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7. 출동, 생뢰르반 파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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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군. 그 언덕 위의 지원군 부대가 귀관이 지휘하던 부대였나.”
“그때는 그랬습니다··· 그때는.”
야로스 발렌켄드는 자포자기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거 있는 장소는 그로이엔펠트 연대 주둔지의 지휘관 막사였다.
그와 마주앉아 있는 이는 모르네드 셀커크. 슈토르히 용병단 시절 그의 옛 상관이며, 놀랍게도 현재 그로이엔펠트 연대의 연대장이었다.
슈토르히 시절 모르네드는 중대장, 그것도 무려 선임 중대장 중 하나였다.
풋내기였던 야로스 입장에서는 신이나 다름없는 빛나는 존재였다. 심지어 자신과 나이가 얼마 차이도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연대장인 콘도티에레를 중심으로, 총 다섯 명의 선임 중대장들은 각자 전문 분야가 있었는데 모르네드의 분야는 콘도티에레의 작전 보좌였다.
당시 동료들 사이에서는 ‘루트비히 중대장과 모르네드 중대장이 각각 부대를 지휘해 싸우면 누가 이길까?’ 토론도 뜨거운 주제였다.
물론 모르네드의 부하였던 야로스는 모르네드가 이긴다는 쪽이었지만···.
당시 모르네드파의 주장 중 하나는, 콘도티에레의 주변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선임 중대장이 모르네드이므로, 더 신뢰받는 존재라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억지 주장이긴 하지만··· 시간 넘쳐나는 대기 중인 용병들이 나누는 대화가 원래 그런 거였으니까.
당시 슈토르히 연대의 병사와 하급 간부들이 생각하는 선임 중대장들은 주신전의 네 기둥을 지키는 사방천사와 같았다 생각한다.
뭐, 콘도티에레는 당연히 한가운데의 주신님이지.
그렇게 신뢰받던 모르네드 중대장이 언제 슈토르히를 떠났더라.
야로스 자신은 북방 전쟁에 참여한 이후 관뒀으니 한참 전의 일이다.
물론 갑자기 사라졌다거나, 임무를 방기했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제대로 주변에 알리고, 인수인계도 확실하게 하고 떠났던 기억이니까.
뭐, 용병이 고용주가 정해지지 않는 평화시기에 부대를 떠나거나, 다른 용병단으로 이적하는 건 아쉬울 수는 있어도 비난받을 일은 아니기도 하고.
그 후로 전혀 소식을 모르고 살았었는데···.
어느새 그로이엔펠트 소속의 연대장이 되어 있었다!
물론 그로이엔펠트 용병단은 아주 큰 규모의 용병단이니, 여러개의 연대 중 하나를 이끄는 것이겠지만 그렇더라도 대단한 일이다.
그에 비해서 자신은 무엇을 했던가. 자신의 초라한 몰골이 더더욱 눈에 밟힌다.
전 슈토르히 용병단 하급 간부.
전 이소브론 대공 호위병.
전 주테르베이크 연대장.
현 나우데사 연방 반역자.
···생각해보니 짧지만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참으로.
하지만 이 중에 자신이 노력해서, 의도적으로 얻은 건 이소브론 대공의 호위병 역할이 마지막이다.
“귀관에 대한 주변 평가가 조금··· 복합적이라 특이했던 것은 생각이 나는군. 하지만 다섯 명에서 요새 하나를 함락한 자를 누가 함부로 평가할 수 있겠나?”
“그 일은··· 그냥 운이 좋았던 것이지요.”
“전장에서는 강운 또한 실력이라네. 그게 아니라고 생각하나?”
“하하, 뭐 맞습니다.”
잠시 상대가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웃어 넘기려던 야로스지만, 마치 반석처럼 흔들림 없이 진지한 표정을 보고 깨닫는다.
그랬지, 이 사람은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
동료들 말에 따르면 콘도티에레와 이야기 할 때는 종종 웃기도 하는 것 같았지만, 사적으로건 공적으로건 일상이 진지 덩어리인 사람이다.
그렇다고 과도한 원칙을 요구하거나, 부하들에게 가혹하게 굴었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대단히 합리적으로 부하들을 대했고 사비를 풀어 포상을 주는 등, 나쁜 기억보다는 좋은 기억이 많은 상대였다.
애초에 그런 사람이 아니었으면 슈토르히에서 중대장까지 올라가지도 못했겠지.
“나우데사 연방군에서 연대장 자리까지 올랐다, 이것만 보아도 귀관이 그냥 운만 좋은 남자는 아니었다 생각하네.”
“하지만 두 달도 못 가고 잘렸지 않습니까? 지금은 그냥 전 연대장도 아니고 매국노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흐음, 허나 언덕 위를 선점하고 버텼던 귀관의 판단이나 지휘는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비트호른 전투에서 전멸한 연방군 연대는 2개가 되었을 테니.”
2개 연대 전멸이라면··· 하타스 연대장의 쿤스타그 연대를 말하겠지.
확실히, 야로스가 언덕 너머에서 눈으로 확인한 순간 쿤스타그 연대는 대열이 이리저리 무너져 붕괴 직전이었다.
실제로 그대로 전투가 진행되었다면 전열은 완전히 붕괴되었을 테고··· 배후 걱정 없이 마음 놓고 추격할 수 있었던 그로이엔펠트 용병단은 또 하나의 대승리를 연혁에 적어 넣을 수 있었으리라.
그나저나 망할놈의 하타스, ‘쿤스타그의 영웅’ 노인네는 그냥 노망난 늙은이였다.
아니, 노망났다고 하기도 힘든 나이인데, 어쨌거나 끝내주게 무능력했고 겁도 많았다. 무슨 수로 그런 거창한 별명을 얻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아마 그 지휘를 받았던 쿤스타그 연대의 군인들도 어처구니가 없었을 것이다.
‘쿤스타그의 영웅’이 어찌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당황해서는 평범한 대응조차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인간일 줄 알았겠나.
···하지만 쿤스타그 도시에서, 그리고 북방 전쟁에 참전했던 이들 사이에서는 영웅이었으므로, 잘려나간 것은 야로스의 모가지였지.
“귀관의 사례를 통해서, 현재 나우데사 연방 의회의 대전략이나 인사평가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겠군.”
“뭐, 제가 잘린 이후 더 뛰어난 연대장이 왔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이건 야로스가 연방 의회에 가진 개인적인 불만과는 별개로, 솔직한 생각이다.
억지로 떠밀려서 준비도 없이 연대장이 되었던 자신과 달리, 더 적합한 인재가 없으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어쨌거나 나우데사는 결국 굴복하기는 했지만, 그 엘랑키아와 끈질기게 맞상대 했던 저력이 있는 나라니까.
“아마 귀관은 감옥에 갇혀 있느라 듣지 못했던 모양이군.”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난 주의 일이네. 귀관의 옛 전우들은 오베세이렐 전투에서 패배했다. 전열이 완전붕괴했으며, 전군의 절반 정도가 죽거나 포로로 잡혔다.”
“아···.”
야로스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랬구나···.
생각해보니, 연방의 ‘정치범 감옥’이 있을 정도인 도시에 그로이엔펠트 연대가 진주해오고, 비르케제 공작의 수하가 모병을 할 정도의 상황이다.
둘 중 하나겠지.
그걸 막아야 할 연방군이 어딘가에서 뻘짓거리를 하고 있거나.
아니면 이미 없어졌거나.
···나우데사 연방과 그 윗대가리들에게 욕을 하라면 하루 종일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래도 짧은 시간이지만 자신이 키웠고 지휘했던 주테르베이크 연대 역시 참혹한 최후를 맞이했으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만은 않았다.
부디 한 명이라도 더 무사히 고향 주테르베이크의 성벽 안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빌어먹을, 연방 의회 놈들 욕하고 싶은 게 한 가지 더 늘었다.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오베세이렐? 에서요.”
“아마도 귀관의 옛 동료들은 전쟁을 빨리 끝내버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잠시 철수했다가 병력을 증강하여 곧바로 북진해왔지.”
“예··· 그럴 것 같았습니다.”
이게 조직에서 몇몇 개인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울 때 발생하는 부가적인 폐단이다.
우리는 문제 없어! 저 놈들이 문제였어! 라고 희생양을 만들어 당장 체면을 차린 것은 좋은데···.
반대로 말하면 그 문제였던 놈들을 쫓아냈으니, 조직이 문제 없음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서둘러 ‘실적’을 쌓고자 했겠지.
이 경우에는 그게 새로운 승리, 더 나아가 비르케제 공작군의 토벌을 통한 조기 종전이었겠고.
“아군은 오베세이렐 평원에서 기다렸고, 곧 전투가 벌어졌다. 양측 모두 지난 번 보다 증원된 상태였고, 아군은 4개 연대로 대략 5500명 남짓. 연방측은 5개 연대로 8000명을 조금 넘었던 것으로 추산한다.”
“그걸 또 때려잡으셨습니까, 그로이엔펠트 강하군요.”
“귀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연방군이 심하게 약했던 것도 있다네. 지금 생각해도 그들은 싸울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어. 전형적인 훌륭한 병사들에 무능한 지휘관이었지.”
“그야 그렇겠지요.”
합동 훈련을 하자고 그렇게나 건의했지만, 훈련은 행군하면서, 집결지에서 하면 된다며 좀처럼 시간을 낼 수 없었다.
벼락치기 훈련을 한 주나 열흘 정도 더 했다고 역사가 크게 바뀌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맥없이 무너지지는 않았을 거다.
용병으로서 훈련을 받아도 보고, 신병을 가르쳐도 보고, 종국에는 연방군 연대장으로 지휘도 해 본 경험을 쌓은 지금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보병 부대의 공격력을 끌어 올리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개인과 개인의 싸움 방법을 올려도 체득하기는 어렵다.
훌륭한 결투사가 훌륭한 군인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보병 부대의 방어력에 한정 짓는다면, 비교적 짧은 기간에 상당히 끌어 올릴 수 있다.
좋은 갑주를 지급하는 물리적인 방어력 뿐 아니라, 철통같은 진형을 유지하고 지휘에 따라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소프트 측면의 방어력 말이다.
게다가 현재 대륙의 전장을 지배하는 무기는 다름아닌 화승총이다.
겁에 질린 농부조차도, 명중만 시키면 최강의 중장갑 기사를 한 방에 보내버릴 수 있는 강력한 무기.
다소 다른 분야가 취약한 부대라 할지라도, 대열을 유지하면서 지속적으로 사격만 유지할 수 있다면 그 부대는 어떻게든 실전에서 싸울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나우데사 연방군은 그게 잘 안 된다는 말이다.
대형 전환 훈련이 너무 부족해서 진형 배치가 주먹구구식이고, 사각 대형이 주는 안정감을 체득할 수도 없었으리라.
그럼에도 대부분이 지원병인 구성원의 사기는 왕성하고, 전쟁 목적에 대해서도 강한 확신을 가진 훌륭한 군인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머저리같은 지휘 때문에 무의미하게 떼죽음을 당하다니··· 통탄할 노릇이다.
“아무튼 귀관은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가? 만약에 자네가 원한다면 그로이엔펠트 셀커크의 장교 직위를 약속하겠다.”
“저를 다시 불러 주시는 겁니까···.”
“거짓말은 하지 않겠네. 현재 연방의 야전군을 궤멸시키기는 했지만, 나우데사에 빽빽하게 들어찬 요새들을 공격하는 건 힘든 싸움이 되겠지. 유능한 장교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귀관은 다섯 명으로 요새 하나를 함락한 인물이 아닌가?”
“하하··· 대장님도 농담을 하시는군요.”
“농담은 아닐세.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그런 활약을 기대할 뿐이지.”
그로이엔펠트는 연대가 여러 개라서, 뒤에 연대장의 가문명을 붙여 구분하는 모양이다.
정예 용병대의 장교라··· 다시 용병 커리어를 이어 나간다면 결코 나쁜 제안은 아니라는 생각은 든다.
게다가 연대장이 이전 상관이기도 하니 유리한 점도 없지는 않겠지. 이 사람이 옛 부하라고 부당하게 챙겨줄 사람이 아니기는 했지만.
게다가 노력 여하에 따라서 자신을 모욕준 연방의 윗대가리들을 엿먹이는 가장 빠른 방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안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죄송합니다, 모르네드 연대장님. 잠깐 동안이지만 저는 주테르베이크의 병사들과 한솥밥을 먹었습니다. 이제와서 적대할 수는 없습니다.”
“용병으로서 전쟁 중에 편을 바꾸는 건 어려운 선택이기는 하지. 귀관의 판단을 존중하겠네.”
“감사합니다.”
용병에게 적전도주나 탈영보다도 악질적 행위로 여겨지는 것은 전쟁 중에 편을 바꾸는 것이다.
고용주에 따라,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적이 되고 내일은 다시 동료가 되는 일도 흔한 용병이기에 더더욱 철저하게 지켜야 하는 원칙인 모양이다.
물론 현재 야로스의 케이스야, 연방 의회에게 탄핵당해 쫓겨난 경우이니 경우는 좀 다르지만.
“그럼 슈토르히로 돌아갈 생각인가? 콘도티에레께서도 복귀하셔서, 엘랑키아 남부에서 활약하고 계시다는 소식은 들었지.”
영 감정이 없어 보이던 모르네드의 회색 눈동자에서, 처음으로 감정의 흔들림이 느껴진다. ‘콘도티에레’라고 말할 때였다.
그게 그리움일지, 혹은 호승심일지.
그나저나 라이벌 용병단으로 이적해서 연대장까지 달아도 여전히 콘도티에레라고 부르는구나.
생각해보니 자기도 마찬가지네.
“글쎄요··· 이제 와서 무슨 면목으로 돌아가야 하나 싶기도 한데요, 그래서 좀···.”
“귀관은 북방 전쟁 복무가 끝나고 정상적으로 제대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럼 부끄러울 일은 없지.”
“예··· 그런데 큰소리를 좀 쳐 둔 게 있어서.”
“무슨 선택을 하든 존중하겠네. 이 쪽지를 가지고 보급관에게 가면 사흘치 식량을 줄 걸세. 편한 대로 하게나.”
“감사합니다, 모르네드 연대장님.”
“만약 귀관이 슈토르히에 합류하게 된다면··· 다시 전장에서 겨루게 될지도 모르겠군. 아닌가, 엘랑키아 남부는 여기서 멀리 떨어져 있으니 그건 어려우려나.”
그러고보니 생각이 났다.
당시, 모르네드 중대장은 선임 중대장들에게 운영을 맡기고 자주 부대를 비우던 콘도티에레에게 실망했던 모양이다.
‘콘도티에레가 없는 슈토르히에 있을 이유가 없다’
뭐 이런 말을 들었던 것 같다.
그 전부터 전략전술 면에서 콘도티에레나, 루트비히 중대장과 자주 다퉜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다시 만났지만, 정말 멋진 사람이다.
야로스 자신이 지금부터 노력한들, 이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야 어렵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