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 출동, 생뢰르반 파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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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데사 내전이 격화된 이후 첫 전투.
이소브론 대공을 지지하는 연방군 4개 연대가 행군 중 기습당해 다수의 사상자를 냈던 그 전투는 근처의 마을 이름을 따서 비트호른 전투라 명명되었다.
1개 연대가 완전히 와해되어 그 지휘관조차 사망했으며, 다음 1개 연대는 그 정도는 아니었으나 더 이상 작전이 불가능할 정도의 큰 피해를 입었다.
그나마 처음에는, 큰 피해에도 불구하고 적을 격퇴했으며 ‘진격으로 얻은 영토는 한 치도 잃지 않았다’ 라고 홍보하며 승리로 포장하려는 시도가 없진 않았다.
하지만 단시간에 심각한 사상자가 난 민병대 중심의 연방군의 사기는 너무도 떨어졌다.
심지어 적이 야습해 온다는 망상에 착란을 일으킨 경비병이, 아군 순찰대를 향해 발포하는 사건까지 벌어졌으니까.
결국 사흘도 버티지 못하고 철수를 결정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무슨 미사여구를 가져다 붙이더라도, 실상은 너무도 참담한 패배였으니까.
연방군의 병력은 적의 1.5배 이상이었고, 무장 상태는 훨씬 더 좋았다.
같은 민병대라고 해도, 이소브론 대공파는 공식적인 연방군이다.
연방 의회의 무기고 지원을 받았으며, 연방군 출신 정규 장교와 퇴역 장교들이 지휘를 맡았다.
그에 비해 비르케제 공작파는 그런 지원을 전혀 받지 못했다.
그나마 비르케제 파의 주둔을 허락한 도시들도 전폭적인 지원을 하지는 않았다.
각 도시들이 전폭적인 지원을 해, 도시 수비군의 무기까지 우선적으로 끌고 나온 대공파와 달리, 비르케제파는 말 그대로 민병대였다.
박박 긁어모은 무기도 부족해, 전군의 20퍼센트 정도는 무기다운 무기를 지급받지 못해 시대착오적인 무장을 했을 정도이다.
만약 비슷한 규모의 적과 야전에서 붙었다면, 기습 효과를 보지 못했다면···.
그리고 신성 그룬발트 제국에서 보내준 그로이엔펠트 용병 연대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면 동등하게 싸우는 것도 버거웠으리라는 것은 자명했다.
그럼에도 연방군은 패배했다.
위풍당당하게 출정했다가 초라한 몰골로 돌아온 연방군은 책임을 지게 하기 위해서 지휘관들을 처벌했다.
여러 중대장들이 자기 역할을 다 하지 못했다는 이유, 적 앞에서 공포에 질려 병사들을 오합지졸로 만들었다는 이유로 불명예 전역당했다.
특히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했던 연대장도 마찬가지이다.
적과 대면한 순간 똑바로 지휘하지 못했으며, 판단력을 잃어 위험에 빠진 아군을 구하지 못했다.
연방과 도시에서 맡긴 소중한 장병들이 제 역할을 할 기회를 빼앗았으며, 자신의 치부를 숨기기 위해 패배하는 와중에도 용감히 싸운 아군을 음해했다.
심지어 그에게 추가적으로 제기되었던, 사전에 비르케제 공작파 귀족들과 내통했다는 혐의 또한 일부가 진실로 드러났다.
연방 의회의 짧지만 강도 높은 조사 끝에, 그런 결론이 내려졌다.
그와 친분이 있었던 옛 부하들은 부당한 처우라 항변하기도 했으나, 드러난 증거가 너무도 명백했기에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격이었다.
판결은 내려졌고, 지휘권과 직책을 박탈당한 연대장은 금고형에 처해졌다.
추가 조사 후, 연방 의회로 호송되어 청문회에 참여한 후, 그에 대한 처분이 내려질 예정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를 둘러싼 주변 상황이 너무도 좋지 않았기에, 관대한 처분을 받기는 어려워 보였다.
주테르베이크 연대장, 이제는 ‘전 연대장’인 야로스 발렌켄드는 그렇게 나락으로 떨어졌다.
다리 많은 벌레가 쉴 새 없이 벽을 기어다니고, 썩은 내로 코가 마비되는 지하 감옥에서 호송될 날만 하루하루 기다리는 신세가 된 것이다.
···였을 터이나.
“나오시오!”
“어어?”
“지하 감옥이 좋소? 그럼 거기 살든가!”
“어어? 나가겠소! 아, 나가겠단 말이오!”
“하하하하! 어서 나오시오.”
야로스는 자신을 매국노라 부르며 발길질을 해대던 간수 대신, 낯선 남자에게 이끌려 감옥을 나왔다.
썩은내 나는 감옥에는 며칠 있지도 않았건만, 눈이 부셔 눈을 뜰 수 없었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바깥 공기에서는 화약과 흙냄새가 같이 났다.
죄수들은 줄지어 나와 감옥 근처 광장에 한 줄로 앉혔다.
오랫동안 지독한 지하 감옥에서 시달렸던 죄수들에게는 햇빛을 받으며 바깥 바람을 만끽하는 것만 해도 행복이긴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함이 엄습한다. 대체 무슨 목적으로 죄수들을 몽땅 불러내는 것일까? 설마 단체로 교수형이라도 시키려는 것은 아니겠지.
과거 용병 시절에, 만약 포로로 잡혀 처형된다면 어떤 식으로 죽는게 가장 고통이 덜 할지, 당시 용병 동료들 표현으로 ‘때깔이 좋은’ 죽음일지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었다.
‘교수형이 떨어지는 순간 모가지가 부러져서 순식간에 골로 간다더구만? 교수형이 나을 것 같은데.’
‘그러면 다행이지만 보통은 그렇게 안 되더라고. 어렸을 때 시장에서 30분 넘게 버둥거리는 걸 보고 시팔, 며칠 잠을 못잤다니까? 혓바닥이 보라색이었어! 차라리 총살이 확실하고 깨끗하지.’
‘전투 끝나고 총 한 발에 안 뒈져가지고는 바닥 기는 부상자들 못 봤는가? 사람 목숨이 참으로 질기더라고!’
‘그건 갑옷도 입고 멀리서 쏴서 그렇지. 그래도 화약 아깝게 요새 누가 총으로 죽이겠냐? 잠깐 아프더라도 목 따서 숨 넘어가는 게 낫지 않어?’
‘목 따는것도 기술이여. 단검으로 쓱싹하는 게 쉬워 보이냐? 초짜한테 걸리면 그르륵거리면서 다음날까지 살아 있는것이여!’
대기중이라 심심한 군인들의 시간 죽이기, 헛소리 대잔치가 흔히들 그렇듯 당시 어떻게 결론이 났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소름끼치는 토론이다. 특히 이런 상황에 이르러서는.
그리고 지금 주변 상황은··· 다행히도 주변 상황은 그렇게 살기가 넘치지는 않는다.
야로스가 ‘옛 동료’인 이소브론 대공 호위대의 주황색 망토들에게 포박되어, 연방 의원들에 의해 조사받다가 수감된 작은 도시의 분위기는 차분하다.
근처가 광장과 시장 거리인 만큼 시끌벅적하게 마련인데, 오늘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과거에 이런 분위기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바로 평화적으로 주인이 바뀐 도시의 분위기이다.
안전을 보장받아 성문을 열었으나 여전히 불안해하며 ‘새로운 정복자’의 눈치를 살피는 수비대와 주민들.
얼마 전까지 적지였던 낯선 도시를 평화적으로 접수하고, 적의나 분노를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점령군들.
그렇게 서로를 꺼리는 기묘한 균형.
“저기요, 병사 양반. 도시가 넘어간 거요? 비르케제 공작한테?”
“...조용히 해.”
죄수 무리를 감수하고 있던 병사는 특별히 적의를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무관심하게 대답했다.
그는 척 봐도 민병은 아니었다. 잘 손질되긴 했으나 여기저기 긁힌 상처가 보이는 흉갑이나, 무수하게 꿰맨 흔적이 보이는 장갑만 봐도.
“어디 소속이시오? 설마 그로이엔펠트 용병단이오?”
“...어디서 뭘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조용히 하래도.”
음 역시 그렇군. 감시병의 흠칫 놀라는 모습에서 그렇다는 걸 알았다. 왠지 정체를 들켰다는 점에 당황하는 모습에서 경력이 길지 않은 용병이라는 것도 느꼈다.
그야 신병에 속하니까 이런 귀찮은 임무를 하고 있을 테고, 베테랑이라면 이런 농담 따먹기하기 딱 좋은 기회를 놓칠 이유가 없겠지.
분위기를 봐서는 도시가 전투를 벌이고 함락된 것 같지는 않다.
만약 힘으로 빼앗긴 도시라면 공격군은 살기등등할 것이다. 짧은 시간에 많은 동료들을 잃고 이성을 잃은 공격군에 의해 학살이 벌어질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런 기색은 없다. 그건 야로스에게도 좋은 신호였다.
이 빌어먹을 나라, 나우데사는 한시라도 빨리 떠나고 싶었다. 엘랑키아가 먹든, 그룬발트가 먹든, 지옥에 떨어지든 그가 알 바는 아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부모님의 고향이라길래 괜히 정감이 가서 정착해 볼까 했다가 이 무슨 꼴인가.
“나는 비르케제 공작 각하를 섬기는 무관, 크라머라고 한다.”
그 때, 광장 한가운데에 말 탄 장년의 남자가 나타나더니 뭔가 외치기 시작했다.
장교나 부사관이나 병사나 수수하고 실전적인 복장을 한 그로이엔펠트 용병들과 달리, 대단히 화려한 원색의 옷을 입은 모습은 마치 광대가 생각났다.
마치 거울처럼 잘 닦인 흉갑과 칼 손잡이의 금속 장식이 햇빛을 반사해 눈이 부셨다.
“너희들은 이소브론 대공과 연방 의회에 반항하였다는 이유로 수감된 이들이라 들었다. 폭거에 폭거를 계속하는 대공과 연방 의회에 분노하고 저항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라고 비르케제 공작께서 말씀하셨다.”
그 말에, 주변에서 열성적인 함성이 터져나왔다. 전체는 아니지만 죄수들 중 삼 분의 일 정도는 비르케제 공작의 열성적 지지자인 모양이다.
그나저나 여기는 일종의 정치범 수용소였던 모양이다. 야로스 자신도 그렇게 분류된 모양이다.
하긴 아직 중대장인지 뭔지 애매하던 시절, 야로스도 열심히 ‘적군’들을 사로잡아 감방으로 보내곤 했었지. 설마 이 녀석들이···.
갑자기 분노가 치솟아 오른다. 억지로 떠맡겨진 연대, 어떻게든 잘 챙기고 한 명이라도 더 살려서 보내겠다고 노력했었다.
그런데 시팔, 제일 만만하고 뒷배 없는 놈이라고 패배의 원흉으로 책임을 통으로 뒤집어 씌워? 빌어먹을 의회 놈들.
그나마 부관인 마르턴과 호위병들이 격분하여 항의하던 모습이 위안이 된다. 적어도 부하들에게 끌려가 마땅한 개자식은 아니었던 모양이니까.
그래도 조사 받으면 귀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최악의 경우 연대장 때려 치우고 떠날 생각이었는데···.
붙잡혀서 지하감옥에 갇힐 줄은 몰랐었다.
“너희가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비르케제 공작 각하의 군대는 연방군을 두 차례에 걸쳐 크게 격파했다! 이 도시를 함락하고 너희를 해방했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생각해보니 그렇네. 멍청한 놈들 한 달 밖에 안 지났는데 또 졌어?
그로이엔펠트는 절대 맞상대하지 말라고 그렇게나 말했는데. 심지어 고압적인 의원들에게 조사 받으면서도 몇 번이나 말했다.
주테르베이크 연대는 어떻게 됐을까. 짧은 시간이지만 그가 아끼고 키웠던 부대인데 말이다.
“비르케제 공작께서는 새로 지원병을 모아 신규 연대를 편성 중이시다! 여기 공작 각하를 위해 싸울 자가 있는가? 나우데사 출신이 아니라도 좋다, 우리는 함께 싸우는 이들을 동포로 받아들일 것이다!”
“우오오오오오!”
흥분한 죄수들이 앞다투어 모병관을 향해 달려나간다.
크라머라고 자신을 밝힌 남자의 연설은 마음을 움직이는 데가 있었다. 야로스 자신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생기게 되었으니까.
자신의 뒤통수를 거하게 친 연방 의회도 엿 같았고, 이소브론 대공을 만나면 대체 자신에게 왜 그랬냐고 멱살 잡고 물어보고도 싶었다.
하지만 역시 그만 두기로 했다. 만약에라도 주테르베이크 연대 병사들과 싸우게 되는 건 사절이다.
엿 같은 건 윗대가리들이지, 한때나마 목숨을 맡겼던 녀석들과 총을 겨누는 건 절대로 피하고 싶었다.
설마··· 지원하지 않는다고 죽이지는 않겠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슬금슬금 모병관에게 모인 인파의 뒤로 이동한다.
누군가에게 물어볼까? 강제 징병을 한다는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마침 모병관 근처, 눈 앞에 장교로 보이는 용병이 보인다.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그 회색 눈에는 지겨움이 가득 느껴진다.
“저, 하나 여쭤봐도 되겠습니··· 어?”
“음?”
“아, 아니···.”
이럴 수가.
일개 대공 호위병에서 중대장도 뛰어 넘어 벼락치기로 연대장이 된 후, 다시 하루 아침에 ‘매국노’가 되어 감옥에 간 후, 하필이면 연대장 시절 싸웠던 적군의 손에 해방되었는데···.
그 적군 사이에 아는 얼굴이 있을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잘못 된 게 아닌가 싶어, 의아한 표정을 짓는 장교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어이, 무슨 일이지?”
“거기 멈춰라. 궁금한 게 있다고?”
직급이 제법 높은 장교인지, 야로스가 한참 바라보자 주변에서 수하들이 그를 가로막는다.
“모르네드··· 중대장님?”
지루함으로 가득했던 회색 눈동자에 놀라움이 깃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