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2. 나우데사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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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간부 특성화 교육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교육 과정의 책임자는 두 사람, 루트비히 아린 폰 자이트리츠와 모리츠 디트마르 폰 뮌타우젠이었다. 둘 모두 정임교관 역할이었으니까.
하지만 훈련으로 자리를 종종 비워야 하는 모리츠의 일정 덕분에 하루도 빠짐없이 교육에 참여했던 것은 루트비히 뿐이었다.
동료 선임 중대장인 첼레스티나나 크레시미르 역시 많은 도움을 주긴 했지만 그들 역시 본업이 따로 있었으니까.
오히려 부교관으로서 많은 도움을 받은 의외의 인물은, 생뢰르반에서 중상을 입고 회복중인 전임 제10 카르카냑 보병 연대장, 기즈 드 콜롬브였다.
격렬했던 전투의 마지막 국면에서 라솔 군 저격병에 의해 관통상을 입은 그는 안타깝지만 회복 과정에서 평생 장애가 남게 되었다.
총에 맞은 위치가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지팡이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거동이 힘든 모양이었으니.
기즈 전 연대장은 여울목의 전투와 생뢰르반 전투 등 중요한 전투에서 제10 카르카냑 보병 연대를 지휘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운 역전의 노장이다.
천재적인 전술을 다루는 지장 타입도, 앞장서서 병사들을 이끄는 용장 타입도 아니다.
다만 언제나 병사들의 상황을 신경쓰고 물심양면으로 최적의 상황으로 싸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덕장이라고 할까.
이런 점은 드 누아와 드 레뮤즈에서 동맹군을 훈련시키던 파견 교관 역할을 하면서 극명하게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드 콜롬브는 트랑카벨 가문의 가신이기는 하지만 이렇다 할 세력이나 명성이 있는 집안은 아니다.
기즈 본인 역시 반평생을 카르카냑 수비대에서 ‘성실하게 복무했을 뿐’인, 말하자면 고관대작과는 하늘과 땅 만큼 거리가 있었던 신분이다.
그러던 이가 다름아닌 아롱드 트랑카벨 자작 본인의 추천을 받아 명목상 아실 자작 본인이 연대장인 제10 카르카냑 보병 연대를 부연대장으로서 지휘하게 됐으니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날 까지, 트랑카벨은 물론 드 레뮤즈나 드 누아의 어느 누구도 기즈 경을 출신으로 욕보이지 않았다.
이는 트랑카벨 가문이라는 배경도 있었지만, 본인의 인품이나 언행을 그만큼 인정받았다는 이야기겠지.
그래서 아실 자작과 콘도티에레는 기즈 경이 부상으로 퇴역하는 것을 무척 아쉬워했으며, 후진 양성을 위한 교관으로 남아주기를 요청했던 것이다.
한결같은 남자인 기즈 경은 이미 병력 양성에서 두각을 드러낸 바 있듯, 루트비히의 수업에도 반은 학생으로, 반은 부교관으로 성실하게 임했다.
간혹 루트비히는 기즈 경이 나이가 좀 더 어렸다면, 이 사람을 충분히 가르쳐 다음 세대 트랑카벨 영지군 지휘관의 일원으로 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어쨌든 교육을 듣는 입장인 장교들과 함께 지식을 쌓아가는 그는 슈토르히의 멤버들이 트랑카벨을 떠난 먼 미래에도 젊은 장교들을 가르치는 훌륭한 교관이 될 것이다.
“청군의 기병대 대피해! 돌격은 실패했으며 병사들은 주춤거리는 상태!”
“으으, 방심했다···.”
“어서 지원군을 보내야 합니다.”
다만 거의 모든 교육생 장교들이 기다리며,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모의전 심판만은 아직 충분히 가르칠 수가 없었다.
매년 보석을 깎아내어 가장 아름다운 형태만 남기듯, 전쟁에 재능을 보이는 소년들을 갈아대는 자이트리츠 전쟁관을 제외하고는 어디서도 도입하지 못한 훈련방식이니까.
모든 크고 작은 기동과 교전의 결과는 전적으로 심판의 판단에 달렸지만, 그렇다고 내키는대로 마음대로 해서는 안된다.
그래서야 동네 꼬마들이 편을 나눠 하는 전쟁놀이와 다르지 않을 테니까. 시끌벅적하고 다들 흥분한다는 점에서 비슷할 수도 있지만.
전쟁관의 주인이자 교장인 루트비히의 아버지는 모의전의 심판을 마치 판례를 따르고 기록하는 재판관의 역할과 비교했었다.
모의전을 진행하는 장교나 후보생들이야, 현재 테이블 위의 작은 전장에 집중하면 된다.
하지만 심판은 대륙 전체에서,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기록으로 남은 거의 모든 주요 전투를 머리속에 담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현재와 가장 유사한 상황’을 끄집어 내 당시 상황에 가장 정확한 판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막 철이 들 무렵부터 무섭게 주입 교육을 받아온 자이트리츠 전쟁관 출신이 아니라면 역시 어려운 작업이리라.
···혹은 무한에 가까운 학습 기회가 있는 그룬발트의 고대 일족, 엘프의 혈통을 타고 났다거나 말이다.
어쨌든 이론 교육과 실무 교육이 반복되면서 슬슬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들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우선은 야전 지휘관 계통과 참모 장교 계통으로 분류하고, 아직 결정되지 않은 장교들은 굳이 무리하지 않는다.
결정되지 않은 경우는 어느 분야로든 강점을 드러냈기 때문인 경우도 있었고, 반대로 아직 뾰족한 강점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인 경우도 있었다.
물론 겨우 몇 개월의 교육으로, 앞으로 수천 명의 병사를 이끌 인재를 판단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전쟁관 시절에도··· 루트비히보다 높은 평가를 받은 형님들이 몇이나 있었다.
다만 그 사람들이 현재 어떤 상황인지를 생각해보자면··· 이 교육 방식 자체가 믿을 만 하기는 한가? 라는 회의감도 들 정도였다.
지금 당장 눈에 띄는 이라면 파스칼 드 뒤랑 연대장과 가스파르 마슈레 중대장이 있었다.
제7 카르카냑 기병 연대에서 연대장과 중대장, 상관과 부하로 근무하고 있는 두 사람이라 그런지 호흡이 잘 맞았고 특출난 통찰력이 엿보인다.
본래 몽세나의 성주인 파스칼 경은 지휘관의 자질을 갖추기 위해 홀로 많은 노력을 한 것 같았다. 적어도 구할 수 있는 전술전략 관련 서적은 다 읽어볼 정도로 말이다.
비슷하게 가스파르 역시도, 겉보기에는 경망할 것 같은 외모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독서광인 모양이었다.
일단 머리속에 뭔가가 들어있는 상태에서 시작했으니 남들에 비해서 성취가 빠른 것도 당연하다만, 중간중간 보이는 번뜩이는 재능이 진짜라면 훌륭한 지휘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두 차례 정도 공방이 더 이어진 후, 모의전장을 살펴본 루트비히는 청군의 패배를 선언했다.
“하, 하지만 아직 병력의 절반 이상이 남아 있습니다!”
청군 측 장교들은 아쉬운 듯 항변해보지만, 루트비히는 고개를 저었다. 그들의 이런 열정이 싫지는 않았지만 판정은 판정이다.
“무리한 기병의 집중 운용이 실패한 시점에서 승패는 이미 갈렸습니다. 여기··· 그리고 여기에서 말이죠.”
“...맞습니다, 교관님.”
“특히 언덕 북쪽에서 벌어진 교전에서는, 4개 연대가 집중 투입된 상태에서도 백군의 2개 연대를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차라리 무리해서 교전을 시작하지 않고 대치만 하고 있는 편이 나았을 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다행히도 트랑카벨의 장교들은 호승심과 열정은 있어도 예의바르고 승패에 승복할 줄 알았다. 심판의 판정 결과도 수업의 일부이니, 모두가 눈과 귀를 집중한다.
“말씀하신대로 아직 병력의 절반 이상이 남긴 했지만, 마약 이게 실전이라면 마을과 언덕 사이의 개활지는 도망치는 청군 병사로 가득했을 겁니다. 그 광경을 나머지 병사들에게 보인 이상 전투를 계속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알겠습니다, 교관님···.”
“모든 전투에서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패배가 명백해졌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도 중요한 자질이 됩니다.”
오늘 패배한 청군 장교들은 유난히 시무룩하다. 전투 초반부 상황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승기를 잡겠다고 무모하게 나서지 않았다면 결과가 달랐을지도 모를 텐데.
그래서 시무룩한 장교들을 위로해줄 겸, 아껴두었던 이야깃거리를 하나 꺼내기로 했다.
“콘도티에레와 슈토르히 연대가 무명이던 시절에 용병단 사이에서 유명해진 것은 패한 뒤 퇴각전을 성공적으로 잘 했기 때문입니다.”
“저, 정말입니까 교관님?”
“그 슈토르히 연대나 콘도티에레가 패배한 적이 있다고요?”
···효과가 너무 강했던 모양이다.
시무룩했던 청군 장교들은 모의전 패배 따위는 알 바 아니라는 듯 새로운 주제에 달려들었다. 상대편인 백군은 물론이고 참관중이던 교육생들도 모두.
“아니 그게··· 어떻게 된 것이냐면···.”
가볍게 할 이야기였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서 어디에서 끝내야 하지? 전투의 초기부터? 패배가 확정난 시점부터?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루트비히에게 구원의 손길이 당도했다.
“루트비히 경, 교육 중에 죄송합니다. 다만 급한 일이라···.”
“모의전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난감한 얼굴로 그를 찾아온 이는 전령이 아니라 영주관의 시종이었다. 군이 아니라 트랑카벨 가문에서 찾아온 것은 처음이다. 대체 무슨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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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경, 바쁘신 와중에 불러내서 정말 죄송하네요. 콘도티에레가 이런 일이 있으면 꼭 루트비히 경과 상담하라고 말씀하시고 가셔서요.”
“아닙니다, 아쥬흐 양. 어떤 일입니까?”
의외로 루트비히를 호출한 것은 가문의 장녀인 아쥬흐 트랑카벨이었다.
그림으로 그린 듯한 고귀한 금발 벽안의 미녀일 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트랑카벨 가문에 얽힌 거대한 이권을 다루는 뛰어난 재녀.
게다가 본인이 의술을 전공한 의사이기도 해서, 의무대를 편성해 수많은 부상병을 살리기도 했다.
심지어 많은 주민들과 병사들에게 성녀로 추앙받기까지.
참 콘도티에레도 대단한 사람이지만, 아쥬흐도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이리 대단한 사람들이 서로에게 이끌려 만났는지.
이 두 사람 중 한 명만 빠졌어도 지금쯤 트랑카벨 가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엘랑키아에는 말이다.
그나저나 콘도티에레가 일부러 자신과 상담하라고 한 건이라면 가벼운 내용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우데사의 분란에 대해서는 들어보셨나요, 루트비히 경?”
“서로 대치 중이란 소식은 들었습니다만···.”
지난 북방 전쟁에서 슈토르히 연대는 나우데사에게 고용되어 엘랑키아의 침략군을 상대로 싸웠었다.
당시 좀처럼 과감하게 집결하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방어전에 집착하는 고용주의 군대에게 분통이 터졌던 기억이 난다.
자기네끼리 싸우는 지금, 마주보고 대치만 한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리라. 날도 추울 테니까, 자기들이 잘 하는 요새를 짓고 버티고 있겠지.
“날짜가··· 지금으로부터 2주 전, 전투가 격화됐어요.”
“이런 날씨에 말입니까?”
“네. 그룬발트에서 고용한 용병들이 이소브론 대공의 연방 군대를 기습해 크게 격파한 모양이구요.”
“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나우데사가 외국 용병을 고용하는 것 자체는 항상 하던 일이긴 하지만.
그러고보니 북방 전쟁이 끝나고 슈토르히 연대가 나우데사를 떠날 때, 전쟁에 지쳤는지 제대를 신청한 동료들이 몇 있었다.
블랑독에서 다시 종군을 시작한 이후 복귀한 녀석들도 있지만 끝까지 참여하지 않은 이들도 있다.
제법 괜찮은 친구라, 다음 중대장 진급 물망에 오를 정도였는데. 너무 어릴 때부터 전장에서 살아온 탓에 지긋지긋한 모양이었다.
나우데사가 다시 전쟁터가 되면 어떻게 살고 있을지, 괜한 걱정이 되었다. 뭐 전투에는 전문가니 자기 몸 정도는 알아서 챙기겠지만.
그보다도··· 이게 왜 남쪽 끝의 블랑독 땅에 영향을 미치는지는 잘 모르겠다.
“엘랑키아 왕실에서는, 그 그룬발트 출신 용병들이 평범한 용병이 아니라 그룬발트의 지원군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그 구분을 짓기가 어렵기는 하지요···.”
결국 돈을 어디서 받느냐의 차이일 뿐, 용병들의 역할은 출신지와 무관하다. 심지어 조국과 적대하는 군대에 고용되어 싸우는 경우도 없지 않으니까.
트랑카벨 가문에 고용된 네그라타 연대 역시, 구성원의 대부분은 라솔 출신이지만 라솔 군을 상대로 용감하게 싸웠다.
“봄이 되면 엘랑키아 군이 출병한다고 하네요.”
“그럼, 설마···.”
“예, 아마 예상하신 게 맞겠네요. 트랑카벨에도 출병 요청이 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