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418화 (418/556)

42-15. 랄렌 강 너머

콰앙!

근처에 포탄이 떨어져 박혔는지 요란한 폭음과 함께 가벼운 진동이 느껴졌다.

나는 찬찬히 다를 쿠에상 연대장이 보낸 종이를 살펴본다. 혹시나 다른 글이 적혀있나 싶어 뒤집어도 보고, 다시 접어도 본다.

“리타르몽 경, 이건 다를 연대장 본인이 보낸 전언인가?”

“그렇습니다, 콘도티에레 각하! 제가 보았을 때, 이 글시체는 연대장 본인이 작성한 문서가 맞는 것으로 보입니다.”

“흐음···.”

뭐랄까, 나는 다를 쿠에상 연대장을 조금 더··· 음, 덜 과감한 인물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 전언을 보고 이렇게나 놀라게 된 것을 보니 말이다.

“리타르몽 경은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제 의견 말씀이십니까? 외람되지만 저는 아직 전황을 보는 식견이 부족해서 이 내용 자체에 대해 의견을 내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생각합니다만···.”

리타르몽 드 당세르는 평소보다도 더 음울한, 거의 고뇌하는 예술가에 가까운 표정을 짓더니 말을 이어간다.

“다를 연대장께서는 무척 신중하신 분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의견을 내신 데에는, 분명 합당한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 다를 연대장은 그런 사람이지 분명히.”

그의 조심스러운 의견에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역시 의견이란 그 자체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어떤 사람의 머리에서 나왔냐가 상당히 중요한 요소인 모양이다.

적어도 넉살 좋은 외모나 태도와는 달리, 신중하고 부하들을 아끼는 다를 연대장이 전공에 대한 욕심이나 한 순간의 충동으로 이런 의견을 내지는 않았겠지.

나는 다시 종이를 들어올려 읽는다.

- 기회가 생겼을 때 참호를 떠나는 반격을 허락해주시기 바랍니다.

방어선을 포기하고, 역으로 언덕을 올라오는 적을 향해 돌격하겠다는 것이다.

음음, 실로 대담한 전술이다. 다를 연대장이 이런 건의를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나는 조금 고민이 된다.

비교적 안전한 방어선에 몸을 숨긴 채, 거듭되는 적의 공격을 방어만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 반격으로 전환해 역공, 오히려 적을 언덕 아래로 쓸어내린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는 멋진 장면이다.

하지만 그건 적의 공격이 한계에 도달했을 때의 일이다. 지금 공격해오는 적이 지치기야 했겠지만, 거듭된 파상공세로 오히려 지치고 있는 것은 이쪽이다.

어느 정도는 기습 효과로 직면한 적을 무너뜨릴 수야 있겠지만··· 엄격하게 대열을 나누어 다음 공격을 위해 대기중인 후속 병력까지 뚫어낼 수 있을까?

···이건 도저히 모르겠다. 절대로 못할 것 같지는 않지만,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너무 큰 도박수를 좋아하지 않는 나라면, 평소에는 하지 않을 전술 지시라는 것이지.

하지만··· 다를 연대장은 내가 보지 못한 무언가를 보았을지도 모른다.

대체로 전선 전체를 조망하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지휘부가 많은 정보를 얻기는 쉽지만, 또 전선에서는 다른 광경을 볼 수 있는 법이니까.

나 역시 아직 작은 규모이던 시절의 슈토르히와 함께 하면서, 그리고 그 전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익히 할고 있는 바였다.

“후우···.”

나는 작게 심호흡을 했다. 머리로는 결정했지만, 역시 타고난 새가슴이 결단을 방해한다. 이성과 감성이 싸우는 바람에 망설이는 게 자주 있는 일이긴 하지.

하지만 이 경우는 어느 쪽이 이성인지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믿음직한 부하 지휘관의 판단을 믿고, 충분한 근거는 없지만 그 판단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결정했다.

몇 초 정도, 머리속으로 계산을 해 본다.

혹시라도 다를 연대장이 지휘한 반격이 실패했을 경우, 이를 커버할 수 있는 수단이 있을까.

혼전 중인 정면 방어선의 제18 벨모제 보병 연대 전체가 일제히 돌격을 개시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전술적으로도 불합리하지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사방에서 백병전이 벌어진 전선 전체에 명령을 전달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돌격 개시 신호를 내리는 것도 절대 불가능이다.

그러니 아마도 연대장 본인이 있는 참호선과 그 주변, 많아야 2~3개 중대 정도가 공격에 나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장소는 한 쪽 측면이겠지.

적 역시, 기습적으로 기병으로 공격해 왔을 때, 비탈 때문에 참호선에서 벗어날 수 밖에 없었던 측면을 찔러 왔었다.

양쪽이 가파르게 비탈진 특수한 지형 구조상 한쪽 측면에 배치된 부대는 어딘가 불안정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그랬으니 적도 그렇겠지.

···적어도 우리는 시야가 트여 있으니, 매복하고 있던 포병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쫓겨날 걱정은 없어 다행이다.

그런 공격이 시작되었다면··· 그리고 안타깝게도 실패로 끝난다면?

음, 예비대로 어떻게든 빈 공간을 틀어 막고, 혹시라도 역습해오는 적이 있다면 기병과 포병으로 섬멸할 수 있겠다.

공격 나갔다가 실패한 보병들은 최대한 살려서 방어선을 다시 보강하면··· 그 다음이 다소 힘들어지겠지만 패배를 막을 수는 있겠다.

“리타르몽 경, 다를 연대장에게 전령을 보내게. 건의를 허락한다. 실행 시점은 귀경의 판단에 따를 것! 이상!”

“옛, 전령! 건의를 허락하며, 실행 시점은 다를 연대장의 판단에 따를 것, 이상!”

“좋아. 아, 그리고···.”

기왕 공격에 나서게 된다면, 무리가 가지 않는 한 지원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은 있다.

하지만 얼마 안되는 예비대를 내줄 수는 없다. 공격이 성공한 경우 후속으로 내보내는 경우라면 모를까···.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와중에 소중한 예비대를 모두 투입하는 것은 ‘따서 갚으면 된다’를 외치는 도박꾼이나 할 짓이니까.

하지만 마침, 저기 보내줄 만한 전력이 있었다.

“티테니아 경, 그리고 타르올 경. 드 몽파르지에의 하마기사대가 도와줄 일이 생겼네.”

“영광입니다, 콘도티에레!”

우리 대화를 듣고 있었는지, 지휘부에 함께있던 티테니아 드 몽파르지에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대답한다.

그 옆의 타르올 드 매믈랭도 마찬가지다. 기병으로 참전해 말을 잃고 다소 의기소침해 있던 젊은 기사들의 표정이 환하게 변한다.

중기병에 비해서 경장이라고는 하다, 갑주로 몸을 보호하는 데다가 전문적인 전투술을 배웠고 검과 권총으로 무장한 20명의 정예 기사들이다.

새로운 ‘돌격대’의 선봉으로 더 할 나위 없이 훌륭한 전력이 될 것이다.

“리타르몽 경의 지시에 따라 다를 연대장의 참호로 이동하게. 어떤 형태가 될지는 모르나, 공격이 시작된다면 잘 부탁한다!”

나는 힘을 주어 내 의도를 전달했다.

아마도 이 전투는 내 예상을 어느 정도는 벗어나서 진행이 될 예정인 모양이다.

하지만 그 빗나감은 ‘좋은 방향으로’ 빗나감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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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다음 차례가 돌아왔나···.”

힘 없는 목소리. 용병대장 미클라크 벨치 폰 귄터젠이 조용히 중얼거리듯 말한다.

20분에서 30분 정도마다 로테이션으로 파상공세를 취한 결과, 한 바퀴 돌아서 다시 폴름스 군의 공격 차례가 된 것이다.

그의 주변에는 그 이상으로 표정이 엉망인 휘하 장교들이 있다.

최소한 3년, 길면 7년 이상 미클라크와 함께 한 장교들이 이렇게나 낙담한 표정을 짓는 것은 처음 본다.

이쯤이면 뚫릴 법도 한데, 적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과연 지금 하는 공격이 효과가 있기는 한 것일까.

시작부터 무언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을까.

언덕 위를 올려다 보는 미클라크의 찌푸린 눈에, 적 방어선 앞의 흙더미를 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브라우나인 보병들의 뒷모습이 들어온다.

···그 주변으로 보이는 무수히 많은 시체들. 겹겹이 쌓인 시체들이 어찌나 많은지, 이제 적진으로 진격하려면 시체를 밟지 않고는 이동이 힘들 정도였다.

적의 숫자는 그렇게 많은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줄어드는 것 같지도 않다.

지금 하는 공격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에게 유효한 피해를 입히지 못하고 계속 방어선 앞의 시체 더미만 늘려가는 것은 아닐까··· 라는 자괴감이 심하게 들었다.

물론 이건 적의 완강한 방어와 아군의 연이은 큰 피해 때문에 느끼는 공황 심리에 가깝다.

방어측이 다소 유리하다고는 해도, 분명 상대 편에서도 꾸준하게 사상자가 나오고 있었다. 실제로 적지 않은 수가 실제로 엘랑키아 보병을 쓰러뜨렸고.

솔직히 포기하고 싶었다. 주군을 구원하고 뭐고, 때려 치우고 이대로 등을 돌려 도망치고 싶었다.

자신도 이런데, 적의 화력을 몸으로 받아 안으며 비탈 너머로 진격해야 할 부하들의 마음은 어떨까.

사기가 말이 아니다. 미클라크 자신도 용병단의 하급 장교로 시작하여, 지금은 수천에 이르는 한 지역의 영지군을 이끌고 있다.

나름 실적이 있고 경험이 있으며, 출세했다고 봐도 될 것이다.

하지만··· 여지껏 십수 차례 크고 작은 전장을 겪으면서도 이렇게까지 사기가 떨어지고 침체되어 있는 상황은 처음이었다.

자신이나 장교들도 이럴 진데, 축 늘어진 병사들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경우도 있었다.

위험한 임무를 앞에 두고, 두려워하고 부들부들 떨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때와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그 이상으로··· 지금 내가 하는 행동과 헌신이 아무 의미가 없으며, 죽음조차도 의미 없이 끝나버리는 것은 아닐까.

내 지금까지의 삶과 앞으로의 삶 조차도 이대로 끝나는 것은 아닐까.

단순히 적의 생각보다 격렬하고 정확한 화력이 두려운 것은아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보다 본질적인 것에 대한 깊은 공포에 가까웠다.

“하지만 할 수 밖에 없다.”

이게 다··· 그 빌어먹을 세두시온인가 하는 엘프 사령관 때문이다.

똑같은 일을 시키더라도 이렇게 더럽게 시키는 고용주들이 있다. 심지어 세두시온은 라이벌 가문 출신이지 고용주 조차도 아니지 않은가!

생각할수록 이가 갈리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은 군인이고 까라면 까야만 하니까.

“다음 공격은 내가 선두에 서겠다.”

“대, 대장님께서 말씀이십니까?”

놀란 표정으로 반문하는 장교들을 바라보면서, 미클라크는 슬프지만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더 이상 저 지옥 구덩이에 자네들만 밀어 넣고 구경만 하는 짓은 못하겠군. 이번이 마지막이다. 온 힘을 다해 공격해 보고, 안된다면 철수 요청을 하겠다.”

사실 이미 철수를 요청하는 전령을 보냈던 상황이다. 허나 세두시온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적은 한계에 도달했으니 더더욱 결연하게 공격하라’가 답변이었다.

“아니,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독자적으로 철수하겠다. 더 이상 가망 없는 짓에 병력을 갈아 넣을 수는 없지.”

“알겠습니다, 미클라크 대장님!”

“저희도 따르겠습니다!”

“고맙네, 모두.”

그 결과 지금 직위에서 쫓겨나거나, 어쩌면 네프셀시엔 선제후에게 처벌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그 이후의 일, 저 빌어먹을 이웃 선제후령의 능력도 없고 귀만 큰 놈에게 휘둘리는 것은 이번으로 마지막이다.

물론 공격이 성공한다면 그 이상으로 좋은 일은 없겠지. 승리의 일등공신이 폴름스 남부의 보병들이 될 테니까.

너무 많은 희생을 강요당했다. 그런 쟁취라도 없다면 수지가 맞지 않는다.

“슬슬 시간이 되겠군. 전방 부대가 물러나는 즉시 우리가 교대를···.”

쾅! 파파팍!

“끄아아악!”

“맞았다! 물러서!”

그 순간, 소름끼치는 포탄이 낙하하는 소리와 땅을 긁는 소리, 찢어지는 비명소리까지가 연이어 들린다.

“어디야?”

다행히 가까운 위치는 아니다. 더 언덕 위,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장소였다.

적 포병대가 이동했나? 최소한 이번 공격 동안은 적 포병에게 시달리지는 않았는데···. 후방에서 여유있게 부하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고.

“대장님, 저 쪽입니다!”

“뭐야? 또 아군을 쐈어?”

낭패다. 적 포탄이 또 아군, 이번에는 흙더미를 오르던 브라우나인 창병들의 뒤를 때렸다.

“세, 세두시온 공이 진정 미친 겁니까?”

냉정하게 생각해볼 때,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솔직히 제정신이라고 할 수 없는 행동이었지만, 아까 만난 바로는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하지만··· 가뜩이나 유리하지 않은 상황에서 적진을 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아군을 뒤에서 쏘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이건 아마도··· 아니 분명히 오폭이다.

포수가 실수를 해서 이전 사격 후 밀려난 포를 재보정하는 작업을 잊었거나, 닳아버린 내부 포신이 포탄의 탄도를 왜곡해 버렸거나.

화약의 일부가 젖거나 뭉쳐 폭발이 불균질하게 일어나 포탄이 받은 위력이 부족했거나.

포탄이 잘못 날아갈 이유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충분한 비거리를 가지고 있더라도 그 사선에는 아군을 두지 않는게 철칙이다.

전장에선 이게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만, 대개의 경우는 적과 싸워야 하는 보병입장에서는 감내할 수 있는 위험이다.

하지만 이번 전투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브라우나인의 포대는 언덕 위의 적 포병을 견제하기만 하는 것으로 합의한 게 아니었나?

“으아아아! 물러나!”

“아군이 맞았어! 아군이 맞았다고!”

“아냐, 적이 쏜 거야!”

“멍청이들아, 앞을 봐! 대열을 정돈해!”

···그리고 그 한 발의 오폭은 선두 부대를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다.

몇 명이나 사상자가 발생했는지는 모른다. 각도로 봐서는 많더라도 다섯 명을 넘지는 않겠지.

하지만 그들은 아까 선봉에 섰던 중앙부 폴름스 보병들이, 적 기병을 격퇴하기 위함이라는 명목으로 무자비한 포격에 당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힘든 전투 중, 스트레스로 한계까지 도달한 병사들을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만드는 데는 충분했다.

“멈춰! 멈추라고!”

“살려줘! 살려줘!”

“멈추라고 했지 않나! 항명이다!”

“어, 어떻게 된 거야?”

활력이 없기는 했으나 묵묵히 공격을 거듭하던 보병 집단이 한쪽 끝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미클라크는 공격이 끝장났다는 것을 느꼈다. 아니, 진작에 퇴각해서 재정비했어야 할 일이었다. 빌어먹을.

그 혼란 통에, 미클라크는 멋대로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브라우나인 동맹군 너머에서 새로운 함성소리가 메아리치고 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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