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406화 (406/556)

42-3. 랄렌 강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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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에서 오는 적의 지원군을 견제하라’

우리 생뢰르반 파견군이 받은 명령이다.

물론 명령만 덜렁 받았다면 의도를 짐작할 수 없는 상황에 당황했지만, 왕실군 사령부에서는 참모 장교를 보내 명령의 내막과, 앞으로의 작전 계획까지 설명해주는 친절함을 보여줬다.

뤼브르 드 루블랭이라는 이름의 귀족 장교가 그 담당자였다.

“최근 10여년 간, 뮈르텔 재상 각하께서는 그룬발트의 병력 동원 시스템을 파악하시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습니다.”

“그러셨군요···.”

일부 용병이나 상비군을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영토에 병력 동원 의무가 딸리는 봉건 제도하에서 시간을 들이면 어느정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부분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일 테고, 특정 영지나 국가 전체의 동원 시스템을 파악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특히 이런 최전방 지역에서는 병력 동원 의무가 단순히 군주의 영토로 시간 맞춰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요새나 변경 집결지 등에 딸리는 경우도 있으니까.

확실히 전쟁 준비를 많이 했구나··· 라고 느끼게 된다. 상상 이상으로 전쟁에는 철저한 군주일지도.

“지금 생뢰르반 파견군이 담당하기로 한 미터스하임 마을 부근 언덕길은 리에벨트 백작이 지휘하는 군이 북상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입니다. 서둘러 가면 적이 지나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리에벨트 백작의 병력은 얼마나 됩니까?”

“변경의 소영주들의 연합군으로, 최저 6천에서 8천 사이의 병력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확한 정보를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 정도면···. 소영주들의 병력이 섞인 연합군이라···.”

병력 합류가 늦은 이유는 아마도 여러 영주의 병력을 모으고 재편성하는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시간대로 볼 때 충분한 훈련을 했을리는 만무하고, 평소에 어느정도 합동 훈련을 했다고 할지라도 기대한 만큼의 수준은 안 나올 가능성이 높았다.

그 정도라면··· 다소 적 숫자가 많다고 해도 싸워 볼 만 했다.

“제가 설명을 명 받은 부분은 여기까지입니다. 더 궁금하신 내용이 있으신가요?”

“폐하께서 생각하시는 큰 그림은 어떤 것입니까? 로델베르크 함락후 진격입니까?”

“...죄송합니다. 거기까지는 아직 말씀해주시지 않았습니다.”

“현재 로델베르크 공성전은 진행중이지 않습니까?”

“예 맞습니다. 하지만··· 음, 물론 제 지식과 경험이 일천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공성전에 전력을 다 하시지는 않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뤼브르 경의 말에 의하면 공성포로 멀리서 포격만 할 뿐, 다른 공성병기가 등장하거나 벽을 타고 오르는 시도도 없었다는 모양이다.

전력을 다 하지 않는다라···.

그야 공성전은 길게 잡고 하는 전투인 경우가 많고, 자칫 실수하면 불필요하게 큰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으니 초반부터 전력을 다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애초에 우리와 함께 강을 건너 동행하고 있는, 에티엔 드 크레이 공작이 이끄는 공성공병들도 도착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상황이 같다고 의도까지 같은 것은 아니다.

국왕은 천천히, 안정적이고 확실한 공성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일까?

속 편하게 알려주면 좋을 텐데, 좀 답답하게 느껴진다. 물론 일군을 이끄는 사령관 입장에서 속내를 다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한다.

아무리 주변이 믿을만한 부하와 가신들로 가득하더라도 정보는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빠져 나갈지 모르는 것이니까.

뭐, 지금은 믿을 수밖에 없겠지. 주먹구구식으로 생각 없는 공격 일변도를 외칠 것으로 보이지는 않으니까.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알겠습니다, 뤼브르 경. 폐하의 명을 받들어 맡은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혹시 괜찮으시다면 에트 경의 사령부에 머물며 배워도 되겠습니까? 아버님께서 이 기회에 에트 경의 싸움을 배우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아버님··· 이라시면?”

“앗! 죄송합니다, 에트 경. 제가 말씀드린 아버님은 프레니히 드 루블랭 백작, 이번 원정군의 부사령관을 맡으신 프레니히 원수 각하입니다.”

프레니히 백작이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분명 샹다메리에서 적 보병의 중앙을 맡았던 노장이라고 알고 있다.

엘랑키아 왕국에서 원수 직위를 받을 정도라면 보통 사람은 아니겠지.

전쟁에는 철저해 보이는 다고베르 2세가 신통찮은 인간을 곁에 두고 부사령관을 시킬 리가 없으니까.

나는 뤼브르의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나이는 30대 중반 정도 되었을까··· 외모로만 봐서는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는 모르겠네.

이런 말 하긴 미안하지만, 백전노장의 아들로 보이지는 않았다. 사람이야 좋아 보였지만.

태도로 봤을 때 국왕이 감시하라고 붙인 인물은 아닌 것 같다.

“알겠습니다, 뤼브르 경. 객원 참모 대우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뭐 감시로 붙은 거라면 어떤가. 내가 꾸미고 있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사령부 인물들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좋겠지.

“환영합니다, 뤼브르 경.”

우리는 굳은 악수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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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터스하임 마을은 깨끗합니다! 주민들도, 적군도 없습니다.”

우리 작전 목표, 미터스하임에 보냈던 정찰대가 돌아와 보고한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에 마을에 적군이 기다리고 있어도 큰일이지만, 완고한 주민들이 있어도 문제이기 때문이다.

전투를 앞둔 입장에서 소개를 시켜야 하지만, 죽어도 마을을 떠나지 않겠다고 버티면 다소 곤란해진다.

특히 이번 원정은 적국의 파괴나 약탈이 아닌, 랄렌 강 동안을 고스란히 엘랑키아의 판도로 편입하기 위함이니 더욱 조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래? 파괴나 약탈의 흔적이 있던가?”

“아닙니다, 콘도티에레! 주민들은 미리 소식을 듣고 재산에 가축들까지 모두 챙겨 피난을 떠난 것 같았습니다. 마을은 텅 비었을 뿐 전투나 파괴의 흔적은 없었습니다.”

“그거 참 고마운 일이군. 리타르몽 경, 지금 제18 벨모제 연대에 연락해서 서둘러 마을을 점령하라고 전해주게.”

“옛! 콘도티에레 각하!”

리타르몽 드 당세르 수석 참모가 마르고 낭창낭창해 보이는 몸을 돌려 부대로 돌아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리 준비하고 있던 제18 벨모제 보병 연대의 선두 중대 2개가 언덕길을 빠른 걸음으로 올라 마을을 장악한다.

조만간 후속 부대도 준비가 되는대로 따라 오르겠지.

이젠 내 차례다. 전장이 될 지형을 살피고 후속 병력이 어디에 배치될 지 살펴야한다.

“가자, 첼레스티나. 포병대의 위치도 정해야겠지?”

“네에, 콘도티에레!”

“모시겠습니다, 콘도티에레!”

현재 호위대장으로 있는 티테니아 드 몽파르지에가 씩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가 호위대장을 맡고 있는 것은 물론 지원병을 보내준 공작가에 대한 예우지만, 그녀가 지휘부 일을 배우도록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야 그녀도 일단은 카르카냑의 간부 특성화 교육 수료자이고, 본인도 그것을 바라고 있었으니까.

어쨌든 나는 부관 첼레스티나와 티테니아의 호위대, 그리고 객원 참모인 뤼브르 드 루블랭 경과 함께 언덕을 올랐다.

그다지 높지 않은 언덕은 말을 타고 오르니 말이 숨차기 전 한달음에 오를 수 있을 정도로 완만했다.

“방금 모든 집을 수색했지만 적은 없었습니다, 콘도티에레!”

“고맙네.”

미리 마을을 점거한 제18 벨모제 보병 연대의 중대장이 보고해왔다.

“시야가 정말 좋네요, 콘도티에레! 국왕님이 왜 여기를 지키라고 하셨는지 알 것 같아요오.”

“확실히 그런데? 여기가 이런 지형일 줄이야···.”

“아앗, 위험해요 콘도티에레?”

“괜찮아, 괜찮아.”

나는 돌을 쌓아 올린 담벼락을 타고 올라가 한쪽 손으로 건물 벽을 짚은 채, 망원경을 꺼냈다.

이 주변은 북쪽이 높고, 남쪽이 얕은 지형이다.

따라서 북쪽에서 도착한 우리가 보기에는 아주 낮은 언덕이지다.

하지만 마을에서 반대편을 내려다보니 땅이 마치 움푹 꺼진 것처럼, 상대적으로 낮은 지대가 멀리까지 펼쳐지고 있었다.

숲 때문에 완전히 탁 트인 시야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산이나 다른 높은 언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적이 나타난다면 먼지 때문에라도 금방 알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하려는데 저 멀리 뭔가가 보인다.

“첼레스티나, 저거 보여?”

“네에, 콘도티에레? 아! 보여요! 적이네요오! 갑옷이랑 창날이 반짝반짝하는 게 보여요.”

첼레스티나도 망원경을 꺼내더니 내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본다. 그녀는 시력이 나보다 좋으니 그녀가 그렇다면 그렇겠지.

우리 대화를 들은 티테니아가 활들짝 놀란다.

“적? 적입니까, 콘도티에레?”

“으음, 거리는 적어도 12~3 킬로미터 정도는 떨어져 있지만··· 빠르면 오늘 저녁에는 도착하겠지. 티테니아 경, 전령을 보내 리타르몽 수석 참모를 이리로 불러주게.”

“옛, 콘도티에레!”

정말 간발의 차이로 먼저 도착한 게 다행이다. 여길 먼저 적이 점거하고 있었다면 훨씬 애를 먹었겠지.

자 이제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나는 빠르게 주변의 지형을 스캔하고, 머리속으로 전투 상황을 가정한다.

북쪽으로 향하는 고지대에서, 그나마 완만한 장소를 따라 길이 이어져 있다. 폭 4~5미터 정도 되는 이 길은 고대 아란 제국 시대에 깔린 포장 도로이다.

참 수천 년 전 멸망한 제국이 깔았던 길이 오늘날까지 사람들의 생활 장소를 결정하고, 군대의 배치에까지 영향을 미치다니 기묘한 기분이 든다.

기왕이면 수천 년 전에 여기 요새까지 떠억 하니 지어줬으면 좋았겠지만.

아, 그러면 거기에는 이미 적군이 들어가 있었으려나?

아무튼 지금 있는 것으로 싸울 방도를 찾는 수밖에 없다. 숫자는 우리가 약간 열세이고··· 가급적 유리하고 ‘편하게’ 싸울 수 있는 방도가 무엇이 있을까.

“콘도티에레! 다를 연대장께서 오셨어요!”

첼레스티나의 말에 상념에서 빠져나와 담벼락 아래를 내려다보니, 풍채 좋은 제18 벨모제 연대장 다를 쿠에상 경이 나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잠시 건의를 드려도 되겠습니까, 콘도티에레?”

“물론입니다. 무슨 건의죠?”

“마을을 살펴 보았으나, 작은 마을이라 연대급 부대의 정면을 막을 만한 바리케이드를 만들 재료를 구할 수는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건의 드립니다. 참호를 파도 되겠습니까?”

“참호요?”

“예, 마침 이 주변은 적당히 기름진 것이 딱 참호파기 좋은 땅입니다.”

“아아!”

확실히 그렇다. 전형적인 어두운 갈색의, 조금만 파고 들어가도 축축한 땅은 참호 파기 좋지.

“승인합니다, 다를 연대장.”

“감사합니다 콘도티에레! 방어 구역 계획을 잡아서 보고드리겠습니다. 어이, 중대장 집합시켜! 곧바로 구역을 나눠 보자고.”

“알겠습니다!”

숙련된 연대장의 지휘로 방어선 준비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하하하, 저희를 계속 후방에 두셔서, 그 사이에 땅 파는 건 전문가가 되지 않았겠습니까? 로데브 강 남안 기슭에 저희가 안 파둔 곳이 없습니다.’

얼마전 식사 시간에 다를 연대장이 농담처럼 했던 말이다.

확실히 성전이 한창이던 시절, 로데브 강 남쪽 방어를 맡았던 제18 벨모제 보병 연대는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방어 준비를 거듭하며 보냈으니까.

‘우리 연대의 삽과 괭이 보유량은 다른 연대의 3배는 됩니다!’

···땅 파는 게 얼마나 중노동인지 아는 나로서는 약간은 미안함도 느끼게 되지만, 덕분에 이번 전투 준비는 3배는 수월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첼레스티나, 주변을 살펴보고 포대 위치를 추천해줘. 슬슬 후속 병력도 도착하고 있으니 방어 구혁을 정해야 하니까. 15분이면 될까?”

“네에, 콘도티에레! 10분 내로 마칠게요!”

“좋아, 10분 후에 여기서 만나자.”

“네에!”

나는 빠르게 주변 지형을 머리속에 넣고 아까 하던 작업으로 다시 돌아간다.

저쪽은 나무를 베어 시야를 확보하고, 저쪽을 방어선의 서쪽 끝으로 하고···. 중앙에 트랑카벨 군을, 측면에 드 레뮤즈 군을···.

천만 다행하게도 방어하기에는 유리한 지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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