든 팔이나 다리를 잃고 울부짖든, 끔찍한 몰골의 희생자들이 주변에 공포를 흩뿌린다.
“으아아악!”
“대열을 유지해! 적의 화력은 그다지 강하지 않다.”
“다, 다리, 내 다리가!”
“겁내지 마라! 이 쪽을 봐. 하나, 둘! 하나, 둘!”
흩뿌려진 공포가 혼란을 유발하기 전에, 그룬발트 장교들이 재빠르게 부대를 장악하고 대열을 정돈한다.
화력 지원에 나선 엘랑키아 군의 포대는 그다지 대규모는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포대 내부에서 각도를 바꾸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다른 것이다.
아직도 ‘주 전선’이라고 할 수 있는 슈뵈켄 마을을 둘러싼 공방전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뿐이지, 슈뵈켄 마을을 언제라도 공격할 수 있는 위치에 배치된 그룬발트 보병들의 수는 1만에 가깝다.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가급적 주력부대와 화력은 온전해 두어야 한다··· 가 지휘관인 아르밀 공작의 판단이었다.
그리고 양측 모두 이번 전투가 장기전이 될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양측 합쳐 15만 가까이 되는 대군이 격돌하는 전무후무한 전장이다.
그러므로 설령 여기서 싸워 이기거나 지더라도, 갑자기 전황이 확 바뀌기는 어렵다. 오히려 반대일 가능성이 높았다.
아무튼 양측의 수뇌부가 전황을 살핀 끝에 내린 판단은 일종의 외줄타기라고 할 수 있었다.
주된 거점과 방어선에 지장을 갈 정도의 병력을 투입할 수는 없다.
반드시 크게 이길 필요는 없지만, 압도적으로 져서는 곤란하다.
그리고··· 전투가 며칠, 혹은 몇 주를 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최대한 카드를 아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나온 것이, 보병 연대 중심의 8천과 5천이 맞상대한다는 다소 미묘한 규모의 교전이었다.
“쏴라!”
타타탕! 타타타타탕! 따당!
“으으윽···.”
“커헉!”
“멈추지 마! 조금만 더 앞으로다, 앞으로!”
“재장전! 재장전!”
“쏴라!”
타타타타타탕!
타타탕! 타타타타탕!
엘랑키아 군의 선두 총병들이 사격을 먼저 개시했다. 그리고 약 10초 후, 몇 걸음 더 전진해 자리를 잡은 그룬발트 총병들이 반격한다.
그렇게 교전이 시작되었다.
역사에 남을 규모의 대군이 격돌한 전장의 시작을 알리는 첫 정면 접전이라기에는 다소 밋밋한, 어찌 보면 초라하기까지 한 전투의 실마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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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타탕! 콰쾅! 타타탕!
타타타탕! 타탕! 퍼엉! 퍽!
슈뵈켄 마을 동쪽에서 벌어진 전투는 적당히 거리를 둔 양측의 총격전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신성 그룬발트 제국 측의 우선봉 지휘관 펠쿠트 벨톤 폰 비덴누벨 백작은 현재 진행되는 전투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양측 모두 절반 이상이 가지런히 늘어선 장창 사각 대형을 갖춘 정규 보병 연대들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서로의 창대가 엮이지는 않고 있다.
즉 대규모 백병전이 벌어지지 않고, 거리를 둔 채로 서로 투사 무기만 사격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로가 소극적이라 접근을 꺼리고 있다. 소모적인 총격전만 계속될 뿐.
물론 기강의 잡힌 대량의 화승총 부대는 그 자체만으로도 결전 병기라고 할 수 있다.
‘탄환이 있다는 가정하에’ 어떤 병종을 상대로도 싸울 수 있고, 결정적인 피해를 입힐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는 무모하게 근접전을 노리고 다가오는 적을 요격하거나, 반대로 이쪽이 적의 포화를 무릅쓰고 가까이 다가가 파멸적인 일제사격을 쏟아 부었을 경우의 일이다.
지금처럼 유효 사거리 끄트머리에 가깝게 자리를 잡고 말뚝처럼 서서 사격을 반복할 뿐인 전투에서 이변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한 쪽이 화력 우세, 일반적으로는 수적 우세를 살릴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변수가 없다’라는 상황이기에, 산술적으로 화력이 유리한 쪽이 꾸준히 피해를 누적시키고, 누적된 피해는 원래 열세였던 쪽의 화력을 약화시키는 악순환 끝에 마침내 전열 붕괴에 이르는 법이다.
하지만 현재 그룬발트 군은 1.5배 이상의 수적 우세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우세를 좀처럼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엘랑키아 군은 절묘한 기동과 배치를 통해 교전이 벌어지는 면적을 적절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교전에 참여하지 못한 총병들이 잉여 전력이 되어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측면에서 간혹 날아오는 엘랑키아 포병대의 지원 포격에 누적되는 피해를 생각하면 오히려 화력은 열세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하지만 이쪽이 수적으로 훨씬 많고, 기동 전력으로 쓸 수 있는 연대 숫자도 유리하다!
그렇다면 피해를 감수하고 돌파를 시도하건, 측면으로 우회해 양면 전투를 강요, 1.5배의 압도적인 화력을 비로소 발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령부에서 보내온, 자이트리츠 전쟁관 출신의 젊은 여참모는 거듭해서 여기 반대하고 있었다.
이유는 하나, 아직 서로가 숨겨둔 카드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대체 언제까지 손을 놓고 보고만 있어야 하는 건가? 그룬발트의 용감한 병사들이 아무 의미도 없이 죽어가고 있지 않은가!”
“희생은 물론 애석한 일입니다, 백작님. 하지만 그만큼 적의 전력도 소모되고 있습니다. 전술적으로는 길항··· 아니, 동등한 상황입니다.”
펠쿠트 백작의 참모장 타를라 니케 폰 자이트리츠는 꿈쩍도 하지 않고 대답한다.
예쁘장하게 생긴 하얀 얼굴에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 것을 보면, 저게 가면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전쟁관 출신의 정규 참모라는 명성에 부족하지 않게, 타를라는 훌륭한 참모였다.
운영이 다소 주먹구구식이었던 펠쿠트의 폰 비덴누벨 백작령과 그 동맹 가문들의 군대를 빠르게 체계화 시켰고, 누가 봐도 효율적으로 움직이게 되었으니까.
게다가 평소 사용하던 어려운 전술 용어를 풀어서 차근차근 설명하는 등, 자신은 물론 지휘부의 동료 참모나 중견 지휘관을 배려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생기는 반감도 있는 법이다.
“수적으로 아군이 훨씬 우세하지 않나? 나라고 무모하게 돌격을 외치는 것은 아닐세. 하지만 지원군을 조금 보내자는 이야기지.”
하지만 펠쿠트는 젊지만 침착한 지도자이고, 군인이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말한다.
가문의 주인으로서 어리다고 할 수 있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뻘인 이웃 영주들의 신뢰를 받았던 것은 언제나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백작님. 하지만 지금 전황은 후방에 예비대로 있는 연대 하나가, 전장에 내보낸 연대 하나보다 전술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놈의 전술적 상황은 잘은 모르겠군. 그렇다면 언제까지 전투를 구경만 해야 하는가?”
“적이 무언가 추가적으로 반응을 보이거나, 전황에 변화가 생길 때 까지입니다.”
하지만 참모 타를라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논리정연하게 반박해온다.
“전황에 변화?”
“예. 아군이 결정적으로 유리해지거나, 혹은 결정적으로 불리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입니다.”
“현재 교전에서 그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을까?”
“확률은 거의 없다 생각합니다.”
“그럼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켜만 보겠다는 말이 아닌가!”
결국 발끈하고 언성이 높아지고야 만다.
하지만 자신이 보좌하는 지휘관이 그러거나 말거나, 타를라의 목소리는 여전히 평온한 목소리로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 본인을 자책하고 계신다 생각합니다, 백작 각하. 그렇지 않나요?”
“그래, 그렇네. 그렇지 않은가? 지금 전방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다 쓰러지고 있는 이들은 모두 내 소중한 부하들인데!”
“저는 지금 상황에서 전방의 아군 장병들을 믿고 기다리는 것 또한 ‘능동적인 선택’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능동적인 선택이라고?”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펠쿠트 백작은 조금 놀랐다.
분명 자신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생각의 허점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각하께서 이렇게 전방의 부하들을 걱정하시며 초조해 하시는데, 적장은 어떻겠습니까? 서로 동등한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수적 열세에 처한 엘랑키아의 지휘관이 더 두렵지 않을까요?”
“...그건 그렇지.”
“물론 이런 형태의 교전에서 한쪽이 복구 불능한, 치명적 피해를 입을 가능성은 낮습니다. 그러니 적이 악수를 두기를 기다린다··· 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분하지만, 이 전쟁관 출신인 여참모의 조언은 논리적으로 틀린 데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만이나 반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펠쿠트 백작은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슈뵈켄 마을에서의 공방전과, 그 동쪽에서 벌어지는 중간 규모의 교전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이 보유한 나머지 예비 전력에 대해서도 말이다.
“...만약에, 내가 어떻게든 추가 병력을 투입해서 전황을 바꿔야 겠다고 판단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말에 타를라의 눈가가 살짝 떨린다. 하지만 대화 중인 펠쿠트 백작조차도 확신하지 못할 정도의 미세한 떨림이었다.
“저는 어디까지나 백작 각하의 작전을 돕고 조언을 드리는 참모의 입장입니다. 만약 지휘관으로서 어떤 최종 판단을 내리셨다면, 저는 거기에 맞는 또 다른 조언을 드릴 뿐입니다.”
“휴··· 알겠네. 지금은 귀관의 말대로 하지. 좀 더 상황을 보겠다.”
“조언을 받아들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백작님.”
펠쿠트 백작은 잠시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따지고 보면, 이번 공격 자체가 자신이 강력하게 우겨서 시작된 것이다.
실제로 공격이 결정되자마자 타를라는 거기 맞춰서 부대를 편성하고 조율하며 앞장서서 공격 준비를 마치지 않았던가.
그러니 이번에는, 참모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물론 무조건 그녀의 말대로 행동할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말이다. 아직 그에게는 충분한 예비대가 남아 있었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