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436화 (436/556)

44-5. 연리목 세계수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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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벤 타른트 폰 바르엘스조펜 백작은 전장에서 반드시 공을 세워야 할 이유가 있었다.

또한, 반드시 디오보르크 공작을 다음 황제로 만들어야 할 이유이기도 했다.

때문에 엘랑키아의 침공 소식이 들리자마자 무리를 해서 상당한 병력과 군자금을 모았고, 누구보다도 빨리 디오보르크 공작에게 달려갔다.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가문의 재산을 팔고 저당을 잡혀 막대한 자금을 마련한 보람이 있었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데다가, 높은 작위라고는 해도 상위 군주는 아닌 디오보르크 공작에게 신하를 자칭했던 보람이 있었다.

아직 기반이 확실하지 않던 시기에 누구보다 빨리 지지를 표명해준 지지자를 디오보르크 공작은 전혀 홀대하지 않았다.

얼마 후 일곱 선제후의 지지를 받아 차기 황제 즉위가 확실시 된 이후에도 언제나 자신의 측근으로 대하며 곁에 두었다.

자신의 가문에 깊게 달라붙어있는 불명예의 그림자 때문에 좀처럼 외부 활동을 하지 못하던 츠벤 백작이었다.

그런 그가 ‘새로운 주군’ 디오보르크 공작의 막하에서 수 많은 대귀족들을 만나 사귀고, 그들의 부러움 섞인 눈길을 받게 되다니.

그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디오보르크 공작에게 직접 명령을 받았다.

‘츠벤 타른트 폰 바르엘스조펜 백작. 나의 가장 충성스러운 신하이자, 나의 진정한 친구여.’

그 순간만 생각하면 아직도 몸이 떨릴 정도였다.

백 명이 넘는 그룬발트 제국의 귀족들 사이에서, 자신의 이름이, 폰 바르엘스조펜 가문이 가장 먼저 불렸으니까.

‘귀공을 선봉장으로 임명하오. 전군의 전위가 되어 폴름스를 향해 출발하시오.’

눈말까지 찔끔 흘리며, 임명장 역할을 겸하는 명령서를 받아 들었다.

그렇게 선봉장이 되어 폴름스를 향해 서둘러 행군한 결과, 지금은 폴름스에서 사흘 정도 되는 거리에 도착하게 되었다.

“저기 앞에 보이는 마을의 이름은 무엇인가?”

“로스니히라고 합니다, 백작님.”

“좋아, 그럼 이곳에 선봉 사령부를 차리도록. 엘랑키아 놈들이 어떻게 나오는지 한번 지켜보도록 하자.”

“옛, 명령을 전달하겠습니다.”

로스니히는 건물 10여 채가 띄엄띄엄 늘어서 있는 호젓한 마을이었다.

건물들은 대부분 비어 있는 것 같았으며, 오로지 가장 큰 이층 건물, 여관 주인 내외만이 머무르고 있었다.

제법 커다란 창고가 있고 농지가 많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대부분 도로를 통과하는 상인들과 거래하는 것이 주 산업인 작은 마을로 보였다.

츠벤 백작은 불안한 얼굴로 엉거주춤 선 여관 내외를 가까이 다가오게 했다.

“이 마을에 남은 건 자네들 뿐인가?”

“예, 예··· 장군님. 전쟁이 일어난다는 소식에 대부분 떠났습니다요. 저희는 여관을 두고 떠날 수가 없어서···.”

“그렇군. 주변에서 엘랑키아 군을 본 적 있나?”

“이틀 전에··· 기사님, 기사 몇 명이 찾아와서 은화를 주고 술을 사간 적은 있습니다요···.”

“이틀이라고? 그들이 무엇을 하던가?”

“별 일은 안했습니다··· 그냥 마을 주변을 산책하나 싶더니 말을 타고 떠나버려서···.”

혹시라도 적에게 협력했다는 이유로 괴롭힘 당하는 것은 아닐지, 여관 주인은 바짝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생애 처음으로 대군의 선봉이라는 막중하고도 영광스러운 임무를 맡은 츠벤 백작은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이 불쌍한 부부를 괴롭힐 생각이 전혀 없었다. 돈 받고 술을 팔았다는 것이 처벌 받아야 할 만큼 심각한 이적 행위도 아니고 말이다.

“이틀이라··· 그럼 조만간 적도 우리가 여기에 도착한 것을 알게 되겠군.”

“그렇겠습니다, 백작님.”

어차피 여기까지 오면서 몇 번인가 엘랑키아 군의 정찰대로 보이는 소규모 기병 무리의 실루엣을 본 적이 있다.

츠벤 백작은 신중한 편이다. 혹자는 소심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때문에 평판에 신경을 쓰면서도 두려워서 적극적으로 이웃 귀족들과 함께하지 못했고, 공적인 자리에 두려워했던 점도 있다.

다만 그런 점이 있었기 때문에 정찰은 비교적 꼼꼼히 하는 편이었다. 그러니 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무턱대고 적진으로 행군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눈 앞에 적이 득실대고 있었다와 같은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마치 자신의 아버지, 선대 폰 바르엘스조펜 백작이 했던 실수처럼 말이다.

“대답 고맙네. 여관은 정상 영업중인가? 재료는 있고?”

“예 백작님, 그렇습니다만···.”

“그럼 식사 준비를 부탁하지. 나와, 여기 훌륭한 지휘관들이 먹어야 하니 20인분 정도 부탁하네. 머무는 동안 방도 좀 쓰겠네.”

“예? 예, 예! 물론입죠!”

지갑에서 금화를 하나 꺼내 던져주자, 황송하다는 듯 두 손을 내밀어 받는다. 상인의 버릇대로 이빨로 깨물자 옆에서 부인이 기겁하며 남편의 팔을 친다.

무례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츠벤 백작에게는 무지한 백성들의 그런 행동조차도 유쾌하게 느껴졌다.

사실 금화는 큰 돈이고, 여관을 통째로 한동안 빌린다고 할지라도 그만한 가치는 없으리라. 여관에서 내주는 음식이라고 해야 뻔한 수준일 테고.

게다가 한계까지 가문의 여력을 짜낸 츠벤 백작에게도, 금화는 큰 돈이었다.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하지만 영지의 일부를 도시의 은행가에게 담보로 잡혀 큰 돈을 빌렸고, 지금도 그 이자는 계속 오르고 있었다.

허나 이번 전쟁이 끝났을 때, 자신은 포상을 추가로 받을 것이며, 쪼들리는 생활에서 완전히 벗어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자신은 ‘확실한 다음 황제’인 디오보르크 공작의 가장 친한 측근이었으니까.

게다가 지금 함께하는 휘하 지휘관의 대부분은 원래 폰 바르엘스조펜 백작가의 가신이 아니다. 선봉장으로서 자신에게 맡겨진 부대의 지휘관들인 것이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한 번 쯤 지휘관의 배포를 보여주고 식사를 함께 할 필요는 있었다.

실제로 지금 그의 뒤에 늘어선 참모와 지휘관들이 기뻐하는 것이 느껴진다. 오랜 행군 끝에 오랜만에 지붕 있는 집에서 제대로 된 음식을 먹는 것일 테니까.

이런 걸 위해서 금화를 들고 다닌 것이다, 라고 평소에는 상당히 검소한 편인 츠벤 백작은 생각했다.

“그, 그럼 저희는 식사를 준비하러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러게. 기대하겠네.”

여관주인 부부는 서둘러 여관으로 돌아간다. 그러면서 뭔가 서로 티격태격하는 것이 보인다.

그 모습을 보며 츠벤 백작은 막연하게 이번 전쟁에서 그들이 화를 입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럼 한동안은 이곳을 거점으로 활동하려 하니, 지휘관들은 부대를 인솔하고 참모들은 주둔지 자리를 정하도록 하게.”

“예, 백작님. 백작님께서는 여관에 머무시겠습니까?”

“흐음···.”

하늘을 보니, 아직 해가 지려면 한참 남았다. 저녁으로는 조금 이른 시각이었기 때문이다.

“잠시 주변을 돌아보겠네. 지휘관으로서 지형 파악은 중요하니 말이지.”

“현명하신 생각입니다, 백작님.”

이 주변은 그룬발트 중북부까지 이어지는 대평원 지역의 일부로서, 전체적으로 평탄한 편이다.

하지만 유난히 빽빽하고 높이 자라는 그룬발트 침엽수림이 여기저기 있었고, 온전한 평지가 아닌 구릉지대가 섞여 있기도 했다.

그러니 이를 이용하려면 전투가 벌어지지 않는 시기, 평소에 부지런히 확인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최근 츠벤 백작이 부지런히 읽고 있는 군사학 서적에 적혀 있는 내용이었다.

그룬발트의 고명한 엘프 사령관이 쓴 책으로, 추천을 받기는 했으나 워낙 인기가 많아 간신히 구한 책이었다.

내용은 평범한 일반론으로 시작한 것 같으면서도, 실질적인 전술 이론에 이르기까지 무척 읽기 쉽게 합리적으로 배열되어 있었다.

참으로 많은 도움이 되는 책을 구해 다행이라 생각했다.

“혼자 돌아볼 테니, 자네들은 잠시 쉬면서 진영지를 준비해 주게나.”

“옛, 백작님!”

부관과 소수의 호위병들만 이끌고 대열을 떠난다. 마을 주변의 숲과 개울 형태가 독특했다.

향후 부근에서 전투를 하게 된다면 배치와 행군을 방해할지도 모르니, 확실하게 기억해 두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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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니히 여관의 주인 내외가 준비한 식사는 굉장히 맛이 있었다.

오랫동안 손님이 들지 않는 탓인지, 혹은 작고 황금빛으로 빛나는 금화를 내준 덕인지 각종 재료를 아낌없이 쓴 음식은 전장에서 먹기에는 지나치게 호화로웠다.

그룬발트 북부 특산의 짭짤한 치즈를 아낌없이 사용했고 오븐에서 천천히 구워낸 닭고기는 과식을 할 정도로 맛있었다.

함께 식사를 한 지휘관들과 참모들도 호평이었으니까. 음식이 넉넉하다 생각했는데 마지막에는 조금 부족할 정도였다.

다만 빵이 좀 단단하고 푸석거렸고, 반주에서 신 맛이 너무 과했다라는 단점도 있었지만. 그래도 전투를 앞두고 먹는 식사라 생각하면 뭐든 이해 가능했다.

게다가 휘하 지휘관들은 술 맛은 둘째치고 오랜만에 취할 수 있어서 기쁜 모양이었고.

그들이 연거푸 건배하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자신도 기뻤다. 금화가 아깝지 않았다.

잠자리는 딱 생각했던 만큼이었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이불만 자신이 평소 사용하던 것으로 바꾸었고.

딱딱한 목제 침대는 평소 쓰던 군용 침상보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그래도 오랜만에 사방이 닫힌 벽과 지붕, 그리고 난로의 안정감을 느끼며 누워서 그런지 푹 잘 수 있었다.

잠에서 깬 츠벤 백작은 자신이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창 밖은 아직 어둠이 깔려있다.

새벽 안개 때문인지, 건물 건너편도 잘 보이지 않는다. 아마 저 너머로는 휘하 병사들이 곤히 자고 있는 막사들이 줄줄이 서 있겠지.

차가운 새벽 공기를 맞으며 생각해보니, 어제 음식을 많이 먹고 술을 마셔 목이 말라서 깬 것 같았다. 미지근한 물을 마시고 다시 침대에 앉는다.

그가 움직이면 하인들과 참모들도 일어날 것이다. 굳이 새벽부터 호들갑을 떨고 싶지는 않았다.

기세 좋게 선봉장을 맡아 나서기는 했지만, 이만한 군을 이끄는 책임자가 된 것은 처음이다. 어떻게 싸워야 할지는 아직 확신까지 들지는 않았다.

그래도 부지런히 책을 읽으며 공부하고 있었고, 새로운 주군 디오보르크 공작이 유능한 용병 출신 참모들도 붙여주었으니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이리라 생각한다.

아직 어두컴컴한 방 안이지만, 평소 읽던 군사학 서적을 꺼내 든다.

어제 저녁을 먹기 전에 머리 속에 넣어 두었던 주변 환경을 되새김해 본다. 로스니히 북쪽에는 좁고 긴 숲이 있고, 남쪽으로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콰앙!

창 밖 희끄무레한 어둠 속에서 갑자기 굉음이 들린다.

“무슨 일이지?”

화약의 폭발음인지는 확실치 않다. 이런 일은 전에도 종종 있었으니까.

수천 명이나 되는 병사들 중 하나가 실수로 불가에 화약을 두었을 수도 있고, 단순히 쌓아 둔 보급 물자가 상자 째로 쏟아지며 난 요란한 소리일 수도 있었다.

꽝! 콰앙! 쿠쿵!

별 일이 아니기를 바랐었는데, 별 일이 아닌 것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 이어지는 폭음이라니, 이건 명백하게 목적을 가진 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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