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446화 (503/556)

45-6. 폰 자이트리츠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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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랑키아의 침략군을 요격하기 위한 그룬발트 군의 사령부, 디오보르크 루프트 폰 제블링 공작의 막사는 장교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전쟁 중인 상황 답지 않게 분위기는 무척 좋다. 그런 것도 당연했다. 왜냐하면 벌써 닷새 째 승전보가 끊이지 않고 있었으니까.

‘비텔름 경! 북부 대로에서의 승전 소식 들었습니다.”

“하하핫, 이거 부끄럽군요. 운이 좋았습니다.”

“그냥 운이 좋았던 게 아니지요! 평소부터 가병들의 양성에 관심이 많으셨던 비텔름 경의 기사들이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니겠습니까!”

“허허, 저도 제가 키운 녀석들이 그렇게 잘 싸울 줄은 몰랐지 뭡니까?”

“이대로라면 공신은 따 놓은 것이나 다름 없겠군요.”

“다음에는 제가 꼭 출전하고 싶습니다!”

“응원하겠소이다. 하하하핫!”

어디에서 엘라키아 군을 몰아내고 마을을 점령했다.

순찰 중 비슷한 수의 적 정찰대와 마주쳐 교전 끝에 쫓아내 접근하지 못하게 막았다.

패주 중이던 적의 보급부대를 습격해 물자를 탈취해 귀환했다.

따위의 승전보는 승리의 영광에 갈증을 느끼던 그룬발트 귀족들에게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이를 지켜보는 플로리안 도프 폰 자이트리츠는 이런 분위기가 암울한 것 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자이트리츠 전쟁관에서 파견한 참모들이 디오보르크 공작의 사령부에 도착했을 때가 딱 그랬다.

로스니히에서 츠벤 백작이 이끌던 선봉대가 큰 피해를 입은 직후였고, 벼르고 별렀던 공세가 초장부터 좌절되었다는 소식은 청천벽력이었던 모양이다.

총사령관인 디오보르크 공작이 똑바로 인사 관리를 하지 못했다고는 해도 분위기는 정말 패망 직전이나 다름 없었다.

이제 막 출전했으며, 초전에서 패했다고는 해도 전군의 9할 이상이 전장에는 발도 들이지 않았는데 그렇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아무튼 10만에 가까운 대군이 전투를 시작도 안했는데 적이 두려워 미적거린다는 것은 통탄할 만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다행히 그 이후 엘랑키아 군은 소극적으로 나왔고, 이를 추격해 들어간 그룬발트의 지휘관들은 모두 하나씩 승전이라는 훈장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그렇게 분위기가 반전된 것은 좋다. 물론 좋지만··· 그래도 걱정되는 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우선 분위기가 너무 들떠서, 무리하는 이들이 나올 까 걱정이다.

지금처럼 ‘출전해서 적을 찾기만 하면 공훈 적립이다!’라는 분위기가 돌 때가 좀 위험하다.

그리고 더 걱정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는 엘랑키아 군이 예정한 후퇴로 보인다는 것이다.

현재 플로리안이 맡은 일은 인사 참모이긴 하지만, 사령부의 정보 관련 업무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승전이 이어지는 ‘추격전 분위기’일 때 대량으로 발생해야 할 ‘그것’이 거의 전혀 없었다.

바로 포로 말이다.

진짜로 상대가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기습에 성공했거나, 수비하고 있는 마을을 억지로 공격해 탈환했다면 포로가 생기지 않기란 어렵다.

그런데 간혹 발생하는 포로는 대부분은 전투 포로가 아니라 길을 잃고 낙오한 하급 병사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단순히 소규모 접전이라 그럴 수도 있고, 승리와 흥분에 겨운 병사들이 포로가 될 수 있었던 적병들을 함부로 죽여버려서 그런 걸 수도 있었다.

굳이 포로를 잡아오라고 명령을 내렸던 것은 또 아니니까···.

때문에 플로리안은 굳이 이를 문제 삼거나 ‘승장’들에게 추궁하듯 묻지는 않기로 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엘랑키아 군은 최근 며칠 동안 끊임 없이 후퇴했으며, 그룬발트의 선봉은 폴름스의 성벽이 똑똑하게 보이는 위치까지 진출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폴름스 주변에 감탄이 나올 정도로 훌륭한 포위망을 갖추어 놓고 있었다.

지금도 부지런히 폴름스 주변의 지형도를 그리고 있는 자이트리츠 전쟁관 소속의 보좌 참모들의 보고에 의하면 정말 대단한 수준인가 보다.

승리 후 지도와 스케치로 남겨 전쟁관의 공성 전술 교육 자료로 써도 될 수준이라는 모양이니.

그 외에도 폴름스 주변의 작은 마을들과 시골 길을 빈틈없이 요새화 시켜놓고 그룬발트 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점을 종합해 보면, 엘랑키아 군은 이제 후퇴하려고 해도 후퇴하지 못할 것이다. 아예 전쟁을 포기하고 랄렌 강 너머로 물러서지 않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겠지.

선배의 명령으로 그룬발트 전군의 병력을 상세히 파악하고, 동원된 물자까지 말끔하게 정리를 끝낸 플로리안이기에 알 수 있다.

이번 전쟁은 지려고 해도 지기 어렵다.

물론 전장에 ‘절대’는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한 번쯤 호언장담을 해도 될 것 같다.

역사상 신성 그룬발트 제국에, 아니 대륙 전체에 이만한 병력과 이만한 물자가 집결한 적이 있을까?

엘랑키아 군 역시 상당한 대군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장병 개개인의 전투력은 엘랑키아 쪽이 그룬발트에 비해 우위라는 것도 알고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그룬발트의 전력은 병사 개인의 무용이나, 다소간의 전력차로는 뒤집히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었다.

“디오보르크 공작께서 들어오십니다!”

“오오오오!”

“드디어 오시는 군요!”

“다음 황제께 만세를 올립시다!”

“만세! 만세에!”

뒤늦게 사령부 막사 뒤편에서 나오는 디오보르크 공작을 열화와도 같은 박수와 함성이 맞이한다.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확인이라도 되는 것인지, 유독 디오보르크 공작은 약속 장소에 늦는 경우가 많았다.

오늘처럼 본인이 소집한 사령부 회의에도 말이다.

“환영해주셔서 감사하오, 여러분. 그리고 늦어서 미안하오. 긴히 만프레트 참모장과 논의 할 일이 있어서 그랬으니 양해 부탁드리오.”

이것이 차기 황제의 여유라고 해야 할지, 잘생긴 얼굴에 활짝 미소를 띄우며 말하는 디오보르크 공작은 곧바로 모두의 마음을 휘어잡는다.

그가 언급한 만프레트 참모장은 공작의 바로 옆에서 묵묵히 함께하고 있었다.

만프레트 그로블 폰 자이트리츠. 이번 전쟁관 파견 참모단의 책임자이며, 플로리안이 선배 참모이자 사촌 형님으로 누구보다도 존경하는 인물이었다.

올해로 마흔 정도 되어 보이는 만프레트는 뺨이 들어갈 정도로 깡말랐으면서도 바위처럼 단단해 보이는 인물이고, 실제로도 그랬다.

“엘랑키아의 침략자들에 대한 개전은 사흘 뒤로 정했소.”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회의실 안은 함성소리로 떠나갈 것 같았다. 이 정도로 승리를 확신하며 사기가 높은 사령부라니··· 솔직히 놀라웠다.

적을 압도하는 엄청난 대군과, 며칠째 이어진 승전보가 만들어 낸 시너지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전투를 앞둔 지금과 같은 시기는 기세 보다는 냉철함이 필요한 시기인데··· 플로리안은 다소 걱정이 되어 만프레트의 얼굴을 보았으나, 그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지도를 준비해 주겠나?”

“옛, 공작님.”

열 명이 넘는 사람이 동시에 앉을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탁자에 지도가 펼쳐졌다.

최근 새롭게 그려졌기에 다소 조잡한 구석은 있었으나 작전 지도로 손색이 없는 폴름스와 그 주변의 지도였다.

색적과 지도 작성에는 전쟁관의 후배들이 고생을 해 주었다.

“적은 이 곳에 방어선을 펴고 있소. 분명 우리, 그룬발트 제국의 10만 대군에 기세가 눌려 차마 방패막이의 뒤에 숨지 않고선 전장에 나설 수 없다는 것이겠지 말이오.”

“핫핫핫핫!”

“그렇습니다, 폐하.”

디오보르크 공작의 손가락이 위에서 아래로, 세 개의 마을을 차례로 가리킨다.

“이 마을들은 슈뵈켄, 호펜로이테, 브레세른이라고 하오. 엘랑키아의 무리들이 담벼락에 의지해 우리가 공격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지.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싸우기 위해서 말이오!”

차근차근 설명하는 공작을 보며, 플로리안은 이 사람이 정말로 황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타고난 지도자라는 것은 느끼고 있었다.

다소 과장된 말투와 몸짓에는 지켜보는 이를 빨아들이는 매력이 분명히 있었으며, 그 와중에도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과 의도는 분명하게 전달되고 있었으니까.

‘막하의 부하들을 믿고 따르게 만드는 카리스마가 부족하다!’

라는 평을 들은 적 있는 플로리안으로서는 솔직히 조금 부러운 재능이기도 했다. 뭐, 지금처럼 서류와 씨름하며 승리를 후방에서 돕는 역할도 싫지는 않았지만.

“하지만 이번에는 적이 원하는대로 해 주기로 했소. 우리는 전투 첫 날, 이 세 곳을 공격할 것이오.”

조금 의외였다. ‘엘랑키아가 이렇게 하길 원하니, 우리는 저렇게 하겠다’ 라고 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만한 전력 차이를 가진 상황에서 전술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분명 만프레트 형님도 그래서 이렇게 조언을 했던 것이겠지.

전투라는 것은 대화와도 같아서, 적을 때리는 순간 나오는 반응에는 많은 정보가 실려있다. 아마도 만프레트 형님 정도의 재능을 가진 인물이라면, 그 이상을 읽어내는 것도 가능하겠지.

게다가 굳이 강화된 진지를 공격해서 이를 무너뜨리기라도 한다면, 적의 모든 계산은 어그러져 버릴 것이다.

“그렇지 않겠소? 지금 아군이 굳이 적의 약점을 찾아 소심하게 싸워야 할 입장이라 생각하시오?”

“아닙니다, 공작님!”

“명령만 내려 주시면 오늘이라도 공격을 시작하겠습니다!”

“선봉을, 선봉의 영광을 내려주시기를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다시 한번 열화와도 같은 함성. 디오보르크 공작은 열성적인 자신의 부하들, 추종자들이 마음에 드는지 빙그레 웃음을 짓는다.

“정말 감사하오, 여러분. 하지만 아직 내용이 조금 남았소이다. 물론 우리는 ‘일부러’ 엘랑키아의 강점을 공격할 것이오. 하지만, 그렇다고 약점은 공격하지 말라는 법이 있소?”

“아니지요!”

“약점 또한 노리는 겁니까!”

“역시 공작 전하의 식견은 따를 수가 없군요.”

사실 냉정하게 생각하면 별 것 아닌 내용이다. 적의 강화된 진지를 공격할 예정이지만, 또한 약점 또한 노려 공격하겠다는 뻔한 말이 아닌가.

하지만 한 번 빙 둘러 말한 것 만으로도 어마어마하게 대단한 전술적 판단을 한 것 처럼 되었지 않은가.

실제로 이 ‘별 것 아닌 내용’에 감탄하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디오보르크 공작은 그 자신으로도 매력적이고 말도 잘 하는 지도자 성향의 인물이지만, 만프레트 참모장의 조언으로 완성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자이트리츠 전쟁관에는 유명하고도 유능한 인재들이 많이 있지만, 플로리안과 같은 세대의 젊은 참모들은 예외없이 만프레트를 최고로 꼽는다.

그 이유는, 그가 단순히 전술적으로 박식하고 유능한 군인일 뿐 아니라 아군과 적군 모두의 심리의 허점을 노리는 천재적인 면모를 보이기 때문이다.

만프레트가 지휘하는 전투를 살펴보면, 초반부터 종반까지 일관되게 모범적이고 견실한 전술을 사용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 그 상황을 계속 유지만 해도, 시간이 들더라도 반드시 이길 정도로 훌륭한 지휘이다. 교과서에 나와도 될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그 완벽할 정도로 이론과 경험에 부합하는 지휘 속에, 갑작스럽게 번득이는 ‘야성의 한 수’가 나온다.

견실하고 꾸준한 전술에 대응하기 급급하던 상대방은 이 불의의 일격을 맞고 복구불가능의 파멸로 빠져들게 된다.

그것이 이 노련한 전략가이자 전술가인 만프레트 그로블 폰 자이트리츠라는 사나이의 진면목이었다.

분명, 이번에 직접 군대를 이끌고 왔다는 엘랑키아의 국왕 역시 똑같은 쓴 맛을 보게 되리라.

“이를 위한 돌격대의 인선이 끝났소. 이 회의가 끝나면, 각각 담당하신 분들께 칙사가 갈 것이오. 부디, 받아들여 전장에서 승리해 주시기를 바라겠소!”

요 며칠 ‘공평하게’ 지휘관과 병력을 배치하느라 잠을 설쳤던 플로리안은 나름의 뿌듯함을 느꼈다.

이런 유력자들이 많은 대규모의 연합군에서는, 효율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각급 지휘관과 유력자들이 불만 없도록 공평하게 역할과 기회를 주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

병력 우위가 병력 우위인 만큼, 지휘관과 병력을 로테이션해가며 효율과 명분 모두를 챙길 계획을 세울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이미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자이트리츠 전쟁관에서 우리를 돕기 위해 오신 만프레트 경에 대해서 소개하고 싶소!”

지금까지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던 만프레트 형님의 얼굴에 변화가 있었다. 여전히 표정은 변함이 없지만, 고요하던 눈동자가 살짝 떨리는 것을 플로리안은 놓치지 않았으니까.

“그룬발트에서, 그리고 주디칼리에서! 차근차근 강적들을 쓰러뜨리며 불패의 신화를 써 내려온 인물이오!”

공작이 살갑게 어깨에 손을 올리며 앞으로 이끄는 바람에, 만프레트는 한숨을 내쉬며 앞으로 나설 수 밖에 없었다.

“폰 자이트리츠 가문 최고의 참모장! 전쟁관의 검은 늑대, 만프레트 폰 자이트리츠 경을 소개드리겠소!”

또 다시 요란한 박수와 함성소리가 막사를 가득 채운다. 그 안에는 물론 선배이자 형님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플로리안의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게 사흘 후 결전이 확정되었지만, 그에 대한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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