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396화 (396/556)

41-3. 출동, 생뢰르반 파견대

###

“콘도티에레, 여기 이스키비르 전선 관련 보고서를 정리해서 가져왔습니다.”

“아, 고맙네.”

나는 제18 벨모제 보병 연대의 참모, 리타르몽 드 당세르가 내미는 얄팍한 보고서를 받아들었다.

그는 절도 있는 자세로 경례를 하더니, 약간 발을 끄는 듯한 걸음걸이로 멀어져간다.

아쥬흐나 첼레스티나에게 건강 상태에 대해서 들은 게 있어서 뭔가 말을 걸어 보려다가 그만 둔다.

아마 아는 사람들이 몇 번 씩은 질문을 했을 것이다. 전문 지식을 가진 아쥬흐와 군의관이 지켜보자고 했고, 당사자도 강한 의지를 보였다는데 나 까지 나서서 괜히 마음을 어지럽힐 필요는 없겠지.

지금 리타르몽이 참모로서 담당하고 있는 역할은 적지 않다.

첼레스티나가 신병들을 괴롭히··· 훈련할 때 쓰는 방식대로 참모들을 교육하고 있었는데, 여러가지 일을 다소 과할 정도로 맡겨서 수행능력을 확인하는 것이다.

지금 올라온 보고서는 보좌관들에게 매우 중요한 업무인, 다종다양한 정보를 주제별로 정리하고 일관된 하나의 문서로 정리한 형태이다.

평소에는 첼레스티나가 하는 일이지만, 이번에는 리타르몽의 차례이다. 참고로 첼레스티나는 자기 역할이 줄어드는 걸 무척 아쉬워 했다.

간결하게 요약된 보고서는 확실히 첼레스티나의 교육을 받았다는 것이 느껴진다. 같은 양식, 같은 정리법.

다만 문장 쓰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하나의 문단으로 완성시키는 쪽을 선호하는 것 같고 막힘 없이 써내려간 달필이다.

어쨌든··· 내용 중에 큰 사건은 없었다. 애초에 이상이 있었으면 진작에 첼레스티나든 리타르몽이든 미리 찾아와서 언질을 해 주었을 테고.

생뢰르반 전투 이후, 라솔 왕국과의 국경은 전에 없이 조용하다. 이전에는 간혹 국경지대에서 전투가 있고, 해상에서도 크고작은 분쟁이 생겼었다는데.

지난 전쟁에서, 엘랑키아와의 최전방을 책임지는 ‘이스키비르 하류 주둔군’이 병력 피해도 심각했지만, 포로 교환당시 지불한 막대한 금액으로 파산 상태로 묶어둔 것이 주효했다.

현재는 병력 복구는 물론 물자 비축에도 애를 먹고 있는 모양이다. 제때 잔금을 받기 힘들 것 같은 상인들이 접근을 꺼리고 있을 정도라니.

물론 라솔 왕실에서 언젠가는 지원을 해주겠지만, 그래도 한동안은··· 최소한 1~2년은 안심해도 되리라 생각한다.

그 정도면 신생 생뢰르반 군의 운용도 어느정도 궤도에 오르겠지.

다만 작년의 침공에 대한 라솔 국왕의 입장에 대해서 좀 알고 싶었는데, 이것만은 상인들이나 우호적인 라솔 귀족들도 잘 모르는 모양이다.

···반대로 이렇게나 정보가 없다는 것은 일부러 조심하고 있다, 라고 의심해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트랑카벨 가문의 루트비히 아린 폰 자이트리츠, 드 레뮤즈 가문의 아인멜츠 피노르 폰 자이트리츠.

그 명망 높은 자이트리츠 전쟁관 출신의 두 사람이 생뢰르반 군의 편성과 훈련을 담당하기로 했다.

더불어 이웃인 드 몽파르지에 공작의 서부군과도 합동 훈련이 예정되어 있다.

자이트리츠 출신의 두 사람과, 무언가 깨달은 앙비토 드 몽파르지에 공작의 협력이라면 사령관이 바뀐 후 흔들리고 있던 서부군도 개선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합동 훈련 하니··· 우리 파견군 역시 작은 규모이지만 연합 기동훈련이 예정되어있다.

사실 이미 중대 단위의 협력 훈련은 천천히 진행하고 있었고, 마지막으로 병력이 집결하면, 그때 연대 단위 훈련을 일주일 동안 준비한 후, 북쪽으로 향할 예정이다.

일정이 빡빡하기는 하지만, 명확하게 날짜가 박혀있는 상황은 아니니까.

만약에 생뢰르반 전투 이전에, 서부군과 충분히 연합 훈련을 진행했다면 전투는 훨씬 수월하게 마무리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에 대해 너무 몰랐고, 심지어 불신까지도 끼어 있었으니까.

이번 파견군의 편성은, 그런 장기적인 포석의 첫 걸음이기도 하다.

그건 편성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름은 ‘엘랑키아 남부 출신 파견군’ 정도라고 해야 할까.

[트랑카벨 자작가]

제18 벨모제 보병 연대(1200)

제32 델레망드 정찰 반 연대(400)

프리스마라 반 연대(500)

[드 레뮤즈 백작가]

제1 보병 연대(2000)

혼성 기병 연대(1000)

[드 몽파르지에 공작가]

정찰 기병(300)

모두 해서 보병 3200명, 기병 2200명이다.

단촐한 구성이지만, 장기적으로 엘랑키아 남부를 책임질 방어 전략의 핵심이자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구성이다.

먼저 트랑카벨 영지군을 구성하는 제18 벨모제 보병 연대는 평범한 정규 연대이고, 프리스마라 반 연대 역시 생뢰르반에 파견가지 않은 경기병들 중 차출한 평범한 용병 부대이다.

하지만 새로 창설된 제32 델레망드 정찰 반 연대는, 새로 편성된 4개 중대의 정찰 기병과 용기병들로 이루어진 신생 부대이다.

이는 보병은 감축하고 기병 숫자를 늘리려는 트랑카벨 영지군의 기조를 상징하는 요소이다.

사실 그 전부터 기병 비율이 부족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워낙 터무니없이 강력했던 적을 상대하느라 과도하게 병력을 늘렸기 대문이기도 했고.

전란이 마무리되고 자연스럽게 엘랑키아 각지에서 혈통 좋은 군마와 승용마들을 수입할 수 있게 되면서 기병을 늘리고 있는 중이다.

현재는 아직 4개 중대로 이루어진 반 연대이지만, 향후 정규 연대로 확대 편제될 것이며 현재 파견군에 참여한 장병들이 그 기간 병력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드 레뮤즈 백작가의 ‘제1 보병 연대’는 영지군의 첫 정규 연대이다.

첫 정규 연대라고 숫자 1을 붙인다는 점에서 라몽 백작의 직진만 하는 성품이 강렬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말이다.

구성원들은 대부분 백작가의 거점인 레뮤즈 성과 그 주변 출신인 귀족들과 자유민들로, 이들 역시 향후 확장될 영지군의 핵심이 되리라 생각한다.

혼성 기병 연대는 임시 편제이며, 생뢰르반 군 사령부를 포함한 엘랑키아 남부의 복잡한 사정을 상징하는 듯한 부대이다.

우선 절반 가량은 드 레뮤즈 백작가의 가신들이다. 또 나머지의 절반은 동맹 가문이며 블랑독의 또 다른 백작가인 드 누아 백작가에서 파견한 기사들이다.

그리고 그 기병대의 나머지는 참 복잡한 구성을 가진다.

우선 드 상포리앙과 같은 생뢰르반 군의 일원인 주변 가문에서 보낸 기사들이 있다.

이들 가문이 제공한 주력은 훈련 중이기에, 파견군에는 소수의 기병만 참여한 것이다.

거기 또 매우 독특한 손님들이 있으니···.

다름아닌 라솔 동부, 드 누아 백작가의 영향권 지역의 영주들이 보낸 기사들이다.

물론 이들은 이론상 라솔 국왕의 신하들이니 용병으로 참여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특이한 케이스라고 하겠다.

마지막으로 드 몽파르지에 공작가에서 파견한 경기병인데··· 이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드 몽파르지에 공작가는 굳이 병력을 파견할 의무는 없었으나, ‘우정과 신뢰’의 표시로 일부 병력을 참전시키고 싶다 알려왔다고 한다.

당연히 서부군 소속 병력을 빼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앙비토 공작이 사재를 털어 편성한, 자기 가문의 병력이다.

그 지휘관은 지난 겨울에 카르카냑에서 있었다는 ‘간부 특성화 교육’에 참여하기도 한 인물이라 한다.

참 간부 특성화 교육을 생각하면··· 학기 도중에 한 번도 가보질 못해서 무척 미안한 생각이 든다. 일이 너무 바빴다고 밖에 할 말이 없어서 참.

아무튼 병력들의 출신지만 봐도 정신이 없어지는 복잡한 병력이다.

다만, 결코 대충 아무나 긁어 모은 짜깁기 병력은 아니다. 오히려 여러 가문들이 앞으로 키울 젊은 장교와 정예 병력을 파견했다고 봐야 한다.

이번 파견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알 수 없다. 아무래도 파견군이라는 특성상 주된 역할을 맡기는 어려울 테고, 예비대나 후방 점령 업무를 맡을 가능성도 높겠지.

하지만 이렇게 엘랑키아의 남에서 북으로 가로지르고, 또 나우데사나 그룬발트와 같은 타국 군대와 다투어 본 경험은 분명 향후 확장될 엘랑키아 남부 방어망의 피와 살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어찌보면 움직이는 거대한 사관학교라고 할 수도 있겠지. 예나 지금이나, 간부 후보생들과 그 교관으로 이루어진 교도대는 강한 전력이다.

또한 전력 뿐 아니라, 다른 가문의 동등한 입장인 동료들과 한솥밥을 먹으며 어깨를 나란히하고 싸운 경험은 미래의 동맹을 견고하게 하는 역할도 하겠지.

괜히 젊은 장교들을 우호국가에 파견해서 업무를 맡기는 게 아니라니까.

으음, 생각해보니 책임이 막중하네.

여러 가문들이 소중한 영지군의 미래를 맡겨 준 것인데, 험한 꼴을 보여주거나 심각한 피해라도 입으면 그건 그야말로 면목이 없을 테니까.

“드 몽파르지에 가문의 기병대가 도착했습니다, 콘도티에레!”

“아, 곧 나갈게.”

마침 병력 집결이 완료된 모양이다. 이제 일주일 간 기동훈련을 마치고 다시 북쪽으로 행군 시작이다.

엘랑키아 국왕 폐하의 막하에서 행동하게 되다니, 평생 용병으로 살면서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다.

###

이번 엘랑키아 왕실군은 국왕 다고베르 2세가 직접 이끄는 친정군이다.

이에 대해 대신들 사이에서는 적지 않은 반발이 있었다.

거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국왕이 직접 나설 만큼 대표성이 있는 전선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오히려 나우데사 연방의 귀족과 백성들에게 부정적인 신호가 될 수 있습니다’

즉, 국왕이 직접 이끄는 군대가 나우데사로 행군하는 것은 ‘엘랑키아가 나우데사를 완전히 정복하려 하는구나’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전란은 어디까지나 나우데사 내부의 내전이다. 연방 반대파의 배후에 그룬발트나 다른 나라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노골적이기는 하지만.

그런 만큼, 연방을 도와 질서를 회복한다는 엘랑키아의 입장 역시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애초에 굳이 왕실군을 파견할 필요가 있나에 대해서도 반대가 극심했을 정도니까.

‘이미 나우데사와의 국경 요새지대에는 북부군이 주둔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북부군은 숫자도 충분치 못했고, 아직 완전히 완성되지도 않은 요새를 짓는데 손을 보태고 있는 판이었기에, 굳이 왕실군이 출진하는 이유가 없진 않았다.

하지만 그걸 국왕이 직접 이끄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나우데사 사태를 진정시키는 것이 진정 현재 엘랑키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까, 폐하?’

모두가 합당한 지적이었다. 결국 국왕 다고베르 2세는 타협하는 수 밖에 없었다.

1. 나우데사 연방의 요청이 있기 전에 왕실군은 나우데사 영토로 진입하지 않는다.

2. 왕실군이 진입하더라도 국왕은 나우데사 영토로 들어가지 않고 후방에서 지휘한다.

라는 강력한 제한 사항에 대해 다고베르 2세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들에게는 의외의 반응이었으나, 국왕의 안전과 나우데사와의 외교가 모두 문제가 없으니 더 걱정하거나 반대할 일도 없었다.

그리고 오늘, 왕도 베르마유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숙영지에서 다고베르 2세는 굳이 자신이 출정해온 이유를 모두에게 밝힌다.

“행군 목표가··· 나우데사가 아니었습니까, 폐하?”

“그렇소이다. 우리가 향할 곳은 팔스부르 요새요.”

거기에서 멈추지 않을 수도 있겠고. 국왕이 굳이 뒷말을 하지 않았으나, 왕실군의 장교라면 누구나 그 숨은 뜻을 읽을 수 있었다.

엘랑키아의 군인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백전노장이자, 국왕이 누구보다 신뢰하는 왕실군의 원수인 프레니히 드 루블랭 백작이 어두운 목소리로 질문한다.

그 목소리에는 갑작스러운 명령 변경에 대한 걱정과, 그 속내를 측근인 자신에게조차 숨긴 국왕에 대한 섭섭함이 섞여 있었다.

“미안하오, 프레니히 백작. 하지만 이 일은 짐과 뮈르텔 재상 두 사람 밖에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소.”

“그러셨습니까···.”

짐작할 만한 요소가 없지는 않았다.

이번에 소집된 병력은 프레니히 백작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과잉 전력이었다.

나우데사 연방의 반군 토벌을 돕는게 주 목적인데, 엘랑키아의 정예 기사대가 이렇게나 많이 필요할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으니까.

뭐, 한동안 무뎌진 왕실군 기사들의 정강함을 재확인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없지는 않다 생각했지만.

또한 어느정도는 나우데사 측에서 제공해주는 보급품을 활용할 수 있을 텐데도 군수 물자를 넉넉하게 챙겼다.

어쩐지, 이런 쪽으로는 뮈르텔 재상이 깐깐하게 문제삼을 법한 일인데 이번에는 아무런 지적이 없다 싶었다.

하지만 그래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지는 않았다. 프레니히 백작은 다시 질문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