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364화 (364/556)

38-5. 새로운 블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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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 레뮤즈 백작가를 도와, 이스키비르 강을 건너 침공해온 라솔 군을 격퇴한 트랑카벨 영지군은 거점 카르카냑으로 돌아왔다.

진작부터 생뢰르반과 로그포르 전투의 대승리에 대해 알고 있었던 카르카냑에서는 대대적인 환영식이 있었으며, 돌아온 장병들은 하루동안 잘 먹고 휴식한 후 순차적으로 휴가를 받았다.

오랜만에 대도시에 돌아온 병사들에 의해 도시는 활기로 넘쳤으며, 트랑카벨의 승리와 영광을 외치는 소리가 도시에 가득찼다.

그런 와중, 도시 외곽 병영의 한 방에서는 다소 불편한 자세로 면담을 기다리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얀 고티에 소대장, 기다리셨죠?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아닙니다, 부관님.”

돌로 지어진 깔끔하지만 살풍경한 지휘관용 대기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람은 다름아닌 총병소대장 얀 고티에였고, 그를 부른 사람은 콘도티에레의 부관 첼레스티나였다.

그녀에게는 동행이 한 명 있었다.

“이쪽은 의무대의 알체스테 델 나르코 군의관이셔요오.”

“아··· 안녕하십니까, 군의관님.”

“음? 자네가 그 소문이 자자한 명사수였군. 몸은 좀 괜찮은가?”

“아주 좋습니다.”

서로의 얼굴을 알아본 두 사람이 서로 인사하자, 첼레스티나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라? 두 분은 구면이셨던가요?”

“생뢰르반 전투 이후에 부상을 봐준 적이 있습니다. 몸을 한계까지 썼던 모양이더군요.”

“아하, 그러셨구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지만, 얀으로서는 대체 무슨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 콘도티에레의 미녀 부관은 전부터 시간 나면 한 번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고 말을 하긴 했었지만, 이 군의관은 또 왜 이 자리에 있는 것인지.

눈치를 보면 알체스테 군의관 역시 얀을 만나게 될 것을 알고 불려온 것은 아닌 모양이고.

뭐 기다리면 알아서 이야기를 해 주시겠지, 하며 기다린다. 어차피 자기 휴가 차례가 올 때 까지는 딱히 할 일도 없었으니까.

“어어?”

놀랍게도, 첼레스티나는 자세를 바로하더니, 상체를 깍듯하게 숙여 인사한다.

군인이 군인에게 할 법한 경례가 아닌, 오히려 귀족의 예의를 다한 인사에 가깝다.

놀란 얀은 곧바로 일어서더니 엉거주춤한 자세로 마주 고개를 숙인다.

“정말 감사해요오! 콘도티에레를 살려주셔서요. 만약에 콘도티에레가 저격을 당했다면··· 저는··· 저는··· 어떻게 되었을지···.”

“저, 저의 역할이 아군의 승리에 도움이 되어 기쁠 뿐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감사드려요오···. 당연히 부관인 제가 챙겼어야 할 안전이지만··· 전투 상황이 워낙 급박하다보니···.”

첼레스티나는 상상만 해도 두려운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당시 상황은 정말 급박이라는 말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이야 그 국면에서 승리했으니 최종적으로 승자가 될 수 있었지만, 만약 거기서 패했다면 전투 자체가 패배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 본진에서 멀리 떨어진 상황이니, 충분한 호위병력을 갖추지 못한 콘도티에레는 혼전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너무 앞으로 나왔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마침 얀은 아군 장교를 골라 저격하는 적을 어느정도 파악하고 노리고 있었고···.

천운이라 할 정도로 잘 맞아돌아갔다, 첼레스티나의 말은 그런 의미를 담고 있었다.

“얀 소대장의 소속 부대는, 제10 카르카냑 보병 연대는 너무 많은 희생이··· 나왔어요.”

“예···.”

문자 그대로 전군의 ‘절반’이 죽거나 다쳤다. 특히 격전장에서 산산히 흩어졌던 얀의 소대원은 겨우 여섯이 남았을 뿐이다.

특히 장교들의 희생이 컸다. 당장 연대장이 중상을 입고 치료 중이었으며, 중대장 중 치료를 받더라도 복귀할 수 있는 사람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한다.

본래 장교가 부상하는 경우, 그 빈 자리를 채울 부관이 있거나 하위 지휘관 중 선임자를 지정하게 된다.

하지만 그 대체 인원까지도 대다수가 죽거나 부상을 입을 정도로 격전이었다.

생뢰르반에서 가장 큰 할약을 한 대가로, 제10 카르카냑 보병 연대는 전투력을 거의 상실한 것이다.

“그래서··· 전공이 있는 하급 장교들 중에서 지휘관 교육 후보자를 받고 있어요. 예상하셨겠지만, 얀 소대장 역시 여러 차례 추천을 받으셨고요.”

“제가··· 말입니까? 저, 저는 그냥 시골 출신 병사일 뿐인데요···.”

“네에. 저도 추천을 받아 마땅하다 생각해요. 최종적으로 위협적인 적을 추적해 ‘때려 잡은’ 것 외에도, 전투 내내 실질적으로 중대급 이상 병력을 지휘하셨잖아요?”

“그건 어쩌다보니···.”

아, 그런 일이 있긴 있었다.

워낙 상황이 엉망으로 돌아가다 보니, 주변 다른 부대에서 지원 병력이 조금씩 도착했고.

각자 소속 부대가 다른 총병과 창병이 섞인 채 최전방에서 싸우고 있던 얀의 부대는 어느새 덩치가 커져 전선의 빈 공간을 지키는 핵심 부대가 되었었다.

얀이 머뭇거리자, 첼레스티나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로서는 전공에 대한 욕심 없이, 순수하게 능력과 운이 따라준 활약으로 갑작스러운 찬사에 당황하는 청년들을 많이 보아왔으니까.

“얀 소대장이 앞으로 트랑카벨의 군인으로서 커리어를 이어가시기로 하신다면, 두 가지 선택지가 있어요.”

“저는 고향을··· 그리고 트랑카벨 가문을 지키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네에, 좋은 마음가짐이네요. 그래도 잘 들어보시고 결정하세요. 첫번째 선택지는, 지휘관 교육을 받아 중대장이 되는 것이에요.”

“중대장··· 제가 중대장···.”

소대장과 중대장은 단순히 한 단위 부대의 차이 이상의 많은 의미가 있다.

전통적인 계급사회의 봉건 군대에서, 중대장급은 기사의 역할이다. 그에 비해서 소대장급은 베테랑 병사의 역할이라고 할까.

게다가 단순하게 단위 부대 지휘관 뿐 아니라, 연대급 부대에 필요한 참모 장교들과도 거의 동등한 대우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중대장이 되면 책임이 막중해지지만, 그만한 권한이 생기고 존중받으실 수 있어요.”

생뢰르반에서 중대장의 사상률을 본 상황이니, 그 ‘막중한 책임’의 무게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 수 있으리라.

“당연히 봉급도 그렇고··· 중대장은 기사에 준하는 대우를 받으니 경칭도 붙게 되죠. ‘얀 고티에 경’으로 불리게 되겠네요.”

“제, 제가 기사 대우라니···.”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는다.

이런 시기에 군인으로 전장에 나서게 된 이상, 가난한 평민에게 찾아올 수 있는 기회를 전혀 노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값비싼 갑주로 온 몸을 두르고 금화로 가득한 지갑을 가진 기사를 붙잡아 인생역전을 해보겠다는 막연한 기대 정도는 누구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기사급의 대우를 받으며 ‘경’의 칭호를 받는다니. 고향 마을의 촌장님도 기사 가문은 아니지 않았던가.

문득 한동안 보지 못했던 가족과 고향 이웃들의 얼굴이 머리속을 스쳐 지나간다.

만약에 평범한 농사꾼이자 나무꾼이었던 자신이 ‘얀 경’이 되어 돌아가면 부모님이나 고향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항상 오빠를 따르며 친하게 구는 여동생이라면 분명 자기 일처럼 기뻐하겠지.

너무 과하게 하면 미움 받겠지만, 조금이라면 슬쩍 자랑을 해도 되겠지···.

봉급이 늘어나면 무엇을 할까? 일단 온통 망가진 울타리를 새로 세우고, 가축도 좀 더 들이는 게 좋겠다.

아! 관절통이 심해 드러눕는 경우가 많은 이웃 영감님이 내놓은 밭을 인수하는 것도 괜찮겠다.

아예 전문적으로 삼모작을 하며 말을 키워 보는것도 좋겠다. 전쟁 중이라 말 값이 많이 올랐으니까···.

제안을 받아들이자.

군인을 관둘 게 아니라면,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이런 기회가 아니라면 시골 청년 얀 고티에가 어떻게 ‘얀 경’ 소리를 들으며 대접받아 보겠는가.

다행히 그는 위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모양이니, 이 기회를 잡으면···.

하지만 기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아니, 첼레스티나나 다른 상관들이 자신을 속인다··· 따위의 위화감은 절대로 아니다. 그런 의심은 맹세코 조금도 하지 않는다.

그가 느끼는 위화감은, 연이어 참가했던 전투가 아니라면 자신에게 이런 면이 있었는지도 몰랐을 내적인 감정이었다.

‘순박한 시골 청년 얀 고티에’는 주어진 기회를 받아들이고,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아 나가라 말하고 있었다.

계속 트랑카벨 영주님들을 섬기며 군인으로 복무해도 되고, 전쟁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가 모아놓은 돈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도 된다고 말하면서.

하지만··· ‘전사 얀 고티에’는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까 콘도티에레의 부관, 첼레스티나가 말했던 ‘두 가지 선택지’의 후자 쪽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아니, 내용을 듣기도 전에 이미 그 선택지를 받아들이고 싶어하고 있었다. 아마도 중대장이라는 첫 선택지보다 더욱 거칠고 자극적인 내용을 기대하면서.

내용 정도는 들어보아도 괜찮겠지··· 라고 하며 입을 연다.

“혹시 또 다른 선택지에 대해서도 제가 들어도 될까요?”

“네에, 물론이에요. 다음 선택지는 뭐냐면요···.”

설명하던 첼레스티나는 잠시 말을 멈춘다. 단순히 기대감을 높이기 위해 뜸을 들이는 것 같지는 않다. 어떤 연유일까.

“얀 소대장, 그 전에 잠시 총을 볼 수 있을까요?”

“옛, 부관님.”

얀은 망설임 없이 기대어 세워두고 있던 자신의 총을 건넨다. 유난히 긴 총신을 가진, 전장에서 노획한 자신의 새로운 화승총.

전장에서 감히 콘도티에레의 심장을 노렸던, 이름 모를 주디칼리 출신 사수의 무기였던 총이다.

“흐음.”

총을 받아 든 첼레스티나는 망설임 없이, 그러나 주의 깊고 절도 있는 동작으로 총의 여기저기를 살펴본다.

물론 얀은 모르지만, 첼레스티나는 슈토르히의 총병 선임 중대장이다. 총기에 누구보다 익숙한 사람이다.

총기를 검열하듯, 이리저리 돌려보며 눈과 손가락으로 살핀다. 격철과 방아쇠 등 가동부를 작동시키고 소리를 들어보기도 한다.

“정비 상태가 훌륭하네요. 슈토르히 용병단 기준으로도 합격이에요.”

“감사합니다, 첼레스티나 부관님!”

“네에, 아! 그래도 기름칠 할 때가 되긴 했네요오.”

얀은 자신도 모르게 부동자세로 총을 돌려 받으며 절도있게 대답한다. 본능이 경고하는지, 식은땀이 나고 모골이 송연해진다.

“이 총은 주디칼리의 어느 명공··· 아니 명장이 만든 훌륭한 총이에요. 아마도 연사에 방해될 정도로 긴 총열은 주문자의 취향을 반영한 것이겠죠.”

“예···.”

“이전 사용자는 이 무기로 여러 아군을 저격했었구요. 아! 물론 총기에 좋고 나쁘고가 어디 있겠어요. 지금은 전장에서 적을 제압한 얀 소대장의 적법한 노획물이에요.”

“예, 하지만···.”

망설이다가 입을 연다. 머리속으로는 몇 번이나 생각했던 이야기.

“저는 그 적 사수를 사격으로 제압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뛰쳐나가서··· 정신 없는 와중 개머리판으로 때려 죽였습니다.”

만약 얀이 좀 더 사격 실력이 좋았다면, 자신감이 있었다면 그런 위태로운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혹시라도 뛰어가다가 다른 적에게 저지당했다면.

혹시라도 뛰어가는 사이 적이 조준을 마치고 먼저 발사했다면.

전투의 결과는 지금과는 다소 달랐을지도 모른다.

얀의 얼굴이 어두워지는 와중, 첼레스티나는 오히려 은근한 미소를 짓는다. 역시, 너는 그럴줄 알았다··· 라는 듯한 표정.

“여기 알체스테 군의관님께서는 전투에서 사망한 몇몇 장교분들의 시신을 조사하셨어요.”

“이거 참, 아직 숨 붙어있는 인간 째기도 바빠 죽겠구만, 숨 넘어간 인간을 째라 하시니 원.”

“헤헤헤, 고생하셨어요.”

알체스테 군의관은 말로는 투덜거렸지만, 내심 자신이 했던 일이 그렇게까지 싫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나름의 결과도 있었으니까.

“나는 첼레스티나 부관의 요청을 받아 전투 초기 총에 맞아 사망한 서부군의 장교들과, 전투 막바지에 마찬가지로 총에 맞아 사망한 제10 연대 장교들을 조사했네.”

전장에서 숨진 이들의 몸에 칼을 댄다는 말에 펄쩍 뛰는 자들도 있었지만, 총알을 제거해야 영면할 수 있지 않겠냐는 설득에 진행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피격 순간 총알이 관통해 들어온 각도와 강도가 남들과는 달랐다.

“이게 그 총알이네.”

알체스테가 주머니에서 빛나는 구형 물체 몇 개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 놓는다. 평범한 납탄처럼 보이기도 하고···..

얀은 조심스럽게 구형 물체를 집어 손바닥 위에서 굴려보았지만 뭐가 다른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었다.

다만 뭔가 다르기는 했다. 그 다른 점이 무엇인지 말하기는 어려웠지만.

“죄송합니다. 뭐가 특별한지는 저로서는···.”

“네에, 얀 소대장 입장에서는 처음 보시는 게 당연해요.”

어리둥절해 있는 얀에게 첼레스티나가 설명을 시작한다.

“이건 납에 주석을 섞은 합금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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