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365화 (365/556)

38-6. 새로운 블랑독

“합금탄··· 이게 합금탄입니까? 아! 그러고 보니··· 이게 사람 몸에서 나왔다면···.”

“네, 단단한 재질이란 걸 아시겠어요?”

“그렇군요··· 저희도 합금탄을 일부 사용하기는 하지만 이런 건 처음 봤습니다···.”

이제 보니 부분 부분 찌그러지고 납작해진 부분이 있다. 게다가 금속이 긁혀 하얗게 흔적이 남은 것도 보인다.

그럼에도 완전히 납작해진 하나를 빼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본래 모습인 구형에 가까운 형태이다.

‘이미 발사되어 표적인 사람 몸에 명중한’ 탄환이 이렇다는 것은 특이한 일이다.

평범한 납탄은 인간의 살과 근육에 부딪치면 크게 변형이 될 정도로 재질이 무르다. 심지어 사람 몸 속에서 깨지는 바람에 치료하는 군의관의 속을 뒤집어 놓기도 한다.

그나마 이건 물렁한 맨살에 맞은 경우이고, 투구나 흉갑 등 금속 갑주의 단단한 부분에 맞으면 훨씬 형편없는 꼴이 되는 게 당연하다.

“이 납작하게 찌그러진 건 희생자의 흉갑을 뚫고 복부에 명중한 탄환이라네. 평범한 납탄이었다면 그 시점에서 몇 조각이 났겠지.”

“맞아요, 군의관님. 그랬다면 일격에 치명상에는 이르지 않았을 수도 있겠어요오.”

군의관 알체스테와 첼레스티나가 의견을 주고 받는다. 얀 역시 그들의 의견에 동감한다.

심지어 흉갑을 관통했다고 해도, 두꺼운 철판과 충돌하는 순간에 산산조각나며 방금 뚫어버린 철판의 파편과 함께 피부를 뚫는 경우도 있다.

당연하지만 힘이 분산되어 얕고 넓은 상처를 낸다. 이 경우 응급조치만 제때 한다면 치명상에 이르지 않고 끝나는 경우도 있다.

총병으로 전투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얀이든 첼레스티나든, 전장의 외과의로서 수없이 많은 총상 환자를 치료해본 알체스테든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형태를 그럭저럭 유지한 상태로 흉갑을 관통했다면 더 강한 에너지를 피해자의 몸에 고스란히 전달했을 것이 분명하다.

“제가 전장에서 보았던 그 자는··· 상당히 먼 거리에서 저격을 준비하는 자였습니다.”

“대략 몇 미터 정도였나요?”

“제가 보았을 때는 100미터가 조금 넘는 것 같았습니다···.”

“흐음··· 전장의 혼전 속에서 사선을 가리는 건 적군 뿐만이 아닐 텐데··· 상당한 실력의 명사수네요오.”

첼레스티나의 질문에 대답하다가, 갑자기 얀의 가슴 속에서 뭔가가 울컥 올라왔다.

적이 명중을 확신하고 주변은 신경도 쓰지 않고 조준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자신은 명중을 장담하지 못했기에 달려나가는 것을 선택했다.

적이 발사하기 전 납탄 대신, 단단한 개머리판으로 상대의 뼈를 부순 것은 다행스런 일이긴 했으나, 자존심 상하는 일도 분명했다.

“그 정도 거리에서 이렇게 탄두를 유지하면서 깔끔하게 관통했다네요오···.”

첼레스티나는 굴러다니는 총알 중 하나를 집어 자세히 살펴본다.

그녀 역시 유난히 총열이 긴 총기를 들고 다닌다는 것을 얀은 알고 있다. 그녀 역시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주 업무는 콘도티에레의 부관이거나 포병대 지휘라 실제로 사격하는 모습을 보인 적은 없지만.

첼레스티나가 눈살을 찌푸리며, 구슬치기 하듯 합금탄을 이리저리 굴려본다. 어딘가 흠집과 상처가 있는 합금 구슬들은 얼마간 굴러가다 멈춘다.

화승총의 발사체인 구형 탄환을 납으로 만드는 이유는 일단 녹는 점이 낮아 가공하기 쉽고 무게가 많이 나가 탄도 안정과 관통력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납 특유의 매우 무른 금속이라는 점은 언듯 발사 시점에 이미 찌그러져 에너지가 낭비되고 명중률도 떨어지게 되는 단점으로 생각되지만···.

의외로 강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특히 수백 수천 자루의 총이 동시에 활용되는 대규모 전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분명 단단한 탄환을 쓰면 명중률이나 관통력이 향상되겠지만, 자칫하면 총열에 무리가 가고 심각한 경우 파열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자신이 사용하는 총의 특성을 매우 잘 알고 있고, 상황에 따라 화약의 양을 적절히 조절할 수 있는 숙련 사수나 사용할 법한 탄환이 된다.

역으로 통상 유효 사거리 이상으로 발사할 일이 없고, 명중보다는 안정적인 연사가 더 중요한 대다수 총병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장점이기도 하고.

애초에 탄환과 화약을 적절히 포장한 탄약포를 사용하는 이유가 일정한 양으로 안정적인 사격 절차를 보장하기 위함이기도 했으니.

“물론 트랑카벨 영지군도 제한적으로나마 합금탄을 쓰긴 하지만, 이 정도로 주석 비율을 높여 단단하게 만든 탄은 주디칼리 식이네요.”

“오호, 주디칼리에서는 이런 걸로 총알을 만듭니까?”

“네에··· 주디칼리에서도 일반적인 것은 아니지만, 지금 얀 소대장이 가진 총을 보시면 아시잖아요오? 장거리 사격에 집착하는 일파가 있다고 해요.”

첼레스티나가 자세히 설명하자, 그 유식함에 얀은 깜짝 놀랐다. 하긴, 다른 용병대도 아닌 슈토르히 연대의 선임 중대장이고 그 콘도티에레의 보좌를 하는 사람이니까.

아까 능숙하게 ‘총기 검열’을 하며 소리만 듣고도 기름칠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챈 것도 그랬고.

역시 자신은 우물 안 개구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확실한 것은, 최소한 다섯 명의 아군 중견 장교가 이 탄환에 희생되었다··· 라는 거네요. 로베르 드 나뵈프 경도 갈비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으셨고···.”

“이게 전부 다른 시신에서 나온 탄환입니까!”

생각해보니 그렇다. 시신에서 수거한 탄환이 다섯 발이니··· 사망자도 다섯 명이겠지.

“네에 맞아요오. 서부군에서 세 명, 제10 연대에서 두 명···. 모두 중대장급 이상의 중견 지휘관이었어요.”

마지막 국면에서 제10 연대의 사상자가 대량으로 발생한 이유가 있고, 그럭저럭 팽팽하게 싸우던 서부군이 갑자기 혼란을 일으키며 무너진 이유가 있었다.

오로지 저격수 하나의 공로라고 할 수는 없으나, 핵심 중견 장교의 공백은 부대에 큰 위기를 초래하니까.

말을 마친 첼레스티나는 잠시 머리속으로 이런 저런 고민을 하는 듯 하더니, 다시 얀을 바라보고 입을 연다.

“아까 얀 소대장에게 두 번째 선택지 이야기를 했지요? 방금 나눈 이야기를 들으셨겠지만, 콘도티에레께서는 이런 상황에 대응할 선발 사수를 양성하실 생각이에요.”

“선발 사수···.”

“네에. 지금도 대열의 외곽을 지키며 적의 견제에 대응하는 역할은 있지만··· 선발 사수에게는 더 많은 역할이 요구되겠네요.”

얀 고티에는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내가 남들보다 좀 더 잘 하는 일이 있고, 자신이 존경하는 콘도티에레의 부관이 이를 높이 사 자신에게 일부러 시간을 내 이야기를 해 주고 있다.

방금 전까지 머리속을 채웠던, 중대장 ‘얀 고티에 경’이 되어 금의환향하겠다던 생각은 벌써부터 머리 속에서 싹 사라져 버렸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적의 존재를 찾아냈으면서도 도무지 기량이 닿지 않아 대응할 수 없었던 적 저격수를 전담하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이는 막연히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은밀하고도 막연했던 욕망과도 일치하는 성취였다.

아군에게 위협이 되는 저격수를 처리하고 싶다.

누구보다도 멀리서, 정확한 사격법을 익히고 싶다.

혼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닿을 수 없어 보였던 그 경지를, 슈토르히의 총병 선임중대장 첼레스티나가 데려다 주려 하는 것이다.

“자, 얀 소대장, 두 번째 선택지는 바로 이거예요. 향후 트랑카벨 영지군에 신설될 선발 사수 훈련을 받아들이겠느냐는···.”

“예, 하겠습니다. 하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생각보다 열성적이시네요.”

첼레스티나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제로는 ‘내가 그럴 줄 알았다’라는 듯한 표정이다.

“아직은 교관들이 없으니, 슈토르히 연대에서 훈련을 시작할 예정이에요. 아, 나중에 제10 연대로 복귀하실 테니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돼요.”

“알겠습니다, 부관님.”

“네에, 우선은 휴가를 다녀 오세요오! 가족 분들이 얼마나 걱정하셨겠어요. 꽤 힘들 테니 각오 단단히 하셔야 해요?”

“아, 알겠습니다!”

장난처럼 물어보는 첼레스티나와, 힘차게 대답하는 얀을 보며 슬쩍 웃은 알체스테는 탁자 위의 탄환을 주머니에 챙겨 넣는다.

향후에도 연구가 필요할지 모르는 귀중한 샘플이니까.

“첼레스티나 부관님, 훈련이 얼마나 힘들길래 각오를 하라는 말이 나옵니까?”

“흐음··· 글쎄요오···.”

알체스테의 질문에 첼레스티나는 잠시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함박웃음을 짓는다.

“왠지 세 명 중에 한 명은 울더라고요!”

“아··· 그렇군요.”

그 함박웃음이 너무도 아름답고 행복해 보여서, 알체스테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말투와 내용과의 괴리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얼굴이 흙빛이 된 얀의 얼굴을 보며, 의사를 직업으로 삼아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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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 우리 아실 자작님이 또 사고를 치셨군요.”

자신의 집무실에서 다 읽은 편지를 조심스럽게 다시 접으며, 아쥬흐 트랑카벨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사랑스러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말투였다.

오랜만에 유일한 남동생에게서 편지가 왔구나 했더니,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장문이라 조금 놀랐다.

한참동안 블랑독 북부 전선의 이런 저런 상황을 설명하고, 누나인 아쥬흐의 안부를 묻더니, 대량의 이민자들을 받아들인 사정을 설명한다.

그룬발트 출신의 소수 종파인 그들이 이단으로서 얼마나 큰 위험에 처해 먼 길을 걸어 블랑독을 찾아 왔는지.

트랑카벨의 다음 후계자인 자신이 얼마나 큰 책임감을 느끼고 깊은 고민을 하였는지.

결과적으로 받아들인 그들을 먹이고 재우기 위해 어느 정도의 물자가 추가로 필요한지.

나름 객관적으로 작성한 편지였다. 그리고 그 행간에 카르카냑에서 후방 지원을 위해 고생하는 누나에 대한 깊은 애정과 미안함도 느껴졌다.

편지 자체는 그렇게 대단한 내용은 아니었다. 하지만 편지 전체적으로 가득한 동생의 절절한 마음이 무척 사랑스럽고 예쁘게 느껴져서 연거푸 두 번이나 읽고 말았다.

동생이 이렇게까지 말 하는데 안 된다고 할 수 있는 누나가 세상에 과연 몇이나 있을까.

그 정도의 후방 지원이야 얼마든지 해줄 수 있었다.

트랑카벨 가문은 2년에 걸친 블랑독 방위 전쟁과 그 준비, 또 드 레뮤즈 백작가와 함께한 대 라솔 전쟁에 막대한 재원을 사용하고 있었다.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아쥬흐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영지를 짜내듯 운영해서 어떻게든 전쟁부터 이기고 보자··· 식의 정책은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전쟁이 장기화 되거나 다른 전쟁이 벌어지더라도 어떻게든 버틸 수 있도록 영지의 체질을 개선하고 있다고나 할까.

사실 올 초 까지만 해도, 아쥬흐가 많이 걱정했던 것은 식량 문제였다.

많은 피난민들이 로데브 강 이남으로 탈출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그들을 먹여 살릴 식량이야, 미리 준비된 비축량을 풀고 외국에서 급히 수입해오는 물량으로 어떻게든 해결이 가능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고향을 버리고 피난오면서 블랑독 중북부의 농경지들이 버려졌다는 것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내년에 블랑독에 식량난을 가져올 것이다. 최악의 경우··· 트랑카벨 가문을 포함한 블랑독 전체가 장기적인 기아에 시달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아쥬흐는 비축량을 늘리는 한편, 피난민들을 고용해 개발이 덜 된 몽세나 주변의 황무지와 카르카냑 남쪽의 늪지대를 개간하도록 했다.

고향을 떠나 의기소침해 있을 피난민들에게 적법하게 임금을 지급하는 방편이기도 했고, 실제로 인력이 부족해 개발하지 못한 지역을 개간한다는 일석이조의 계획이었다.

올해 당장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내년부터는 부족한 생산력을 보충할 수 있을 것이며, 더 나아가 향후 트랑카벨 가문의 잠재력이 될 것이다.

다만 전쟁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면서, 최악을 가정했던 식량난은 비교적 싱겁게 해결되었다.

비록 여름 동안 거의 방치되기는 했어도 되찾은 농경지에서는 어느 정도의 수확은 기대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

뿐만 아니라, 역시 카르카냑과 몽세나에 건설된 군수산업단지 역시 잘 작동하고 있었다.

트랑카벨 영지군이 필요로 하는 것은 충분히 충족하고 있었고, 그 이상의 물량을 생산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항상 수입만 해온 주디칼리의 상인들도 그 품질에 만족했으니, 역시 전쟁이 마무리 되면 수출도 할 수 있으리라.

다만 부족한 군마만은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고민이 많았지만···.

말을 키우는 농장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적절한 가격으로 군용마와 노역마를 사들이기로 했으니 조금씩 상황이 나아지리라 생각한다.

다만 한가지 걱정이 되는 것은··· 아실이 블랑독 북부에서 받아들인 피난민이 그룬발트에서 종교 탄압을 받은 ‘이단’ 들이라는 것이었다.

지금도 주신교단의 법황에게 미움 받아 이단으로 찍히고 파문 당한 상태인데··· 더더욱 눈 밖에 날 짓만 하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그러니··· 빨리 성녀 랑시아 아스트로메다가 무사히 회복되어 평화를 위한 가교, 혹은 인질로서라도 역할을 해 주면 좋을 텐데.

행복감과 함께 걱정을 끌어안으며, 아쥬흐 트랑카벨은 다음 서류를 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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