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392화 (392/556)

40-12. 나우데사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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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 전진!”

탁, 타탁, 딱!

“으아아아아!”

“와아아!”

따다다닥! 따닥!

따다닥! 터엉!

“커윽!”

“밀리지 마! 죽을 각오로 버텨!”

“밀어붙여라!”

총격전이 오가는 사이, 창병 대열이 서로 엮인다. 단단하면서도 탄력 있는 창대가 서로 부딪치며 요란한 소리가 난다.

창대와 창대, 혹은 창대와 쇠로 된 갑주가 부딪치는 소리는 때로는 북소리보다도 크게 울린다. 귀가 아플 정도의 소음 속에서 양쪽의 창병들이 뒤엉킨다.

“으아아아! 겁먹지 마!”

“버텨! 버텨라!”

“흐으윽!”

비명과 노호가 울리며 양측의 밀집 대열이 딱 달라붙는다. 여기저기서 피가 뿜어져 나오고 창을 놓치거나 쓰러지는 자들이 속출한다.

하지만 비슷한 길이의 장창이 엮이는 밀집 창병 끼리의 싸움에서는 사상자가 갑자기 많이 나오지는 않는다.

무리해서 접근해 정면의 상대를 공격한다 해도 자신도 동등하게 찔릴 수 있는 상황, 게다가 설령 상대를 쓰러뜨린다 해도 다른 적에게 자신이 찔릴 수 있다.

사람 키의 두배가 훨씬 넘는 장창을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몇 미터나 멀리 떨어진 상대의 약점을 정확히 노리는 게 애초부터 어렵고 말이다.

···라는 것이 상식이지만, 양쪽의 숙련도가 상당히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는 종종 이 상식이 무너지는 일이 발생한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로이엔펠트 연대, 그 중에서도 가장 높은 봉급을 받으며 최전선에 서는 베테랑들은 상대의 어지러운 창끝을 보고 기회를 노린다.

상대를 툭툭 건드리고, 위협을 가하며 상대의 반응을 본다. ‘이 정도면 할 만 하다’라고 생각을 했는지 그 동작이 점점 대담해진다.

“앗! 어엇!”

“찌, 찔렸어! 아악!”

굳이 상대를 쓰러뜨릴 필요도 없다. 아슬아슬한 위치에서 부상만 입힌다. 이마나 콧잔등, 뺨 같은 얼굴이나, 갑주로 보호받지 못하는 팔이나.

혹은 아예 앞으로 나온 손가락과 팔목을 노리기도 한다.

특히 이마는 작은 상처만 나도 피가 줄줄 흘러 둔한 통증에 치명상을 입은 줄 알고 공황상태에 빠지기 쉬우며, 손가락 통증 역시 일시적으로 창대를 놓치는 치명적인 실수를 유발한다.

베테랑 창병들은 바로 그 틈을 이용한다. 공포에 질려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서거나, 창대가 밑으로 처졌을 때 재빠르게 다가간다.

그렇게 한 명, 두 명이 죽거나 상처를 입어 당황하면 그 틈으로 다른 그로이엔펠트 창병들이 밀어 붙인다. 그렇게 주테르베이크 민병대의 대열이 ‘깎여’ 나가는 것이다.

물론 이 정도로 갑자기 대열이 무너지는 일은 없다.

그나마 이미 쿤스타그 연대를 상대하고 이동해오느라 팔 힘이 빠져있는 상태여서 창 끝도 무뎌진 상태, 갑작스럽게 결정적인 차이가 생기지도 않는다.

그래도 돌이킬 수 없는 ‘밀리는 분위기’가 생겨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힘내··· 힘내라···.”

연대장 야로스 발렌켄드는 손바닥에 땀이 나도록 주먹을 꽉 쥐고 중얼거린다. 누군가에게 하는 응원이 아닌, 오히려 자신을 지탱하기 위한 안간힘에 가까웠다.

물론 후방에서 지휘하는 연대장인 그와 이쪽으로 쇄도하고 있는 적군의 사이에는 든든한 주테르베이크 청년들이 쌓은 ‘인간의 벽’이 있다.

그럼에도, 연대 전체가 받고 있는 심대한 압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것이 천 명이 넘는 부하들의 목숨을 책임진 연대장의 입장, 지휘관의 시야라는 말인가.

이 압박감은 마치 거인 대장장이가 치켜든 거대한 망치 아래에 놓인 모루에 오른 느낌이다.

물론 야로스에게 전장이 낯선 것은 아니다.

그럭저럭 직업으로 전장을 떠돈 것이 5년 이상, 게다가 최전방에서 복무하는 경우가 많은 용병이니까 오히려 무수히 사선을 넘으며 익숙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하지만 그 전에는 일개 보병, 나중에 하급 장교로 승진했다고 해도 거대한 부대의 일원으로서였다.

혼자만 잘 하고 내 주변만 챙기면 되던 당시와 달리, 지금은 전선 전체가 받는 압박이 고스란히 느껴져 심장이 찌그러지는 느낌이다.

1개 연대인데도 이런 상황인데, 만 명이 넘는 대군의 사령관은 대체 어떤 심장으로 버티는 것일까.

격렬한 전투가 이어지고, 여기저기서 밀리는 전선이 나온다.

처음에는 특정 지역의 적이 강하고, 특정 지역의 아군이 약하기 때문인가··· 라고 생각했으나, 찬찬히 전선을 살펴보면 그게 아니었다.

막연히 창과 총을 들이대고 힘싸움만 하고 있다고 보이는 최전선이, 실제로는 조금이라도 우세를 점하기 위해 살아있는 생명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적은 일부러 전선에 불균형을 만들고, 송곳처럼 특정 지점을 찔러오고 있었다.

지휘관의 기량인지, 일선 장병들의 기량인지는 몰라도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야로스는 불이 난 지점에 소방수를 파견하는 심정으로 예비대를 파견한다. 다행히도 예비대가 파견되면 위험했던 전선이 조금이라도 안정된다.

하지만 그렇게 예비대를 조금씩 파견하다 보니, 어느새 후위에 배치된 보병 중대들이 바닥을 드러낸다.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불안한 모습으로 후위에서 대기하고 있는 기병 중대 뿐이다.

대열이 흔들리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지? 야로스의 머리속이 하얗게 변한다. 지금은 괜찮지만 불안하다.

타타타탕! 타타탕!

“자리를 지켜라! 주테르베이크를 지키는거다!”

“으아아아!”

“멈춰! 대열을 지켜라앗!”

타타타탕! 타타탕!

타탕! 타다당! 탕! 탕!

현재 전선은 꽉 물린 듯 돌아가고 있다. 다행히 적도 여유있는 예비 병력은 보이지 않는다.

이미 절반쯤 무너졌지만, 끈질기게 버티고 있는 쿤스타그 연대가 적의 일부를 물고 있다는 상황이 이렇게 고마울 줄은.

시간이 몇 분이나 지났을까? 지원오고 있는 연대는 어디쯤 왔을까? 이대로 방어선을 유지만 하면 될 것 같다.

적어도 시간만은 야로스의, 주테르베이크 연대의 편이었다.

하지만 생각에 부정이 탄 것일까, 그 순간 전선 한 가운데에 균열이 일어났다.

“으아악!”

“막아! 막으라고 이 자식들아!”

“크어억! 뭐야?”

갑자기 두터운 총병 대열이 쑤욱 밀려난다. 적에게 당한 건지, 기세에 밀려 넘어진 건지 아군 총병들이 나뒹군다.

그 사이로 적군 돌격대의 선두가 모습을 드러낸다. 총을 거꾸로 잡고서라도 막아내기 위해 악착같이 달라붙는 아군 총병들을 밀쳐내며 다가오는 적들.

저들은 임시로 따로 편성된 돌격대이다.

가지고 있는 무기나 복장이 제각각이고, 몇명은 그냥 총을 들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창병에서 몇 명, 총병에서 몇 명씩 차출해서 편성한 무리이다.

슈토르히는 크레시미르 중대장이 직접 이끄는 특수 편성 돌격대가 따로 있기에 쓰는 것을 보진 못했지만, 양측 전선이 맞물린 상태에서 가끔 기습적으로 등장하는 임시편성 부대이다.

예상하지 못한 사이 적이 너무 깊이 들어왔다! 이대로는 후열도 장전을 하지 못해 총병 대열에 희생이 누적되고 결국엔 뚫릴 것이다.

야로스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더 이상 보병 예비대는 없다.

기병을 보낼까? 주테르베이크의 기병들은 갑주가 부실한데다 총기 보유량도 많지 않다.

봉건 영지를 부여받은 군사 귀족이 아닌, 시가지에 사는 상인 계층이 중심인 도시가 가진 기병은 한계가 명확했다.

일시적인 충격 효과는 몰라도 지속적인 교전으로 보병을 몰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답은 하나 뿐.

그나마도 야로스에게는 자신있는 분야라 다행이다. 결심을 하자 곧바로 부관을 부르고 연대장의 군마에서 뛰어 내린다.

“마르턴!”

“예, 옛? 연대장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소년 부관이 당황한 채로 대답한다.

야로스는 이제부터 그에게 터무니없이 막중한 책무를 맡기려 한다. 비록 잠깐이지만.

“마르턴, 나는 잠시 지휘부를 비워야 한다. 여기서 전선을 살피다가, 혹시 아군 대열이 완전히 뚫린 곳이 있으면 기병 중대를 절반씩 보내라! 정 급하면 나에게 전령을 보내고!”

“제, 제가 말입니까? 저는 할···.”

“할 수 있다 없다가 아니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마르턴!”

“예, 예엣!”

···네 삼촌인 주테르베이크 시장이 연대장을 떠넘긴 덕에 팔자에도 없는 연대장을 하고 있는 나처럼 말이다.

“걱정 마라. 잠깐이다. 곧 돌아오마.”

“어디를 가십니까, 연대장님?”

“구멍을 막으러 간다. 호위병들! 모두 나와 함께 간다!”

“옛? 저희가 말입니까?”

“그래. 그 미늘창은 장식품인가? 설마 쓸 줄 모르는 건 아니겠지?”

“아닙니다, 연대장님!”

“좋아. 부탁한다, 마르턴!”

주테르베이크 연대의 호위병은 모두 16명. 대충 소대 병력쯤 된다. 차마 대놓고 말하지는 못하지만, 야로스가 생각하기에 자신의 깜냥에 딱 맞는 인원이다.

모두가 미늘창으로 무장하고 도시의 문장이 그려진 멋진 망토를 입은, 사실상 의장병에 가깝지만..

자신들이 전장에 나설 일은 없다 느꼈던 것인지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다.

하지만 연대장이 앞장서자 두말 없이 뒤따르기 시작한다.

“가자! 아군을 구하러!”

“알겠습니다!”

대부분 대상인이나 의원과 같은 도시 유력자들의 자제들이다.

···사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이소브론 대공의 호위병이라는 게 딱 이런 정도의 역할이었지 말이다.

부모들이 일부러 신경써서 비교적 안전한 위치에 배치한 부자집 도련님들이지만, 나름의 실력을 가진 건 확인했다.

게다가 이런 피가 끓어오르는 상황에서 구원자로 나선다는 상황에서 뒤로 빼는 놈들은 없다.

야로스는 예비 장창을 하나 집어든다. 오랜만에 들어본다.

이소브론 대공의 호위대가 장창을 들지는 않으니까. 그 후에 어정쩡한 중견 지휘관으로, 또 벼락치기 연대장으로 승진하면서 계속 들 일이 없었다.

하지만 몇 년 동안이나 마누라처럼 붙어 다녔던 친숙한 무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짧게 잡고 옆구리에 끼운다.

마치 돌격을 준비하는 창기병처럼.

그가 지금 하려는 일은 창기병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자! 으아아아아!”

“와아아아아!”

“야로스 대장님을 따르라!”

연대장과 호위병들로 이루어진 작은 부대가 무너지기 직전인 총병 대열로, 균열을 만들고 뚫고 나오려 안간힘을 쓰는 적의 선두를 향해 달린다.

“이야아아아!”

“가자아아!”

“주테르베이크를 위하여!”

갑자기 들리는 함성 소리에 이쪽을 바라본 적 보병 장교의 눈이 크게 뜨인다.

이제 슬슬 돌파했나 싶은 타이밍에, 장창을 겨드랑이 사이에 끼우고 돌진해오는 미친 놈이 나타났다 싶겠지.

심지어 그 미친 놈은 연대장의 화려한 어깨 띠와 형형색색의 깃털 머리 장식이 달린 투구로 무장했다.

그러고보니, 슈토르히의 콘도티에레와 중대장들은 절대로 화려한 장식을 하지 않았는데. 연대장이 저격당해봤자 좋을 게 없다고 했던가.

자신은 아무 생각 없이 잘도 이런 화려한 차림을 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뭐 시발 이제와서 어쩌라고!”

누구에게 하는지도 모를 욕을 기합처럼 내지르며, 야로스는 그대로 적진을 들이받았다.

“커어억!”

최전방의 장교가 본능적으로 미친 돌격을 피한 탓에, 평소와 전혀 다른 목적으로 사용된 창날이 그 뒤에 있던 용병을 찔렀다.

예리하지는 않지만 인간의 살 정도는 충분히 뚫어내는 창날에 목 울대가 완전히 뜯겨 나가고 입과 상처에서 동시에 핏덩이를 뿜어내며 뒤로 나자빠진다.

그 기세에 하늘로 치켜 올라가는 창대를 놓아 버리고, 곧바로 허리춤에서 새 무기를 꺼낸다.

“이 자식 뭐···.”

방금 옆으로 피한 적 장교를 바라본다. 그는 그제서야 검을 들어 찌르려고 한다.

타앙!

“끄윽!”

하지만 찌르기가 미처 궤도를 시작하기도 전에, 적의 흉갑이 터져나가듯 박살난다. 근거리에서 발사된 총탄의 힘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검을 놓치고 앞으로 안기듯 쓰러지는 장교의 시체를 밀쳐내며, 오른 손의 권총을 왼 손으로 옮겨 든다.

이번에는 쇠로 보강된 손잡이 쪽이 끝이 오도록, 총열 쪽을 잡는다. 방금 발사된 총구의 열기가 가죽 장갑을 통해 뜨겁게 느껴진다.

그리고 한 걸음 나아가며 빈 오른손으로는 허리에 찬 검을 뽑는다.

왼손에는 둔기 역할을 하는 거꾸로 든 권총, 오른손에는 주무기인 장검.

이게 야로스의 난전 스타일이다. 슈토르히를 제대하고 안 쓴지 한참 되긴 했지만.

‘그건 주디칼리의 비역쟁이들이나 쓸 법한 사도다!’

‘전쟁을 폼 잡으려고 하냐?’

라면서 ‘전통적인 전투법’을 찬양하던 슈토르히의 동료들이 놀리긴 했지만 이게 손에 맞는 걸 어떡하나.

생각해보면 무기에 관심이 많아서 전장에서 노획한 참 다양한 무기를 써 봤다. 도끼나 철퇴는 물론, 기병이나 쓸 법한 거대한 편곤이나 톱니 칼날을 가진 단검까지.

그러다 내린 결론은 뭐, 손에 맞는 게 최고라는 거였지.

“으랴아압!”

“죽어!”

“끄아악!”

“밀어 붙여라!”

그와 함께 돌입해온 주테르베이크 호위병들도 밥값을 하고 있었다. 이런 난전에 밀고 들어오는 상황이라니, 오랜만에 미늘창이 완벽하게 역할을 했다.

그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린 묵직한 창 끝이 철제 흉갑을 그대로 뚫어 버리기도 하고, 교전중인 아군의 머리 위에서 적 머리통을 부숴 버리기도 하고.

만약 동료들이 봤다면 후방의 도련님 부대 치고는 훌륭하다! 라고 했을까.

1분 내로 적을 몰아내고 지휘부로 돌아간다! 야로스는 그렇게 마음 먹고 적의 피로 젖은 땅을 성큼 내딛는다.

“야로스! 야로스!”

“우리는 야로스 부대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살아난 총병들이 함성을 지르며 뒤를 따른다. 전에 없던 충실감이 야로스, 연대장 야로스의 몸을 휘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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