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442화 (442/556)

45-2. 폰 자이트리츠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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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조직은 사람이 세 자리 수만 넘어가도 정확한 인원수를 확인하기 쉽지 않다.

말이 세 자리지, 스무 명만 되어도 매번 줄 세우지 않으면 정확한 인원 파악이 어렵다.

때문에 자이트리츠 전쟁관에서는 지휘관이 다루어야 하는 조직의 수를 8개 이하로 편성하도록 엄격하게 규정한다.

다만 이건 독립적으로 기동을 할 수 있는 부대의 숫자이고, 실질적인 병력 숫자 파악은 좀 다른 문제겠다.

특히 필요에 따라 소집과 해제를 반복하는 봉건 군대의 경우 더더욱 그렇다.

소속원 사정에 의해 늘거나 줄어드는 인원과 각종 비전투 손실을 합치면 정확한 숫자는 실시간으로 변한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부대의 숫자 끝자리, 말 그대로 ‘정확한’ 인원에 해당하는 일이다.

가령 ‘병력 천 명’을 말한다면, 실제 인원이 960명이나 1025명 쯤일 수도 있다는 정도.

그 정도 병력이 조금 많거나 적다고 해서 결정적인 전투력이나 작전 수행 능력에 차이가 생기는 것은 아닐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정확도’의 문제이지, 당연히 전체적인 규모 정도는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병력 천 명으로 알고 있던 부대가 실제로는 542명이라거나, 1702명이라면 이건 큰 문제가 된다.

너무 적다면 지휘부에서 파악한 전투력을 도저히 내지 못할 것이며, 너무 많다면 부대 유지에 어려움이 생기며 자칫하면 병력 낭비가 될 수도 있다.

···사실 용병대가 병력과 장비를 뻥튀기로 보고해서 여분의 보급품을 갈취하고 용병료도 더 받는 일은 너무 흔한 일이다.

그래서 새로 병력을 구성하게 되면 인사 참모의 가장 중요한 일이 병력과 무기가 서류와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것일 정도이고.

문제는 친한 용병대나 이웃 연대에서 장비와 물자를 빌려와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꼼수를 원천봉쇄하기 위해서 불시에 기습적으로 검열에 들어가거나 다수의 부대를 동시에 검열하는 일도 발생하곤 한다.

물론 정말 심각한 조작이 적발되는 것이 아니라면, 관례 비슷하게 적당히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를 확인 감시하는 것도 결국 다 인력이 들어가는 일이고, 중요한 것은 각 용병대가 서류에 기록된 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느냐가 문제이니까.

그래서 베테랑 용병들에게 그런 푼돈을 주고 잠재력을 끌어내면 더 이득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서류 업무 중이던 플로리안 도프 폰 자이트리츠는 갑자기 예전 일이 생각나 한숨을 쉬었다.

서류상 7200명의 보병이 있어야 했는데, 실제 점검 결과 6100명에 불과했었던 기억이다.

평소보다 양심 부족이 심한 용병대장들이 유독 모여있었기 때문인지.

결국 고용주가 노발대발 화를 냈고 뇌물을 받고 인원 부족을 눈 감아준 계약 담당자 둘이 책임을 지고 교수형을 당하는 마무리였다.

그런데 그 때도 황당한 일이었지만,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너무도 황당했다.

병력 파악도 관리도 전혀 안되고 있었다.

엘랑키아 국왕이 직접 이끄는 군대가 랄렌 강을 넘어 침공해온 지 시간이 꽤 지났다.

실제로 디오보르크 공작 휘하에 병력이 집결해 활동을 시작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해도, 그룬발트 전역에서 병력을 모으기 시작한 지는 한 달이 한참 넘지 않았던가?

하지만 참여 귀족의 명단부터, 그들이 이끌고 오는 병력의 내역까지 모든 게 부실했다.

본디 귀족들, 특히 애매한 입장에 있는 귀족들이란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기를 중요한다.

그래서 실제로 병력과 물자가 도착하기 전까지, 이들의 호언장담을 믿으면 안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하물며 숫자를 다루는 게 본업인 참모형 군인이라면 말이다.

그런데 디오보르크 공작 휘하의 군대는 이게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단순히 병력을 제공한 귀족과 용병대장들의 호언장담을 옮겨 놓았을 뿐으로, 그마저도 문서마다 불명확했으며 담당자도 정해지지 않았다.

“휴우···.”

다시 한 번 한숨을 쉰다. 디오보르크 공작의 사령부에는 20명이 넘는 고위 참모들이 있었으나, 이들은 허수아비나 다름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물론 ‘허수아비’라는 표현은 과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들이 특별히 무능하거나 모자란 인물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다수는 나름 전장에서 경험을 쌓았던 이들이며 평균적인 그룬발트 장교 기준으로 평균 이상인 이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나름의 재원들도 그저 숫자만 채웠을 뿐 우르르 모여서 전혀 조직이 되지 않는 한 전혀 전력이 되지 못할 수밖에 없다.

모두의 일은 아무의 일도 아니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단순히 게으르고 업무를 맡기를 기피해서가 아니라, 개인이 맡아서 주도해 나가기가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다.

하물며 원래 알던 사람들도 아니고, 또 나름의 지위와 계급이 있어 어색한 사이에서 나서고 싶다고 쉽게 나설 수 있는 일은 아니었으리라.

그렇다고 사령관인 디오보르크 공작이 열정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것 같지도 않고.

그리고 상당수는 사령부에서 지휘관을 보좌하는 역할 보다는, 실제 전장에서 병력을 이끄는 게 더 맞을 수도 있을 테고.

아마 그들도 답답했겠지··· 플로리안은 앞으로 이어질 전쟁에서 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실력을 발휘할 수 있기를 바랐다.

어쨌든, 아군인데 전력 파악조차 전혀 안 된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며칠 째 잠을 거의 자지 못하고 각종 서류와 씨름하고 있었다.

플로리안을 제외한 다른 전쟁관 동료 대부분은 실제 병력을 파악하기 위해 바쁘게 뛰어 다니고 있었다.

현재 그룬발트의 대군은 크게 세 개의 진격로로 나뉘어 전장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폴름스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최소한 전장에 도착하기 전 까지는 유효 전력을 파악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그나마 동료들이 신속하게 움직여 자료를 모아 준 덕분에, 전체적인 윤곽은 드러나고 있었다.

전군의 규모는 대략 9만을 조금 넘는 것으로 보인다.

허세와 과장이 가득한 기존 자료에서 도합 12만에서 13만에 이르렀던 것을 생각하면, 사 분의 일 정도 줄어든 숫자이지만 그래도 엄청난 숫자이다.

총 병력 9만이라니···.

스스로 나름의 검증을 거친 후 였음에도, 너무 숫자가 커서 놀라 꼼꼼하게 재작업을 진행했을 정도였다.

오랜 수련 끝에, ‘전쟁관 면허’를 얻어 전장에 다니기 시작한지 벌써 10여년이 되어 간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 자리에서 보았던 가장 많은 규모 병력의 숫자가 4만이다.

하지만 4만도 딱 한 번이고, 보통은 1만명을 넘는 경우도 흔한 일은 아니다. 내실 없이 숫자만 많이 채워 보아야 비효율적이고.

설령 병력을 더 동원할 능력이 있더라도 그룬발트 국내의 내전이나 변경의 국경 분쟁은 그 정도의 사생결단은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랄렌 강을 건너 침공해온 엘랑키아 군의 숫자가 6만을 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소름이 끼칠 정도의 대군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남다른 준비를 한 결과가 9만이라는 숫자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전체 선제후의 절반이 모였으며, 새로운 황제 후보자라는 호재에 맞물려 상상 이상의 병력이 동원된 모양이다.

현재는 본성 폴름스에 포위된 상태인, 폴름스 선제후령의 주력군을 합치면 정말로 10만을 훌쩍 넘는 숫자가 된다.

만약 어처구니 없는 기습을 허용해 전초전 아닌 전초전에서 상당한 병력을 날려먹은 선봉장이 아니라면, 이미 10만에 도달했을지도 모르고.

정말···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의 숫자였다. 병력이 이 정도나 되니, 제대로 관리가 안 되는 것도 당연하지.

이걸 바닥부터 처음 조직하는 일이다. 아무리 천하의 자이트리츠 전쟁관이라지만, 이런 일을 해본 참모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건 일 할 맛이 나겠는데.”

다시 말하면 엄청난 업무 폭탄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였지만, 플로리안은 묘한 쾌감마저 느꼈다.

아무도 하지 못했던 위업, 숫자로만 봐도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대군의 관리자가 되어 전장으로 보내는 일은 그의 성향에 꼭 맞는 일이다.

물론 실제로 전장에 이르게 되면, 작전과 지휘는 다른 이들의 역할이다. 이런 기념비적인 대군인 만큼, 다소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작전 수립과 전투 지휘는 자신이 아니라, 선배이자 존경하는 만프레트 수석 참모가 할 일이다.

나이차이는 많이 나지만, 두 사람은 사촌 관계였다.

플로리안이 생각하기에 만프레트는 가장 모범적인 전쟁관의 인재였다. 어떤 전장에서도 기꺼이 지휘를 맡길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 유난히 만프레트 형님의 태도가 이상했다.

엘랑키아가 적이라는 것에 심하게 신경을 쓰는 것 같았고, 적극적으로 이번 일을 담당하고 싶어했다고 느껴졌다.

언제나 침착하던 그 분이 초조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심지어 전장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지는 못했는데.

설마, 엘랑키아 쪽에 파문당한 전쟁관 멤버들 때문에 그런가? 싶기도 했지만···.

필요한 일이라면 언젠가 이야기를 해 주시겠지. 지금은 주어진 일을 마칠 뿐이다.

다음 일은 전군의 재편성으로 정해져 있다.

현재는 전군이 진격로에 따라 좌, 우, 중앙으로 나뉘어 있을 뿐 각 군의 주장이나 부장도 애매했고 조직도 엉망이라 덮어놓고 행군하고 있는 중이다.

1만명 전후 정도의 규모라면 즉흥적으로 전장에 도착하고 역할을 배정해도 되겠지만··· 이번엔 말 그대로 10만 대군이니까.

여기서 플로리안의 역할은 효율적으로 중간 제대를 묶고, 작전과 보급에 편의성을 더하는 것이다.

기왕이면 출발 전에 도착해서 작업했으면 좋았겠지만, 참여가 늦은 것은 전쟁관의 사정이었으니 할 말은 없다.

지금이라도 부지런히 마무리 하는 수 밖에.

그래도 이번 처럼 많은 동료들과 한 전투를 함께 수행하는 것은 처음이니, 외롭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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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랑키아 군이 폴름스를 공격하기 시작하고 막 한달 째가 되기 전, 마침내 그룬발트 군의 주력군이 주변에 도달하기 시작했다.

워낙 대군에, 서로가 서로의 영역을 정찰하기 시작한지도 한참 지나 양측은 나름 객관적으로 서로의 병력 숫자를 파악하고 있었다.

서로가 각각 6만과 9만에 이르는 대군이며, 폴름스라는 도시를 끼고 있기에 야전에서 하루 아침에 승패가 갈리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엘랑키아 군은 가능한 전투를 수월하게 하고 내선의 이점을 발휘하기 위해 정교하게 지형지물을 이용해 방어 준비를 마쳐 놓은 상태였다.

사령부에 새로운 피가 수혈된 그룬발트 군 역시, 전장을 넓게 잡고 수적 우위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 주의 깊게 작전을 구상하고 있었다.

로스니히에서 호되게 한 번 당했기 때문인지 그룬발트 군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조심스러워 졌다.

최소한, 주변 정찰도 충분히 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병 부대를 무턱대고 마을로 밀어 넣는 실수는 하지 않는다.

대신 양군의 정보 우위에 서기 위한 경기병들 사이의 경쟁이 극심했는데, 아무래도 기병 전력에서 우위에 있는 엘랑키아가 우세한 편이다.

그렇다 해도 신성 그룬발트 제국군은 1.5배의 대군이다. 어느 쪽도 완벽한 정보 통제는 불가능했다.

그룬발트 군의 선두가 전진하면, 엘랑키아 군의 전위는 그만큼 후퇴하며 결정적인 전투는 피한다.

아마도 서로가 우위에 있다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 큰 규모의 충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조만간, 엘랑키아 군은 물러설 수 없을 만큼 물러설 것이며 그룬발트 군은 싸우지 않고는 전진할 수 없을 만큼 나아갈 것이다.

그렇게, 역사상 전례가 없을 정도의 대군이 한 장소에 집결한 폴름스 전투의 배경은 시시각각 준비되고 있었다.

다만 양측이 서로 예상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 있었다.

서로의 물리적 구성 요소, 이를테면 병력에 대해서는 비교적 상세하게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강약, 이를테면 전설적인 엘랑키아 기사의 강력함 등도 모르려고 해도 모를 수 없는 상태이다.

하지만 이를 지휘하는 내실, 서로의 지휘부에 대해서는 아직 서로가 모르고 있었다.

가령, 그룬발트는 엘랑키아 국왕이 최근 내전을 통해 유능한 참모를 발탁, 신임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반대로 엘랑키아 역시, 그룬발트 대군이 겪던 대혼란을 삽시간에 정리할 정도로 유능한 자이트리츠 전쟁관 출신의 참모들이 참전했다는 사실을 모른다.

이런 점들이 얼마나 큰 변수가 될지는, 아마 당사자들도 잘 모르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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