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384화 (384/556)

40-4. 나우데사 내전

느슨한 산개 대형을 갖춘 적은 겁도 없이 주테르베이크 민병대를 향해 다가온다.

탕! 타탕!

그 와중에 총까지 쏴 대고 있다. 총알이 휙휙 지나가는 소리가 난다.

몇 발은 축축한 흙바닥에 박히며 둔탁한 소리를 낸다. 파각 하고 창대와 총알 부딪치는 소리까지 들린다.

전투 직전의 끔찍한 긴장감이 가득한 가운데, 병사들의 어깨가 공포로 더욱 움츠러든다.

하지만 이쪽은 응사하지 않는다. 야로스는 병사들이 자랑스럽고 고마웠다. 그의 부하들은 무서워하면서도 결코 도망치지 않는다.

···중요한 야전 훈련을 졸속으로 받아서 문제지.

이들은 소집 후 요새 방어 훈련만 받았을 뿐, 개활지에서 대열을 갖추고 싸우는 훈련을 거의 받지 못한 상태였다.

대기하는 동안 야로스가 날림으로 가르친 게 얼마나 통할지는 알 수 없었다.

차라리 병사들이 이소브론 대공에게 불만을 터뜨렸을 때 그냥 보내줄 걸!

자신도 그 길로 나우데사를 탈출했다면 이런 빌어먹을 경우는 안 당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후회로 목이 바짝바짝 마른다.

적의 선두가 70미터. 여전히 이쪽 대열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혹시라도 호령소리에 놀란 병사가 방아쇠라도 당길까 장교들도 입을 다물고 있다.

탕, 타앙! 타타탕!

“끄으읍!”

“악!”

이번에는 아군이 맞았다. 젠장, 병사들이 술렁거린다. 제발, 조금만 더. 야로스는 초조함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돌격!”

“이야아아아아!”

“쓸어버려라!”

60미터. 적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오기 시작한다.

예상과는 좀 다른 적의 움직임에 야로스는 갑자기 머리속이 차가워진다. 빠르게 상황을 계산한다.

이쪽의 병력을 파악했음에도 물러서지 않는다? 이 자식들은 조금 전에 비슷한 상황에서 한 번 승리한 것이다.

그러니, 지금 야로스의 부대 역시 비슷하게, 쉽게 무너뜨릴 수 있다 생각하는 거겠지.

하지만 오산이다.

야로스의 부대는 오합지졸이긴 하지만, 그래도 배운 오합지졸이다.

그 증거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완벽한 사격통제였다.

···대열은 엉망이지만.

“사격개시!”

“쏴라!”

타타타타탕! 타앙! 타타타탕! 타탕!

타탕! 타타타타탕! 탕, 타탕! 탕!

귀를 찢는 폭음과 함께 두 차례에 걸쳐 100정이 넘는 총기에서 뿜어져 나온 화약 연기가 자욱하게 눈 앞을 가린다.

“그윽, 큭!”

“으악!”

“멈추지 마! 적은 별 것 아니다!”

“으아아아!”

하지만 적은 멈추지 않는다. 화약 연기를 뚫고 돌진해온 적 보병들이 지옥에서 올라온 악귀처럼 튀어나와 민병대 대열에 달라붙는다.

···하지만 효과는 없었다.

“백병전에 대비하라! 자리를 떠나지 마!”

“후열은 재장전! 재장전!”

“이야아아아! 커헉!”

“죽어!”

백병전 상황이 오자, 병사들은 필사적으로 훈련에서 배웠던 것들을 기억 해냈다.

창병들은 창을 앞으로 내밀고, 총병들은 총을 거꾸로 잡고라도 악착같이 저항한다.

애초에 수가 적었던 공격자 쪽은 단숨에 열세에 몰린다.

한계까지 사격을 참았던 민병대의 근거리 일제사격이 생각보다 효과적이었고, 백병전이 시작되었는데도 굳건히 버티는 인간의 장벽이 그들을 당황시켰다.

어째서? 아까는 이러면 금방 도망쳤는데?

라고 생각하는 듯한 표정으로 눈이 휘둥그레진 적 장교가 연거두 두 번이나 목을 창에 찔려 쓰러지는 게 보인다.

“후퇴! 후퇴!”

“퇴각한다!”

1분도 안되는 교전 후, 적은 적지 않은 시체를 남기고 부상자를 질질 끌며 물러선다.

지독한 놈들, 물러서는 주제에 뒤돌아 도망치지도 않는다. 분노와 호승심 가능한 눈초리로 이쪽을 바라보며, 쏠 테면 쏴 보라는 기세였다.

이건 못 당한다. 나이가 많지는 않아도 역전의 용사인 야로스는 바로 깨달았다.

적의 숫자가 얼마 안 되는 척후병 집단이기에 망정이지, 동등한 상황에서 비슷한 숫자로 부딪쳤으면 5분도 못 견디고 무너졌으리라.

“이겼다! 이겼어!”

“만세! 이겼다아!”

“우와아아아! 만세!”

“우리는 야로스 부대다!”

승리. 그것도 지독한 공포와 압박 상황 직후의 승리이다. 병사들이 무기를 치켜들고 모자를 흔들며 승리의 함성을 지른다.

하지만 지휘관인 야로스는 기뻐할 수 없었다. 오히려 피가 차갑게 식는 느낌이었다. 주변의 장교들을 소집한다.

“전 부대에 후퇴를 알리게!”

“후, 후퇴 말씀입니까?”

병사들처럼 좋아서 펄쩍펄쩍 뛰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비슷한 승리감에 빠져있던 하급 지휘관들에게는 날벼락 같은 명령이었던 모양이다.

그 흔들리는 눈동자는 우리는 승리했다, 완벽하게! 하지만 어째서 물러서야 하냐고 묻고 있었다.

“저들은 적 본대가 내세운 척후병이다. 후속하는 본대는 최소한 연대급은 되겠지. 우리로는 역부족이야.”

게다가 대단한 숙련병들이다. 문자 그대로 작살이 나버린 선행했던 아군이 왜 그런 꼴이 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제서야 장교는 아까 보았던, 정신을 놓고 울부짖으며 도망치던 아군이 생각난 모양이다.

“알겠습니다, 대장님. 행군 대형으로 물러납니까?”

“아니, 그랬다가는 꼬리를 잘라 먹힌다. 지금 대형 그대로, 침착하게 한 발 한 발 물러선다.”

“옛,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순간 부하들이 질서 정연하게 퇴각할 수 있을지 불안감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믿는 수밖에 없다. 여기서 대열이 무너지면 끝장이다.

아마 하면 할 수 있겠지. 아까도 잘 싸웠듯이 말이다. 비록 민병대지만 지난 전재에 참전했던 경험자들도 많았고.

불안하게도, 작은 승리의 흥분으로 가득한 부대에 명령이 전해지는 데엔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래도 병사들은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명령에 따라 침착하게 조금씩 물러서고 있었다.

···비록 대열이 엉망으로 무너지고 밀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간신히 진형 비슷한 것을 유지는 하고 있다.

슈토르히 시절의 중대장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자신은 죽었다 깨도 그렇게는 못할 것이라는 사실도.

한편으로는 민병대를 제대로 훈련도 없이 공격전에 참여시킨 윗대가리들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생각이었다.

“대장님, 말씀하신대로···.”

놀란 표정의 장교의 손가락이 늪지대 방향을 가리킨다.

대열을 갖춘 적군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군과 달리 가지런한 창날만 보아도 보통 숙련된 병력이 아니다.

그리고 보이는 검은 독수리의 깃발.

“...저 새끼들···.”

“아시는 자들입니까, 대장님?”

“저거··· 그룬발트에서 제일 잘나가는 용병들이다. 우리 정말 큰일날 뻔 했다.”

“그, 그런 자들이 왜 반란군에게!”

그러게 대체 왜일까, 빌어먹을.

슈토르히 시절에, 유난히 적군으로 많이 만났던 검은 독수리들.

용병단 초기부터 복무했던 베테랑 선임들은 저 깃발을 볼 때마다 쌍욕을 하고는 했다. 까다로운 데다가 집요한 놈들이라면서.

정작 야로스가 입대한 후로는 서로 정면으로 부딪친 적은 없지만 만만한 상대가 아니란 것 정도는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선제후까지 용병업에 뛰어든다고 할 정도로 무수히 많은 군소 용병단이 난립하는 신성 그룬발트 제국 전체에서 몸값이 가장 비싸기로 유명한 용병대.

저 녀석들은 그로이엔펠트 연대였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적은 비싼 돈을 들여 저런 놈들을 고용했다. 이제 지금까지와 같은 ‘평화로운 전쟁’은 물 건너 갔다는 뜻이다.

“대열 유지해! 모두 침착해라, 어차피 적은 쫓아오지 못한다.”

“알겠습니다!”

“한 걸음씩 물러난다!”

어쨌든 지금은 부하들을 살려서 돌아가는 게 우선이다.

그리고 저 새끼들은 전쟁하는 괴물이니 민병대로는 절대로 평지에서 싸울 수 없다고 보고해야지.

닥치고 싸우러 나가라 하면 탈영이라도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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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한 강변의 아름다운 비탈길을 말을 타고 달린다.

아직은 이른 봄도 아닌 늦은 겨울이라 할 시기지만, 따뜻한 남부라서 그런지 이르게 싹이 트는 풀이 있는 모양이다.

내가 알던 이전 세계보다 겨울이 빨리 끝난다는 느낌이다. 이를 이용해 농사를 두 번 짓는 지방도 있다니까.

추운 겨울을 버티고 생명이 움트는 아름다운 광경을 좀 더 눈에 담고 싶지만, 오늘도 일 하러 나온 것이다.

엘랑키아 왕국과 라솔 왕국의 자연 국경을 이루는 이스키비르 강을 따라 작은 경비초소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는 거대한 경계망의 일부로, 철저하게 정보의 획득만을 책임진다.

길고 긴 국경지대 전체를 철통처럼 지킬 수는 없다. 성벽을 쌓는 등 방대한 방어선 건설은 불가능할 뿐더러, 설령 하더라도 배치할 상비군 병력 따위가 어딨나.

선형 방어에 집착하다가 정작 한 곳에 집중된 적 주력을 못 막아 핵심 거점을 빼앗기는 어리석은 일은 역사를 살펴보면 많이 나온다.

그건 변명의 여지 없는 망국의 지름길이니 그런 바보가 될 수는 없었다.

변경의 최전선은 적을 차단하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적을 발견하고 최단시간 내에 주변 초소와 후방에 이를 알리는 행동이 중점을 둔다.

과거에도 강변 지역의 소영주들이 그런 역할을 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지난 라솔 침공에서 기습을 허용했듯이 잘 동작하지 않고 있었다.

‘경계를 해야 한다’는 문제 의식 자체는 다들 가지고 있었으나, 경보 체계가 중앙 관리 없이 파편화 되었기에 발생한 일이다.

열심히 졸린 눈을 비비며 강 건너를 감시하다 적을 발견했다. 그럼 이를 어디다 보고 해야 하나?

자기 영주? 이웃 마을? 어딘가의 주둔지?

극소수가 밤을 틈타 몰래 넘어오는 것이라면 몰라도, 최소 수백 명이 무리를 지어 강을 건너는데 막지는 못해도 경보도 못할 리가 없다.

하지만 정보가 전달되는 시스템이 미흡하다보니 가치 있는 정보가 필요한 곳에 도달하지 못하고 소실되어 버리는 문제다.

이를 ‘생뢰르반 사령부’가 전담해서 체계를 새로 새우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변경 소영주들 역시 비용과 약간의 상비군을 제공하는 것으로 경계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변경의 땅 한 조각까지 모두 지키지는 못하겠지만, 사람들이 살아있고 반격을 준비할 수 있다면 나중에 탈환할 수 있다.

내가 일부러 말을 타고 나온 이유는 정보 전달망을 실제로 눈으로 보고 발로 달려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존에 이용할 만한 도로가 있는지, 도로가 없어도 전령이 움직이는 데 불편함은 없을지도 따져보고 말이다.

‘뛰어난 지휘관은 지도 위에서 무엇이든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들 하지만, 지도만 보다가 보병들을 늪지대에 몰아 넣는 꼴을 몇 번이나 봤는지 모른다.

신생 생뢰르반 군 편성은 드 레뮤즈나 트랑카벨 가문은 물론 참여하는 여러 남부 가문들, 그리고 엘랑키아 전체에게도 큰 투자이다.

한편으로는 다른 가문들이 각자 스스로를 지키는데 쓸 병력과 자원을 공출해 효율적으로 모아놓은 것이기도 하다.

제 역할을 못한다면 엘랑키아 남부는 정말로 끝장난다. 이런 상황이니 책임감을 느끼지 못할 수는 없었다.

한편으로는 전방 경계나 정보 전달과 같은 업무를 담당하는 인력이 많아질수록 본 역할인 전투를 할 인원은 더 줄어든다.

나는 원래 장교들에게 경계와 정찰의 중요성을 거듭 역설하는 편이고 인력도 많이 배치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작전중인 군단의 경우 정찰 상황이 마무리되면 합류하여 보조 전력으로 활용하는 등 인력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전방인 강변에서 복무하는 경비대는 제때 본대에 합류하길 기대하는 것은 조금 무리일 것이다.

그러니 병사 한 명이라도 아끼려면 한계까지 효율적으로 시스템을 가다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고 너무 아끼면 더 중요한 경계능력이 저하 될 테고.

게다가 한 번 만들면 최소한 십 년 이상은 돌아갈 구조가 아니겠나. 딱히 달리 시킬 수 있을 법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역시 이런 일은 ‘현대인의 합리성’이 개입되어야 일이 잘 풀린다. 그래서인지 지난 겨울 내내 나를 괴롭힌 과제였다.

이제 비로소 모양새가 좀 잡혀가서 기쁘기 그지 없었다.

“이제 돌아가자고.”

“알겠습니다, 콘도티에레! 전령을 보내 알리겠습니다. 어디로 가실 예정이십니까?”

“이번에는 생뢰르반 요새를 점검해야지.”

“옛, 알겠습니다!”

다음은 생뢰르반 요새, 드 레뮤즈와 트랑카벨 가문이 큰 노력을 기울였으며, 에오르크 레타일 영감의 피땀이 서린 장소를 가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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