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394화 (394/556)

41-1. 출동, 생뢰르반 파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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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랑카벨 영지군으로서는 첫 북방 나들이이라고 해야 할까.

“아이고, 이거 반갑습니다. 명성 높으신 트랑카벨의 콘도티에레 각하를 이제서야 뵙게 되는군요! 아쥬흐 마님께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어이구, 저야말로 영광이지요. 사이크 다베르큘이라고 합니다.”

어린아이처럼 포동포동한 얼굴살을 가진 풍채 좋은 상인이 얼굴에 가득 웃음을 담고 고개를 굽실거린다.

뭔가 생긴 것이나 체형이나 소설에나 나올 법한 악덕 상인처럼 생겼지만, 아쥬흐의 소개에 따르자면 상당히 정직하고 스마트한 인물이라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난 전쟁 내내 트랑카벨 가문과의 신뢰를 지켜온 인물이었다.

그 대가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지난 전쟁에서 돈을 많이 벌어 현재는 엘랑키아 동부에서 손에 꼽히는 거부가 되었다고 한다.

물론 당장 필요한 군수품을 수배해 주어 트랑카벨 가문과의 거래에서 높은 이윤을 남겼던 것도 이유 중 하나이지만, 그가 돈을 크게 번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직 마르사코르 전투가 벌어지기 전, 블랑독 연맹군이 블랑독 북방 경계선 부근을 향해 움직이거나, 정찰하듯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물론 실제로 북진을 할 생각은 없고 성전군을 기만하기 위한 전략이었지만,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던 도시 타비뇽은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타비뇽은 성전군의 후방 보급 기지이며 집결지이기도 했으니 승세를 잡은 블랑독 군이 공격하리라 예상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뭐 그걸 노리고 기만 작전을 폈던 것이기도 하지만.

그때 사이크는, 블랑독 연맹군이 타비뇽을 공격하지 않으리라는 점에 베팅했다고 한다.

전재산을 털어 공황 상태에 빠져 도시를 탈출하려고 한 상인들이 내놓은 급매물들을 헐값에 사들였다.

도시에서 당장 소화되기 어려운, 식량을 제외한 각종 현물들은 물론이거니와···.

만약 도시의 주인이 바뀌면 당장 무용지물이 될 수 있는 각종 권리와 채권도 되는 대로 사들였다.

거기에는 도시의 안과 밖을 연결하는 도개교를 우선 사용할 수 있는 권리나 시장에 각종 점포를 개설할 수 있는 권리, 심지어 도시 수비대에 절인 고기를 공급하는 독점권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정확히 그의 예상대로, 마르사코르 전투를 끝으로 전쟁은 블랑독 내부에서 끝났고 외부로 확전되지는 않았다.

그가 대단한 판단력을 가졌다고밖에 할 수 없는 이유는, 블랑독 연맹군의 작전을 사전에 아쥬흐에게 들은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거야 나도 딱히 아쥬흐나 아실에게 전략을 알리지 않고 상황에 따라 지휘하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말이다.

아쥬흐에게 듣기로는, 블랑독 연맹군이 설령 타비뇽에 입성하더라도 무자비한 약탈을 자행하거나 도시를 파괴하지는 않을 것 같아서 그랬다고 한다.

음, 하긴 그건 확실히 그랬을 거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점은 트랑카벨 가문과 오래 신뢰 관계를 쌓아오면서 영지군의 특성도 알았으니 득을 본 경우라 하겠지.

결과적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타비뇽의 경제는 정상으로 돌아왔고, 사이크가 사들인 각종 물건과 권리의 가치가 폭등했음은 당연하다.

이렇게 트랑카벨에 우호적인 상인이 큰 돈을 벌었으니 우리로서는 다행이라고 하겠다.

“여기 주문하신 상품 목록이 있습니다. 한번 확인해보시고, 혹시라도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새 물건을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보급부대가 수령하도록 전달하겠습니다.”

아주 특별한 경우, 예를 들자면 갑자기 죽고 싶어졌다거나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군납 상인들은 대체로 정직하다.

왜냐하면 가뜩이나 행군와 야숙으로 지쳐있는 병사들에게 돌아갈 물건에 장난을 쳤다가는, 분노한 병사들에게 린치를 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분노한 병사들의 목표가 사기 친 상인이라면, 아마 도시 경비대도 굳이 위험을 감수하기 보다는 사기꾼을 제물로내주고 사태가 확대되지 않도록 관리만 하려 들겠지.

가끔은 상인과 지휘관이 결탁해서 병사들을 엿먹이는 경우도 있는데, 그 지휘관도 오래 살지는 못할 것이다. 여러가지 의미로 말이다.

지금 내가 이끄는 일부 트랑카벨 영지군은 창설 이후 처음으로 북쪽을 향해 행군하고 있었다.

병력은 보병과 기병을 합쳐서 약 2천 명 정도로, 영지군 전체 규모를 생각하면 소수의 파견대이다.

다만 우리는 공식적으로는 엘랑키아 남부의 방어를 책임지는 ‘생뢰르반 군’에서 왕실군을 지원하기 위해서 파견하는 좀 더 큰 규모인 파견대의 일부이다.

거리가 가장 가까운 트랑카벨 영지군이 먼저 도착했고, 이곳을 집결지로 하여 다른 지역에서 출발한 병력들도 곧 도착할 예정이다.

방금은 현지에서 조달하면 유리한 군수품들을 구매한 것이고. 우호적인 영토에서의 기동은 이게 좋다.

집결지까지는 모두 무거운 보급부대 없이 홀가분하게 이동할 수 있으니까 일정을 단축시킬 수 있다.

집결을 기다리는 동안은, 정말로 오랜만에 한가한 시간이다.

장병들은 순번제로 외출을 줘서 타비뇽 구경을 시켰고, 참모들은 여기저기서 수집된 정보들을 정리하고 물자들을 관리한다.

이번에는 일부러 유능한 부관 첼레스티나에게 휴식을 명했다.

한동안은 그녀의 도움이 없어야 겨울 동안 ‘간부 특성화 교육’으로 강화된 참모부의 역할을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항상 바쁜 시간을 보내온 첼레스티나는 노는 법을 잊었는지 힘들어하는 것 같았지만, 알아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아, 물론 친절하고 똑똑한 의무대 소속의 간호사들을 ‘길잡이’로 붙여주었다.

유능한 부관을 터무니없는 이유로 ‘장기간’ 잃어버릴 수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훌륭한 대화 상대와 엘랑키아의 전략에 대해 논의하는 중이다.

“지금 팔스부르 요새에 왕실군의 선봉이 도착했다고 해요. 지휘관은 콘도티에레 에트도 알고 계실 디타레 드 카울 경이라고 하고요.”

아쥬흐는 특유의 상인 네트워크를 통해 알려진 정보들을 정리해서 나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정보 자체는 특별히 비밀스러운 내용은 아니다. 오히려 왕실군의 외부 행보는 오히려 과시하는 의미도 있을 테니까.

다만 상인 네트워크의 놀라운 점은 놀라운 속도와 정확도이다. 아마 작정하고 전령을 보내지 않는 한, 이보다 빠른 정보 전달 수단은 없지 않을까 싶다.

그녀는 엘랑키아 내부의 블랑독 상단 업무를 처리한다며 따라온 그녀는 잠시 병영에 머물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일이 바쁘지는 않은지, 최근에는 주로 사령부에서 티타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도 마침 한가하니 고마운 일이고.

“그래서 요즘에는 완전 무장한 근위대의 기사들이 강변 순찰을 돌고 있다고 해요. 정례 순찰이기는 하지만, 평소에는 도시 경비대가 하던 역할이예요.”

“그건 누가 봐도 무력시위군요···.”

최근 랄렌 강을 지나는 상인들을 대상으로 한 가혹한 세관 검열로 시끄러웠던 만큼, 그 의미가 남다르겠지.

“팔스부르 요새와 메플렌 지방의 가치는 콘도티에레 에트가 보시기에는 어느 정도인가요?”

“...전략적으로 엄청난 곳입니다. 아마 이 지역을 빼앗긴 그룬발트 선제후는 아마 자다가도 생각이 나서 괴로울 테고요.”

“호오, 그 정도인가요?”

나는 대략적으로 설명한다.

나우데사와 그룬발트의 영토 사이를 불쑥 치고 들어간 형세의 메플렌 지방은 무궁무진한 전략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일단 지금 그렇듯 두 나라의 무역을 언제라도 방해할 수 있고, 강을 건너 그룬발트의 대평원 지역으로 진격할 수도 있는 길목이다.

일단 확실한 것은, 그룬발트가 나우데사에 대군을 보내거나 대량의 물자를 지원하는 것은 상당히 골치가 아파졌다는 것이다.

물론 육로나 해로를 통할 수야 있겠지만 가장 빠른 길을 놔두고 불필요하게 우회해야 하는 것이니까 효율의 문제이고.

만약에 엘랑키아 군이 진격해 보급선을 끊으면 나우데사 내부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나우데사에서는 이소브론 대공의 군대가 서둘러 북진하다가 비르케제 공작의 군대에게 크게 당했다고 해요.”

“저도 소문을 듣기는 했습니다. 출처에 따라 누가 이겼는지 말이 다르던데 결국 대공 측의 패배인가요?”

“가장 최신 정보에서는, 전투에 참여한 네 명의 연대장 중 한 명은 전사하고, 한 명은 직무태만을 이유로 연방 의회의 명령에 따라서 체포되었다고 해요.”

“...철저하게 깨졌나 보군요.”

제한된 정보로 타국에서 벌어진 전투의 승패를 유추할 때는 책임자인 고급 장교들이 전투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게 가장 믿을만 한 방법이다.

설령 졸전을 했어도 이겼다면 지휘관이 경질되는 경우는 잘 없으니까. 반대로 패배했다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고 말이다.

지휘관이 직무태만이라니, 전투 중에 사령부를 떠나 실종되기라도 한 건가.

실전 경험이 없는 인물을 갑자기 지휘관 자리에 앉혀놓으면 공황에 빠져 그런 경우가 간혹 있다. 본인에게도 병사들에게도 비극적인 일이다.

엘랑키아와 그룬발트라는 대국의 세력 싸움에 끼어 나우데사가 시달리는 모양새라 좀 안타까운 것도 있지만, 친 엘랑키아 파인 이소브론 대공이 패했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비르케제 공작은 나우데사에서 유일하게 머리가 좀 돌아가는 군인입니다.’

인물 평가에 박한 루트비히가 했던 말이다. 슈토르히는 북방 전쟁 동안 나우데사에게 고용되어 엘랑키아를 상대로 방어전을 했었으니까, 중간에 만날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 ‘유일하게 머리가 좀 돌아가는 군인’이 하필이면 상대 편이라는 건 애석한 일이고.

“하지만, 나우데사 내전이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겁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죠?”

“민병대 중심의 나우데사 군은 야전에서는 별로 좋은 군대가 아니지만, 방어수단이 갖춰지면 맹렬하게 싸운다고 합니다.”

“그런 경우도 있나요.”

“오죽하면 슈토르히 녀석들이 ‘벽 바깥에서는 순한 양, 벽 안쪽에서는 사자’라고 했으니까요. 엘랑키아를 상대로 계속 지면서도 몇 년 동안이나 괴롭혔으니까요.”

“호오···.”

갑자기 아쥬흐의 얼굴에 장난스러운 표정이 어린다.

“...하지만 우리 트랑카벨의 콘도티에레 에트는 그 엘랑키아를 상대로 완전히 승리하셨었으니 걱정이 없겠네요?”

“하하··· 다행히 샹다메리에서는 왕실군 주력이 빠져 있었으니까요.”

“어머나··· 그렇게나 강한가요, 엘랑키아 왕실군은?”

“그 자신만만한 루트비히가 절대로 평지에서는 안 싸우겠다고 결심했을 정도니까··· 그렇겠죠?”

“세상에···.”

사실 샹다메리의 마지막 순간에 상대했던 기병 연대 정도만 해도 통상적인 보병 연대가 상대하기에는 버거운 수준이다.

부상 입고 포로로 잡혔던 그 지휘관이 분명 근위 기병대장이었지. 그 정도 수준의 연대가 하나 정도 더 있었다면 훨씬 까다로웠을 것이다.

“그런 점들을 생각해 보면, 엘랑키아 국왕 폐하의 생각도 조심스럽게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흠··· 어떤?”

“예, 아마도 폐하께서는 나우데사로 다시 돌아가실 생각이 없을 것 같습니다. 지난 전쟁에서 고생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흠··· 그러다 이소브론 대공이 패하기라도 하면 나우데사 전체가 그룬발트에게 넘어가지 않을까요?”

“하지만 나우데사 인들은 방어라면 이골이 난 군대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서로 방어만 잘하는 군대로 싸운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 승패가 쉽게 나진 않겠네요?”

“맞습니다. 그러니 나우데사 내전은 이겨도 져도 단기간에 승패가 갈리지는 않는다는 계산이죠.”

게다가 어쨌든 나우데사의 주류인 연방 의회는 이소브론 대공의 손안에 있다. 연방의 일곱 도시 중 다섯 도시가 대공을 지지하고 있고 말이다.

비르케제 공작이 야전에서 몇 번 승리한다 하더라도, 결국 그 다섯 도시의 성벽을 모두 넘을 수 있을까?

나는 쉽지 않다고 보았다.

그리고 개활지에서 상대가 없을 정도로 막강한 기병 전력을 가진 엘랑키아가 굳이 나우데사의 좁아 터진 분지 지형으로 들어갈 이유도 없지.

“그럼 설마··· 폐하께서는 처음부터 나우데사를 지원할 생각이 아니셨다는 걸까요?”

“어느 정도는 하시겠지 싶어요. 병력이든 자금이든. 하지만 주력은···.”

나는 마침 펼쳐져 있는 엘랑키아 지도의 북동쪽 귀퉁이를 짚었다.

“메플렌의 팔스부르 공작령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북쪽으로 행군하면 어느 순간 갑자기 명령이 내려오지 않을까요?”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이건 아쥬흐와의 흥미본위 대화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진지한 작전회의라면 사령관의 진의를 공개적으로 추측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는 일이고.

다만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국왕의 판단에는 나도 동의하기도 하고 말이다.

엘랑키아와 그룬발트 국경지대의 대평원은 기병 중심의 엘랑키아 군이 싸우기에는 최적의 지형이고, 나우데사에 들어가지 않고도 나우데사 반군을 지원하는 그룬발트의 의도를 막을 수 있다.

아니 엘랑키아 대군이 자기 목에 칼을 들이 밀고 있는데, 거기서 병력을 빼서 나우데사를 지원한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하잖아.

···성전을 겪은 입장에서야 다고베르 2세 국왕을 마냥 칭찬만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즉위하고 대부분의 전쟁을 승리해온 건 그냥 운 때문만은 아닌 모양이다.

“아, 그러고보니 첩보가 하나 더 있어요. 비르케제 공작이 고용한 용병대에 대해서예요. 콘도티에레 에트는 그로이엔펠트라는 용병대를 아시죠?”

“어···.”

언젠가 아쥬흐와의 대화에서도 언급했던 것 같은데. 자세히는 아니었지만··· 슈토르히 연대가 참전했던 처절한 퇴각전에서 집요한 적군이었으니까.

“그 연대 중 하나가 비르케제 공작을 돕고 있다고 해요.”

“...정예 연대 하나가 전쟁의 승패를 바꿀 순 없겠지만 이소브론 대공과 그 부하들이 애를 좀 먹겠네요.”

나도 마주치기는 싫은 부대인데··· 게다가 현 단장이 슈토르히 연대를 무척 싫어한다는 풍문도 있었고···.

부디 풍문은 풍문으로 끝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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