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391화 (391/556)

40-11. 나우데사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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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서둘러라, 서둘러!”

“어깨를 나란히! 대열을 유지해!”

“첫 출전이다! 모두 잘 해 보자!”

야로스 발렌켄드가 지휘하는 주테르베이크 연대 소속의 중대들이 대열을 정돈하고 있었다.

차근차근 창병이 뼈대를 만들고 총병이 이를 보완하는 선형 대열이 만들어지고 있었지만, 야로스가 보기에는 답답할 정도로 느렸다.

어쩔 수 없었다. 사실상 연대 단위의 진형 훈련이나 기동 훈련은 겨우 2주, 벼락치기로 끝내는 수밖에 없었으니까.

게다가 지금은 약간이지만 비탈이 있다. 기준이 되는 하급 장교들의 위치가 왜곡되어 선을 긋기가 쉽지 않겠지.

하지만 여기서 화를 내거나 재촉한다고 상황이 나아지진 않으리라. 오히려 마음만 급한 나머지 허둥대다가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다.

그래서 야로스는 아군 대신 적을 살피기로 했다. 부관 마르턴이 망원경을 내밀었지만 지금은 맨 눈으로 봐도 충분하다.

매우 짜증나게도, 적은 후위 부대 일부만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다. 교전 중, 측면에 새로운 적이 등장한 상황에서 매우 여유롭게도 말이다.

‘조금만 기다려라, 이거 마저 끝내고 상대해주마.’

적은 마치 이렇게 온 몸으로 말해오고 있는 것 같다.

“빌어먹을 자식들.”

자신도 모르게 욕이 나온다. 답답하고 분하지만, 욕설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에 비참하다.

속도를 높여 빠르게 거리를 줄이면 적도 당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결론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다.

오히려 적은 일부러 약점을 보여주고 있는 건 아닐까? 준비 안된 상태로, 전투 대형을 전개하는 대신 달려간다면 오히려 낚이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까지 드는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야로스의 연대가 마음을 먹으면 속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는 있느냐?

이 또한 부정적이다. 아직 좌우로 긴 전투 대형을 전개조차 못했고, 3문 뿐인 포병도 이제 자리를 찾아 방렬중이니까.

숙련도가 부족하면 기회를 잡아도 기습조차 할 수 없구나··· 라는 무력감이 뼈저리게 느껴진다.

여기서 무리하게 전진시켰다가는, 적진에 도달할 무렵에는 대열이 산산히 흐트러져서 붕괴 직전 단계였겠지.

단단한 사격진을 짜고 기다리던 그로이엔펠트에게 그 상태로 접근했다가는 기습은 커녕 간단히 격퇴되고 말리라.

야로스는 마음으 굳게 먹었다.

가지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대신,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수밖에.

론델다이크 숲 부근 늪지대에서 거두었던 작은 승리 때처럼, 부대 질서를 유지한 상태에서 첫 일제사격에 성공해야 한다.

그래야 첫 접전에서라도 대등한 싸움을 할 수 있겠지.

슈토르히 시절,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민병대가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순식간에 붕괴되는지 많이 보지 않았던가.

대개의 경우, 사격 타이밍을 놓치거나 꼬이는 바람에, 모처럼 준비한 첫 일제사격이 낭비되곤 했다.

그 유일한 기회를 놓치면··· 첼레스티나 중대장이 지휘하는 일제사격은 정말 무시무시했다. 내가 그걸 맞는 게 아니라 그 일원임을 하늘에 감사하게 할 정도로.

“마르턴, 후속하는 연대에는 재촉하는 전령을 보냈나?”

“예, 연대장님! 이미 적과 교전 중이니 최대한 서둘러 달라는 내용으로 보냈습니다.”

“그래···.”

연대간의 거리는 대략 1시간 정도. 아무리 서두른다 해도 최소 40분은 걸리겠지.

좋아, 그 시간 동안만 버티는 것을 목표로 하자.

시간이 흐르면 지금 엉망진창인 쿤스타그 연대도 압박에서 벗어나 최소한의 질서는 되찾을 것이다.

거기에 후속 연대가 도착하면, 적 그로이엔펠트 연대를 상대로 2.5개 연대가 협공하는 구도가 만들어진다.

지금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느껴졌다.

“진형 변환이 완료되었습니다!”

“좋아, 전 연대 전진!”

“전지인!”

대열을 갖춘 주테르베이크 연대가 슬금슬금 전진을 시작한다.

훈련 받은대로 천천히 반 걸음씩 나아간다. 지금 대열을 유지하면서 전진할 수 있는 최대 속도다.

쿤스타그 연대가 어쩌다가 저런 꼴이 났는지는 모른다. 다만, 적이 모습을 드러내고 제대로 대열을 갖추지 못한 상태로 측면을 타격당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행군 대열을 제대로 풀지도 못한 상태에서 공격당했으니 저런 꼴이 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숲과는 거리가 있으니 적을 발견한 이후 대응해도 문자 그대로 기습은 아니었을 텐데··· 설마 적이 대열도 갖추지 않고 돌진해왔다는 건가.

설마 역전의 노장인 하타스 판브레이 연대장이 초전에 부상을 입었다거나···. 그건 정말 최악의 상황이겠다.

어쨌거나, 그렇기에 더욱 주테르베이크 연대는 고지식할 정도로 진형에 집착해야 한다. 가장 모범적이고도 효율적인 창병과 총병의 조합으로.

대열을 갖춘 주테르베이크 연대가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적의 주력이 반응하기 시작한다.

무너져가는 쿤스타그 연대를 일부 병력에게 맡기고, 나머지는 전선에서 물러나 이쪽을 향해 새롭게 대열을 짜기 시작한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매끄러운 진형 전환이다.

무너져가는 상대를 압박하기 위해 각개로 진격하던 소규모 부대들이 어느새 하나로 합치더니 새로운 진형을 만들어낸다.

슈토르히도 밖에서 보면 저랬겠지··· 이제와서 그런 생각을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냐마는.

아까 느꼈던 짜증의 원인, 언제라도 대열을 전환해 새로운 적을 상대해 주겠다는 자신감이 실력에 근거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고 나자 더더욱 짜증이 난다.

아니 이쪽도 실력이 있어야 적의 실력도 인정하고 도전도 받아주지, 당장 야로스 본인부터가 답답해 미치겠는데···.

그로이엔펠트는 초대형 명문 용병단으로, 상시 운영되는 연대 수가 대여섯개에 이른다고 한다.

고용하려는 고용주의 목적과 비용에 맞춰 적절한 구성, 그리고 비용의 연대를 파견한다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최악의 경우 2개 이상의 연대가 나우데사에 파견되었을 경우도 생각해야 할 수도 있다.

과거에 슈토르히 연대 내부에서도 ‘우리는 왜 그로이엔펠트처럼 확장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었다.

콘도티에레나, 당시 신처럼 보이던 선임 중대장들이 별 관심이 없어 보여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었지만.

아··· 그러고보니 여기 상당히 불만을 가졌던 듯한 선임 중대장이 있었다.

이름이 뭐였더라, 결국에는 콘도티에레가 부대를 자주 비우게 되면서 자기도 슈토르히를 떠나 버렸던 것 같은데.

뭐,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결코 선임 중대장들 수준의 안목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당시 슈토르히의 중대장급들은 하나 하나가 독립된 연대를 이끌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출중한 인물이었다 생각한다.

“연대장님, 수석 포술장이 포격 준비가 완료되었다고 합니다!”

“좋아, 판단은 포대에 맡긴다. 포격 개시!”

“옛!”

퍼펑! 펑!

잠시 후 아군 최초로 포성이 울린다. 거의 동시에 올리는 두 발과, 잠시 후의 한 발.

구경에 따라서 서로 다른 제원에 맞춰 사격하니, 첫 포격이 떨어지는 지점을 관측하기 위해서이다.

쿠쿵···.

“아아··· 아쉽습니다.”

부관 마르턴이 탄식을 내뱉는다. 두 발은 이쪽으로 향하는 적의 머리를 넘어가고, 하나는 그 앞의 풀밭에 묻혀 버렸다.

야로스 역시 아쉽다고 느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지금 가장 아쉽고 죽을 정도로 긴장한 것은 다름 아닌 포술장이겠지.

그걸 화를 내거나 닥달해봤자 초조한 나머지 실수나 할 것이다.

‘장교는 때로는 지켜보는 것도 중요하다.’

누가 한 말이었더라. 콘도티에레였나, 모리츠 중대장이었나. 아무튼 초급 장교 시절에 그런 교육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어쩔 수 없다. 저들은 실탄 사격이라고는 이번이 겨우 두 번째다. 오히려 훈련 중에 한 발이라도 쏴 보았다는 게 다행이라고나 할까.

그런 초보들에게 정확한 조준을 기대할 수 없으니, 혹시라도 아군에게 맞을까 두려워 적의 밀도가 낮은 후방을 노릴 수밖에 없었다.

만약 첼레스티나나 루트비히 중대장의 통제를 받는 포대였다면··· 전투에 참여중인 적 중대를 비스듬한 측면에서 노려 끔찍한 피해를 냈을 것이다.

그래도 전혀 엉뚱한 데로 날아가지 않았다는 것만 해도 포술장이 전혀 능력 없는 인물은 아니라는 증거가 될 것이다.

뻐벙! 펑!

재차 아군의 포격이 이어졌다.

쿵, 쿠웅!

“오오오오!”

“우와아아아아아!”

“우오오오오오!”

초조하게 적진을 바라보던 병사들이 함성을 지른다.

아까보다 훨씬 표적에 가까운 곳에 떨어진 포탄 중, 하나가 적 창병 대열을 훑고 지나가는 데 성공했다.

흙먼지가 심하게 일어나고, 선두의 적병이 쓰러지는 게 똑똑하게 보였으며, 그 뒤로 가지런히 이어지던 창대가 우수수 쓰러진다.

“멋져! 멋지다구!”

“와아아아!”

“주테르베이크!”

병사들이 무기를 치켜들거나, 모자를 벗어 흔들면서 함성을 지른다. 그렇게까지 좋아할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사기가 오른 것은 다행이다.

포병들도 이 첫 명중으로 자신감을 얻는다면 좋겠다.

쾅! 퍼억! 퍽!

···라고 생각한 순간 적의 포탄이 떨어졌다.

“으흑, 흐아아악!”

“끄으으··· 내 다리··· 내 다리이···.”

“악! 아아악! 끄악!”

가지런히 전진하던 아군 대열을 적의 포탄이 관통하고 지나가자 포탄에 당한 병사들이 인형처럼 튕겨져 나온다.

허공으로 날아 오른 것은 부서진 갑옷과 무기 조각, 벗겨진 투구, 거기에 잘려나간 누군가의 왼팔이다.

“사, 살려줘어!”

“끄으으으으···.”

방금 전 까지의 열광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완전히 사라진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두려울 정도의 침묵.

그 공포 어린 침묵의 사이를 찢어 놓는 것은 포탄에 맞아 중상을 입은 병사들의 비명과 신음소리 뿐이다.

“멈추지 마! 빈 자리를 채우라고!”

“서약을 기억하라! 모두 정면을 봐라!”

“자, 하나 둘! 하나 둘!”

장교들조차 한 타이밍 늦게 반응한다. 눈에 띄게 위축된 병사들이 전진은 계속하지만, 아까와 같은 활기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으으··· 살려줘···.”

“아아아악! 어머니!”

적의 포격에 적중당했던 중대 뒤로는 시체와 중상자들이 널브러져 마치 발자국처럼 남는다.

그들을 몇 명 안 되는 의무병들이 수습해 후방의 군의관에게 끌고 간다.

안타깝게도 연대 전체에는 군의관이 둘 뿐이다. 그나마도 야로스가 강하게 주장해 병원을 떠나기 싫어하는 의사들을 설득해 데려온 것이다.

“이 사람은 죽었어··· 저기 저 병사에게 가자고.”

“예, 주인님···.”

의무병이라고 해봤자 병원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시종에 불과했다. 의무 교육을 받았을리 만무하다.

무릎 위쪽이 포탄에 맞아 잘려나가 시뻘건 피를 펌프처럼 뿜어내던 병사가 축 늘어지고, 다른 부상자를 찾아 움직인다.

펑! 퍼펑!

다시 아군의 포격이 발사된다. 이번에도 일부 명중탄이 있지만 아까와 같은 환호성은 없다.

‘이제 우리가 맞을 차례다’

선두에서 진격하는 주테르베이크 보병들의 머리속을 가득 채운 것은 이 생각이리라.

적 포대의 위치는 방만하게도 보병의 지원을 받기 힘든 위치에 있었다. 포술장에게 명령해 적 포대를 노리거나, 기병을 보내 기습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이제 간신히 포격다운 포격이 가능해진 초보 포병들에게 새로 표적을 잡으라고 하면 한참 걸리고 그나마도 명중탄을 기대할 순 없겠지.

200명 뿐인 기병을 보내는 것도 두려웠다. 그나마 있는 기동부대를 만약에라도 함정에 바져 잃게 된다면··· 그 후의 싸움은 크게 힘들어 질 테니까.

지금은 안타깝지만, 보병들이 버텨줘야 했다.

이제 이쪽으로 방향을 바꾼 적도 적극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전선을 이루는 병력 자체는 아군이 더 많다. 여전히 적의 상당수가 쿤스타그 연대에게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쿤스타그 연대는 붕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전다운 교전을 하는 병력은 전체의 절반밖에 되지 않으며, 전군의 삼 분의 일 정도는 도망치고 있거나, 전장에서 벗어나 어쩔줄 모르며 방황하고 있었다.

어차피 억지로 끌고 와 봤자, 적이 총이라도 한 발 쏘면 우르르 도망갈 모양새였다.

···이래서는 협공까지 하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 그저 적의 일부를 붙잡고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하는 수밖에.

“온다! 모두 정지!”

“대열을 정돈해! 사격준비!”

아군 장교들은 일을 잘 하고 있었다. 위축될 대로 위축된 보병들을 잘 데리고 가서, 우선 멈추고 적을 기다린다.

모두가 명령대로였다. 밀집 대형의 이동에서는 방어보다 공격이 훨씬 어렵다. 대열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질 수 있는 위험은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콰앙! 펑! 퍼펑!

“적이 다가올 때 까지 쏘지 마!”

타타탕!

“누가 쐈냐! 멍청이들아!”

신병들이 사격 통제가 안 돼서 낭비되는 것은 상정 범위 내였다. 다행히 대다수는 통제에 따르고 있었다.

전투의 공포에 벌벌 떨면서도, 방아쇠를 건드리지 않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예상대로, 아군이 멈췄는데도 적은 거침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쿤스타그 연대를 저 꼴을 만들었으니, 너희도 똑같은 꼴을 만들어 주겠다라고 몸으로 말하면서.

“발사아!”

“쏴라!”

타타타탕! 타탕!

타타타타타탕!

귀를 찢는 총성과 함께 뿌연 연기가 뿜어져 나와 양군 사이에 벽을 만든다. 창벽들이 일제히 적진을 향해 창끝을 모은다.

피하고 싶었던 전투가 드디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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