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373화 (373/556)

39-6. 고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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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내가 이럴 줄 알았다.’

나우데사 최고의 명문가, 이소브론 대공을 섬기는 호위대 장교인 야로스 발렌켄드는 불안한 마음에 속으로 욕을 했다.

“멈추십시오! 멈추십시오!”

깔끔하게 손질 된 포석으로 정교하게 포장된 광장에 이소브론 가문 호위대장의 외침이 쩌렁쩌렁하게 울리고 있었다.

“다가오지 마시오! 모두 해산하시오!”

짜증이 섞인 호위대장의 외침은 이제는 애처로울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외침은 전혀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100명을 조금 넘는 이소브론 가문의 호위대가 지키고 있는 장소는 광장 북편, 나우데사 연방 의회로 통하는 통로이다.

각각 독립적인 주권을 가진 나우데사의 일곱 도시가 합쳐 만들어진 연방국인 만큼, 각 도시에서 파견된 의원들의 논의에 따라 정책이 결정된다.

하지만 그 주권의 전당은 지금은 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그 이유야 물론, 이소브론 대공의 호위대가 주변을 포위, 점거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틀 전, 수백 명의 병사들을 이끌고 의회에 나타난 이소브론 대공은 의회 건물 주변에 병력을 배치했다.

명목은 ‘의회 보호’였다.

실제로 병력이 의회 내부로 들이닥치거나, 의원과 의회 직원들의 이동을 막지도 않았다. 의회를 해산시키거나 회기중인 의원들을 협박하지도 않았다.

다만 의회로 접근하려는 주민들을 막아 세우고 엄격하게 검문할 뿐이다.

이소브론 대공이나, 호위병들 입장에서는 나름 온건하게 역할을 한다 생각했지만, 갑자기 군인들이 나타나 통행을 통제하려 하는데 반응이 좋을 리가 없었다.

우선 이소브론 대공을 지지하지 않는 도시와 가문 출신 의원들이 항의하며 퇴장했다.

이로 인해서 연방 의회는 자기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인원을 채우지 못한 상태로 회기를 진행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고 이소브론 대공을 지지하는 의원들이라 해도 반응이 좋지는 않다.

아무리 의회 내부로 들어오지는 않는다 해도, 언제라도 그럴 수 있는 상황에 병력을 배치하는 것은 의회에 대한 간섭으로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소브론 대공 측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최근, 북부 평원지역에 있는 요새 하나가 공격당했다. 나우데사 내륙지역인 만큼 타국 군대의 습격은 아니었다. 현재는 전쟁 중인 적대국도 없지만.

나우데사 연방 정부 소유의 요새를 공격한 집단은 비르케제 공작을 지지하는 민병대였다.

민병대라고는 하지만 단순한 농민 반군과 같은 수준은 아니다. 얼마 전 엘랑키아와의 전쟁에서도 나우데사 보병대의 기간은 각 도시에서 파견한 민병대였으니까.

결국 양측 모두 소극적으로 대응해 교전은 거의 벌어지지 않았고, 수비대가 경고 사격을 가하자 민병대는 철수했지만 요새의 정문이 불에 타는 손실이 있었다.

이를 막기 위한 구실이라는 이유로 이소브론 대공의 병력이 배치된 것이었지만··· 그 행위 자체가 의회에 대한 점거로 보였던 것이다.

“멈춰! 멈추라니까!”

이제 거의 비명이 되어버린 호위대장의 외침을 듣던 야로스는 큰 일이 날 것 같아 긴장한 병사들의 대열을 지나 호위대장에게 다가간다.

“대장님, 이거 큰일 나겠습니다.”

“야로스 경? 자네 위치는 왼쪽 측면이 아닌가? 왜 여기에 있나!”

얼굴이 파랗게 질린 젊은 호위대장은 야로스의 얼굴을 보자 신경질을 부렸지만 상관하지 않는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말로 한다고 멈추지도 않을 기세고요.”

“마, 말로 안된다면 실력을 행사해야···.”

“실력이요? 정말로 ‘저들’에게 무력을 쓰실 겁니까?”

“으··· 으으···.”

야로스가 ‘저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설득한다. 이미 진이 다 빠진 듯한 대장은 똑바로 대답도 하지 못한다.

‘저들’이란 어느새 광장에 모여 웅성대고 있는 민중들이다.

대부분은 지역 주민이며, 중간 중간 의회 인원이나 어디 소속일지 모를 무장병들도 보인다.

하지만 그 수는 지금도 수백 명은 되어 보였고, 계속 늘어가고 있었다. 이들을 적으로 돌리는 것은 미친 짓이다.

지금 호위대장이 이끄는 병력은 겨우 100명 남짓이다. 만약 발포라도 한다면 재장전 하기 전에 분노한 민중들에게 온 몸을 찢길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저들 중 상당수는 엘랑키아와의 전쟁에서 민병대로 실전 경험을 한 예비군들이었으니까.

“대장님. 지금 여기서 저들을 자극했다가는, 우리는 문자 그대로 시체도 못 찾을 겁니다.”

“하지만··· 대공 전하께서 맡기신 임무가···!”

“여기서 우리가 끝장나면 대공 전하도 끝장납니다! 의회 점령하려다가 주변 시민들에게 총질했다고 소문이 날 텐데요.”

“의회 점령이라니, 우리 임무는 보호가 아닌가!”

“예에, 예에. 맞는 말씀이지요. 하지만 남들 보기에 그럴 거란 말입니다. 제가 지금 전투가 두렵고 죽기 싫어서 이러는 것으로 보이십니까?”

“아, 아닐세! 귀경의 명예를 의심하지는 않네···.”

아니다. 사실은 죽도록 두렵고, 죽어도 죽기 싫다.

나름 잘 나가던 용병 출신인 야로스가 종군 상여금을 포기하고 출신을 조작해가며 이소브론 대공의 호위대에 들어간 것이 그래서이기도 하고.

현재 나우데사에서 가장 세력이 강한 대공의 개인 호위대라니, 가장 안전한 선택이라 여겼다.

그런데··· 고생고생하여 입대한 지 1년도 안 되어서 이런 위기에 처했다.

목숨 내놓고 돈 버는 직업인 용병인 이상, 죽으면 어쩔 수 없다는 체념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적군도 아닌 시민들의 손에 찢겨 죽는 건 정말 싫었다.

“대장님, 한가지 건의드려도 되겠습니까?”

“무엇인가, 야로스 경?”

“의회 내부의 대공 전하께 의견을 묻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마 전하께서도 무력 충돌은 바라시지 않을 겁니다.”

“으음··· 좋은 의견이군.”

“그럼 대장님께서 다녀오시겠습니까? 제가 어떻게든 부하들을 진정시키고 있겠습니다.”

“알겠네, 야로스 경. 잠시 부탁하네!”

조금은 자신감과 얼굴 색이 회복된 호위대장을 일단 일선에서 빼 버리는 데 성공했다. 그냥 두면 발작적으로 발사 명령을 내릴 것 같았으니까.

“실수로라도 명령 없이 조준하지 마라.”

“알겠습니다, 야로스 경.”

쏠 각오도 없는데 위협이랍시고 서로 자극해봐야 좋을 것 없다. 제대로 통제가 안 되는 민중이 ‘할 테면 해 봐라’며 악에 받히면 좋은 꼴은 못 보니까.

현재 분위기를 봐서는 당장 문제가 터질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나저나 대장은 왜 이렇게 안 돌아 오는가. 의회 건물이 그다지 넓지도 않으니, 몇 분 안 걸리 텐데. 시간이 더럽게도 느리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눈 앞의 군중의 수는 점점 늘어난다. 불만이라도 폭발하기 전에, 요구사항 물어보는 척이라도 해서 시간을 끌어 볼까 하던 참에···.

“야로스 경!”

다행히 호위대장이 돌아왔다.

“대장님, 대공 전하께서는 뭐라고 하십니까?”

“아, 안 계시네!”

“네?”

“대공 전하도, 호위대 다른 부대도, 의원들도 사라져서 의회가 지금 텅 비었다는 말일세!”

“아···.”

젠장.

빌어먹을.

“이, 일단은!”

이럴 줄 알았으면··· 엘랑키아에서 소집령을 듣고 복귀한 동료들을 따라 갈 것을···. 일이 고되기는 해도 나쁘지 않은 직장이었는데.

“우리도 대공 전하를 따라 철수하지요!”

전직 슈토르히 연대의 베테랑 용병이며, 현직 안주하고 싶은 호위대 장교인 야로스 발렌켄드는 자신이 줄을 심각하게 잘못 섰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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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들여서 수평계를 들여다보고 있는 익숙한 드워프 기술자의 뒤통수를 발견했다.

“그 쪽이 아니야! 좀 더 왼쪽! 어어, 거기 거기!”

그 드워프 기술자의 이름은 에오르크 레타일. 카르카냑의 조병창에서 신무기를 개발하고 대량생산을 책임지던 기술자이다.

그가 어째서 이 멀고 먼 엘랑키아 남서부, 생뢰르반 초원에서 수평계를 들고 있는 이유는 그가 무기 제작 만큼이나 축성에도 뛰어난 건축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잘 되어 가십니까?”

“어, 너냐? 그럼 잘 되고 있지! 아마 오늘까지 준비하면 내일부터는 이쪽 외벽도 실무 작업에 들어갈 수 있겠지.”

“진짜요? 대단하시네요.”

“얼마 안 있어 겨울이지 않나! 혹여라도 땅이 얼기 전에 기초 공사는 끝마치지 않으면 안 돼.”

성격이 괴팍한 늙은 드워프인 에오르크는 그 성격 탓에 1년 이상 모시는 고용주가 없기로도 유명했지만, 다행히도 트랑카벨 가문에서는 2년 째 일하고 있었다.

“그야, 일을 할 때 가만히 내버려 두니까! 어련히 알아서 잘 하려고? 실무자들 믿고 맡기는 게 아니라, 하나 하나 손을 대려 하는 놈들 밑에서는 돌아갈 일도 안 돌아가는 법이니까!”

트랑카벨 가문은 바쁜 것도 있어서 조병창의 기술자들에게 장소와 비용을 지급해주고 일정만 조율했을 뿐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다.

만약 에오르크가 그저 그런 기술자였다면 갈수록 나태해지며 월급만 빼먹는 도둑놈이 되었겠지만, 다행히도 매우 탁월하고 자부심도 넘치는 기술자였다.

덕분에 현재 트랑카벨 영지의 조병창은 엘랑키아 남부에서 가장 빠르게, 가장 훌륭한 무기를 만들어내는 공장이 되었다.

카르카냑으로는 공간이 부족해서 몽세나에 2호점을 낼 정도였으니 말이다.

심지어 몽세나에는 수차를 이용한 자동 단조 기계도 설치했다고 한다. 물레방아에 해머를 연결해서 일정한 리듬으로 위 아래로 휘두르게 만든 기계다.

당연히 생산속도는 획기적으로 늘어날 수 밖에.

현재도 생산해내는 양은 트랑카벨 영지군이 자체적으로 필요한 양을 초과하고 있었다. 본래 비축량이 꽤 있기도 했지만 고무적인 일이다.

어차피, 이 정도 기술 수준의 뛰어난 리더 기술자 한 명만 있으면 효율은 얼마나 인력을 모으고 비용을 댈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아직은 기술 자본이 형성되지 않는 시대니까, 기술자는 후원자인 고용주가 없으면 자기 역할을 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충분한 비용과 의욕이 있는 고용주인 트랑카벨 가문과, 훌륭한 기술과 열정은 있으나 활약할 장소가 없었던 주디칼리 기술자들의 조합은 훌륭한 시너지를 내고 있었다.

이상이 현재 엘랑키아 남부에서 진행되는 대규모 축성 프로젝트, 생뢰르반 요새 건설을 트랑카벨 가문이 전담하게 된 이유이다.

“네 놈은 참모장인지 뭔지 일을 또 맡았다면서 빈둥빈둥 시간이 넘쳐나는 것이냐! 나는 감시 당하면서는 일 못한다!”

“아니 제가 언제 감시를 했다고요···.”

“관리자라는 놈은 모름지기 있는 듯 없는 듯 안 보이는 게 가장 좋다니까. 제 때 술집에서 지갑이나 열면 된다고!”

“아, 갑니다, 가요!”

“지갑은 놓고 가!”

최근들어 알게 된 엘랑키아 관리나 군인들이 왠지 나에게 과도하게 공손하게 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성격 더러운 드워프의 막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저렇게까지 말 하는데,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지. 밤 늦게 다시 와서 술이나 사면 되겠다.

현재 트랑카벨 가문이 진행하는 요새 프로젝트는 모두 세 개이다.

하나는 벨모제. 트랑카벨 가문의 자작령 중 유일하게 로데브 강 북안에 있어 만약에 수세에 몰리게 되면 최전선이 될 도시의 보강이다.

다만 벨모제의 요새화는 이미 어느정도 진행되었다. 주둔군과 주민들이 부지런히 일한 덕분이라, 사각을 최대한 줄이도록 외곽 포대만 보강하면 난공불락의 요새를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또 다른 하나는 성전군의 주력을 섬멸하는 계기가 되었던 ‘영웅들의 도시’ 아넥시의 보강이다.

아넥시는 트랑카벨 가문의 보호령이 되었기 때문에 엄연히 트랑카벨 가문의 영토라고 할 수 있다.

여기도 요새를 새로 짓는다기 보다는, 기존의 성벽을 최신 공법으로 보강하고 마을을 감싼 두 언덕 위에 작으나 성채 역할을 하는 망루를 지어 언덕 전체를 장악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이렇게 벨모제와 아넥시의 두 요새 프로젝트는 그렇게 많은 비용이나 기술이 필요한 작업은 아니다.

그에 비해서 생뢰르반의 요새는 아무것도 없던 허허벌판에 아예 새로 요새를 올리는 대작업이다.

트랑카벨 가문 뿐 아니라, 드 레뮤즈와 주변 가문들, 엘랑키아 왕실에서까지 출자를 해 막대한 건축비가 책정된 거대 프로젝트이다.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기술 수준도 높기에, 에오르크 레타일이 담당자로 지정된 것이다.

“주디칼리에서처럼 난공불락의 요새를 만들어주지!”

“어··· 그 요새 제가 사흘 만에 함락시켰었는데···.”

“이노옴! 그건 지키는 놈들 정신이 썩어빠졌었기 때문이다! 싸우기도 전에 항복하는 데 어쩌라는 말이냐! 썩어빠진 녀석!”

괜히 안해도 될 말을 해서 기어코 욕을 먹고야 만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모두가 ‘마치 내년 봄이 오면 또 전쟁이 벌어질 것 처럼’ 부지런히 ‘다음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디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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