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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색화약의 용병대장-398화 (398/556)

41-5. 출동, 생뢰르반 파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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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름스의 세계수 묘목은 쌍둥이 연리목이다.

통상 하나의 거대한 기둥처럼 우뚝 솟아있는 다른 선제후 가문의 나무와 다르다.

유일무이하게도 폴름스의 세계수는 두 그루의 줄기가 비스듬히 자라다가 중간에 얽혀, 남들보다 두 배의 가지와 잎을 드리운 압도적인 광경으로 유명하다.

가장 거대하고 아름다운 세계수만 가졌을 뿐이 아니다., 폴름스는 그룬발트의 모든 선제후 가문들 중에서도 오래되고 고귀한 혈통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그림자 종족의 공격으로 함락된 아란 제국의 수도를 수호했던 제국의 마지막 재상이 바로 폴름스의 조상이었다고 할 정도니.

세계수 묘목끼리의 연리목이라는, 불가사의에 가까울 정도로 남달리 크고 아름다운 세계수.

고대 아란 제국의 황제를 보좌하던 가장 고귀한 명문가의 후손.

아란의 유일한 적통, 신성 그룬발트 제국을 건국한 12선제후의 일원.

이런 점들이 폴름스를 구성하는 고대 혈족들의 자부심을 유달리 자극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리라.

실제로 폴름스의 옛 조상들은 신성 그룬발트 제국 내부에서 다른 선제후들과 경쟁하며 세력을 키우는 대신, 서쪽으로 눈을 돌렸다.

랄렌 강을 건너, 야만으로 돌아간 평야를 개척했다.

제국을 잃으며 문명에 대한 감사함까지 잃어버린 듯 했던 야만족들은 폴름스 혈족들의 지도 아래 비로소 문명의 틀을 갖추게 되었다.

물론 모든 야만족이 폴름스의 은혜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냉혹하게 힘으로 짓누르고, 때로는 자비롭게 은혜를 베풀며 아란 제국의 은총을 잃어버린 야만한 땅을 계몽했다.

폴름스의 통치자들은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누구보다도 깊은 자비를 베풀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는 누구보다도 가차없었다.

그룬발트의 혈족들 사이에 내려오는 역사서와 가문 기록들 사이에서는 종종 폴름스의 서부 개척지에서 벌어졌던 ‘정화 작업’에 대한 내용이 단편적으로 전해진다.

종종 이 ‘정화’의 내용은 소름끼치는 유혈과 고통으로 채워져 있기도 했다.

이는 어느 정도는 진실이고, 어느 정도는 폴름스를 모욕하려는 자들의 과장이 섞여 있으리라.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야만족들을 다스리는 것은 목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두 발 달린 짐승에게 문명을 가르치는 일이다.

남달리 굴종하지 않으려 드는 문제가 많은 종들을 솎아내지 않으면 이는 무리 전체에 악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이는 자비를 위한 무자비였다고 말한다. 폴름스의 조상들은 그렇게 기록했었다.

그렇게 개척과 확장을 이어갔던 폴름스는 서쪽으로 계속해서 나아갔다.

숲과 늪 밖에 없었던 평야 지역에 비로소 문명의 씨앗이 뿌려졌다.

서쪽으로 계속해서 나아간 폴름스의 혈족은 마침내 대양에 닿았다. 그 너머 서쪽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란 제국의 현자들조차도 몰랐던 소금물로 된 사상의 장벽.

거기에는 항구와 함께 거대한 등대가 세워졌다.

언젠가, 누구보다도 강인하고 진취적인 폴름스의 탐험가들이 그 사상의 장벽을 넘어 탐험을 떠날 때,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올 때 사용할 수 있도록.

기록에 따르면 대륙을 호령한 폴름스 영광의 시대는 다섯 세기를 넘게 이어졌다고 한다.

이는 막 청년기에 들어간 고대 혈족이 그 전성기를 보내고 꺾일 정도의 세월이며, 그 위세는 마치 아란 제국이 재건된 것 처럼 보였을 정도였다 한다.

하지만 그 위대한 아란 제국이 그랬듯, 몰락이 시작되었다.

그 몰락기는 그림자가 대륙을 뒤덮었던, ‘거대한 망각의 시대’에 묻혀 자세히 전해지지는 않으나···.

이어지는 문명과 영광을 지키기 위해 모든 힘을 소진했던 폴름스의 고대 혈족들에게, 배은망덕한 인간 제후들이 반역했다.

반역의 물결은 랄렌 강 너머의 영토 전역으로 퍼져 나갔으며, 가장 큰 은총을 입었던 인간 씨족들마저 배신자의 반열에 들었다.

위대한 조상들이 거의 천 년에 걸쳐 개척하고, 건국하고, 발전시키고, 수호해왔던 영토가 몰락하는 데엔 겨우 백 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폴름스가 통제 가능한 영역은 갈수록 줄어 들었다.

건축된 이래로 한 번도 불이 꺼진 적 없었던 거대 등대는 빛을 잃었다. 무지한 인간들은 기프트의 불을 다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랄렌 강 너머의 본토에서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여전히 충성스러운 요새들이 하나 둘 무너져가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결국, 살아남은 폴름스의 고대 혈족들은 패배를 인정했다.

서부 영토를 완전히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을 뿐더러, 안전하게 랄렌 강 너머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준 은혜조차 잊은 반역자들은 집요하게 고대 혈족들을 공격해왔다.

하긴 찰나의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 입장에서는, 자신의 조상들이 수백 년 전만 해도 혈거인보다 조금 나은 삶을 살던 야만인이었음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니.

···당시에 은혜를 잊고 앞장서서 폴름스의 통치자들을 몰아냈던 인간 씨족의 이름이 그 저주받을 이름, ‘엘랑크’ 였다.

물론 일시적으로 랄렌 강 너머로 철수했다고는 해도, 폴름스가 모든 희망을 버렸던 것은 아니다.

통제에서 벗어난 인간들은 곧바로 서로 싸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혹자는 주도권을 다투며 서로 죽고 죽이는 살육전에 들어갔고.

혹자는 변경에 변변찮은 성을 쌓고 스스로 왕공을 칭하기도 했고.

랄렌 강 남부 저지대의 멍청이들 처럼, 고대 혈족들이 버리고 떠난 호화로운 궁전에 들어가 주인 행세를 하기도 했다.

아마 그런 혼란기가 계속되었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기회는 찾아 왔을 것이다.

힘을 갈고 닦고, 동맹 가문들의 지원까지 등에 엎은 폴름스는 다시 서부 영토로 돌아갈 수 있었으리라.

위대한 개척자였던 선조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 초원을 가로 질렀을 것이며, 그들이 개간한 풍요로운 영토를 되찾았으리라.

사상의 소금물 장벽을 굽어보는 거대 등대에는 다시 찬란한 기프트의 불이 타올랐을 것이며, 자신들의 한계를 실감한 인간들은 다시 고대 혈족의 통치를 받아 들였으리라.

···만약 어느 왕국이 빠르게 세력을 불려, 할거한 작은 세력들을 삼켜 하나로 뭉치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 저주받을 이름, ‘엘랑크’ 씨족의 후예들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폴름스의 선제후, ‘회색 마녀’ 네프셀시엔은 분노로 몸을 떨었다.

어찌 세상에는 신도 정의도 없는 것일까.

저주받을 엘랑크 씨족의 후예들은 지금도 ‘선조들의 적법한 권역’이 분명했을 서부 영토를 강탈하고 나라를 세워 떵떵거리고 살고 있다.

상념에서 벗어나 분노를 가까스로 진정시킨 그녀는 물끄러미 눈 앞의 문서를 바라본다.

빛과 그림자를 다루는 기프트로 특수처리된 문서는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희미한 빛을 내고 있었다.

기밀 유지를 위해, 주어진 조건을 만족하지 않으면 내용을 볼 수조차 없다. 그리고 내용에 동의하지 않으면 즉시 먼지가 되어 사라지겠지.

종종 그룬발트의 선제후 가문 사이에서 오가는 최고등급의 기밀 문서에 사용되는 기법이다.

아란 제국에서는 황실에서 다루는 모든 공문서에 이 같은 특수 처리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대체 그 시절의 문명은 얼마나 찬란했을지. 그것은 폴름스의 선제후 네프셀시엔조차도 모르는 영역이다.

이번 경우 문서를 볼 수 있는 조건은 ‘문서에 이름이 쓰여진 자가 읽기를 원한다’ 였다.

문서에는 모두 일곱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그 중 여섯 명의 서명이 들어가 있다.

가장 위, 카젤하겐의 선제후를 시작으로 여섯 명의 선제후의 이름과 그 서명.

가장 아래에는 네프셀시엔 자신의 이름. 물론 서명란은 비어있었다.

만약 서명란에 자신이 서명한다면 이 문서는 선제후들 사이에 맺어지는 새로운 맹약을 지키는 신성한 증거가 되겠지.

하지만 거부의 표시를 한다면 즉시 재가 되어 사라진다.

자신의 생각 여하에 따라 폴름스 혈족의 미래가, 그리고 신성 그룬발트 제국의 미래가 바뀔 것은 분명했다.

회색 마녀, 네프셀시엔은 찬찬히 생각을 정리한다.

이 문서에 서명한다면, 자신은 다음 선제후 회의에서 디오보르크 공작에게 폴름스의 봉인된 두루마리를 제공한다.

즉, 나머지 여섯 선제후 가문에 이어 일곱번째 표가 되면서 디오보르크 공작이 26년만의 적법한 황제로서 그룬발트를 통치하게 되겠지.

하지만 네프셀시엔은, 폴름스로서는 도저히 디오보르크를 지지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폴름스가 지지하고 키우던 황제 후보를 참살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냉정하게 보더라도, 디오보르크 공작은 그다지 지지하고 싶은 인물이 아니었다.

아무리 열등한 인간 중의 후보자라지만, 이렇다 할 능력도 미래도 보이지 않았다.

이는 카젤하겐의 선제후 역시 솔직하게 대답했다. ‘우리는 디오보르크 공작이 가장 나은 인물이라서가 아니라, 황위에서 가장 가까운 인간이라 지지한다’ 라고.

그 정도로 볼품없는 인물이었다. 그런 인간이 그룬발트 지고의 자리에 오르고, 명목상일지라도 폴름스의 혈족이 그 신하로 들어가야 한다는 현실이 정말 싫었다.

그에 비해서 그녀가 직접 간택해 어린 시절부터 가르쳤던 그 아이는···.

아아, 얼마나 황제에 어울리는 고귀한 인간이었던지.

그 재능과 아름다움은 거의 고대 혈족에 준하는 수준이었다. 인간에 대해 거의 혐오에 가까운 감정을 품은 그녀가 솔직하게 찬탄할 정도로.

하지만 이제 그런 가치있는 인간은 다시 태어나지 않겠지. 네프셀시엔이 남은 생애를 계속 기다리더라도 말이다.

그런 소중한 존재를 전쟁터에서 무자비하게 죽여버린 인물을 지지한다니··· 원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 그녀는 디오보르크 공작과 이를 지지하는 카젤하겐 가문을 끝까지 방해하고 견제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정도니까.

하지만··· 그 서명이 가져올 반대급부를 생각하면···.

폴름스의 혈족 뿐 아니라 그룬발트 서부의 대영주로서, 현실에 대해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섯 선제후 가문은 물론, 그 자신도 강대한 영주인 디오보르크 공작은 황제위 계승을 위한 일곱번째 지지표를 대가로 막대한 지원을 약속했다.

‘대륙에서 가장 강대하고 정통성 있는 초강국’ 신성 그룬발트 제국이 엘랑키아 왕국을 압도하지 못하는 이유는 중앙 통제권이 약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뛰어나고 비전 있는 군주가 제위에 오르더라도, 워낙 지방색이 강하고 ‘황제를 선출하는 지위’인 선제후들이 말을 잘 들을 리가 없었다.

심지어 끝까지 즉위에 반대한 가문이라면 말이다.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엘랑크 씨족의 저주받을 이름을 이어받은 후예, 엘랑키아 왕국을 치기 위해서는 병력과 자금이 필요했다.

여기에 서명만 한다면, 지금 그녀와 폴름스가 간절하게 필요한 그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

비록 ‘차기 황제’ 디오보르크 공작의 지휘 통제를 받는다는 단서가 붙기는 하지만, 수만의 대군이 랄렌 강 건너로 진격하게 될 것이다.

팔츠부르크.

메이플링겐.

그 이름만 생각해도, 다시 한번 분노로 몸이 부르르 떨린다.

메이플링겐의 공작은 폴름스 선제후의 가장 충성스럽고 훌륭한 인간 신하 중 하나였다. 황제로 추천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하지만 랄렌 강 너머에 마지막으로 남은 폴름스의 영토를 지키다가 엘랑키아 국왕에게 참살당했다. 마찬가지로 충성스럽던 그의 자식과 사촌들도 함께.

팔츠부르크는 더러운 엘랑크 씨족의 후예가 차지해도 되는 땅이 아니다.

위대한 선조들이 처음으로 랄렌 강을 건너며 세계수에 깃든 신성에게 제사를 지냈던 신성한 장소였으니까.

“후우···.”

한숨을 내쉰다. 마음이 정리되었음을 알리는 한숨이다.

스윽 스윽, 네프셀시엔은 빈 서명란에 자신의 이름을 적는다. 이제는 고대 혈족 중에도 아는 이가 많지는 않은, 아란 제국의 신성 문자로.

모두 일곱 선제후의 서명이 채워지자, 문서가 잠시 밝게 빛난다. 대륙의 어딘가에서는, 이 문서의 짝이 되는 문서가 마찬가지로 빛나고 있으리라.

일곱 선제후 사이의 맹약.

이는 잠정적으로 신성 그룬발트 제국의 새로운 황제를 탄생시키는 맹약이었으며.

오만방자한 엘랑키아 왕국을 벌하기 위한 전쟁을 확정하는 맹약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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