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420화 (420/556)

42-17. 랄렌 강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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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아아···.”

첼레스티나의 입에서 깊은 탄식이 나온다. 너무 안타깝고 속상한 나머지 주먹으로 자기 허벅지를 통통 친다.

“이게 안 맞았네···.”

“곧바로 다시 장전할까요, 부관님?”

“아니에요오··· 아마 다음 기회는 없을 거예요.”

그들은 평소대로 포격 후 반동으로 밀린 포를 끌고 황급히 자리를 뜬 상태였다.

첼레스티나는 이미 몇 번이나 포탄에 맞아 반쯤 폐허가 된 건물 벽에 난 구멍으로 망원경을 내밀어 전장을 살핀다.

좌측으로부터 아군 보병이 언덕 아래로 적을 밀어버리고 있었고, 자기들이 공격하는 줄 알았던 언덕 아래의 적들이 허둥거리고 있었다.

방금 첼레스티나와 제18 벨모제 보병 연대 소속 1번 포가 노렸던 ‘화려한 옷의 무리’는 황급히 호위병들의 보호를 받으며 후방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단 한 번 뿐이었던 기회는 그렇게 멀어지고 있었다.

“휴, 내가 한 번에 잘 했어야 했는데에···.”

“아닙니다 첼레스티나 부관님! 이 거리에서 한 번에 표적에 이만큼 가까이 맞출 수 있는 자는 엘랑키아 전체에 아무도 없을 겁니다!”

“에효오오···.”

의기소침한 첼레스티나를 포술장이 위로한다. 이 포술장은 실제로 엘랑키아 전역에서 포병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용병 출신이다.

그는 진심으로 첼레스티나의 귀신같은 위치 선정이나 표적 설정, 거기 더해서 세밀한 명중률 조정에 대해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이러나 저러한 첼레스티나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방금 전의 포격은 첼레스티나와 숙련된 포술장이 상당히 오랜 시간에 걸쳐서 공들인 조준 사격이었다.

몇 번이나 바닥을 기듯 눈 높이를 낮춰 수평을 확인하고, 표적과의 거리를 계산하며 필중의 한 발을 준비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밋밋한 원통에 구형의 금속 덩이를 밀어넣어 화약의 힘으로 쏠 뿐인 무기인 이상, 명중을 담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나마 명중을 보정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밑준비가 필요하고, 사용자의 초인적인 감각과 경험이 동반되어야 한다.

바퀴 아래에 단단한 나무 껍질을 깔고, 포신 아래에 나무토막을 깔아가며 미세한 조정을 완료했다.

평소보다 화약을 살짝 많이 넣어, 간당간당한 거리를 넘길 수 있도록 추진력도 확보했다.

이 정도면 맞출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을 때 점화구에 불을 당겼다.

이러고도 최대 유효 사거리 기준으로 명중률이 두 발 중 하나가 된다면 간신히 명사수 취급을 받는 세상이니까.

때문에 대체로 굳이 사격에 과도한 노력을 들이지 않는다. 애초에 대부분의 경우 한 발이라도 더 적진으로 투사하는 게 중요하니까.

다만 ‘대체로’에 속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

가령, 포탄 한 발로 적 사령관을 맞출 수 있다면?

그건 수백 수천의 병력을 투입하고도 쉽게 도달하기 어려운 목표를 단숨에 해결한 셈이 되는 거니까!

보통 화려한 복장을 한 지휘부는 눈에 들어오기는 해도 포탄으로 명중시킬 수 있는 기회는 잘 생기지 않는다.

다만 이번에는 언덕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어 평소보다 사거리를 길게 잡을 수 있었고, 엘프들이 입는 하늘비단 옷은 저녁해를 받아 선명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래서 노렸던 것인데··· 너무 아쉬웠다.

사실 그냥 콘도티에레에게 칭찬을 받고 싶었고, 콘도티에레에게 처음으로 사령관급 적장을 쓰러뜨렸다는 영광을 안겨 주고 싶었다.

그럼 얼마나 좋았을까··· 콘도티에레가 얼마나 기뻐해 주었을까···.

그래서 계속 다른 생각이 든다. 화약량을 조금 더 늘렸으면 어땠을까? 구경이 더 크고 포신이 긴 야포를 가지고 왔었다면···.

비현실적인 생각으로 이어지자, 첼레스티나는 고개를 저어 흘려 보냈다.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고 포병대는 아직 할 일이 있었다.

“주변의 다른 포들에게 알려주세요오. 적 포병들이 더 이상 언덕 위를 노리지 못할 것 같으니 다시 포대를 이루어 아군을 지원해야 해요.”

“알겠습니다 부관님!”

언덕을 내려가는 돌격은 기세를 올리기에는 좋지만, 언덕 아래의 적 포병에게 쉽게 노려질 수 있었다.

그러니 그룬발트 군의 포대가 우리 병사들을 쉽게 노리도록 방치할 수는 없었다.

“자, 장전! 서둘러요!”

“옙!”

아 정말··· 아까 노린 한 발로 적장을 맞췄더라면 전황을 확 뒤집었을 텐데··· 첼레스티나는 애써 침착한 척 했지만, 속으로는 자기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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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의 드 레뮤즈 보병 연대에게도 전령을 보내! 이 기세를 늦추면 안 된다!”

“알겠습니다!”

“예비 중대는 중앙에 투입한다. 선봉으로 나선 아군의 측면을 위협하게 두지 말도록!”

“옛, 콘도티에레!”

나는 바쁘게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명령을 내리고 있었고, 덩달아 수석 참모 리타르몽 드 당세르와 사령부 전령들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전선과 언덕 꼭대기가 너무 가까워서, 이번 전투는 직접 눈으로 전장을 보고 지휘하기가 힘들었다.

중간 중간 조금씩 눈으로 확인하는 것 아니면, 전투 전에 확인했던 지형과 아군의 배치를 바탕으로 머리속에 전황을 그리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

아군 제18 벨모제 보병 연대가 적을 밀어내기 시작하여 전선이 언덕 아래로 밀려난 지금은 탁 트인 시야로 전장을 직접 보고 지휘할 수 있어 시원했다.

물론 참모들은 뜯어 말리기는 했지만··· 내가 멀리서 눈에 띄는 화려한 장식을 하지 않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사적으로도 공적으로도 눈에 띄는 걸 썩 좋아하지 않는데, 특히나 전장에서는 ‘눈에 띄면’ 큰 일이 나니까.

퍼엉! 뻐벙! 뻥!

“첼레스티나 부관님이 포격을 재개하신 모양입니다!”

“훌륭한 타이밍이네!”

적의 반격을 피해 간헐적으로만 포를 사용하던 첼레스티나의 포병대에서, 오랜만에 일제사격의 요란한 포성이 울려온다.

마치 ‘우리 아직 안 끝났다!’ 라고 외치기라도 하듯 말이다.

갑작스러운 전황의 변경 상황이다. 심지어 더 급한 전방 부대와 그 후속 병력을 처리하느라 사전에 아무 이야기도 해 주지 못했는데도 말이다.

역시 첼레스티나, 내 부관이다! 포병 쪽은 신경쓰지 않아도 최적의 화력 투사를 해 주겠지.

“콘도티에레! 저희 드 몽파르지에 기병대의 차례는 아직입니까?”

“음, 아직은 예비대로 대기해주게. 더 확실하게 적 보병을 언덕 아래로 쓸어 내린 다음 차례까 올 테니.”

“알겠습니다, 콘도티에레!”

티테니아 드 몽파르지에가 씩씩하게 대답했지만, 그 표정에는 아쉬움과 기대감이 가득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렇게 녹록하지만은 못하다. 분명 다를 쿠에상 연대장의 멋진 타이밍 반격으로 승기를 가져온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미 승패가 갈려 되는대로 병력을 다 밀어 넣고, 기병대는 무너져서 도망치는 적을 추격하면 되는 상황이냐고 하면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나는 필요하면 언제라도 돌격을 멈춰야 한다 생각하여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아군을 따르라! 전진! 전진!”

“기세를 늦추면 안 돼! 트랑카벨 군의 뒤에 바짝 붙는다! 모두 서둘러!”

후속 전력으로 투입된 드 레뮤즈 보병들이 상기된 모습으로 언덕을 내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포함된다 해도, 여전히 비탈에서 이어지는 전투에서 아군은 수적으로 열세였다.

언덕 아래에는 아직 대열이 유지되는 보병 부대가 몇 개나 보였으며, 족히 적군의 최소 삼 분의 일은 아직 전장에 발도 담그지 않았으리라 추측된다.

최악의 사정을 가정해보자.

자칫 기세에만 맡겨 무작정 돌격하다가는 제대로 된 적의 반격에 막힌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군은 지칠대로 지치고 대열은 무너진 상태. 그대로 2차전이 시작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다행히 내 생각을 알아주었는지, 전군의 좌측에서 돌격을 이끌고 있는 다를 쿠에상 연대장도 부대의 질서를 회복하고 있었다.

초기의 충격력을 살린 무질서한 돌격으로 일단 적이 물러서기 시작하자, 적을 밀어 붙이면서도 중대 단위로 대열을 갖추는 것이다.

그건 충격력을 낮추더라도 적의 반격에 대비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전선의 다른 부분에서 아군이 나아가 수평을 맞추는 것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지금은 다를 연대장이나 그 휘하 장병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는 없는 상황이니,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건 지원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속으로 조마조마하고 있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전황은 지극히 고무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언덕 비탈 아래로 진격하는 것이라는 것도 있었고, 적은 쭉쭉 밀리고 있는 데다가 여기저기서 넘어져 적체 현상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눈에 뭔가가 보인다.

아군과 적군 병사로 가득한 전장에, 유독 한 줄기 뚫려있는 길이.

“전령··· 전령!”

“옛, 콘도티에레. 전령!”

“앗 아니다··· 티테니아 경! 이리 와 보게!”

“예? 저 말씀··· 넵, 콘도티에레!”

나는 티테니아의 어깨를 붙잡고 반대편 손으로 언덕 아래를 가리킨다. 시간이 흘러 전장에는 석양이 내리기 시작해 전장 전체가 붉게 보인다.

“저 쪽, 다를 연대장이 이끄는 좌측 부대 끝이 보이나? 적의 방어선이 끊어져 있는 간극 말일세.”

“예? 예! 보입니다, 콘도티에레!”

“여기선 숙련된 기병의 움직임이 필요하네. 귀경에게 요구하는 건, 충격력이 아니라 저 일점을 돌파할 수 있는 운용 능력이니까.”

전장은 아군과 적군으로 가득하다. 심지어 시시각각 바뀔 수 밖에 없다.

그걸 비교적 적은 수라고는 해도 200기가 넘는 기병대를 이끌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차라리 잔뜩 기다리고 있는 적의 총구를 향한 돌격이 쉬울지도 모르지.

“티테니아는··· 저 저는! 왼쪽 오른쪽 구분도 못하던 시절부터 승마를 배웠어요! 맡겨주십시오 콘도티에레!”

한참 전장을 지켜보던 그녀가 나를 빤히 올려다보며 다짐하듯 말한다.

그녀 역시 아군의 기세에 흥분했는지 평소의 철저한 군인 말투가 아닌, 조금 특이한 말투로 대답하고 있다. 이게 평소의 말투인 건가?

그래도 오히려 정감이 가고 신뢰가 간다. 기계처럼 가문의 일원임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티테니아 자신’을 말하고 있었으니까.

“혹시라도 아군 보병에 의해 길이 막혀 돌아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네. 중요한 것은 부대를 온전히 보전하는 것이고.”

“알고 있습니다! 그럼 준비하겠습니다, 콘도티에레!”

“자세한 작전 지시는 잠시 후, 리타르몽 경을 통해서 보내겠네.”

“알겠습니다!”

다시 군인의 말투로 돌아온 티테니아가 멋진 경례를 남기고 말에 올라 자신의 부대로 달려간다.

“리타르몽 경, 다를 연대장에게 전령!”

“옛, 다를 연대장께 전령!”

“지금 기병부대를 보내겠으니, 적의 측후방을 노릴 수 있다면 활용할 것!”

“지금 기병부대를 보내겠으니, 적의 측후방을 노릴 수 있다면 활용할 것!”

“좋아, 그대로 보내게.”

지금 각 전방 부대는 너무도 훌륭하게 움직여주고 있었다.

그 절반 정도는 전혀 예상한 적 없지만, 결과적으로 전황을 아군에게 유리하게 이끌어주고 있고.

이런 경우, 나는 지휘관이라기 보다 관리자로서 부하들이 ‘지금 하는 일을 더 잘 하게’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었다.

나는 신중한 편이지만,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니 마음이 들떠 다소 위험 부담을 안더라도 적의 약점을 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판은 깔릴 만큼 깔렸다.

콰광! 뻥! 퍼퍼펑!

내 생각에 ‘나도 그래’ 라고 대답이라도 하듯, 첼레스티나의 포병대가 다시 불을 뿜었다.

포탄은 언덕 아래에서 어설프게나마 사각 대형을 갖추려 하는 적을 노리고 있었다. 포탄 몇 줄이 보병들을 쓸고 지나가자, 순식간에 귀퉁이가 무너져 버린다.

아마도 내 생각보다 훨씬, 공포가, 혼란이 적을 심하게 좀먹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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