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360화 (360/556)

38-1. 새로운 블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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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 벨모제 기병 연대는 트랑카벨 영지군 소속의 고참 정규 연대 중 하나이다.

연대장인 마브리엘 마슈레는 트랑카벨 가신단의 어른이자 벨모제 성주인 톨마르 마슈레의 장남이다.

소년 시절, 아쥬흐와 아실 남매와 함께 교육을 함께 받 았던 사이이니, 주군 가문과의 깊은 유대관계는 굳이 말로 표현할 필요가 없으리라.

드 레뮤즈 가문의 요청에 의한 파병에는 참여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연대 구성원 중 트랑카벨 가문 소속이 아닌, 블랑독 타 지역 출신 지원병이 많았기 때문이다.

제7 용기병 중대장 로용 드 말리크가 그런 경우였다.

드 말리크 남작가의 둘째 아들이었던 그는 아직 본격적으로 전쟁이 시작되기 전, 어느 광신도 수도승이 고용한 용병대에 의해 고향 영지가 약탈당했다.

결국 모든 것을 잃은 채로, 소수의 살아남은 영민들만 데리고 남쪽으로 피신하는 수 밖에 없었고.

그 후에는 절반은 복수를 위해서, 절반은 더 이상 전장에서 무력한 존재가 아니고 싶었기에 트랑카벨 영지군에 지원하여 오늘도 복무하고 있었다.

선대 드 말리크 남작이었던 아버지와 후계자인 형이 전장에서 사망했기에, 그는 현 드 말리크 남작이었지만 소개할때 작위를 말하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영지도 관리하지 못하는 주제에 남작임을 내세우는 게 우습다 생각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기병 중대장이라는 자신의 노력으로 얻어낸 직책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만큼, 그는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한다.

현재 그의 중대는 6주 간의 광역 순찰 임무를 마치고 비교적 후방의 야영지로 돌아온 참이다.

그들이 6주간 지켰던 블랑독 북부의 황무지는, 다음 6주간은 교대한 동료 중대가 순찰하며 지키게 될 것이다.

순찰 임무가 싫거나 크게 고생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임무를 수행하다 보면 성전군을 자칭하는 불한당들과 교전하는 일이 생기고 적지만 사상자가 발생한다.

그러니 잠시 후방 예비대로 대기하는 동안은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으리라. 그렇다고 6주 내내 쉬기만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편지 가져왔습니다!”

“오 도착했구나. 자, 모두 줄 서!”

한편 전선에 있는 군인들이라면 누구나 기다리는, 가족으로부터 온 우편물을 수령할 수 있는 기간이기도 하다.

6주 동안 밀렸던 우편물들이 순차적으로 분배되자, 신난 병사들이 편지를 받아간다.

제대로 된 우편 시스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트랑카벨 가문에서는 따로 전담자들을 두면서 병사들에게 가족들의 편지가 전해질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는 병사들을 위한 훌륭한 복지였다. 편지를 받아가는 이들의 표정만 보아도 말이다.

“로용··· 남작님? 아! 로용 중대장님, 편지입니다.”

“아, 영민들이 보냈나 보군.”

“오늘은 편지가 두 개 입니다.”

“하나가 아니라? 누가 보낸 거지?”

로용은 우편 담당 병사가 내준 편지를 받아본다.

하나는 예상대로 로데브 강 이남으로 피신한 영민들의 소식이었다. 남작가에서 집사이자 관리 역할을 하던 늙은 가신은 종종 편지를 보내오곤 했다.

다행히도 영민들은 생각보다 잘 지내는 모양이었다. 대부분 카르카냑이나 항구도시 라니오타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며 밥벌이는 하고 있었으니.

비록 전쟁통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여기저기 군수공장이 세워지고, 엄청난 양의 물자가 오갔기 때문에 사람 일손은 어디서나 부족하다고 했다.

하긴 한창 일해야 할 청년들 수천 명이 전쟁터에 나와 있으니, 더 그런 점도 있겠지만.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정말 의외의 사람이 보낸 편지였다.

“중대장님, 어느 분께서 보내신 편지입니까?”

“어··· 이건 고프릭 벨장이라고, 슈토르히 연대에 있는 지인이 보낸 편지야.”

“네? 슈토르히이? 중대장님 슈토르히 연대에 아시는 분이 계셨습니까! 역시 남작님 답습니다!”

“아니, 이 친구는 특이케이스인데···.”

“오오, 정말입니까?”

“슈토르히는 그 괴물들 아닙니까!”

뭐라 설명할 틈도 없이, 흥분한 부하들이 몰려든다.

그도 그럴 것이, 트랑카벨 영지군 중에 슈토르히 연대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들 한 번 정도는 슈토르히의 훈련 시범을 보았으며, 샹다메리나 마르사코르 등 대규모 전장에서 결정적으로 활약하는 모습을 직접 보기도 했다.

그러니 그에 대해 동경, 경외, 질투 따위의 감정을 가져보지 않은 자도 없으리라.

“아니 이 친구는 콘도티에레가 외국에 계시던 시절부터 슈토르히였던 건 아니고, 나나 너희들처럼 블랑독 출신이야.”

“예? 블랑독 출신도 슈토르히에 입대할 수 있습니까?”

“몇 명 있다고 전부터 소문 돌지 않았나. 그래도 뭐 특별한 게 있어야 가능하겠지.”

“그, 그렇구나! 그럼 이 분은, 중대장님 지인 분은 어떤 점이 특별하신 분입니까?”

“이 친구는··· 아마 맨 손으로 사람을 반으로 찢을 수 있을 거야.”

“허어어···.”

어차피 고프릭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설명하기도 애매했고, 아는 척 할 만큼 로용이 잘 아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분명 과장··· 이긴 하지만, 분노한 고프릭이라면 정말 비쩍 마른 광신도 정도는 정말 찢어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없진 않았다.

“엄청나구먼···.”

“그 정도는 되어야 슈토르히에 지원서라도 써 볼 수 있는 건가?”

부하들이 멋대로 머리속에서 슈토르히와 고프릭에 대한 망상을 키워 나가는 동안, 로용은 편지를 꺼내 읽는다.

왠지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작고 조심스러운 글씨였다. 어쩌면 다른 사람이 대신 써준 편지일지도 모르지.

그다지 길지 않은 편지를 끝까지 읽었을 무렵에는, 상상속의 고프릭의 키가 3미터에 달하고 입에서 불이 나갈듯 말듯 할 무렵이었다.

피난길에 우연히 만나 함께했던 로용과 고프릭은 서로가 트랑카벨 영지군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다만 전쟁 와중에 우연히 만나게 되었고,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이다.

그런데 고프릭은 왠지 로용에게 무척 고마워하고 있었다. 그 덕에 식당에서 슈토르히 연대 소속의 선임 중대장을 만나서 스카웃이 되었다나.

말주변 없는 고프릭이고 워낙 일상적인 일은 아니라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정말로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게 전해졌다.

라솔 침공군에 맞서 파견군에 합류한 현재도 큰 부상 없이 잘 지내고 있는 모양이다.

이미 소문이 파다해 알고는 있었지만, 아군이 압승한 모양이고. 그것도 두 번이나 말이다.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때는 자신이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한다. 서로가 부대에 묶여있는 당장은 힘들겠지만···.

언젠가 그럴 날이 온다면 정말 좋겠다 생각하는 로용이다.

“그런데, 그거 들으셨습니까?”

“뭐 말인가?”

“전쟁이 끝나면 지원자를 받아 제대시키고 병력을 축소시킬 것이라는 것 말입니다.”

“아 그런 소문이 있었지.”

“뭐, 저는 쫓겨나지 않는 한 제8 연대에 뼈를 묻을 생각이지만요!”

“흐음···.”

그러고보니 전쟁은 언젠가 끝날 것이다. 그때는 트랑카벨 가문 입장에서도 지금처럼 막대한 병력을 유지할 필요는 없어지겠지.

로용은 최후의 전투에서도 겨우 수십 명이었던 드 말리크 남작가의 영지군을 생각한다. 그게 사실상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이었는데···.

트랑카벨은 대체 얼마나 부유하길래 그만한 병력을 유지하는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전쟁이 끝나면 폐허가 된 영지를 재건해야 할 테고, 돌아온 영민들을 수습하긴 해야 할 텐데.

계속 트랑카벨 영지군 장교로서의 커리어를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도 분명 있었다.

“그런데 전쟁이 아직 끝난 건 아니지 않나요?”

“그렇지, 아직 피난민들 귀가는 금지 상태이기도 하고.”

“제 사촌이 델레망드 쪽 항구에서 일하는데 말입니다, 주디칼리에서 온 뱃사람 말이 법황청에선 전쟁 멈출 생각이 없나 보더라고요.”

“하이고, 그렇게나 당해 놓고 또? 종교쟁이들 지들이 밥 벌어 먹는거 아니라고 너무한 거 아닌가?”

“뭐 광신도들 또 기어들어 오면 또 몰아놓고 싹 태워 버리는 거지! 콘도티에레가 또 해주시지 않겠어?”

“하하핫, 그렇지, 콘도티에레가 또 싹 쓸어버리겠지! 저번엔 불이었으니 이번엔 물속에 죄다 쳐넣어 버릴지도?”

부하들은 다들 호승심에 넘쳐 한마디씩 하고 있었지만, 진짜로 전쟁이 계속되는 건 걱정스러운 일이었다. 이런 비상 상황을 언제까지나 유지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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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랑카벨 가문의 장녀 아쥬흐 트랑카벨은 작게 콧노래를 부르며 주어진 일을 하고 있었다.

지난 이틀은 무척 행복했다. 책상 위에 쌓인, 오늘 반드시 검토해야 하는 산더미같은 문서들을 보고도 콧노래가 나올 정도로 말이다.

콘도티에레 에트는 무척 바쁜 사람이다.

물론 아쥬흐 자신도 트랑카벨 가문 전체에서 가장 바쁜 사람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서류 업무라는 특성상 약간은 조정이 가능하다.

그에 비해서 콘도티에레 에트는 달랐다. 대군의 지휘관이라는 특성상, 항상 전장 혹은 주둔지 어딘가에서 직접 보고 판단해야 하는 일들이 넘쳤으니까.

그런 점에서, 카렐 경이 사절로 도착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시기가 적절했다.

전황이 급박하지도 않고, 무사히 귀환하기만 하면 되는 안전한 상황에, 콘도티에레 에트를 부대로부터 떼어 놓 을 수 있는 공적 업무가 생긴 것이니까.

“아쥬흐 마님, 벨모제에서 도착한 서류들을 가지고 왔습니다.”

“수고했어요. 탁자 위에 두시면 제가 나중에 확인할게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바삐 움직이는 하인들 역시, 오늘따라 그들의 아름다운 여주인이 유난히 기분이 좋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유도 대충은 알고 있었고.

정작 아쥬흐는 자신이 속마음이나 감정을 잘 숨긴다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틀 동안 뭐 대단한 일을 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시간은 자신은 자기 집무실에서, 콘도티에레 에트는 그에게 주어진 집무실에서 일을 하며 보냈다.

그만큼 바쁜 두 사람이었으니까··· 감히 하루는 휴가를 내자! 따위의 제안은 어느 쪽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매 식사시간을 함께 보냈고, 일과를 마친 이후에는 짧게 티타임을 나눌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아쥬흐로서는 그만큼이나 행복했던 것이다. 다음 날에는 하루종일 행복할 정도로 말이다.

기분이 좋은 탓일지, 평소보다 일처리도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녀의 눈과 펜이 엄청난 속도로 행간을 달리며 무수히 많은 서류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라니오타에서 또 보고입니다! 주디칼리에서 전에 말씀하신··· 델로나 대학 소개로 오신 분들이 탄 배가 입항했다고 합니다.”

“아, 드디어 도착했군요. 고마워요. 라니오타 성주와 조합장께는 대접을 부탁드린다고 다시 한 번 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트랑카벨 영지의 대표적인 무역항이라고 할 수 있었던 항구도시 라니오타는 전쟁이 시작된 이후,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도시가 되었다.

매일같이 각지에서 각종 물자를 실은 상선들이 입항했고, 반대로 해외의 블랑독 상단에 맡겨 판매하기 위한 상품들도 계속해서 실려나갔다.

덕분에 몇 년 전에 비해서 부두는 세 배로 커졌고, 도시 자체도 크게 확장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명실상부한 엘랑키아 동부에서 가장 크고 활발한 항구이다.

뭐, 경쟁 항구가 별로 없기는 하지만.

다만 이번에 아쥬흐가 외국으로부터 ‘수입’ 하려는 것은 평소와는 조금 다른 종류이다.

바로 상품이 아닌 인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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