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6. 나우데사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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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데사 내전이 격화되고 있다.
분명 ‘내전’ 초반기는 이렇지 않았다. 나라가 두쪽이 난 내전이라기 보다는 두 세력의 분쟁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소브론 대공 지지자’들이 편성한 민병대와 의회군인 연방군의 일부가, ‘비르케제 공작 지지자’들의 민병대와 지엽적인 싸움을 벌였을 뿐이다.
정작 양측의 중심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이소브론 대공과 비르케제 공작 두 사람이 전면에 나서지도 않았기에 양측의 목표가 지리멸렬한 것도 있었고.
때문에 전장에 나서는 소수의 병력을 제외하면, 나머지 나우데사 주민들은 ‘중립’으로서 흥미진진하게 전투를 지켜볼 정도였다.
서로의 군대는 숫자도 많지 않았고, 민병대가 중심이니 전문성도 떨어졌다.
서로 기동하고 대치는 해도, 실제 전투는 잘 벌어지지도 않았고 벌어진다 해도 전개는 지지부진했다.
가장 큰 것은 양측이 모두 죽는 것도, 죽이는 것도 두려워 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무기를 들고 대치한다고 해도 같은 나우데사의 주민들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만약에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이소브론 대공이나 비르케제 공작이 확고한 목적성을 가지고 추종자들을 몰아 붙였다면 좀 달랐겠지만.
이런 판이니 총격전이 벌어지는 전쟁터에서 1킬로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항구 도시가 입은 피해는, 인부들이 전투를 구경하느라 물건 하역이 늦어지는 정도밖에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 날의 ‘치열한 총격전’은 서로 2천여 발의 총탄을 발사했지만 사망자가 한 명도 없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심지어 그날 저녁에는 물자를 조달하기 위한 양측의 보급 담당 장교들이 도시를 방문했다가 서로 마주치는 촌극까지 발생했다.
서로 놀라고 견제하기는 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애초에 왜 시작됐는지도 모를 내전, 이러다가 흐지부지 끝나겠지··· 라는 것이 대부분의 예상이었다.
특이한 것은 오히려 나우데사 외부, 특히 이권을 가진 각국들이 훨씬 예민하게 받아들였고 상황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외국에서 난리를 친다고 해도 나우데사 내부에서 큰 반응 없이 흐지부지 되었다면 내전 자체가 그대로 끝나버릴 가능성도 있었겠지만···.
론델다이크 숲 인근에서의 살육전 이후, 모든 게 바뀌었다.
숲 북쪽에서 숙영하던 대공파 부대는 갑자기 나타난 적의 도전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순식간에 궤멸했다.
확인 된 사망자의 숫자만 400여 명, 실종자 숫자는 200여 명으로 전군의 절반에 이르렀다.
지금까지의 전투는 한쪽이 붕괴되어 무너지면 패자가 퇴각하게 놔 두고, 승자는 추격하는 대신 거점을 점령하여 전술적 승리를 만끽하는 형태였다.
아무리 적대하는 사이라고 하더라도 동포를 죽이는 것을 꺼리는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어차피 어영부영 금방 끝날 내전, 괜한 원한을 만들어 두지 않으려는 생각이었을지도.
허나 이번 승자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퇴각하는 대공파 병사들은 추격당하여 무자비하게 학살당했던 것이다.
실종자들 중에는 공포에 질려 론델다이크 숲에서 길을 잃거나 탈영하여 고향으로 돌아간 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늪을 배회하다 빠져 죽거나 젖은 몸으로 얼어 죽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 직후, 오랜 칩거에서 벗어나 모습을 드러낸 비르케제 공작이 전국으로 문서를 보냈다.
문서의 내용은 ‘개인의 욕심을 위해 나우데사를 희생시킨 매국노 이소브론 대공을 징벌하기 위해 대국적 결단을 내렸다!’라는 것이었다.
또한 거기에는 이소브론 대공과 그 가족 및 측근들이 저지른 각종 배임 및 횡령 행위에 대한 근거 문서가 포함되어 있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저택에서 두문불출하며 소극적으로만 대응하던 이소브론 대공 역시 오랜만에 의회에 출석하여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타국의 힘을 빌려 국가를 전복시키려 드는 반역자 비르케제 공작을 토벌한다!’라는 내용이다.
나우데사 연방 의회는 격론 끝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소브론 대공을 사령관으로 하는 토벌군을 편성하기로 의결했다.
다시 말하면 비르케제 공작을 국가의 적으로 규정했다는 것이다.
이는 본래 이소브론 대공 지지파가 다수라는 점도 있었다. 그들 상당수에게 대공의 금화가 전달되고 있다는 소문도 있었고.
그러나 비르케제 공작 배후에 그룬발트 제국이 있다는 정황이 워낙 뚜렷하다는 것이 치명적인 이유였다.
심지어 최근 공작이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것은 직접 그룬발트에 다녀왔기 때문이라는 첩보도 퍼지고 있었으니까.
또한 삼 분의 일 정도의 의원들이 항의의 의미로 의회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다. 연방의 유력자인 의원들의 고향이란, 바로 자신의 기반 영지이다.
그들이 의회로 돌아오게 된다면 혼자의 몸은 아니리라.
분명 자신의 지지자들, 그것도 무장한 지지자들과 함께이겠지.
이제 연방 의회에서의 토론으로 사태가 진정될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졌다.
내전 아닌 내전을 관망하던 연방군 각 부대에는 집결령이 내려졌으며, 소집령을 가진 사자들이 도시와 마을로 달려갔다.
엘랑키아 왕국과의 전쟁이 끝나고 불과 3년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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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로스 발렌켄드는 초조하게 의회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 전, 흉흉한 민중에게 포위당해 간발의 차이로 빠져 나갔던 바로 그 자리였다.
하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되었다. 이소브론 대공은 ‘정말로’ 의회의 수호자가 되었던 것이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대공파 병사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상황이 그렇게나 변한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야로스는 관심 없었다. 그의 눈은 오로지 굳게 닫혀있는 의회의 문을 바라볼 뿐이다.
마침내 문이 열리고, 그가 기다리던 상대, 오란덴 샤도 비존테 남작이 나왔다. 그는 이소브론 대공의 조카로 야로스의 상관이기도 했다.
“남작님? 오란덴 남작님!”
“음? 오오, 야로스 발렌켄드 경인가? 론델다이크 전투에서의 용전분투에 대해서는 들었네.”
“예....”
기가 막히는 일이지만, 야로스와 주테르베이크 보병대는 ‘궤멸 직전의 아군을 구해낸 영웅’ 취급을 받고 있었다.
심지어 그 소문을 퍼뜨린 것이 울부짖으며 도망치던 도망병들이라는 점에서 반박할 기회도 없었다.
그들은 진심으로 주테르베이크 중대들이 자신을 구했다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으니까.
“그래, 무슨 일인가 야로스 경?”
“대공 전하께서 복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저는 언제 대공 호위대로 원복할 수 있겠습니까?”
“흐음, 론델다이크의 영웅인 자네의 요청은 뭐든 들어주고 싶네만, 자네는 달리 할 일이 있다네.”
“제가 할 일이요?”
“하하, 놀라지 말게나. 주테르베이크 출신 의원들이 새로 편성될 연대 지휘관으로 자네를 위촉하고 싶다고 하시자 뭔가?”
“네에? 저를 연대장을 시킨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정말 안좋은 방향의 놀라움이다. 아직 공식적으로 중대장도 한 적 없는데 갑자기 연대장이라니, 전혀 바란 적 없는 일이다.
야로스가 바라는 것은 결코 출세나 감투가 아니다. 그저 안전하고 편안한, 책임 질 일도 없는 대공 호위대의 일개 대원이 그가 가진 야망의 전부였다.
창이든 총이든 폼 나게 들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던가. 그가 하고 싶은 것은 퍼레이드지 전투가 아니다.
“아니··· 그래도 저는 대공 전하의 호위대가 아닙니까?”
“물론 대공께서는 기쁘게 주테르베이크의 요청을 받아들이셨지. 하핫, 우리 가문으로선 유능한 인물을 내주는 것 같아 아쉽게 됐군.”
“그러시다면 그냥···.”
“축하하네, 야로스 경! 연대장에게는 주테르베이크 인근의 영토와 명예 의원 직위가 주어진다네! 다음 만날 때는 자네 직위가 나보다 높을 지도 모르겠군.”
분명 오란덴 남작은 좋은 사람이다. 그는 진심으로 자기 부하의 출세를 기뻐해주고 있었다.
그게 당사자인 야로스에게는 기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꿈에도 모를 뿐이지.
“아마 4주 내로 출병하게 될 걸세. 자네에게는 빠듯하겠지만 우리 연방군의 일익을 잘 부탁하네.”
“잠깐만요 남작님? 4주 내로 출병요? 비르케제 공작의 군대와 싸우러 간다는 말입니까?”
“그렇다네. 자네에게는 론델다이크 전투의 복수전이 되겠군.”
“남작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방어전을 준비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적에게는 그로이엔펠트가 있습니다. 정면으로 싸워서는 안 됩니다.”
마치 지난 전쟁에서 엘랑키아의 기사들과 싸웠을 때처럼 말이다.
야전에서는 반듯한 대형조차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오합지졸인 나우데사 민병대는 참호나 바리케이드의 도움을 받으면 완강한 철벽이 되곤 했다.
그러니 이번에도 똑같이 하면 된다. 요새라는 요새는 모두 문을 닫아 걸고, 도로라는 도로는 모조리 봉쇄해 방어선을 만든다.
서로 꼼짝도 못하게 드러 눕는 방식. 그게 나우데사 연방의 장기가 아니었던가.
그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평소와 다르게 다급하게 말하는 야로스의 말투 때문인지 오란덴 남작의 눈이 놀라움으로 크게 떠진다.
“귀공의 보고서에 있었던 매우 강한 그룬발트의 용병대 말인가?”
“예, 남작님.”
“보고서에 이렇게 썼었지? ‘적은 그룬발트 최강의 용병대로, 비슷한 규모로 야전에서는 전혀 승산이 없다’고 했었나?”
“맞습니다.”
그걸 꼼꼼하게 다 읽어보고 기억도 하고 있다니··· 역시 오란덴 남작은 훌륭한 사람이었다. 문제는 전쟁은 훌륭하다고 이길 수 있는게 아니라는 점이지.
“귀경이 그렇게 말하니 상당한 적이겠지. 하지만 아군의 전력은 적보다 훨씬 유리하다네. 그리고 정 그리 강한 용병 연대라면, 귀하가 거기 대응할 수준의 연대를 키워 보게나.”
“...예?”
주테르베이크 오합지졸 민병대의 실력은 지난 전쟁 동안 뼈저리게 느껴 왔었다. 그들을 안전하게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던가.
그런데 그 어중이떠중이들을 가지고 어지간한 정규군도 갈아먹을 수 있는 괴물들인 그로이엔펠트를 상대할 수 있는 정예군으로 키우라고?
···길어야 4주 동안?
“자네라면 할 수 있네.”
아니, 절대 못한다.
“오늘 저녁에 주테르베이크 의원님들과 식사를 함께 하도록 하지. 자네에게 소중한 도시의 청년들을 맡길 분들이니. 대공 전하께서도 기대하고 계시다네. 주테르베이크는 중요한 동맹 도시니까.”
야로스가 할 수 있는 일은 기껏해야 그들과 나란히 같은 무덤에 묻히는 정도겠지.
“자네의 굳은 결의를 품은 듯한 표정을 보니 안심이 되는군. 앞으로도 잘 부탁하겠네, 야로스 연대장!”
굳은 결의가 아니라 어처구니가 없어서 딱딱하게 굳은 얼굴일 뿐이다.
이미 운명은 그의 손을 떠나 미친 수말처럼 폭주하고 있었다.
안전하고 편안한 생활이라는 그의 작은 희망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왜 슈토르히 용병단을 떠났을까.
왜 엘랑키아로의 소집령 소식을 들었을 때 나우데사에 남은 다른 동료들처럼 함께 짐을 싸서 출발하지 않았을까.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이는 삶에 있어서는 기회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연대장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느 나라에서나 연대장은 귀족의 반열이나 오를 수 있는 높은 직위이다. 어떻게든 노력해서 오를 수 있는 중대장과는 완전히 다르다.
심지어 부유한 도시인 주테르베이크에서는 근처에 영지도 주고, 의회에도 출입할 수 있는 명예 의원직도 준다지 않는가.
눈에 불을 켜고 출세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꿈과도 같은 자리일지도 모른다.
만약, 만약에 전쟁을 잘 마무리 하고 연대 또한 잘 간수한다면 그 후에는 ‘내 땅’에서 하인들을 거느리고 살 수 있다는 게 아닐까?
그게 쉬워 보이지는 않지만.
“알겠습니다, 남작님.”
어쨌거나, 탈영 말고는 선택지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