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434화 (434/556)

44-3. 연리목 세계수의 도시

“끄아아아악!”

“흐익, 살려줘!”

“으아앗! 뜨거워어어!”

“뭐야? 무슨 일이야?”

끔찍한 비명소리가 성벽 안쪽에서 울린다.

폭발에 노출된 부위가 너덜너덜 엉망이 되어 즉사한 자들이 있고, 그보다 많은 자들이 크고 작은 상처를 입고 나뒹굴거나 방향 없이 달리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성실하게 성벽 복구작업에 임했던 다른 운 좋은 병사들도 손에 들고있던 작업 공구와 재료들을 팽개치고 도망치기 시작한다.

어디까지나 지금은 포격과 포격 사이의 안전한 기간, 포탄에 직격당할 가능성은 한 없이 낮다고 생각하기에 부지런히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 포탄이 떨어지기 전에 끝내면 된다, 그러니 열심히 일하자··· 라는 생각은···.

폭발하며 사방으로 쇳조각을 뿌려대는 무시무시한 쇳덩이가 떨어진 이후 끝장나 버렸다.

꽈광!

“으아아악!”

“도망쳐!”

거기서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또 한 번 폭발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병사들의 대기소로 사용되던 나지막한 목제 임시 건물의 지붕 위에서 폭발해 피해는 적었으나, 건물에 불이 옮겨 붙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도 모른 채로, 공포에 질린 병사와 인부들이 사방으로 도망친다.

폭발하는 사람 머리 정도 크기의 쇳덩이는, 엘랑키아 군의 포병이 가진 구포에서 발사된 포탄이었다.

마치 절구처럼 생겨서, 금속이나 돌로 된 운동 에너지탄을 쏘는 화포에 비해 짜리몽땅한 포신을 가진 독특한 포.

그리고 거기서 발사된 통상보다 훨씬 큼직한 포탄은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난 후 폭발하는 지연 신관과 화약으로 가득 차 있는 쇳덩이였다.

계획대로 잘 된다면, 시간차로 폭발하는 포탄이 적에게 불지옥을 선사하게 되리라.

비교적 신형 무기이기는 하지만, 신성 그룬발트 제국령 어딘가에서도 사용되고 있을, 그렇게까지 생소한 무기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주디칼리와 가까운 남부와 남동부 지역의 부유한 도시들은 대륙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가졌기로 유명했다.

이런 지역의 영향을 받아 화약 무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선제후들도 적지 않았다.

이번 전쟁에도 지원군으로 참여한, 브라우나인 선제후령 역시, 지속적으로 화약 무기를 개발하고 확충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와 달리 화약무기의 확충에 별 관심이 없었던 폴름스 선제후령의 병사들에게는 완전히 생소한 종류의 무기였던 것이다.

증오스러운 엘랑키아 왕국을 마주하고 있는 폴름스의 군인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구름처럼 몰려오는 엘랑키아 기사들이었지 화약 냄새나는 쇳덩이 따위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기사가 주 상대니, 성벽 안쪽은 비교적 안전한 지역이라 생각하던 병사들에게 말 그대로 날벼락이었다.

“세 발 중 두 발 명중, 폭발음을 확인했습니다!”

“모두 수고했다. 예정된 템포 대로 포격을 계속 하도록.”

“옛, 알겠습니다.”

보다 후방의 지휘소에서 조심스럽게 공성 포병의 전과를 살피던 에티엔 공작은 성공 보고를 받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신무기는 아직 다루기 어려웠다. 사거리도 파악이 어렵고 조준도 힘들어 제 멋대로 날아가기 일수였고.

게다가 복잡한 기술로 만들어진 포탄은 불발률이 제법 되었다.

그런데다 화약 소모량이 막대하고 포탄은 엄청나게 비싸서 충분히 쏴 볼 기회도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 첫 시도는 성공이라고 해야겠다. 한 발이 성벽 밖으로 벗어난 것은 아쉬웠지만, 두 발이 무사히 날아간 것에 기뻐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엘랑키아 왕실 직할의 포병대는 공성 공병의 지원 부대로 공성 책임자 에티엔 드 크레이 공작의 관할이다.

왕실군 전체의 규모를 따져 보면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상당히 내실 있는 장비와 인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에티엔 공작이 포병의 규모와 훈련도 뿐 아니라, 그들을 활용하는 전술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진 것은 자신이 겪었던 뼈 아픈 패배 덕이었다.

블랑독의 이단을 토벌하기 위해 출전했던 샹다메리 전투에서, 국왕측 성전군의 포병대는 포병전에서 큰 피해를 입었다.

포문 수는 상대가 많아도, 사거리와 파괴력에서 이쪽이 우위라 생각했던 엘랑키아 군 사령부에게 큰 충격이었다.

비록 패장이었으나, 앞으로도 계속 패장일 수는 없다 마음을 다잡은 에티엔 공작은 간접적으로라도 부지런히 공부했다.

필요하다면 주디칼리나 그룬발트, 더 나아가 알디온에서 발간된 군사학 서적도 구해다 보았다.

배울 게 있는 경험 많은 군인과 기술자들을 만나면 가급적 많은 것을 흡수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게 주디칼리의 델로나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했던 에티엔 공작의 성향과 잘 맞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기병 돌격 전에 반짝 활용하는 보조 전력’ 정도로 생각되던 왕실군의 포병대는 완전히 환골탈태하게 되었다.

게다가 이번 실전투입 직전, 트랑카벨의 에트 경과, 그 부관이라는 여성 용병 첼레스티나의 도움을 받으면서 확실하게 진일보했다.

가령, ‘성벽을 부수는 용도’인 공성포의 포격 사이에 ‘성벽 수복을 방해하는 용도’인 구포 포격을 섞어 넣으라는 아이디어가 그러했다.

본래 구포는 그 짧은 사거리와 제한된 포탄 수 때문에 한참 뒤에나 사용할 예정이었지만.

성벽 내부의 상황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무너진 성벽 너머로 언듯 언듯 보이던 작업자들의 모습이 한참 보이지 않는 것만 해도 성과가 있는 것은 분명했다.

사실 이런 종류의 공성 전술은 주디칼리의 전술가들이 많이 연구했던 내용이다.

하지만 실전에서 충분히 활용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사용하기에 제약이 많았기 때문이다.

다만, 압도적인 숫자의 인력을 동원할 수 있었던 엘랑키아 군의 공성 포병은 어설프게나마 실전에 활용하는 데 성공했다!

그 이유는 공성 포병의 최고 책임자가 다름 아닌 국왕의 사촌 동생인 에티엔 공작이었던 덕분이다.

감히 에티엔 공작의 동원 요청에 불만을 가지는 지휘관이 있을 리 없었다.

게다가 지원자들에게 추가 배급과 포상까지 약속했기에 교대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참호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덕분에 엘랑키아의 공성포들은, 폴름스 수비대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빠르게 성벽에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이고.

“이거··· 어쩌면 정말로 성벽을 뚫어 버릴 수도 있겠는데?”

관측소에서 조심스럽게 머리를 내밀고 성벽을 살피면서 에티엔 공작이 중얼거렸다. 마치 자기 자신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이다.

여기저기가 심하게 파손된 폴름스의 성벽에서는 흙먼지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었다.

콰쾅! 쾅!

다시 한 번 장전을 마친 공성포들이 울부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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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경의 주군은 귀경과 부하들을 해방하기 위해서 돈을 낼 생각이 없는 모양이오.’

얼마 전 함락된 로델베르크의 성주이자, 지금은 엘랑키아 왕실군의 포로인 핀타펠트 타핀 폰 클리펜 남작은 얼마 전 들었던 말이 잊혀지지 않았다.

‘글쎄, 이유야 내가 어떻게 알겠소. 하지만 귀경에게는, 그리고 우리 엘랑키아 왕국에도 안타깝게도 교섭은 결렬되었소. 어제 폴름스에 다녀온 사자의 말이오.’

물론 그와 만나고 있는 엘랑키아의 담당자가 거짓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석방을 위한 몸값을 받는 대신, 장차 적의 전력이 될 수 있는 인력을 빼앗는 쪽을 ‘전략적으로’ 택하는 일은 분명 있을 수 있으니까.

허나 진실이든 거짓이든, 로델베르크에서 항복한 그룬발트 군 포로들이 무사히 돌아갈 방법은 없어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

이대로 쇠약해지도록 방치당할지, 혹은 빠르게 처분 당할지. 핀타펠트 남작은 자신과 부하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도 알 수 없었다.

이미 항복해서 무기를 버려 전투 능력이 없어진 적에 대한 학살은 당연히 비난 받는 일이다.

적은 물론이고 아군에게도 말이다.

하지만 포로의 해방을 위해, 승자로서 노력을 다 한 상태.

예를 들자면, 그들의 주군에게 교환이나 몸값 지불을 제안했다가 거절한 상태라면···.

게다가 포로를 관리하기 어려운 상당한 이유가 있는 시기, 구체적으로 여전히 전투가 벌어지는 상황이라면.

포로들에 대한 부득이한 처분은 암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설령 그로 인해 비난을 받는다 해도, 그 도덕적 책임의 수위는 훨씬 낮아질 것이다. 가장 큰 책임은 포로들을 버린 주군에게 있기 때문이다.

주군에게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부득이하고 절박한 상황이라 성 밖의 포로가 된 부하들을 챙길 수 없었을지도 모르지.

어쩌면 최후까지 싸우지 않고, 후퇴만 거듭하다가 결국 성을 잃고 항복한 핀타펠트 남작 자신에 대한 징벌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설마 엘랑키아 측에서 포로들을 죽이기까지 하겠냐는 생각을 했을지도.

나중에라도 교환의 대가가 될 수 있는 가치 있는 존재이니까, 고생이야 하겠지만 목숨까지 건들지 않으리라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엘랑키아 측에서는 의외의 제안을 했다.

‘자비로우신 다고베르 2세 폐하께서는, 귀경에게 제안을 내리셨소이다. 귀경과 부하 병사들이 4주, 총 28일 동안 노동력을 제공한다면, 자유의 몸으로 풀어 주신다는 제안이오.’

허나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다. 핀타펠트는 즉각 거절했다.

‘공성전에 앞세울 생각이라면, 거절하겠소이다. 비록 포로 된 몸이나 병사들을 총알 받이로 세울 수는 없소! 주군을 향해 검을 들 수도 없고 말이오.’

‘아, 잠시 오해를 하신 것 같소. 귀경과 다른 포로들이 폴름스의 전장에 서거나, 다른 그룬발트 군과 적대하는 입장에 서지는 않을 것이오. 명예를 걸고 약속드리지.’

‘...그렇다면?’

‘전장에서는 할 일이 많소. 각종 물자를 나르고, 오랜 전투에 대비해 방어 진지도 만들어야 하고 말이오.’

물론 그 또한 엘랑키아를, 적국을 이롭게 하는 행동은 분명했다.

신성 그룬발트 제국의 귀족으로서, 은혜를 받은 로델베르크의 성주로서 심리적 거부감은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나 다른 기사들이야 그렇다고 하지만, 병사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저 성실하게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로델베르크로 모였으며, 우직하게 자신의 지휘를 따른 죄 밖에 없는 병사들.

압도적인 엘랑키아 군의 전력에 눌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항복하고 말았지만, 여기 그들의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는지 말이다.

‘...만약 거부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이오?’

‘글쎄··· 거기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소. 그냥 가둬 둘 수도 있겠고, 억지로라도 일을 시킬 수도 있겠고···.’

굳이 말을 하지는 않았으나,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은 분명했다.

결국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었다.

‘받아들이겠소. 28일간의 노동력 제공이오. 하지만 이 몸은 신성 그룬발트 제국의 귀족이며, 부하들 역시 충실한 신민들이오. 만에 하나라도 조국을 향해 무기를 겨누는 일은 없을 것이오.’

‘이쪽도 국왕 폐하를 섬기는 엘랑키아 귀족으로서, 명예를 걸고 약속드리오리다. 전투에 휘말리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하겠소.’

언듯 예의바르고 이쪽을 배려해주는 태도였으나, 마지막 말은 다소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정중한 태도 사이에 숨겨진, 나는 섬기는 군주가 있지만, 너는 이제 없지 않느냐··· 라는 듯한 질책. 핀타펠트는 몹시 불쾌했지만 할 말이 없었다.

쿵, 쿠웅! 쿵!

멀리서 포성이 들려온다. 그의 주군··· 지금도 주군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폴름스의 성벽을 공격하는 엘랑키아 군의 포성이다.

결국 핀타펠트와 그 수하 포로들은, 인부가 되어 엘랑키아의 일을 돕는 수밖에 없었다.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수십 개의 작은 조로 쪼개져, 엘랑키아 군의 지시와 감시 아래에 짐을 나르고 땅을 다지는 일이었다.

약속은 철저하게 지켜져 전장에서 먼 후방에서만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작업은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위험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섞여서 일을 하게 된 엘랑키아 군의 인부와 병사들은 친절한 편이었다. 힘든 일을 나눠 하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태도인지.

마음에 걸리는 점은 수없이 많지만, 지금은 어쨌든 남은 기간을 보내고 자유의 몸이 되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쿵, 쿵. 쿠쿵.

멀리서 들리는 포성이 불길했다. 적어도 폴름스의 성벽이 로델베르크처럼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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