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3. 나우데사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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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해서 나서지 마! 주변의 동료들과 보조를 맞춰라!”
“예엡!”
일시적으로 밀리던 전선을 거꾸로 몰아붙이는 상황이 되자, 과도하게 신을 내는 부하들을 말린다.
돌격해온 적의 예봉을 끊어내고 전선을 복구했다. 슬금슬금 물러서던 주변 총병들까지 악에 받혀 달려드니 기세를 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적이 갑작스러운 공격에 나서느라 대열이 어그러지고 병력 밀도가 낮아져서 생긴 일시적 현상이다.
“대열을 회복해! 총병들에게 대열을 맡기고 호위병들은 뒤로 빠진다!”
“알겠습니다!”
“줄 맞춰! 줄 맞춰!”
“후열은 재장전한다아!”
이대로 여세를 몰아 돌파하고, 적진이 분단되면 승리할 수 있을까?
야로스는 어렵다고 봤다.
그 자신은 그로이엔펠트와 직접 싸워보는 게 이번이 처음이지만, 슈토르히가 그랬듯 숙련병 조직은 장교의 통제가 없는 상황에서도 질서를 유지한다.
게다가 마치 하나의 생물이기라도 한 것처럼, 어느정도 진형을 바꾸거나 돌격을 하는 등 유리한 전황을 찾아 움직이기도 한다.
방금 반격에서 돌격을 이끌던 장교들을 몇 명 죽인 것은 확인했지만 그 혼란이 크게 확산될 것 같지는 않았다.
자칫 기세만 믿고 돌격한다? 지금 당장은 적 대열을 일부 무너뜨리고 반대편까지 돌격해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뒷심을 받쳐줄 예비대도, 그걸 지휘할 지휘관도 없다.
최악의 경우··· 아니 그로이엔펠트의 숙련도를 생각하면 거의 확실하게 적진 한가운데 고립되어 쥐 잡듯 일방적으로 학살당할 가능성이 높다.
처음부터 덫은 아니었지만 일이 터진 김에 덫으로 만들 거다··· 슈토르히라면 그랬을 테니까.
“후우···.”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방금 자신도 피가 끓어 뛰쳐나갈 뻔 한 것이 사실이니까. 그러기 전에 정신을 차려서 다행이다.
눈 앞을 보니, 아직 질서를 완전히 되찾지는 못했지만 총병 대열이 다시 복구되고 있었다.
자신과 함께 돌격했던 주테르베이크의 호위병들은 무사히 전투에서 벗어나 헐떡대면서도 연대장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대부분이겠지만, 생애 첫 성공적 돌격을 경험한 그들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분명하게도, 그 돌격을 이끌었던 연대장에 대해 무한한 신뢰와 기대감을 가진 눈빛이다.
정작 야로스 입장에서는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왜냐하면 정말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방금도 당장 급한 구멍이나 막자라는 생각이었고.
“다친 사람은? 인원은 이상 없나?”
“옛! 모두 무사합니다! 한 명이 팔을 다쳤지만 움직이는 데 이상 없습니다.”
팔에 하얀 붕대를 감은 호위병이 과장되게 팔을 빙빙 돌리며 무사함을 어필한다.
사망자나 큰 부상자가 없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기습적인 돌격이기도 했지만 호위병들 기본 기량이 어느정도는 된다는 이야기겠지.
“연대장님! 무사하십니까?”
“나는 괜찮다, 마르턴. 전선에 특별한 일은?”
“전선에 큰 변화는 없습니다! 아, 연대장님께서 복구하신 방어선을 빼면 말입니다.”
“그거 다행이네.”
전투의 흥분으로 널뛰기하는 머리속을 진정시키며, 아무 생각 없이 아까 쏴버린 권총을 장전하고 있으니 부관 마르턴이 달려와 보고한다.
자신이 장전하겠다는 듯 권총을 받아가려 했으나 거절하자, 내가 바닥에 꽂아놓은 검을 뽑아 닦기 시작한다.
피가 덩어리지거나 굳으면 무뎌지니 고마운 일이지만, 무기 손질을 다른 사람이 해주니 어쩐지 어색하다.
생각해보니, 백병전에서 빠져나온 시점에서 곧바로 연대 지휘 상황부터 물었어야 했다. 역시 벼락치기 연대장이라 엉망진창이란 자괴감이 든다.
승리감에 취해있을 수는 없다. 방금 그가 해결한 것은 연대 전체로 보면 아주 작은 문제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가 지금이라도 터질 수 있으니까.
그는 천 명 이상을 지휘하는 연대장이니까 말이다.
만약에라도··· 잘못해서 병력이 천 명 아래쪽으로 떨어지면 어떡하나 하는 터무니없는 불안함이 엄습해온다.
어떻게든 연대를 잘 간수해서 무사히 고향으로 돌려보낸다고 마음 먹지 않았던가. 그 후에는 안락해서 주테르베이크 주변의 농장에서 은퇴생활을 한댔던가.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말도 안되는 생각을 머리속에서 돌렸더니 차츰 냉정해진다.
“연대장님, 여기 군마입니다.”
“고맙다.”
전황을 살피기 위해 최전선에서 살짝 물러나, 언덕 부근에서 다시 말에 오른다. 이쪽이 고지대라서 시야가 좀 더 좋다.
이제보니 호위병들과 부관 마르턴, 다른 연대 장교들이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출전 초기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특히 도시 유력자들로 이루어진 참모 장교들은 물론 적대하진 않았지만 어딘가 불안해하는 분위기가 없지 않았는데.
지금은 다소 과장을 담아 말하자면 사랑에 빠진 처녀총각들 같다고나 할까.
하긴 슈토르히 시절, 자신과 동료들이 콘도티에레와 선임 중대장들에게 신앙과도 같은 신뢰를 가지게 됐던 것은 ‘승리’와 ‘생존’을 보여줬기 때문이었지.
가능하면 이들의 환상을 깨기 전에 전투가 끝나야 할 텐데···.
“어?”
그런 고민을 하던 야로스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마르턴, 우리 산 것 같다.”
“예? 연대장님?”
“아무래도 오늘의 나는 행운아인 모양이군!”
야로스는 손가락을 들어 언덕 너머를 가리킨다.
“지원군이다! 지원군이 온다!”
“지원군? 베즈포르트 연대인가?”
“지원군이다! 지원군이다!”
아군 전위를 구성하는 네개의 연대 중 마지막 연대, 베즈포르트 연대가 부지런히 길을 따라 접근해오고 있었다.
“지원군이 온다! 조금만 버텨라!”
“지원군이 곧 도착한다!”
연대장은 명령도 내리지 않았는데, 모두가 충실한 전달자 역할을 하고 있다. 어차피 그럴 생각이긴 했지만.
어차피 멀어야 한 시간 정도의 거리였고, 그게 눈에 들어왔을 뿐이니 사실 대단한 일은 아니다.
게다가 눈으로 보인다 뿐이지 여전히 거리는 꽤 멀다. 서둘러 달려온다고 해도 적어도 20분은 걸리겠지.
하지만 이 ‘확정 20분’이라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아군에게는 이를 악물고 20분만 버티면 살 길이 열린다는 것이겠고···.
적군에게는 지금부터 적진을 압도해 무너뜨리기 시작해도 20분 내로 끝장 낼 수는 없다, 라는 생각이 드는 일이겠지.
이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로이엔펠트의 적장은 통밥을 굴려야 한다.
20분 내로 우리 연대를 섬멸하는 기적같은 일이 있다 해도, 곧바로 새로운 연대와 싸워야 한다.
지원 오는 베즈포르트 연대가 서둘러 오느라 지쳤다고는 해도, 적은 쿤스타그 연대로부터 합산하면 무려 3연전이다.
아무리 일당백의 정예병력이라고 해도 이건 좀 버거울 걸?
뭔가 내세울 것이라고는 숫자밖에 없는 약졸들의 우두머리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서 부하들에게는 조금 미안하다. 이렇게 잘 싸워주고 있는데.
하지만 애초에 ‘평화로운 내전’에 그로이엔펠트 같은 사기 연대를 꺼내온 적이 문제다.
“지원군이 온다! 조금만 버텨!”
“베즈포르트의 아군이 오고 있다고!”
“우리는 행운아 야로스 대장의 연대다! 힘내자!”
방어선을 따라 지원군의 도착을 알리는 외침이 이어진다. 간혹 잡음도 섞여있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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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나우데사 연방군의 첫 전투이자, 연대장으로서 야로스 발렌켄드의 첫 전투는 승리라고 하기는 어려운 애매한 승리로 끝났다.
전투가 끝나고 확인한 내막은 이랬다.
아군의 총 4개 연대가 띄엄 띄엄 행군하고 있었고, 적은 최선두 연대인 그람펀 연대와 두번째 연대인 쿤스타그 연대를 동시에 공격했다.
그람펀 연대는 정면에서 반군 민병대 주력으로, 그리고 쿤스타그 연대는 측면에서 그 망할 놈의 그로이엔펠트 연대로.
제기랄, 그로이엔펠트 연대만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나와 우리 주테르베이크 연대가 그렇게나 고생을 하며 막아냈는데도 말이다.
쿤스타그와 우리 연대, 거기에 최후미의 베즈포르트 연대까지 그로이엔펠트에 묶여 있는 동안, 최선두의 그람펀 연대는 작살이 나고 있었다.
최선두를 습격한 적군은 약 2개 연대 규모로, 반군의 수괴인 비르케제 공작이 직접 지휘하고 있었다고 한다.
한편 그람펀 연대장은 모범적으로 싸웠다. 압도적으로 수적 우세인 적을 상대로 똘똘 뭉쳐 방어선을 만들고 고슴도치처럼 사방으로 창날을 세웠다.
‘조금만 버티면 쿤스타그가 지원 온다!’
그렇게 생각하며 두 배의 적을 상대로 의연하게 대처했다.
문제는 그람펀 연대장은 나만큼 운이 좋지 못했다는 것이겠다.
일단 적의 수가 두 배나 됐고.
비탈이나 좁은 진입로 같은 아주 약간의 지형적 우위도 없이 완벽한 개활지에서 싸웟어야 했으며.
조금만 버티면 반드시 올 것이라 생각했던 후속 연대의 지원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만약 그럴 줄 알았다면 그 자리에서 적을 맞서 싸우지는 않았겠지.
다시 말하지만 그람펀 연대는 애초의 계획대로 행동했다. 적을 발견하자마자 전령을 보냈고, 수세로 전환해 시간을 끌었으며, 꽤 잘 싸우기까지 했으니까.
이 따위 일이 발생한 것은 다름아닌 쿤스타그 연대, 아니 그 지휘관 하타스 연대장의 책임이 크다.
대체 쿤스타그 연대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나는 언덕길을 지나 직접 눈으로 전장을 보고 돌아온 정찰대의 보고를 듣기 전까지, 대체 어느 연대가 교전하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쿤스타그 연대가 여유가 있을 때 전령을 보내지 못한 것이다. 아마 그람펀 연대 역시 그랬겠지.
만약 지원 갈 처지가 되지 못한다는 전령을 받기만 했어도··· 그람펀 연대의 운명은 조금 바뀌지 않았을까.
결과적으로, 그람펀 연대는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중과부적으로 포위당한데다가, 압도적인 화력 열세에 시달린 그들은 측면 대열이 무너졌고, 침투해온 적에 의해 연대장까지 전사했다.
평지에서 두 배에 이르는 적에게 포위당한 상황에서 대열이 무너졌다···.
그 최후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뻔하다. 후방이 노출당했다는 것을 안 전방 부대들이 무질서하게 퇴각하고, 추격대가 끈질기게 따라잡혔다.
결국 중대장 중 한 명이 규합하여 퇴각할 수 있었던 전력은 세 명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리고 무든 문제의 원흉이 된 쿤스타그 연대는··· 다행히 우리 연대가 제때 지원을 간 덕분에 전멸에 이르는 것은 피했다.
하지만 사상자가 막대했고 연대로서의 전투력은 이제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몇몇 중대에 몰린 사상자 수가 끔찍할 정도이다. 완전히 와해된 어떤 중대는 총원 180명 중 53명이 남았다고 한다.
나는 보고에서 그 숫자를 듣고 소름이 돋았다. 소위 말하는 명문 연대들이 ‘적을 괴롭히는’ 전형적인 방식이 그랬으니까.
1000명 정원 연대를 200명 정원의 중대 5개가 구성한다고 했을 때 총 200명의 피해를 입었다고 가정하자.
20퍼센트의 사상자는 막대한 피해이다. 다만 만약에 모든 중대가 균일하게 40명씩의 피해를 입었다고 다시 한 번 가정한다.
여전히 심대한 피해이기는 하나, 연대로서의 전투력은 유지할 수 있다. 병사들의 숙련도가 높고 사기가 왕성하다면, 그대로 문제없이 전투를 지속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200명의 피해를 2개 중대에 집중해서 입혔다고 가정한다면?
50퍼센트의 사상자가 발생하면 용병들의 속어로 ‘무덤 팔 사람도 없다’라고 표현한다. 말 그대로 물리적으로 빈 자리 채우기가 불가능하고, 사실상 궤멸이다.
그렇게 2개 중대가 전투 불능에 빠져버리면, 나머지 중대들의 상황은 더 나음에도 불구하고 연대로서의 전투력이 격감한다.
심지어 동료 중대들이 그런 꼴이 당하는 것을 본 중대들 역시 더 이상 전투에 집중하기는 힘들게 될 테니 말이다.
그로이엔펠트는 돌출된 중대 몇 개를 철저하게 난도질하면서 그 법칙이 사실임을 증명했다.
쿤스타그 연대는 살아남았음에도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 같은 분위기다.
이건 연대장의 책임이 크다. 북방 전쟁 방어전의 영웅? 역전의 노장? 뭐 하던 인간인지 몰라도 하타스 연대장은 머저리다.
적이 기습해온 직후 얼어서 아무것도 못하고 적의 공격을 허용해버렸다. 심지어 참모들이 뜯어 말리지 않았으면 도망쳤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정말 우리 연대가 도착하기 전에 전멸하지 않은 게 다행이다.
그리고 우리 주테르베이크 연대는··· 다행히 사상자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 실질적인 교전 시간은 20분 정도로 그다지 길지 않기 때문일지.
반대로 말하면 적도 얼마 죽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전과가 적은 것을 탓하기 보다 아군이 무사한 걸 기뻐해야 하는 게 옳다.
천운이다. 그리고 최후미를 지켰던 베즈포르트 연대 역시 교전 기회는 없었고.
물러서던 적, 그로이엔펠트 연대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빌어먹을 놈들, 노획물자는 물론 포로까지 싹싹 챙겨서 여유있게 도망가는 모습이라니.
마치 론델다이크 숲에서 끝까지 이쪽을 노려보며 물러서던 적의 눈이 생각난다. 지금은 물러나지만 덤빈다면 얼마든지 싸워주마, 라고 말하는 듯한.
그렇게 우리 첫 교전은 도저히 승리라고 할 수 없는 승리로 끝났다.
적을 격퇴했으니 승리라고?
두 시간도 안되는 교전에서 전군 4개 연대 중, 1개 연대는 사실상 전멸.
또 1개 연대도 당장 재편성이 필요한 상황에 몰렸고.
나머지 두 연대는 병력 면에서는 큰 피해가 없다 해도 사기가 바닥에 떨어졌는데?
이대로 진격을 계속 할 수 있나? 이걸 전술적 승리라고 할 수 있나?
모르겠다. 높은 분들 생각대로 따라야겠지만, 그래도 이건 회군해야 할 상황이 아닌가···.
그보다 이 벼락치기 민병대가 적군을 상대로 싸울 능력이 있는가부터 찬찬히 살펴봐야 하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