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403화 (403/556)

41-10. 출동, 생뢰르반 파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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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세상에! 강을 이렇게 건넜네요!”

첼레스티나가 손뼉을 치며 감탄했다. 주변에서도 다른 참모들과 호위병들이 탄성을 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물론 나도 놀랐고.

강가에는 무수히 많은 수레가 강을 건너기 위해 질서정연하게 대기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말을 탄 관리자들이 고함을 지르며 대열을 통제한다.

중간 중간 눕혀서 운반되고 있는 거대한 공성포도 보인다. 이걸 대체 강 건너로 어떻게 옮길까··· 걱정될 정도.

전쟁을 위해 준비된 막대한 물량을 보고 놀란 것은 아니다.

사실 겨우 수천 명의 원정군을 위해 준비된 보급품도 한 곳에 쌓아두면 어마어마한 양이니까, 전쟁에 익숙한 장교들이 그런 걸 보고 놀랄 일은 없지.

우리가 감탄한 것은 랄렌 강에 ‘다리’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랄렌 강이 평야지역을 흐르는 지류에 가까운 비교적 작은 강이고, 갈수기에는 깊지 않다고는 해도 대단한 일이다.

양 끝에는 저런 나무를 어디서 가져왔을까 싶을 정도로 두꺼운 목재를 묶어 기둥처럼 세우고, 판자를 깔아 널찍한 길을 만들었다.

당연히 다리의 상판과 양쪽 유역이 수평이 되도록 땅을 다져 올려 도로를 만든 것도 물론이다.

띄엄띄엄 단단하게 고정된 기둥 사이로는 강을 오가는 거룻배는 얼마든지 오갈 수 있었으며, 다소 적재량이 큰 선박이라 할지라도 돛대를 눕히면 지나갈 수 있어 보인다.

실제로 다리 주변에는 팔스부르 소속으로 보이는 병사들을 태운 경비선들이 이리저리 오가는 상선들을 감시하고 있었고.

꽤 널찍한 다리의 중앙부는 수레와 기병들이 지나가고, 보병은 양 측면을 따라 한 줄로 이동하도록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다.

···이건 확실히 대충 현장에서 판단,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다리는 만들 수 있어도 이렇게 철저하게 사용까지 통제되지는 않는다.

바지선을 이용해 통로를 물에 띄운 부교 정도는 예상했지만, 이렇게 기둥까지 단단하게 세운 고정식 다리를 만들었을 줄이야.

부교는 의외로 수면에서 높게 만들기가 힘들기 때문에, 유역으로 이어지는 길에서 직접 옮겨 타기가 힘든 점이 큰 단점이다.

그래서 무거운 수레같은 경우는 다리 위에 올리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인력이 들어가고, 더더욱 무거운 공성포는 더더욱 그렇다.

···자칫 실수라도 한다면 옮기려던 짐과 부교 양쪽에 심각한 파손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고 말이다. 잘못 휘말린 인부들도 큰 부상을 입을 수 있고.

그런데 이렇게 보병이든 기병이든 수레든, 유역에서부터 평범하게 걸어서 강 반대편까지 이동할 수 있도록 다리를 만들다니.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트랑카벨의 에트 경!”

“솔직히 감탄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방금 전부터 나에게 이것저것 설명해주고 있던 비에르 드 두르뱅 백작이 내 말을 듣더니 기쁜 듯 콧수염을 실룩거린다.

그는 신성 그룬발트 제국과의 국경을 책임지는 사령부, 그랑다투아 군과 이번 원정의 후방을 책임진다는 중대한 임무를 맡은 귀족이다.

“다고베르 2세 폐하께서는 이번 원정을 1년 이상 꾸준히 준비해 오셨습니다. 알디온과 주디칼리에서 온 기술자들이 고생을 했지요.”

“그래요··· 혹시 다리를 놓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습니까?”

“최대 2주를 예상했지만 우리 엘랑키아 왕립 공병대는 여드레 만에 다리를 놓는 데 성공했습니다!”

“정말 대단하네요. 큰 일을 하셨습니다.”

나는 솔직하게 칭찬했다. 실제로도 잘 했고 감탄도 했는데 칭찬에 인색할 필요는 없지.

게다가 내가 보기에 이 비에르 백작이라는 사람은 칭찬하면 신나서 더 잘하는 류의 사람이다.

나는 갑자기 지금쯤 생뢰르반 요새를 짓느라 정신이 없을 드워프 장인, 에오르크 레타일이 생각났다. 정확히는 그에게 맡길 다음 임무지만.

분명 잡아먹을 듯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내가 말만 하면 결과를 내놓는 마법의 주머니로 보이냐’고 생 난리를 치겠지.

하지만 살살 자존심을 긁는 한편 각종 보상으로 구슬리면 ‘이런 거’ 얼마든지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암, 할 수 있고 말고.

나는 전생의 지식을 어떻게든 이 시대에 써먹어보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종종 공학적 지식과 시대를 매칭하는 데 실패하고는 한다.

이 정도 규모의 다리를 여드레 만에 뚝딱 만드는 게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은 솔직히 못했다.

사실 아쥬흐와 로데브 강 상류에 다리를 놓는 문제로 상의를 한 적은 있지만, 전쟁통에 방어에 불리할 수 있는 공사를 할 수는 없었다.

다만 그건 이런 단기간에 건설하는 임시 다리가 아니라, 석재로 된 제대로 된 다리지만 말이다.

아무튼 평생을 불리한 군대에서 방어전만 하다보니 생각이 좁아져 버린 모양이다.

그에 비해서 우리 국왕 폐하는 평생을 쳐들어갈 생각만 하고 살았던 건가? 이런 건 기술이 있다 해도 투자자의 강한 추진력 없이는 실현되기 힘드니까···.

궁정 만찬의 음식 가짓수를 줄여가며 운영비를 아끼고 내탕금까지 군비로 사용한다더니, 그냥 전쟁 좋아할 뿐인 군주가 아닌 건 확실해 보인다.

“이를 위해서 왕도 베르마유에서부터, 공병대가 고생을 많이 했지요. 아, 저기 공병감 각하가 보입니다.”

“공병감 각하요? 아!”

“에트 경은 드 크레이 공작 각하를 아십니까?”

“예··· 이런 저런 일들이 있어서 뵌 적이 있습니다.”

탁자 위의 여러가지 서류와 설계도를 보며 이것저것 명령을 내리는 인물은 내가 아는 사람이다.

에티엔 드 크레이 공작··· 국왕의 사촌동생이자, 블랑독을 침공했던 국왕군의 사령관이며, 한편으로는 전쟁을 막기 위해 이런 저런 노력을 했던 인물이다.

“저 사람이 아쥬흐 양에게 차였다던 그 사람인가요, 콘도티에레?”

“맞는데 여기서 그런 말은 하지 마.”

“네에···.”

첼레스티나가 귓속말로 소근거리듯 말해서 그녀를 나무랐다.

···그 말대로 아쥬흐에게 청혼했다가 안타깝게 잘 되진 않은 인물이기도 하고.

“비에르 백작님? 어? 에트 경이시군요!”

우리를 발견한 에티엔 공작이 잠시 업무를 주변 사람에게 맡겨놓고 이쪽으로 다가온다.

“반갑습니다, 에트 경. 카르카냑에서의 회담 이후··· 처음이군요.”

“예. 잘 지내셨습니까?”

“하하, 폐하를 실망시킨 패장치고는 잘 지냈다고 생각합니다.”

“네, 다행이군요.”

으으, 내가 샹다메리 전장에서 이겼던 상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전에 만났을 때는 왕의 사자라는 입장이나, 깔끔하고 고급스러워보이는 복장도 그렇고 하얀 얼굴에 세상 모르는 귀공자라는 느낌이었는데.

여전히 잘생긴 얼굴이지만, 구릿빛으로 타버린 얼굴을 보니 입으로만 지시를 내리는 타입이 아니라는 건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분명 현장에서 함께 고생하며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노력했겠지.

“드 상포리앙의 카렐에게 편지로 소식은 들었지만, 벌써 오실줄은 몰랐군요. 다리는 보셨습니까?”

“예! 솔직히 감탄했습니다. 이런 다리를 여드레 만에 만드셨다고요?”

내가 칭찬하자 에티엔 공작이 눈을 빛낸다. 역시 남자라면 자기 자신보다 자기 창조물을 칭찬할 때 기뻐하게 마련이지.

그는 여러가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왕실군의 공병대가 지금처럼 확장되고 많은 임무를 맡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

랄렌 강에 다리를 놓는 게 첫 임무이자 가장 중요한 임무이긴 했지만, 향후 공성전을 위한 여러가지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는 것 등등.

그나저나 베르마유 주변에 영지를 가진 공작 각하인데다 왕의 사촌 동생인 그가 왜 공병감이 되었나 했더니···.

“저는 델로나 대학에서 공학 또한 공부했습니다. 이렇게 활용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만.”

“아하, 그러셨군요.”

아쥬흐를 처음 만나서 반한 게 주디칼리에서 대학 다니면서였다 그랬지 참.

“그 동안 엘랑키아에서 공병들이 제 역할을 하기 어려웠던 것은, 아무래도 전투 병과의 기사들에게 밀려 대접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 솔직히 엘랑키아 왕실군에 공병대가 존재하는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공작 간판을 가진 제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아···.”

조금 이해가 갈 것 같다. 결국 이 시대의 기술이란 대부분 노동집약적인 후속 작업이 필요하다.

그런데 전투 부대에 요청해서 보병들을 차출한다면, 그들이 성실하게 일하겠느냐 하는 문제다.

내 본업 하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차출되어서 삽질 하라고 시키면 죽도록 싫겠지··· 이해는 간다.

그런데 위에서 ‘국왕의 사촌동생’이 나서면 공병대의 요구를 아무도 가볍게 받아들이지 못하겠지. 더럽지만, 이게 현실이긴 하다.

트랑카벨 영지군에서도 의무대를 아무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군의관이 존중받도록 하기 위해 중대장급 직위라고 못박아 놓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 책임자가 다름 아닌 아쥬흐 트랑카벨 본인이니까.

국왕인 다고베르 2세나, 여기 에티엔 드 크레이 공작이나 보통 사람들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나 자신도 배울 게 많을 것 같다.

“랄렌 강에 다리를 놓기 위해 베르마유에서 공학 기술자들과 공병들이 십여 차례나 훈련했습니다. 사와르 강에 실제로 다리를 놓기도 했지요. 더 짧은 다리긴 하지만요.”

“그래서 이렇게 완벽하게···.”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이게 참··· 계획대로 되긴 했는데, 랄렌 강 유역이 사와르 강 유역보다 지반이 물러서 보완이 필요합니다.”

“...힘든 작업이군요.”

“지금은 잘 대응하고 있지요, 부하들이 고생이 많습니다.”

그러고보니, 배를 타거나 허리까지 잠기는 강물에 들어가서 교각을 점검하는 공병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렇다고 강을 건너는 후속 부대가 멈출 수도 없으니 고민이 많겠지.

“보강 작업이 끝나면, 다리 관리를 위한 인원을 제외한 공병대 주력은 강을 따라 폐하의 군대와 합류하게 됩니다.”

“공성이 시작되면 공병이 가장 바빠지겠군요.”

공병은 전투부대는 아니지만 상당히 공격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이번처럼 다리를 놓기도 하지만, 포위 공격을 계획하고 참호를 파거나, 대규모 포대를 위한 지반작업을 하는 것도 공병의 역할이니까.

게다가 때로는 각종 폭약, 페타드와 같은 공성병기를 다루는 육탄공격까지 공병의 몫이다.

“저희 공병대는 착실하게 준비했습니다. 에트 경은 어떻게 하실 예정이십니까?”

“폐하께서는 팔스부르의 아르밀 공작님을 만나 상의하라고 하셨습니다.”

“예··· 아르밀 공작님은 이번 원정의 후위 군을 지휘하시기로 하셨으니 조만간 합류하시게 되겠네요. 까다로운 분이시지만, 훌륭한 군인이십니다.”

그렇게 말하는 에티엔 공작의 표정은 살짝 복잡해 보였다. 까다로운 사람이라니, 어느 정도길래 왕도의 공작님이 이런 표현까지 하는지 모르겠다.

약간 미안하지만, 이번 전쟁은 ‘내 전쟁’은 아니라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고 태업 할 생각은 없지만.

내 최대 관심사는 휘하의 파견군을 최대한 멀쩡하게 유지하면서,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는 제 역할을 하고 돌아가는 것이다.

“자, 그럼. 에트 경, 아르밀 공작님을 뵈러 가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비에르 백작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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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렌 강을 건넌 엘랑키아 왕실군은 빠른 속도로 반대편을 장악해 나가고 있었다.

병력을 동원해 랄렌 강을 건너며 다리까지 놓는 것은, 그룬발트 입장에서 기가 막힐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엘랑키아 군은 그 기민함에서 온 선제권을 사용해 적진 깊숙히 들어가는 대신, 반대편 유역을 철저하게 장악하는 데 활용했다.

불안 요소를 남겨두지 않겠다는 듯, 소부대가 지역을 촘촘하게 확인하며 남아있는 그룬발트 무장 세력을 섬멸하거나 항복시켰다.

또한 크게 활약을 한 것이 국경을 지키는 그랑다투아 군 소속의 메플렌 출신 병사들이다.

10년 전만 해도 그룬발트 제국의 ‘메이플링겐 공작령’ 이었던 메플렌 지방은 팔스부르를 포함한 강변 지역을 말하는 지명이다.

이곳 출신은 엘랑키아 다른 지역 출신의 정착민과, 과거 그룬발트의 신민이었던 이들이 섞여 있었다.

때문에 강 건너편의 주민들과 교류도 많은 편이었고 문화적으로도 가까웠다.

그런 이들이 주력군에 앞서 마을과 소도시에 들어가 ‘엘랑키아의 목적은 약탈이나 파괴가 아니다’라는 선무 활동을 하는 것이다.

엘랑키아 국왕은 욕심은 많았으나 그 이상으로 차가운 현실주의자였다.

이번 원정의 목적은 그룬발트 깊숙이 진격한다거나, 대도시를 점령하여 제국 전체를 굴복시키는 것 따위가 아니다.

설령 그게 국왕 자신이 간절히 바라는 일일지라도 말이다.

그저 랄렌 강 건너 영토 일부를 장악하며, 나우데사 연방을 그룬발트로부터 물리적으로 떼어내 영향력을 급감시키겠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룬발트는 기를 쓰며 막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엘랑키아 군은 이를 극복할 힘이 있다고 믿는다.

다고베르 드 팔라스 2세, 엘랑키아의 국왕은 명확하게 자신의 목표를 향해 움직이고 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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