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441화 (441/556)

45-1. 폰 자이트리츠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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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트리츠 전쟁관은 특이한 곳이다.

험준하기로 유명한 바위 산맥, 도르데빙켈의 가파른 중턱에 튀어나오듯 하얀 돌로 지어진 성채는 멀리서도 도드라져 보인다.

산맥 아래 멀리에서도 맨 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외부인들에게 상상의 여지를 남긴다.

맨몸으로는 도저히 올라갈 수 없을 것 같은 짙은 회색 절벽에 그림으로 그린 것 처럼 아름다운 하얀 외벽과 첨탑을 가진 요새가 서 있으니 말이다.

저곳은 무엇을 하는 곳일까.

누가 사는 곳일까.

실제로 때로는 산 중턱에 걸린 안개에 가려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하얀 성채에 유배당한 엘프 공주에 대한 이야기가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을 알고 있는 자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폰 자이트리츠 가문이 원래 어디서 시작되었으며, 어쩌다가 전쟁관을 세우게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폰 자이트리츠’ 라는 가문 이름조차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으며, 전쟁관이 존재하는 산맥 중턱의 성채조차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도 불명확하다.

다만 현재 자이트리츠 가문의 도르데빙켈 산맥 성채에 대한 영유권은 신성 그룬발트 황제의 칙명에 의해 인정되고 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신성 그룬발트 제국은 황제의 나라이기는 하지만, 제후들의 나라이기도 하다.

엘프 선제후들을 비롯해, 크고 작은 제후들이 넓은 제국의 영토를 수백 조각으로 나눠 가지고 있다.

게다가 그 영토는 전쟁과 상속, 그리고 거래에 의해 실시간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명확하게 지도를 그릴 수 있는 인간이 없다.

때문에 크고 작은 분쟁과 반란, 전투까지는 이르지 않는 각종 군사 행동들이 끊이지 않는 땅이다. 물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여기서 폰 자이트리츠 가문의 조상 중 누군가는 착안했을 것이다.

모두가 병력을 양성할 때, 자신들은 그 지휘관과 참모들을 양성하자고.

군사력이 필요하면 용병을 고용하는 것이 당연한 문화권이고, 전쟁의 지휘 또한 전략전술에 익숙한 전문가를 세우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수많은 지방 정권이 가진 힘이 막강하며, 심지어 중앙 통치자인 황제가 공석인 경우가 많은 신성 그룬발트 제국도 그렇고.

애초에 통일된 중앙이 존재하지 않는 주디칼리의 세속과 신앙 영주들의 경우도 그렇다.

주권과 군사권을 가진 통치자가 군사 전문가에게 지휘권을 일임하는 대리 사령관 제도는 일상화 되어 있으니까.

다만 이 대리 사령관은 다른 용병대나, 전투에 익숙한 타 지역의 영주 출신인 경우가 많다.

‘남의 전쟁을 전문적으로 대신 지휘하는 인재’ 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하지만 자이트리츠 전쟁관이 양성, 배출하는 인재들은 완전히 그 역할을 달리한다.

고용주의 필요에 따라서 거기 맞는 적합한 인재를 파견한다.

작전 전문 참모, 인사 전문 참모, 훈련 전문 참모, 보급 전문 참모.

때로는 군을 지휘하는 사령관 역할까지.

다종다양한 업무를 모두 처리할 수 있는 유능한 인재들은 쉽게 생겨나지 않는다. 심지어 전쟁 경험이 적은 국가와 영지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걸 폰 자이트리츠 가문에서 대신 해결 해 준다는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이러한 인재들을 꾸준히, 그것도 안정적으로 양성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는다.

다만 그들 대부분은 폰 자이트리츠 가문 내에서 혈연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 소수의 외부인이 교육을 통해 자이트리츠의 이름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정도가 알려진 것의 전부이다.

간혹 혼인을 위해 외부인을 들일 경우에도, 상대가 남자든 여자든 전쟁관 내부에서 생활하는 것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혹시 남들이 따르지 못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은 혈통을 따라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으나 확인된 바는 없었다.

유능한 재능을 가진 전략전술가들을 탐을 낸 많은 제국의 권력자들, 심지어 황제나 선제후들 조차도 폰 자이트리츠에 인재 양성법을 공개하라 요구하기도 했다.

허나 지금 이 순간까지도, 전쟁관 특유의 인재 양성 방식은 완전히 공개되지 않았다.

역사가 오래 된 만큼 자의 혹은 타의로 가문을 떠난 이들을 통해 밝혀진 정보가 없지는 않다.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어느 누구도 도르데빙켈의 전쟁관처럼 안정적으로 인재를 양성하는 것에는 실패했다는 것이다.

전쟁관의 인재들을 고용하는 대가는 대체로 황금과 가치 있는 자원이지만, 때로는 영토나 권리, 신임 따위가 주어지기도 한다.

애초에 도르데빙켈 산맥에 자리한 성채의 영유권을 인정받았던 것도, 언제인가 황제의 군대를 승리로 이끌고 얻어 낸 결과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이트리츠 전쟁관의 명성을 드높여 주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바로 인재들의 공급이 매우 제한된다는 것이다.

간혹 예외가 있을 때도 있겠지만, 수요와 공급이 가격을 결정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전쟁관에서 제공할 수 있는 총 인원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기껏해야 수십 명 정도이다.

때문에 원한다고, 요구한다고 필요할 때 필요한 인재를 즉각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군사력이라는 것은 언제 필요할지 알 수 없는 법이므로, 실제로 필요할 때 아무리 큰 돈을 준비한다 해도 전쟁관의 인재를 구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때로는 전쟁관의 이런 정책을 성토하는 목소리도 없지는 않다.

실제로 그렇게 대단한 인간들이 아니면서, 신비주의와 공급 제한으로 본질을 가리고 몸값만 올린다.

고용주를 골라서, 반드시 이길 전쟁에만 줄을 서는 기회주의 집단이다.

배신과 반역에 이용당하는 어리석은 자들, 신성 그룬발트의 영토에 혼란만을 가중시키는 제국의 공적이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전쟁관에서 직접적으로 대응을 한 적은 없다.

아니, 애초에 인력의 공급과 고용주 측의 요구에 대한 응대 이외에는 어떤 대외 활동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 악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폰 자이트리츠와 전쟁관의 이름이 ‘뛰어난 전략가’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는 것은···.

역사 속에서, 그리고 현실에서 그만큼의 성과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

아무리 과장이 섞였다고는 쳐도, 폰 자이트리츠의 이름을 가진 군인들이 얻어낸 빛나는 승리의 역사는 결코 거저 얻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폰 자이트리츠’도 승리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때로는 패배하는 과정에서의 결사적인 싸움이 승리 이상으로 전쟁관의 이름을 빛내기도 한다.

그리고 전쟁관은 외부의 비난이나 음해에도 절대로 상대하지 않고, 오로지 실적과 결과로만 응한다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고용주에게 진정으로 부당한 대우를 당하거나, 배신을 당했을 때에는 그렇지 않다.

물론 그 대응은 철저하게 ‘자이트리츠 전쟁관의 복수’식으로 이어진다.

스스로는 군사력을 보유하지 않기에, 당장은 어떠한 표출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복수의 대상 가문이 군사적으로 다급한 상황에 몰렸을 때···.

전쟁관은 그 라이벌을 지원한다. 그것도 철저하게.

게다가 이 조용한 복수의 기한은 없다. 오 년이든, 십 년이든.

심지어 당사자가 사망하고 후계자가 가문을 잇더라도 복수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오래 전, 전쟁관을 속이고 모욕했던 강성한 제후가 사망하고, 그 손자가 이웃 영주들과의 전쟁에 휘말렸을 때가 그러하다.

자신의 조부가 저지른 배신과 모욕 행위 때문에, 애꿎은 손자 제후는 복수심에 불타는 폰 자이트리츠 전술가들의 공격에 철저하게 패배.

결국 영토는 라이벌들이 나눠 가지고 가문 자체가 멸족당했다는 이야기이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어디부터가 과장인지는 알 수 없다. 이 역시 전쟁관에서는 아무런 입장도 보이지 않으니까.

다만 사실 여부를 떠나서 한 가지는 분명하다.

전쟁관의 전략가들을 고용하려는 그룬발트의 영주들은, 만약에라도 그들을 배신하거나 모욕할 일이 생기면 한 번 더 생각하게 될 법한 소문이라는 점은 말이다.

그리고 ‘배신’을 처벌한다는 점에서, 폰 자이트리츠의 이름을 가지고 가문을 떠난 탈주자들에 대한 대응 방식도 다소 특이하다 알려진다.

기본적으로 가문의 일원을 통해 지식과 기능이 전수되는 전쟁관의 특성상, 탈주자들도 모두 폰 자이트리츠 가문의 일원이다.

가주의 혈통을 직접적으로 이은 본가 소속이냐, 간접적으로 이은 분가 소속이냐, 오로지 재능만으로 거두어진 양자 출신이느냐 차이는 있지만.

그래서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탈주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처벌은 없다.

긴 역사를 살펴보면, 때로는 탈주자들이 뒤늦게 가문에 돌아와 합류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다만, 가문의 명을 어긴 상태로 다른 군주를 섬길 때 문제가 된다.

아니 섬기는 것 자체도 문제는 없으리라.

다만, 정식으로 전쟁관과 계약을 통해 인재를 파견한 가문의 군세와 대립하여 전장에 서는 순간···.

모든 폰 자이트리츠의 이름을 가진 ‘적’들을 철저하고도 잔인하게 뭉개버리는 것이 법도인 모양이다.

이런 점 때문에 어떤 이유로든 가문을 떠난 이들은 그룬발트 제국령 자체를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이 태어난 곳, 자신이 교육받고 자랐던 곳··· 한 때 자신의 전부였던 곳이기에···.

그 분노를 사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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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트리츠 전쟁관이 파견한 ‘최고의 보좌진’이 디오보르크 루프트 폰 제블링 공작의 사령부에 도착한지 사흘이 흘렀다.

그 며칠 사이, 사령부의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왜냐하면, 곧 보좌진이 도착한다는 핑계로 디오보르크 공작이 모든 일을 미루었기 때문이었다.

10만에 가까운 대군이 움직이는 일이다. 하루하루, 아니 매 순간 온갖 일이 발생하고 그 중 상당수는 사령부에서 확인하고 책임져야 할 일이다.

하다 못해 1만의 군세가 가도를 따라 행군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일이 발생한다.

당연히 그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문제에, 사방에 소영주들이 난립한 상황에서는 통행권을 확보하는 것만으로도 보통 일이 아니다.

물론 적지 않은 영주들이 자기 영토를 순방하는 데도 남의 땅을 밟지 않으면 어려운 복잡한 영토 사정 상, 가도를 이용하는 것은 관례적으로 문제는 없다.

왜냐하면 고대의 포장 도로인 가도는 황실의 고유 재산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다 해도 지나는 지역의 영주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 또한 관례이며, 수천 수만의 대군이 지나는데 포장 도로 밖의 땅을 한치도 밟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총사령관인 디오보르크 공작이 대부분의 직무를 유기하는 바람에 이 모든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참모들이 없지는 않았으나, 불행하게도 사령부의 참모들은 재능이나 역할이 아니라 인맥에 맞춰 구색을 채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차기 황제가 될 인물이다. 그러니 어느 가문에서든 공작의 사령부에 인물을 보내고 싶어했으니, 그들에게 자리를 우선 배정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마침내 전쟁관이 보낸 인물들이 도착했다.

인원은 정규 인원만 전부 7명. 보조 인원을 포함하면 20명이 넘는 큰 규모의 보좌진이었다.

통상 전쟁관에서 고용주에게 파견하는 인원이 정규 인원 1~2명에, 보조 인원 2~5명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를 생각하면 파격적인 규모였기에, 사정을 아는 이들은 모두 술렁거릴 정도였다.

확실히, 그룬발트 제국 전체의 선제후 중 절반이 참여한 연합군이다··· 라는 감탄이 나올 만도 했고.

이들이 도착하자마자, 그 동안 의식적으로 방문자들을 피하는 것 같았던 디오보르크 공작이 누구보다도 빠르게 달려가 환영했다.

심지어 그 환영은 과도할 정도로 화려했고 적극적이었다.

자신의 귀찮은 일을 대신해 줄 사람이라 생각했던 것인지.

고민과 걱정을 끝내 줄 해결사들이라 생각했던 것인지.

많은 사람이 많은 추측을 했지만, 어쨌든 불필요할 정도로 대단했던 환영식 직후 공작은 많은 권한을 전쟁관의 참모들에게 일임했다.

이에 대해 일부는 기꺼워하고, 일부는 불만을 가졌으나 어쨌거나 지금까지 업무에 불만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들이 참모부를 장악하자마자 일이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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